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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로됨을 아는 포로로서 살아감[렘40:1-16]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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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로됨을 아는 포로로서 살아감[렘40:1-16]

주하인 2024. 7. 29. 07:19

(펌)

분명코 격렬한 스콜 같은 비였는데

아내와 나는

그 무성한 풀 밭같은 들깨 밭에서

환호를 외쳤습니다

 

그러다 금방 그쳤습니다

내내 덥더니

그 후로 전혀 안그랬습니다

심지어는 흙밭도 전혀 질지가 않았습니다

아주 적당한 양의 샤워 같은 비였습니다

 

분명코 우리는 알았습니다

예보에 따르면 폭우 일거라 했지만

하나님의 축복일 것임을요

 

그랬습니다

늘 그랬지요

기도와 말씀 묵상을 멈추지 않는 우리는

어디를 가도 그랬었으니까요

저 풀 숲으로 

고개를 내밀고 이겨내는

들깨들을 세워주는 일의 양은 

고되고 힘든게 분명했지만

그를 가능하게 하시는

시원하게 하심으로 

저 폭우의 조짐이 다가왔으니요

 

잘 해내고 

이겨내고 올라왔으며

다음 날 예배를 

은혜 가운데 드렸습니다

비록 온몸은 아프고 피곤했지만

영혼이 참으로 든든했습니다

 

그렇습니다

포로된 자들이 포로됨을 인식하고 산다는 것

말씀 가운데 매일을 투영하고 바라보면

거기가 바로 '은혜'의 장소일 가능성요.

 

이제 

어떤 일이 있어도

그리 크게 두려워하거나 절망하지 않을 거 같습니다.

원리를 알고

나를 아니까요

 

모두 

제 안에서 

제 곁에서 

제 위에서

저를 

우리를 이끌어가시는

주님의 뜻 안에 있으니요

 

참으로 감사합니다.

내 주여.

살아계신 하나님이시여

 

 

 


사령관 느부사라단이 예루살렘과 유다의 포로를 바벨론으로 옮기는 중에 예레미야도 잡혀 사슬로 결박되어 가다가 라마에서 풀려난 후에 말씀이 여호와께로부터 예레미야에게 임하니라

 '예레미야'님은 

시종일관 '포로임을 알만한 확실한 포로' 

-포로된 줄 모르는 포로들이 문제가 아닌가?

 하나님을 모르는 불신의 백성, 영적 애굽..영적 이방인들... 

 하나님을 믿는다면서도 제대로 믿지 못하는 ..ㅠ.ㅠ .. 그러한 자들이 진정한 포로,

 불쌍히 여겨야만 하는 포로들이다.. 알지 못하는 포로..영멸로 들어갈 사단의 포로 ㅜ.ㅜ;; -다. 

 

 포로됨을 아는 포로에게는

당연한 원리가 있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시고

그 말씀을 들을 줄 안다는 사실이다. 

 

 가장 귀한 그러한 자들은

그러함

이 세상의 어떠한 현실

즉, 포로되어 겪는 그 상황에도 불구하고

당연히도 좌절하거나 절망은 없다는 사실이다. 

 

 보라.

예레미야님... 비록 두려워하고 힘들어 하는 게 

당연하지만 

그를 두려워하는 '왕'의 비밀스러운 만남을 보게되고

 

사령관이 예레미야를 불러다가 이르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곳에 이 재난을 선포하시더니
3 여호와께서 그가 말씀하신 대로 행하셨으니 이는 너희가 여호와께 범죄하고 그의 목소리에 순종하지 아니하였으므로 이제 이루어졌도다 이 일이 너희에게 임한 것이니라

이방 사령관의 놀라운 고백을 듣는

그러한 일들이 있게 되지 않는가?

세상이 결국 인정하게 되어있다는 이야기다. 

인정이 중요한게 아니고

진실이다. 

숨겨도 드러나게 되는 진실 함... 말이다. 

 

우리는 포로 되었지만 결국 자유자일.. 

그 자유와 진실이

그들은 결국 부러워 하게 될 거고 

알게 될거다. 

 

 

 이게 소망이다. 

이제는 안다. 

알기에 지금 또 그래도 조금 더 큰 소망이 있을

당연한 원리를 안다. 

한숨 나올 풀 들 속,무농약 무제초로 키운 들깨들이 그들보다 한뼘 더 커있음이 경이로운 감동이다 ^^*

 

 마치 누구나 다 이리 '절망' 일 듯한 

그 상황,

그 포로, 전쟁의 갈취물의 일부일 듯한 그 상황에서 조차

하나님의 시선이 투영된 

경이로운 감동으로 바라보게 한다는 것.. 

