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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아무일도 없었던 것처럼(왕상1:40-53)

주하인 2006. 4. 4. 09:07

 

 

(열왕기상1:40-1:53) 


 

40 모든 백성이 왕을 따라 올라와서 피리를 불며 크게 즐거워하므로 땅이 저희 소리로 인하여

   갈라질 듯하니

41 아도니야와 저와 함께한 손들이 먹기를 마칠 때에 다 들은지라 요압이 양각 소리를 듣고 가로

   되 성중에서 소리가 어찌하여 요란하뇨

42  말할 때에 제사장 아비아달의 아들 요나단이 오는지라 아도니야가 가로되 들어오라 너는 용사

   라 아름다운 소식을 가져오는도다

 커다란 소리가 잔치가 베풀어진 장소에 들려온다.

신나게 분위기에 취해있던 일행 들 모두 갑자기 마시던 술잔에서 입을 떼더니 동시에 모두 눈이 커진다.

그리고는 귀가 쫑긋하더니 입으로 가져가던 술잔을 딱 멈추고는 누가 시키기나 한듯이 고개를 들어 두리번 거린다.

 

울리던 풍악소리마져 뚝 끊기더니 사람들이 둘레둘레 주위를 둘러본다.

그러더니 그중 '영의정' 격인 요압이 소리를 내어 물어본다.

 

 " 어허

  이게 무슨 소리냐?

  왜 이리 밖이 소란한고 ~ !"

 

 

 말을 마치기도 전에 요나단이 보무도 당당하게 궁정으로 들어온다.

그러자, 아도니야가 벌떡 일어나 반긴다.

얼굴에는 희색이 만면하다.

몇잔의 술과 주악으로 불콰해진 그의 얼굴은 소위 '개기름'이 주르르 흐른다.

눈에는 눈빛이 탐욕으로 번쩍인다.

 

두손 들어 안으려는 자세로 요나단을 향해 마주간다.

 

 

 

 그러나

 

일장춘몽 ..

 

 혹시 주님의 이름으로 다른 목적을 가지고 크게 행사를 하면서도 그 안에 주님은 안계셔서 주님께서 진짜로 오실 때 '아름다운 소리'로 착각하는 잘못된 행사는 없는가?

 

프로그램 만 있고 예수님은 안계신 집회는 없지 않은가?

자신의 정욕을 만족 시키는 행위는 없지 않았던가?

 

매일 매일 우리의 일상을 돌아보지 않으면 자칫 주님 오실 때 자신에 아름다운 소리로 착각할 위험성이 다분하다.

늘 깨어 회개하고 돌아보아야 한다.

 

 

 

 

 

46 솔로몬이 나라 위에 앉았고

 

 주님의 선택은 솔로몬이었다.

백성들의 민심이 그를 반겼다.

솔로몬이 왕이 되었다 .

아주 자연스레이..

 

마치

왕위에 오르기 전의 나단 선지자와 밧세바, 그리고 브나야의 그 급박했던 마음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었다는 듯이 너무도 자연스레이 솔로몬이 왕이 되었다.

 

 

 주님의 일은 이러한 것이다.

인간들의 걱정이나 모사, 생각과는 너무도 다른 모습이다.

 

언제나 그렇다.

몸이 피곤하고 죄를 덕지덕지 지고 있어서 교회에 가서도 무슨 은혜 있으랴 하고 가면 여지없이 주님은 은혜를 더 하신다.

전혀 예상치 못한 은혜를 그 분은 주신다.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고 모든 것의 주관자는 결국 그 분임을 나타내 주시는 듯이..

 

이런 체험이 쌓이다 보니

세상에 제일 걱정이 많던 월하랑이 결국은 주하인이 되고자 하는 과정에 있지 않은가?

 

솔로몬은 나라 위에 그냥 앉았다.

아무 일도 없었다.

주님이 원하시는 것은 아무리 발벗고 뛰어도 인간들의 계획과 술수는 한낱 스쳐 지나가는 바람의 역할도 못한다.

 

 

 

 

50 아도니야도 솔로몬을 두려워하여 일어나 가서 제단 뿔을 잡으니

( 그래도 정신 못차리고 소 뿔을 잡는 것 보다는 낫지요..ㅎ)

 

 

 결국 아도니야도 성전으로 향한다.

