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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땅히 당연한 일들[계4:1-11] 본문

신약 QT

마땅히 당연한 일들[계4:1-11]

주하인 2019. 11. 28. 09:48


1.이 일 후에 내가 보니 하늘에 열린 문이 있는데 내가 들은 바 처음에 내게 말하던 나팔 소리 같은 그

   음성이 이르되 이리로 올라오라 이 후에 마땅히 일어날 일들을 내가 네게 보이리라 하시더라

 '마땅히 일어날 일 들'이다.

계시록적 상황에서

사도 요한의 눈을 통하여 보여지시는 모든 일들이...


 이 좁은 지구 땅덩어리에

발을 딛고 살아가며

오직 하루 살기에도 버거운

우리네 연약한 육신과

온 우주에 비하여 너무도 작은 이 지구에서 벌어지는

여러 가지 일들을 조합하고 분석하고 판단하여

생각할 수 밖에 없는

이 너무도 작은 '지적'인 두뇌를 가진 우리의 입장에서는

상상하기 조차,

아니 실제하는 현상 조차도 받아 들이기 어려워

과부하가 걸리기에

인정을 하지 못하고

인정을 할 수 없는 것은

눌러서 억압시켜

그것은 '불가능'하고 '실제'하지 않는다고

마치

아이들이 손바닥을 눈을 가리고 귀를 막으면서

절레 절레 못들은 척 , 안본척 하지만

이 마지막 시대의 사실들,

그러한 비전 속 현상들은

모~두가 사실일 뿐이다.


 아니..

솔직히

난..

그 중세시대에서 태어난 요한이

지금의 컴퓨터나 영화를 어찌 묘사했을까 궁금할 정도로

그 시대적 경험과  지적인 한계로

이 정도로 밖에 묘사하지 못했을 뿐이며

그러함을 아시는 주께서

그냥 우리네 인간들의 수준에 맞추어

알아 볼 수 있을 정도로 낮추어 현신하여 주셔서 그렇지

'천국'과 '보좌'는

요한님의 그것보다

훨씬 더 어마어마하고

상상을 불허할 상황임을 눈치채고 있다.

난. .. ^^*


그것.

하나님의 말씀으로 만들어진

우주로만

눈을 돌려도 그렇다.

상상을 불허할 크기 (광년, 10광년을 단위로 하는 거리........몇억광년은 우스운 크기.. ㅠ.ㅠ;;)

거기에 '차원, dimension'과

시간의 개념이 겹쳐져,

시공간과 우주를 넘나들면

이제는 머리가 깨질 듯하여 생각조차 하기 싫어진다.

'다중우주'까지 넘어가고

양자 개념까지 들어가면

'신'의 영역이 되고

불가지의 영역이다.

..........

아...

이렇게 들이대 줘도

상상으로나마 따라갈 수 있는 측정을 거부하고

도저히 불가능한 일들이

우리 지구 밖.. 태양계로만 나가도 부지기수인데

과연..

우리가 보지 않고 체험하지 못햇다고

아.. 과학적이지 않다고 (지구 안에서 , 경험안의 것들.. )

그게 아니라고 말하는 것 자체가

너무나 우스운 논리 아닌가?


개미들이

인간이 없다고 하는 것이나

그들이 밟혀 죽어도

운명이니 숙명의 시간 속 영원.. 따지며

우리를 이해하여 보려 조차 못하는 것과

과연 무엇이 다를까?

그들이 부인한다고

우리가 없는 존재던가?

아..

더 나아가서 '서로서로 옳다고 주장하고 법을 만들었다'고

그들이 불쌍하다고

'동성애'가 정상이던가?

우주와 자연에 어긋나고

사실이 아닌데?

......


미련한 것들.

이 마땅히 당연한 것들이

난. .얼마나

오늘도

내 삶속에서

당연히 아니라고 해치워지고 있을까?

내 인식속에 있는 것 만이 정상이며

내 생각해보지 못한 것들은 사실이 아니고

그것들은 설화속의 얘기라고 치부하며

신비적이란 이름하에

가두어 버리는

그 '개미들의 미련함'을

유지하고 살 것인가?


아.........

당연히도 마땅한

오늘 내가 인정하고 살아야 할 것.


내 갈 본향은 '천국'이고

천국은

하나님이 저렇게..

아.. 내 현실에 맞게

저 요한님의 감동의 비율로

내게 다가올 것을 인정하는 것이며

그러기에

지금 내 딛고 선 오늘의 땅에서 벌어지는 일,

내 흐르는 시간 속의 내 삶을

최선을 다하여

갈 본향을 기쁘게 간직하고 기대하는 맘으로

열심히 살아가야만 할 것이다.


2.내가 곧 성령에 감동되었더니 보라 하늘에 보좌를 베풀었고 그 보좌 위에 앉으신 이가 있는데
 무엇보다

'성령의 감동'을 기대하며 말이다.

성령의

내 안에서 역사하심을 방해하지 않는

마땅히 기대하는 자의 삶 말이다.


감사하다.

깨달아짐이..



주여.

수도 없이 많은 마땅한 일들이

내 안에 , 내 주변에 , 내 앞에 펼쳐져 있음에도

현실이라는 이 작도 좁은

내 눈앞의 옳고 그름에만 매달려

얼마나 많은 시간을 죽여가며 살아 왔던 지요?


솔직히

천국을 사모하는 당위서을 알면서도

뜨겁게 인식하지 못했습니다.

오늘 말씀은

그 천국의 내 그 무지함에 불구하고

확실히 있고

그 있음의 너무도 귀하고 대단함에 대하여

마땅히 기뻐하여야 할 것임을

마음 속으로 느껴지고 깨달아집니다.


주여.

이제 그 마땅함을 통하여

이 땅의 중요치 않은 것들이 내 우선 순위에 있던 게

약해져 감을 느낍니다.

주여.

괜한 자존심, 괜한 욕심, 괜한 당연히 해야할 초조함들을

조용히 내려 놓아 보려 합니다.

주님 나라,

그 온전한 마땅함에 합당치 않은 것들..

조금 더 하나씩 벗어 버리려 합니다.

주여

도우소서.


특별히

제가 콘트롤 하기 어려웠던

수술방에서의 '지지 부진'한 도우미들에 대한

스스로 어려웠던 일이

어쩌면

마땅한 소망에 대한 기대보다

이 땅에 고착된 고정 관념에 맞이 않는 그들을 향해

나도 모르게

습관적 흐름에 맡긴 탓인듯합니다.


주여.'

주님이 어제도 말씀하셨습니다.

주변에 더 긍휼히 하라.

예..

주님의 말씀ㄷ로

마땅히 제가해야할 일이지요.

그리 알고

마땅한 누림을 위해서라도

그런 자격이 있음을 감사함으로라도

이 내 작은 삶의 반경에서의 버거움,

더 내려 놓아 보도록 하겠습니다.

내 주여.

긍휼함을 더 가지도록

성령으로 도우소서.


내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들어 감사하며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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