 

그게.. 

포로된지 모르는 진정한 포로.. 

세상을 열심히 만.. .산 결과인

'바벨론 사령관' 같은 자 마져의

눈에 뜨이게 한원리이다.

 송곳은 감추어도 주머니를 뚫고 나오듯

진실은 거짓을 뚫고

튀어나오는 풀밭속에서도 드러나는 들깨 ^^* 같은 거다.

 

 그게

'예레미야님' 같은..

진정 주님을 인식하며 이 땅의 '광야' 포로의 인생을 사는 

모든 주하인들...^^* 같은 옳은 길 가는 자들의 

당연한 숙명이 아니던가?

 

 

4 보라 내가 오늘 네 손의 사슬을 풀어 너를 풀어 주노니 만일 네가 나와 함께 바벨론으로 가는 것을 좋게 여기거든 가자 내가 너를 선대하리라 만일 나와 함께 바벨론으로 가는 것을 좋지 않게 여기거든 그만 두라 보라 온 땅이 네 앞에 있나니 네가 좋게 여기는 대로 옳게 여기는 곳으로 갈지니라 하니라
5 예레미야가 아직 돌이키기 전에 그가 다시 이르되 너는 바벨론의 왕이 유다 성읍들을 맡도록 세운 사반의 손자 아히감의 아들 그다랴에게로 돌아가서 그와 함께 백성 가운데 살거나 네가 옳게 여기는 곳으로 가거나 할지니라 하고 그 사령관이 그에게 양식과 선물을 주어 보내매
6 예레미야가 미스바로 가서 아히감의 아들 그다랴에게로 나아가서 그 땅에 남아 있는 백성 가운데서 그와 함께 사니라

그리고는 

점차로 깨달아가는 

이 세상을 

'하나님을 인식하며 살아가려는'

'시간의 포로 , 

이세상 물질 계 ...3차원 세상의 포로..로

어쩔 수 없이도 하나님의 뜻 가운데서 사는

주하인 같은,

좁은 길 갈 수 밖에 없는 자들^^* '의 

인생 사는 법,

인생 살아오게 되는 

흐름의 원리에 대하여 보여주는 것이다. 

 

 우선 그 원리의 첫째는 이거다 .

' 이 세상에서 포로되어 살 수 밖에 없는 게 

우리의 운명'이라는 것을 

얼른 받아 들여 가슴에서 녹여야 한다는 거다. 

 

 아담과 이브의 원죄로 인하여 

이땅에 유리된 삶을 살다가 

출애굽하고 광야 생활을 통해 연단 받은 믿음을 가진 

정결한 자로 주님 나라에 가기 위한 게 

이 삶이고

그 연단 , 사막 광야 같은 삶 속에

시간과 물질의 포로로 살게 되는 것.. 

그 포로를 

온전한 주님의 백성으로 제련 받게 되기 위하여

어쩔 수 없는 세상의 고난과 압제와 핍박은 

당연한 것임.. 

그러기에 '누구에게나'

심지어는 '예레미야님 '.. '예수님'  조차 

인생의 버거운 고난, 이해되지 않는 상황의 전개는 

필연이었음을 인정하면

나의 이 정도는 

어쩌면 당연한 것일 수 있음이

받아 들여지지는 않을까?

 그것이

'세상의 포로된 자임을 아는 진정한 포로'의 인식이 

시작되는 것 아니던가?

그리고 그때부터 '은혜'.. 

성령의 보혜.. 가 시작이 되는 것이고.. ^^*

 

 비록 , 불신, 가시덩굴 믿음 같은 신앙인들과

같은 포로지만

온전하게 아는 포로.. 

뚜렷한 포로... 말이다. 

 

 두번째

주님 만을 놓치지 않고 

매일 주님 말씀대로 살아가려는 자들은

세상이 그냥 두지 않는다는 거다.

 

 '끝없는 포로'로 이리 끌리고 저리끌리게 하시는 것.. 

예레미야의 저 포로 상태의 연속..ㅠ.ㅠ..

또 예수님의 연단

십자가 고난..이라는 '필연의 고난'이라는 것.. 

 

 그렇다고 울지 않고 몸부림치지 말라시던가?

아니다. 

어쩔 수 없이 그러함에도

어쩔 수 없음을 주님 앞에 매사 내려놓고 

주님 말씀을 시도 때도 없이 들으라심이시다. 