그도 다윗 왕의 혈통이요.

주님을 믿는 자이었다.

 

 그래서 그가 최후로 갈 곳은 제단 앞이다.

그리고 열렬히 '제단 뿔'을 잡고 매달렸다.

 

그런데...

그게 진심으로 주님을 위해서인가?

자신의 안위만을 위함은 아닌가?

 

 혹여 내 믿음은 어떤가?

 

세상에서 의지하는 내 의지가 혹시 제단 뿔은 아닌가?

친구가

인맥이

내 청아한 (ㅎㅎ) 목소리가

내 잘난체 잘하는 글솜씨가

내 큐티 실력이

내 위치가

내 육체의 모습이

........................

 

 

 주님을 의지하고 기도하고 눈물흘리고 하지만 그것도 혹시 내 일신 상의 안위만을 위한 '제단 뿔'이더면 과연 우리 주님은 좋아하실 까?

 

 주님은 오늘 아침 바라시는 것이 분명하심을 보이신다.

 

주님을 기뻐하길 원하신다.

믿음은 주님과 기쁜 눈빛을 주고 받고

마치 아버지와 자녀 처럼 좋은 대화를 나누며

손잡고

천국을 향하는 노정이길 원하신다.

 

 오늘 아침 매일큐티의 묵상은 마태복음 26장 '향유옥합' 부분이었다.

나에게 향유옥합은 어떤 의미이던가?

반드시 돈이던가?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바로 곁에 계실 때도 있던  장애는 무엇이던가?

사람들의 손가락질과 회유성 발언 아니던가?

그럼에도 그걸 가로지르고 행하는 마리아의 기본은 무엇인가?

' 내가 원하는 것은 주님의 기쁨이다.

 난 그걸 선택한다...' 아니던가?

주님은 우리의 선택을 기다리시고 기뻐하시었다.

 

그러나....

오늘 보이는 아도니야의  혼자만의 소리지름.

 혼자만의 몸부림.

주님은 가만히 계세요.. 하는 어리석은 효성

필요시에만 붙드는 '제단의 뿔'의 괴성을 주님은 기뻐하지 않으신다.

 

 

 

 

그러나.........

 

그래도 안함보다는 낫다.

솔로몬의 지혜를 통해 임하시는 주님은 아도니야를 살려 주신다.

 

제단의 뿔은

우상의 뿔보다는 몇억배 그나마 낫다.

 

 

 

적용

 

1.  잘되고 있는 현상은 과연 진짜로 잘되어 가고 있는 것인가 반문하여 본다.

 

2.  아버지학교 스텝, 전인치유 세미나 봉사 등에 주님의 이름 빌은 내 만족적 행위가 우선은 아닌

   가 반성해본다.

   주님을 위하려면 '중보기도'를 더 열심히 해야만 한다.

 

3. 제단의 뿔 보다는 제단에 향유가 될 현실의 방법은 무엇인가?

 

 

 

 

 

기도

 

주님

어리석은 인간들의 잔치에

주님의 진실한 뜻이 무엇인지 살펴보는 기회를 가졌습니다.

주님 안에서

주님의 이름으로 행하는 일 에도

주님이 기뻐하지 않으실 일도 있을 수 있음을 경고받고 있습니다.

 

늘깨어 반성하게 하소서.

주님의 기쁨이 무엇인지 알게 하소서.

주님과 대화가 없어지면

반드시 아도니야가 될 수 밖에 없음을 잊지 않게 하소서.

 

현실의 번성이

반드시 축복이 아닐 수도 있음을 알게 하소서.

현실의 잠시의 어려움이

또한 반드시 초조하고 두려워할 상황이 아님도 알게 하소서.

 

주님이 원하시기만 하면

솔로몬처럼

솔로몬의 왕좌처럼

아주 자연스레이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그냥 행해지는 복이 있으리라 압니다.

 

소망을 가지길 원합니다.

아니

그 주신 소망이 의혹으로 흔들리지 않길 원합니다.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하소서.

원하는 것을 선택할 용기를 주소서.

그 원하는 것이 주님의 뜻인지 알 지혜를 주소서.

원하시는 것이 아닐 시 받아들이는 관용을 주소서.

 

 

늘 동행하시는 예수님께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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