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말 조심, 의로울 급하고 좁은 길[마12:31-37] 본문
오직 하나님
오직 예수님
오직 성령님으로
매일 눈을 뜨고 정신을 차리고 살아내지 못하면
반드시 필패고 필멸이다.
세상의 돌아가는 형세가 그렇다
이제 곧
어디가 정상이고 어디가 비정상인지
어디가 물질인지 어디가 비물질, 영적 존재인지
눈뜨고도 구분하지 못할 시간이
곧 우리 앞에
정말 조만간 닥치게 될것이다.
그때쯤이면
알지 못하고 표받으러 서게 되어버려져 있고
또 그때쯤이면
기도해야하는 방향성을
완전히 잃어버리게 되고야 말 것이다.
하나님의 얼굴을 바란다
성령의 은혜가 어떻다........라는
정말 믿음에 필수불가결 요소가 사라져 버리고 말
영적인 대위기
대 환란의 시간이
곧 ........우리 앞에 놓여질 때가
바야흐로 눈앞에 와 있다.
요즈음 들어 더
오직 성령의 힘입어.....라 시며
마지막 추수를 위한 말씀을
주께서 강조하시는 느낌이시다
오늘...
그래도 난
아.. 그래서 나는
성령으로 인하여
말한마디에 더 신경을 쓰고
내 선한 자로서의 좁은 길을
행하리라.
주께서
이 혼란의 세월을 이겨나갈 수 있도록
도우실 것을 믿으며..
31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에 대한 모든 죄와 모독은 사하심을 얻되 성령을 모독하는 것은 사하심을 얻지 못하겠고
32 또 누구든지 말로 인자를 거역하면 사하심을 얻되 누구든지 말로 성령을 거역하면 이 세상과 오는 세상에서도 사하심을 얻지 못하리라
이게 어찌 레마가 되겠는가?
'성령을 모독'하지 말거나 '성령을 거역'하는 것...
나..
이제는 이런 말씀은 해당이 되지 않는다.
당연하지만 너무나 필수 불가결한 기초중의 기초...
그래서 마치 대학생에게 초등학교 저학년의 하는 것 같은
조금은.. 그런.. ^^;
그러나
정말 그럴까?
그래서 내 눈에 저리 띄이게 하시는 것은 무슨 이유이실까?
35 선한 사람은 그 쌓은 선에서 선한 것을 내고 악한 사람은 그 쌓은 악에서 악한 것을 내느니라
선한 사람은 누구이고
악한 사람은 누구인가?
선한 행동을 하고 악한 행동을 하면 '선인'이고 '악인'인가?
선인은 한순간 도 빠짐없이 선한 행동만 하고 선한 생각만을 하며
악인은 항상 악한 행동만을 하고 악한 생각만을 할까?
또
선한 사람은 선한 행동을 꾸준히 갈고 닦고 평생의 노력을 하여
선한 사람이 되는가?
반면, 악한 사람은 악한 행동을 인생의 단한순간도 지치지 않고 끝까지 하여
악인이 되던가?
정말 그렇다면 행동이 인격을 완성할 수 있던가?
그런데... 그게 아님을 알수 있음에도
예수님께서 왜 그리 말씀하셨을까?
선한 사람과 악한 사람의 차이는 무엇일까?
무엇을 선한 행동과 악한 행동으로 말씀하셨을까?
위의 물음을 통하여
'이 세상의 율법'. .세상의 가치 기준이 아님은
쉬이 알수 있지 않을까?
하나님이 안계신 자들의 '선함'과 악함의 기준
하나님을 의식하고 사는 자들의 그러함이 다름을 의미하시며
불신자들의 삶은 '악함'과 선함의 구분 자체가 '무의미'한 '악함' 그자체이고
오늘의 선함과 악함의 기준은
하나님을 의식하고 사는 '믿는 자'들에 대한 기준 아니던가?
성령을 체험하고
한번 비취임을 받은 ...
믿는 자들의 '선악'의 기준.
그들의 선으로 익어가는 '선한 자'와
실족하여 악으로 익어가는 '악한 자'
진정 선인과 악인의 구분.
첫구절 부터 나오지만
'성령'을 모독하고 거역하는 자들을
'선인'과 '악인'으로 구분하는 것 아니시던가?