 

 

 셋째.. 

세상의 것을 통하여서도 

또 주님은 주님이 원하시는 대로 

풀어주시고 해결해주신다는 거다. 

그 시간이 또 언제까지 일지.. 모르지만.. 

 보라.

바벨론 사령관이 '하나님 말씀'  이야기를 한다. 

구스인 내시 에베멜렉이 그런다. 

 어쩌면 이러함도 우리를 위한 장치이기도 하지만

우리의 그러함, 그러한 포로됨과  영적 예루살렘인들의 저무지를 개탄하는

소수의 깨어 있는 자들에게

'전도의 기회'로 쓰임이 되지는 아닐까 싶다. 

 

넷째

선택이다. 

어떤 것을 선택하든

주님은 주님의 흐름에 맞추어 기뻐하신다 .

 

그것이다 .

이것도 옳고 저것도 옳을 때.. 

주님의 말씀을 내가 놓치지 않으면 

그게 옳다. 

 

그 안에서 흐르는 것.. 

'자유'다.

이제.. .그 것이 정말 '행복'함을 느낀다. 

들깨들... 

그 안에서 

그 풀안에서

아주 싱그럽고 더 큰 생기를 뿜어내고 있음이

너무 사랑스러웠다 .

 난. .주님의 선교 전도 교회 구제........와 조금은 동떨어진 듯한

뜬금없는 '농사'일을 그냥 일상에서 기도하며 이루어내고 있다 .

그것.. 

그 안에서도 또한 영적 흐름을

나는 느끼고 있고 보고 있다. 

흐름이고 '자유'다. 

또 ...이렇듯 이해되지 않고 정제되지 않은 

인생의 흐름 속에서도

주님은 주님을 놓치지 않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뜻을 보이심이시다. 

먹고 사는 이 삶속에서 말이다. ..

 자유다.

 원리다. 

 

7 들에 있는 모든 지휘관과 그 부하들이 바벨론의 왕이 아히감의 아들 그다랴에게 그 땅을 맡기고 남녀와 유아와 바벨론으로 잡혀가지 아니한 빈민을 그에게 위임하였다 함을 듣고
8 그들 곧 느다냐의 아들 이스마엘과 가레아의 두 아들 요하난과 요나단과 단후멧의 아들 스라야와 느도바 사람 에배의 아들들과 마아가 사람의 아들 여사냐와 그들의 사람들이 미스바로 가서 그다랴에게 이르니
9 사반의 손자 아히감의 아들 그다랴가 그들과 그들의 사람들에게 맹세하며 이르되 너희는 갈대아 사람을 섬기기를 두려워하지 말고 이 땅에 살면서 바벨론의 왕을 섬기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유익하리라
12 그 모든 유다 사람이 쫓겨났던 각처에서 돌아와 유다 땅 미스바에 사는 그다랴에게 이르러 포도주와 여름 과일을 심히 많이 모으니라
13 가레아의 아들 요하난과 들에 있던 모든 군 지휘관들이 미스바에 사는 그다랴에게 이르러

'다섯째'..

 

 '들에 있는 모든 지휘관'

'들에 있던 모든 군 지휘관'들. ..이 나온다. 

느껴지는 바가 있어 AI 통해 -AI는 쉬운 심부름꾼이다. . 매이지 않고 이용하면 되는 한시적 도구다.   주님의 뜻가운데그마져 허락되어진... 매몰될 일은 아니지만 확장될 수 있는 도구.. ^^* - 검색해서 

아래에 긁어다 붙혀 놓았다 .  

 

 개인적으로 저들은 이렇게 느껴진다. 

'하나님 이름으로 처절히 투쟁하며 노력하는 자들'.. 

많은 기독교 선교사님들, 목회자님들.... 

비전이란 이름으로 열심이신 기독교인이 

다 옳을 까?

인간적으로 존경하지 못할 만한 사람들은 

개중에 없을까?

 다 옳고 하나님의 인정하에 나가셨다해도

그들의 행로가 항상 옳을까?

그게.. 하나님 나라를 향해 가는 우리네 인생들에

하나도 들어 맞지 않음을 

'예레미야님'의 결과를 보아도

충분히 짐작가지 않을까?

저 처절한 인생의 고통속에서 '왜곡'이 왜 없을까?

무슨 말인가?

 

 저들, 들녁에서 싸우는 .. 

