발칙한 QT

공공연한 비밀 마주하기[마24:1-14] 본문

신약 QT

공공연한 비밀 마주하기[마24:1-14]

주하인 2023. 3. 25. 06:34

(펌)재림하실 예수님

반드시 오실 주님

 

 

(펌) 말씀을 근거로 고뇌하고 성령의 은혜로 감해지다

그리고 마침내 시작될

대환란의 시간.

 

필연적으로 마주할 그날을

온전히 직면하기 위한

우리의 태도

 

주님 앞에 경건하게 서기

 

그리함으로 허락되어진

성령의 감해주심을 간구하며

 

 

예수께서 성전에서 나와서 가실 때에 제자들이 성전 건물들을 가리켜 보이려고 나아오니

 본질보다 비본질을 향하는 

우리의 '이 땅에 고정된 눈'을 가진 이유로

겨우

성전 건물을 보며 흐뭇해 하려는 마음과 달리

 

2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보지 못하느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려지리라

예수께서 '진실'과 '진리'.. 

본질을 보지 못하는 제자들을 향하여

준엄히 말씀하신다.

" 너희가 그리도 자랑스러워 하는 

그 성전 건물 조차 곧 돌하나도.......다 무너 뜨려지리라."

 

 아..

인정하지 않으려고 

두려운 것 다 잊으려고 

그리도 애써누르고 눌러 가며 살고 누구나 다 알아

누구도 이야기 하지 않는

공공연한 비밀로 붙히며 살아가고 있지만

그 '두려운 진실'을 

적나라히 마주하게 하신다. ㅜ.ㅜ;

 

 

예수께서 감람 산 위에 앉으셨을 때에 제자들이 조용히 와서 이르되 우리에게 이르소서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겠사오며 또 주의 임하심과 세상 끝에는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

 다행히 제자들은 그대로 또 묻어 버리고 무시하며 흘려 보내는 실수를 범하지 않고  

'감람산'.. 기도하는 장소에 앉으셨을 때

'조용히 와서 이르되'(많은 고뇌후 마음이 결정되어 결단을 내리고 조신하게 행동하는 뉘앙스... )

이 두려운 진실

이 공공연한 비밀에 대하여 

주께 '조용히..( 이 조용히라는 표현이 가슴에 온다.   두렵지만 마음을 정한 후의 차분한 .. 성령의 허락하신 은혜로인하여 돌이켜진 조용한 마음 상태.   그날이 감해질 것을 영혼이 느끼는 상태 ) 여쭙고 있다. 

 

 이러는 ..

 

" 주여.

그렇습니다. 

그러고 보니 저희가 미련 했었습니다. 

주님의 말씀이 있으셨음에도 불구하고 

그 공의의 말씀이 감당하기 두려워 억지로 피했지만

이제는 진실을 마주할 시간이 온 것 같이 느껴집니다.

주여.

준비가 되었사오니 들려 주소서...." 하는... ㅜ.ㅜ

 

 그리고 저 '조용히' 주님 앞에 '다가와서' 여쭈어 보기까지

그 시간의 공백동안

제자들의 마음 안에 어떠한 갈등이 있었을 것인가?

 이제는 때가 되었다. 

피할 수 없으니 지금이라도 '예수'님 말씀 앞에 바로서야 하리라. 

 하지만 두렵다. 

그러나 .......하면서 갈등의 시간이 있었지 않을까?

 

 그리고는 마침내 찾아온

차분한 결단의 시간.

거기에는 아직 성령체험은 없는 단계이지만

예수님 곁이라는 

암탉의 날개 아래라는 기댈곳 있는 제자들의 

그날을 감해주시는 

그 두려움을 덜 느끼게 해주시는 든든함을 이유로

결단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조용히 다가와 이르되'.............^^*

 

 그 마음이 느껴지고

그 진실을 마주할 용기를 닮길 바라시며

그리고 '예수님 앞'에서 

마침내 마주해야할 '마지막 시대'

이 계시록적 현상들을 다시금 돌이켜 보아야 함을 말씀하신다. 

 

 이 '조용히 여쭈'어 보기 까지의 

제자들에게 체험되어지는 마음의 변화와 결단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로 허락되어지는 감해진 두려움... 

그보다 '고요하고 차분한 받아들임'이 먼저 있을 ..

이 상태를 묵상하여 보라심 같다. 

 

4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주의하라

5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나는 그리스도라 하여 많은 사람을 미혹하리라

 그런데 

그 마주해야할 '공공연한 비밀'의 사실들이 과연 

저때, 주님이 말씀하실 그 당시에만 해당하던가?