성령을 거역하는 일이 쌓이고
성령을 모독하는 일이 쌓이면
그게 '악함'이다...라고..
그것..'성령'을 주심은 주님의 영역이시지만
반하고 거역하는 것은 '우리의 의지'와 '선택'의 영역이며
후자의 쌓임으로 선악이 결정되는 것이다.
한두번의 어쩔 수 없는 그러함은
하나님 앞에 '회개'와 돌이킴으로 돌아오고
다시금 성령의 은혜 앞에 서야
'사단'과의 영적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는
이 좁은 길..
매사 좁은 길 걸어감이 맞으며
오직 성령의 간구와
그러하심에 대한 응답이신 성령 충만
오직 우리의 갈구와 간구의 방향인 '성령충만' 만이
이 죄에서 벗어나
마침내 부르실 그곳에 도달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심이시다.
37 네 말로 의롭다 함을 받고 네 말로 정죄함을 받으리라
오늘.
월요일
쉴토 반근무 금요일의 쉼을 마치고 다시 발걸음을 내딛어야 하는
이 아침이 쉬이 일어나기 어렵다.
또 무게로 누르려 한다.
그때 '성령을 말씀'하신다.
성령을 거역하거나
성령을 모독하지 않는
오늘 하루의 지표는 '말'이다.... 하심이다.
말을 조심함으로
말을 조심하기 위하여 성령을 사모함으로
네 안에 '선을 쌓는 하루', '선인을 위한 또 하루의 월요일'이 되어보자.. 심 같다.
감사하다.
주님.
늦게 일아났습니다 .
웬일인지 모를 늦잠이었습니다.
주여.
걱정되는 것이 있어서 인가 몸도 마음도 무거우려 했습니다.
성령의 증상이 아닌...
어두운 현상들...인듯 그랬습니다.
GPT가 겁이 나고 '양자'가 겁이 납니다.
나라의 빚이 천문학적으로 쌓여가게 되며
전쟁의 신호가 .......그렇습니다.
......
가만히 보면 모두 '성령'을 힘입어 헤쳐나가야할
이 마지막 시대의 현상인 것을 느껴져
알고 힘이 나면서도
현실화된 두려움들이 몸과 마음을 무겁게 해서 인듯합니다.
주여.
그냥...다시 오늘 또 일상으로 들어갑니다.
그 시작이된 월요일 아침입니다.
오늘은 '성령'을 거역하거나 모욕하는 것이
주님이 관심가지시는 부분이시며
거꾸로 성령을 사모하고
성령의 임재를 통하며
성령을 힘입어 사는 길만이
이 '계시록적' 시대의 대안이고
그 길만이 '혼돈'으로 인한 수없는 '실족'에서 벗어날
유일한 길임을 알게 하십니다.
그래서 일단은 오늘 하루는 '말'조심하라...
그게성령을 기쁘게 하시는 길임이다... 라심 같이 느껴져옵니다.
주여.
그렇습니다.
논리적으로 수백만배의 속도를 앞서는 'AI"를 어찌 이겨내겠습니까?
이제 앞으로 모든 생각을 혼돈하게 하는
믿음 마져 옳고 그름을 구분할 수 없는 지경이 곧 오고야 말겠지만
그러함에도 유일하게 '성령'으로 인하여
그 좁은 길을 뚫고 갈수 있을 것이며
오직 성령으로만 그러한 생각마져 할 수 있는 유일한 길임을
다시금 깨닫습니다.
어제 말씀에서 처럼 '성령을 힘입어'.. 성령 성령 성령님 만이
유일하게 이제 남은 길이며
선을 유지하는 동앗줄일 것으로 보입니다.
오늘 하루 더 단단한 영적 체력을 위하여
성령을 사모합니다.
성령님의 허락하에
말을 조심할 수 있는
제게 너무 부족한 심성을 위하여
성령님 임하셔서
제게 순간순간 지혜를 주시고
이 악한 통쾌함을 잊어버리게 하소서.
말을 함부로 함으로 오는 이 악한 쾌감을 제하소서.
입을 막으시고 혀를 제한하소서.
저혼자는 되지 않사오니
말씀이 있으시고 성령의 계심으로
제가 오늘 하루 더 승리하는 하루 되게 하소서.
선인이 되는 이 좁은 하루길을 승리로 마무리 하게 하소서.
우리 주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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