그래서 결국 나름대로 투쟁에 성공해 이스라엘에 남은 -하나님의 뜻과는 상치된 자아의 고집을 하나님의 뜻이라 왜곡하는 또다른 바리새인..ㅠ.ㅠ - 자신을한

어쩌면 스스로 생각하기에

'영적 전사'라 생각하는 존재들 아닐까?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하신 대로 '..

바벨론에 가지 않았으면서도

나름 그냥.. 인정 받아 

이땅에 남아 있는

또다른 하나님 백성의 딴 부류.. 라는 이야기다 .

 

영적이긴 하지만

'자아'가 극도로 뛰어나게 개발된.. 

하나님의 뜻과는 조금 다르게 존재하면서도

'영적'으로 그들의 충성은 인정할 만한 

조금은 위험한... ㅠ.ㅠ.. 

 

 개인적으로

덜다듬어진 ' 선교사 출신'의 의료 신앙인들을 

아주 많이 보고

열심히 기독교 행사와 일을 벌이다가 

상급없는 종말을 맞이 한 .. 

나름의 대단한 '그러하신 분'들. ..

스스로 만의 비전을^^;; 크게 가지고

왜곡된 분들을 많이 보았는데

그런 부류들이 '들에 있는 군 지휘관(영적 전투는 열심히 하나 방향이 틀린.. 스스로만의 군 지휘관...ㅠ.ㅠ) ' 이 아닐까? .. 

 

 

14 그에게 이르되 암몬 자손의 왕 바알리스가 네 생명을 빼앗으려 하여 느다냐의 아들 이스마엘을 보낸 줄 네가 아느냐 하되 아히감의 아들 그다랴가 믿지 아니한지라
15 가레아의 아들 요하난이 미스바에서 그다랴에게 비밀히 말하여 이르되 청하노니 내가 가서 사람이 모르게 느다냐의 아들 이스마엘을 죽이게 하라 어찌하여 그가 네 생명을 빼앗게 하여 네게 모인 모든 유다 사람을 흩어지게 하며 유다의 남은 자로 멸망을 당하게 하랴 하니라
16 그러나 아히감의 아들 그다랴가 가레아의 아들 요하난에게 이르되 네가 이 일을 행하지 말 것이니라 네가 이스마엘에 대하여 한 말은 진정이 아니니라 하니라

그리고 그들은 아직도 기도하는 자들이라서

나름의 영적 깨어있음이 있고

그런 그들은

그들 나름의 기준에 맞는

'이스라엘에 남은 왕'...

그다랴를 염려하는 조언을 하게된다

 

 비록 그다랴 왕은 듣지 않아 위험해지게 되지만. ..

 

무슨 것을 말씀하시려는가?

 '선택'과 '깨어 있음'.. '그 안의 조율'.. 아닐가?

그리고 그 어떤 성취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일 말씀 앞에 서 있는가.. 다. 

 

예레미야를 보고 있는

'바벨론 사령관'의 눈에 조차 띄일 정도의

깨어 있음.. 말이다 .

 

 

 여섯째

영적 그다랴.. 다. 

 

 하나님의 뜻에 따라 

남아 있게 되는 자들을 위한

'세워진 영적 도구' 말이다. 

스스로는 아니라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어차피 '남아 있는 포로'

포로였던 남아 있는 자...들(예레미야님을 포함한.. )을 위한

그 누구의 리더는 필요하여 세워진 '도구' .. 말이다. 

 

어떠한 모습이든

누구든 다 고생이다 .

다 '세상의 포로'가 되어

세상에서 나름의 인생을 펼친다 

 

문제는 

자신이 어떠한 포로인지도 알지 못하고

그 포로를 통하여 진정으로 '포로를 벗어나게 하실'

유일한 길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제대로 깊이 만나지 못하여

아직도 자아 등등한 자신의 결심과 노력의 끝을 

'비전'으로 착각하고 왜곡되어지는 자들이다. 

아.. 당연히도

'불신 포로'들,사단의 포로들은 빼고.. 말이다. ㅠ.ㅠ

 

 그 어떤 인생의 시나리오 안에 

어떤 등장인물로

지금, 현재 있는 지 몰라도 

가장어려움을 겪는

'누가 봐도' 포로인 '예레미야'님이

가장 소망이 있어보이고

절망이 아님으로 보임은

당연히도 '하나님을 전제로 함'이다 .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자이기 때문이다. 

 

 그렇다.

포로된자이지만 포로됨을 알고 

그 운명을 벗는 유일한 길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면서 

'성령의 은혜' 안에 거하게 되며 사는 삶.... 