 

 보라.

사람의 미혹'이라신다. 

'신ㅊㅈ, 안ㅅㅎ, JMㅅ..' 등 이단이 기승을 부리며

그 세를 엄청나게 불려가는 것은 둘째고

 

6 난리와 난리 소문을 듣겠으나 너희는 삼가 두려워하지 말라 이런 일이 있어야 하되 아직 끝은 아니니라

이란의 대 지진, 일본.. 이구... 중국의 그러함,

유럽, 미국,..........전 세계를 망라한 난리들이 한해에만 도 지구 곳곳에서 

난리와 난리로 이어진다.

 

 두렵다. 

그런데 두려워하지말라신다.

겨우 그것가지고... ㅠ.ㅠ;;

 

7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곳곳에 기근과 지진이 있으리니

터키-쿠르드,

'이란'-아랍

'이스라엘' -아랍

중국 내 소수민족.. 의 민족 갈등 뿐인가..

러시아-우크...

일본 - 한국

중국 -대만

중국 -한국

........의 예정된 나라와 나라의 갈등

지진, 재난, 기후위험, 먹거리 .......

심지어는 AI가 GPT업그레이드 버전에

양자컴퓨터..........로봇........

 

8 이 모든 것은 재난의 시작이니라

그런데 심지어 이 모든 '두려워 덮어 버리고' 

누구도 알고 누구도 예상되지만

누구도 모르는체 하는 

이 '두려운 비밀'.. 

이 '공공연한 비밀'이 

이제 겨우...

재난의 시작이라 신다ㅠ.ㅠ;

 

그렇다. 

계시록에 7년 대환란의 초기에 '상징'으로 보여지던 현상들.........의 일부에 

작금의 혼란이 예언되고 있지 않던가?

 본격적인 '일곱대접'재앙이 시작되기도 전,

일곱인을 떼는 초기 과정........ㅠ.ㅠ;

 

 

12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
13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그리고는 이 세상의 두려움이 어찌될 것인가를 

적나라히 말씀하신다. 

 

불법이 당연히 성하여

주님이 그토록 바라시는 

'사랑'이 베풀어지기 힘든 세상.. 

그 본질을 향한 현상 중 가장 힘든 ..

사랑을 유지하기 힘든 세상에 대하여 

경고하고 계신다. 

 

 그리고 '끝까지 견디는 자'......에 대하여

온전한 구원.. 을 말씀하신다. 

 

 아.. 오늘 말씀은 

마주하기 힘든 사실,

누구도 알지만 너무 두려워 설마. ..하며 가슴 깊이 묻어 놓고

누구의 입에서라도 약속이라도 한 것 처럼 말하지 않는 사실.. 을 

직시하기를 바라시는 것이시다. 

 

그것도... 

그날을 감해주시는 '성령' 안에서

'조용히 다가와 이르'게 하시는 것 같은

주님 안에서 거하며

반드시 직시해야하는

그래서 그러함으로 

이제 끝까지 견디는 자로서 마음을 간구하길 바라심이 

오늘 말씀의 레마이신 듯하다 .

 

 

어제 '위그노처럼'이란 책을 쓰신 

프랑스 선교사 '성원영 목사님'의 금요 예배 인도가 있었다 .

위그노란 아래에 옮겨다 놓았듯

마치 로마 초기 기독교인들 처럼

300년간의 온갖 박해에도 불구하고 신앙을 유지한

프랑스의 개신교도들로 

그들의 상상을 불허하는 고난에 뜨거워야할 금요성령예배가 

사뭇 숙연하였다. 

 아.. 내가...ㅠ.ㅠ ..

 

 때가 때인 모양이다. 

이제.. .세상은 양극으로 달리고 있다. 

주님을 모르는 자들의 그냥 불나방처럼 몸을 불사르며 그 세상에 몰두하는 .......

대부분의 그룹과

드디어는 마주하게 되는 이 세기말적 현상이

주님의 뜻 가운데서 마침내 도달한 '공의의 심판'을 

겸허히 마주 하려는 소수의 그룹......말이다. 

좁은 길......

그 좁은 길의 끝 부분에 

마침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실제화를 보는 듯한 

고난의 끝.. 말이다. 

 

 그 부분을 직시하라 시고

그러함에 '조용한 시간'.. 

주님앞에 조용히 나가 이를.. 그 잠시의 시간이 

오늘 내게 허락하신 레마이신 듯하다. 

 

 

주님.

두렵습니다. 

