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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판의 나무는(왕상1:1-10)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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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판의 나무는(왕상1:1-10)

주하인 2006. 4. 3. 13:32

 (열왕기상1:1-1:10) 

 

 

1 다윗 왕이 나이 많아 늙으니 이불을 덮어도 따뜻하지 아니한지라

 

5 때에 학깃의 아들 아도니야가 스스로 높여서 이르기를 내가 왕이 되리라 하고 자기를 위하여

  병거와 기병과 전배 오십 인을 예비하니

6 저는 압살롬의 다음에 난 자요 체용이 심히 준수한 자라 그 부친이 네가 어찌하여 그리하였느냐

  하는 말로 한 번도 저를 섭섭하게 한 일이 없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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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 윗                                         아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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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신분                                  왕                                            왕의 아들

2. 미모                                뛰어남                                         뛰어남

3. 아버지와의 관계                무관심, 냉대                                 무관심 ~과보호

4. 성품                                 활동적                                        활동적(스스로 왕 원할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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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삶의 비젼                          주님을 위하여                              자기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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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윗과 아도니야는 많은 면에서 닮았다.

특별히 심히 준수한 외모를 가지고 태어났으며 성장기에 문제가 있었던 자라는 점이 그렇다.

다윗은 아버지와 형제들에게 소위 왕따를 당하면서 상처를 가질 소인이 있던 환경이었고 아도니

야는 아버지의 부재에 의한 상처가 있는 자이다.

즉 동일시에 문제가 있는 "역기능 가정'에서 성장한 자들이다.

둘 다 정신적인 문제가 있을 소지가 큰 자들이다.

 

그러나

결과는 심히 달랐다.

다윗은 성경에 나온 인물 중 가장 하나님의 사랑을 받으며 가장 강대한 나라를 이끌었던 왕이고 아도니야는 왕에 오르기 직전에 물러나게 된 인물이다.

 

차이는 하나다.

다윗은 모든 걸 주님께 맡겨서 극복된 자이나 반면에 아도니야는 자기를 위하여 사는 삶을 선택함으로 욕망의 화신으로 커갔다.

그 결과 다윗의 삶은 뚜렷한 정체성과 목적으로 인하여 건강하고 남에게 도움이 되는 자가 되었고 아도니야는 반대의 결과로 솔로몬에 의해서 축출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었다.

 

 

 4월 01일 토요일 아침입니다.

어제 저녁 아홉시에 떠난 울산 행 두대의 카니발은 새벽 3시에 도착하였지요.

아침에 맞은 농촌의 아침은 꽤나 상쾌했습니다.

 

큐티 집을 들고 들녘으로 향했습니다.

자연에서 예수님을 묵상해보라는 것을 몸소 실천해볼 요량이었습니다.

그냥 밖으로 나가 잠시 묵상집을 읽어 본후 자연의 향기를 그냥 흠향했습니다.

그리고 쳐다보았습니다.

 

멀리 들판에 외로운 논두렁 길 사이에 한그루 나무가 서 있었습니다.

 

나목(裸木)

 

그 검은 가지는 고통스럽게 하늘을 향해 손을 내 뻣은 듯하였지요.

하나님을 향해 처절히 울부짖는 연단 과정 속의 하나님 자녀를 연상 시키셨습니다.

그 뒤로 감싸 안은 울주군의 낮지만은 않은 산이 살포시 감싸 안고 있었습니다.

이제 겨울의 풍경은 사라지고 황금 빛 지푸라기는 스산함보다는 희망을 느끼게 하였습니다.

 

어찌나 아름답던지요.

스산하지만 하늘을 향해 뻗은 그 나무는 이제 제 영혼을 흔드는 한그루 시(詩)였습니다.

 

아.

 

주님은 당신을 바라는 자에게 눈물로서 기다리다가 이제 완성된 또 하나의 의미가 되게 하셨던 겁니다.

 

그 나무는 '외로움'을 견디고 승화된 하나님을 향한 눈물이었습니다.

 

 

 

이제 큐티 집으로 눈이 갔습니다.

 

아도니야가 만일 왕이 되었더라도 그의 일생이 총 80년 가정해도 50여년의 왕생활.

그것도 젊음은 20년 정도.

주님이 아니고 '자기를 위한 ' 삶은 어떤 모습으로 스러져 있을까요?

 

마치 들녘의 말라붙은 지푸라기 처럼 누워 있다가

봄이 오면

뒤엎어져 땅으로 묻혀져 들어가버리는 퇴비신세가 아닐까요?

 

이 얼마나 허무한 인생입니까?

 

주님이 안계신 땅은 그렇습니다.

 

 

기도

 

주님 감사합니다.

아도니야 보다는 다윗처럼 닮아갈 수 있도록 기회를 자꾸 자꾸 주셔서 감사합니다.

큐티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나눔을 허락하셔서 감사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추신)

지수가 제 블로그에 와서 특별히 기도해주고 간 덕으로 풍성히 다녀왔습니다.

너무 귀여운 우리 지수..ㅎㅎ

 

샬롬

 

 

 

 

 

 

 


 
 
 
 
  거룩한 삶은 가장 감동을 준다.

- D.L. 무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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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 모든 건 그렇다.

 

그냥 그대로 서 있어 왔다.

비록 언찮은 모습일 지라도

그냥 그렇게 서 있다.

 

휘엉한 들판에

외로운 바람이 불어도

그 속에

진한 외로움과

누구도 쳐다 보지 않는

공허가

천년을 꿰뚫어도

그냥 그리

서 있다.

 

지나던 그 어느 누가

그에게 의미를 붙혀 주고

잠시 넋을 잃고

바라볼 바로 그 한 순간을 위해

그는 그대로 서 있다.

 

천년을 지속한

그 허허로움의 인내는

드디어 한 줄기

감탄사와 함께

공간을 빈틈없이 채우는

화려한 몸짓으로 비상한다.

 

그렇다.

 

주님은

기다리는 모든 자에게

특별한 소망을 허락하셨다.

 

 

 

 

 

 

06.04.01 울산 두동면의 봄 맞이 들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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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나무는 옷을 다 벗은 나목으로 하늘을 향해 까만 몸체만 그르테스크하게 손을 뻗은 느낌이었습니다.

물빠진 논으로 이루어진 들판은 이제 노란 짚으로 깔려 전체적으로 황금 빛이었으나 겨울의 스산함에 이제는 봄빛으로 생기가 돌았습니다.

그 넓은 들판 한가운데 논두렁 사이에 그 나무는 서 있었습니다.

뒤로는 낮은 야산이 둘러 쌓고 있었지요.

너무나 외로운 모습으로 그 나무의 뻣어나간 가지의 형국이 그 외로움을 처절히 호소하는 듯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 나무는 더 이상 외로움의 표징은 아니었습니다.

아름다왔지요.

그 아름다움은 오랜 인고로 이루어진 외로움과 기다림의 결과로 익어간 것이었습니다.

그 외로움이 이제는 제 눈과 감성으로 인하여 아름다움으로 승화했습니다.

 

주님이 그럴 것입니다.

저의 깊은 외로움을

언젠가는 한마디로 의미를 붙혀주실 겁니다.

그 때쯤

어느새

알지못하는 깊음으로 저는 익어 있겠지요.

누군가 날 보며

감탄 해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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