그것이 유일하게 

이 '포로된 인생의 또 하루'를 

나름 행복하고

나름 자유롭게  - 아.. 세상은 그래도 행복한 우릴 보며 '나름' 행복하긴 하네.. 라면 .. 그는 성공한 길을 가도 있는 그리스도 인이 아닐까?   예레미야님처럼 강력한 깨달음의 존재라면 귀한 기독교인이고.. ^^; - 살 수 있을거 같다 .

 

주님.

늦잠 잤습니다 .

자주 그렇습니다. 

너무 피곤하기도

다른 것에 빠져 

영적 게으름으로 그러했습니다 

 

그러나.. 바쁜 와중에서도 

잠시 시간을 내

다시 말씀을 되뇌이며 살아가는 하루가 되긴 합니다. 

 

주여.

온통 절망 뿐,

온통 포로 뿐인

이 하루하루가 힘듦 뿐인 '삶'.. 인생에서

그래도 '진짜 포로임을 인정'하는 자로서

이제 곧 얼마 안 있으면

완전한 자유인,주님 나라에서 살아갈

'성화된 시민'으로서의 소망을

이제는 확실히 기대하고

그게 소망으로 되어가는 저에게 

오늘 말씀은 역시 '답답하고 암담함 보다'

그래도 '희망'있게 느껴집니다 .

 말씀 덕입니다.

로고스인 하나님이 그 이유이십니다 .

그것을 알아차리는 저 이기에 그렇습니다 .

 

감사합니다 .주여.

 

주신 깨달음 더 붙잡고 살아갈 수 있도록 하소서.

거룩하고 귀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 들에 있는 모든 군 지휘관 ) by AI, copilot 

 

예레미야 40장 7절 이후에 나오는 '들에 있는 모든 군 지휘관'은 바벨론의 침략을 피해 들판이나 외곽 지역에 숨어 있던 유다의 군 지휘관들을 가리킵니다. 이들은 바벨론의 지배를 피하고 생존을 위해 들판에서 활동하던 유다의 잔존 병력과 그들의 부하들입니다¹².

영적으로 이 표현은 여러 가지 의미를 가질 수 있습니다:

1. **피난과 생존**: 유다의 멸망 후에도 살아남아 있는 자들이 들판에서 생존을 위해 노력하고 있음을 상징합니다. 이는 어려운 상황에서도 생존을 위해 노력하는 인간의 본능을 보여줍니다.

2. **하나님의 보호와 인도**: 들판은 위험하고 불안정한 장소이지만, 그곳에서도 하나님은 그들을 보호하고 인도하셨습니다. 이는 하나님이 어디서나 그의 백성을 돌보신다는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3. **회복과 희망**: 들판에 있던 지휘관들이 다시 모여 유다의 회복을 꿈꾸고 계획하는 모습은,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미래를 준비하는 자세를 보여줍니다.

이러한 해석들은 성경의 다른 부분들과 연결하여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예레미야서 전체를 통해 하나님이 그의 백성을 어떻게 인도하고 보호하시는지, 그리고 그들이 어떻게 회복될 수 있는지를 묵상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혹시 더 궁금한 점이 있으신가요? 😊

¹: [지혜가 부족하거든 (예레미야 40장 7절 ~ 16절) 조약돌묵상](https://blog.naver.com/lds2011/222103669898)
²: [예레미야40장 1~16절 큐티: 리더의 현명한 분별력- 예레미야의 결정과 그다랴의 판단 (매일성경 묵상)](https://blog.naver.com/lifetube/223525814514)

원본: Copilot과의 대화, 2024. 7. 29.
(1) 지혜가 부족하거든 (예레미야 40장 7절 ~ 16절) 조약돌묵상 .... https://blog.naver.com/PostView.naver?blogId=lds2011&logNo=222103669898.
(2) 예레미야40장 1~16절 큐티: 리더의 현명한 분별력- 예레미야의 .... https://blog.naver.com/PostView.naver?blogId=lifetube&logNo=223525814514&noTrackingCode=true.
(3) 예레미야 47장 : 네이버 블로그. https://blog.naver.com/PostView.nhn?blogId=lesson21&logNo=222175643324.
(4) 예레미야 - 나무위키. https://namu.wiki/w/%EC%98%88%EB%A0%88%EB%AF%B8%EC%95%BC.
(5) 예레미야 40 - The Church of Jesus Christ of Latter-day Saints. https://www.churchofjesuschrist.org/study/scriptures/ot/jer/40?lang=kor.
(6) undefined. https://blog.naver.com/lds2011/2221036698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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