언제든 전쟁이 터질지 모를 이 땅에서

수십년의 휴전 기간 동안 애써 누르고 누르며 

무감각해진 것과 비슷히도

세상은 예언된 '계시록적' 현상으로 마구 치달림에도 불구하고 

그 두려움을 못이겨

그냥 '누르고 부인하고 아무일이 없는 것처럼'

그래서 누구라도 불안감 조성하며 진실을 마주하려 할 때는

이단 정죄하고 

귀를 막고 마구 소리지르며 듣지 않으려는 

미성숙한 소아적 반응이 

전세계의 '기독교인'들까지 만연해있는 게 

작금의 상황입니다. 

 

저는 어떤지요.. 

그냥 ......흘러가는 대로

세상이 그러니 그게 맞을거야.. 

애써 힘써 

진실을 외면해온 것은 아닌지요.

그러면서 '성전'의 본질보다

믿음과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보다는 

성전의 외형만에 

의도적으로 

의식 무의식적으로 시선을 빼앗기고 살아가고 있어왔습니다. 

주여.

이제는 마주해야할 때,

조용히 주님 앞에 더 나아가 여쭙는 태도로 살아야 할 때가

바야흐로 맞는 거 같습니다. 

시대의 현상이 너무도 드러맞습니다. 

더 이상 피할래야 피할 곳이 없습니다. 

 

그러나.. 두렵습니다. 

심하게 그러합니다 .

아직도 이루어야할 세상의 끈, 관계의 무게들이 무겁습니다. 

하지만... 

그날을 감해주시는 '성령'의 도우심이 있으심을 알고 있사오니

주님.... 

제게 그러함을 위한

조용한 차분함이 필요합니다. 

 

도우소서.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셔서 그리하시고

지혜로 그리하시며

은혜로 감하여 주소서.

항상 .. 오실 주님.

심판하실 주님.

지신 십자가에 동참해할 주님을 잊지 않게 하소서

 

이후로 삶의 시선을 더 강하게 바꾸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강하게 기도합니다. 

아멘 

 

 

 

----------------------------------------------------- 위그노


종교개혁기부터 프랑스 혁명에 이르는 시기의 프랑스의 칼뱅파 신도를 말한다. 어원에 대해서는 많은 설이 있는데, <서약동료>를 의미하는 독일어 Eidgenosse의 제네바 방언에 유래한다는 설이 유력하다. 가톨릭의 기즈당이 칼뱅파 신도에 대한 경멸의 호칭으로 이용하기 시작한 것으로, 이에 대해서 프로테스탄트는 가톨릭을 <교황의 무리(Papiste)>라고 불러서 대항했다. 그러나 오늘날의 프랑스에서 칼뱅파는 단순히 <개혁파(reforme)>라고 하여서 위그노라는 이름을 이용하지 않는데, 앵글로 색슨 세계에서는 상용되며, 일본에서도 그 영향으로 위그노라는 표현이 교과서 등에도 이용되고 있다. 16세기의 프랑스에서는 다양한 종교개혁의 조류가 보였는데, 칼뱅의 등장 이후 그 영향이 압도적으로 되어서, 프로테스탄트의 대다수는 칼뱅파에 속했다.

1559년, 칼뱅파는 파리에서 제1회의 전국개혁파 교회회의를 열고, 신앙의 기본인 <프랑스신조>를 채택해서 제네바의 강한 영향하에 있으면서도, 프랑스 고유한 개혁파의 조직화가 진행되었다. 1562년부터의 위그노 전쟁을 거쳐서, 98년 낭트의 왕령발포시의 개혁파 신도수는 거의 125만 명으로 추정되고 있는데 당시의 인구를 1800만 명 정도로 가정한다면, 15명에 1명이 개혁파였던 것이 되며 이 외에도 물론 엄격한 탄압이나 종교전란으로 국외로 탈출한 적지 않은 망명자도 고려해야 한다. 한편 사회층으로서는 지식인과 함께 수공업자에게 널리 침투한 것이 특징이다. 그러나 특히 프랑스의 서부, 남부에서는 농촌에 대한 침투도 주목되며, 1685년 낭트의 왕령폐지로 지식층이나 상인, 수공업자가 다수 국외로 망명한 후에도 숨은 위그노로서 머물고, 카미자르의 난처럼 저항의 거점도 되었다. 현재 프랑스의 프로테스탄트는 칼뱅파 약 40만 명, 기타 그룹 합쳐서 80만 명 정도로 소수파로서 폐쇄적인 경향도 보이는데, 많은 지식인을 낳아 정계, 금융계에도 독자적인 인간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