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똥같은 세상에서 자유하다(욥20:4-10)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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똥같은 세상에서 자유하다(욥20:4-10)

주하인 2008. 10. 2. 18:25

제 20 장 ( Chapter 20, Job )

 

 

아침이 오면

모두

생기가 찬다.

주님의 영광이

온 천하에 밝혀지는 날 !

어리석은

주님을 모르는 자들도

그 위용에

눈을 뜨지 못하리라........

 

똥도

말라버리고 말 것이다.ㅎㅎ

 

 


4.  네가 알지 못하느냐 예로부터 사람이 이 세상에 있어 옴으로  
5.  악인의 이기는 자랑도 잠시요 사곡한 자의 즐거움도 잠간이니라 
7.  자기의 똥처럼 영원히 망할 것이라 그를 본 자가 이르기를 그가 어디 있느냐 하리라 
 

 똥 !!

NIV 와 KJV 모두  'dung'으로 나온다.

발음도 '덩~'

보라.

         dung [dㅁŋ] n.
        U 똥(excrement); 거름, 비료(manure).

 

 한글 , 영어 성경 모두가 비슷한 표현이다.

재밌다.

 

오늘의 이 소리도

그냥 묵상 구절만 뚝 떼어 놓고 들으면

옳다.

악인의 이기는 것은 잠깐이 맞다.

이 세상에서 그들이 잘 사는 것 같지만

시편 73편 고백처럼

   17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갈 때에 저희 결국을 내가 깨달았나이다.

   18 주께서 참으로 저희를 미끄러운 곳에 두시며 파멸에 던지시니 

악인은 우리의 소견에 미끄러운 곳에서

형통한 듯이 부들부들 잘살지만

그것은 결국 파멸이 맞기는 맞다.

비록

그것이 이들 '소발'과 같은

단순논리

율법적 사고

주님을 자신의 논리의 틀안에 꿰맞추려는

어리석은 자들의 예상 대로

모두 우리 눈 앞에서 파멸에 이르는 것은 아닐지라도..  

  그 시기와 시간은

주님의 영역이시다.

죽어 주님 앞에 갈 때인지

축복으로 보이는

그 시간이 실은 그 악인에게는 고통의 시간일 지...

어찌 우리가 알겠는가?

 

 어찌되었든

이 거룩한 듯하고

그럴 듯한 소발의 논리는

몇 가지 점에서 문제가 있다.

 

 그중 하나는

욥을 '악인'의 틀에 집어 넣어 버린 것이다.

이것은

판단 자인 주님의 역할을 대신해 버린 것이다.

그의 말이 맞을 수 있다.

그러나,

악하지 않는 자 누구란 말인가?

예수님도 악하지 않은 자가 돌로 여인을 치라 하시지 않았나?

 소발의 미련함이

어찌 이리도 친밀한가?

나의 성급함과 판단하기를 잘하는

어리석음을 질책하시는 듯하다.

 

 또

악인의 결과는

반드시 나쁠 것은 사실이지만

그 결과가

선인이라고 잠정결론 맺고 있는 자신을 포함한

모든 인간 들의 눈 앞에

권선징악의 차원에서 이루어져 나타나야 한다는

어이없는 기대감이다.

 

시편 73편은

고난 받는 중 속상해 하는 시편의 기자가

이러한 기대감으로 주님 앞에

위에 기록한 것 처럼 하소연하다가

결국 주님 앞에서 깨닫고

통탄의 회개를 부르짖는 구절이다.

 21, 22절에 이리나온다.

       내 마음이 산란하며 내 심장이 찔렸나이다.

       내가 이같이 우매 무지 하니 주의 앞에 짐승이오니

주님 앞에 '짐승'같다고 자신의 무지를 통탄한다.

그러나,

진실의 하나님께

그래도 믿는 자의 행운을

순간적으로 이리 표현하고 있다.

      내가 항상 주와 함께 하니 주께서 내 오른 손을 붙드셨나이다.

 

 이것은 무슨 말인가?

누구나 '권선징악'의 논리에 빠져들고 싶다.

특별히 억울한 고난에 있다고 생각하면

악한 자들이 빨리 망하는 것을 보아야

속이 시원할 것 같고

그것이 정의이며

그것이 하나님이 살아계신 증거라고

생각하고 싶어하고

그렇지 않으면 '원망'의 마음이 올라온다.

이게

바로 주님을 인간의 차원에 끌어내리는

불신앙이고

눈으로 보는 세상이 전부이라고

생각하는 어리석은 일이 아닌가?

  그러던 기자는

자신의 어리석음을 깨닫는다.

그런 자기가 '짐승'과 다름없었다고

자신의 불신앙을

터지듯한 어투로 고백하고 있다.

그럼에도 그 깨달음 조차

주님의 동행하심으로

그 분이 손으로 잡으시기에 깨달을 수 있는 진리임을

통렬히 고백한다.

이것은 주님이 주시기에 가능한

진리에 대한 눈의 떠짐이고

세상에 머물고

유물적 사고에만 고착되어 있던

어리석은 '소발적 사고'에서 벗어나게 되는

진리를 깨달은 자의

후련한 부르짖음 인 것이다 .

 

이것이 진리다.

 

 주님은 우리의 사고 체계에 갇혀 계신 분이 아니시고

주님은 우리와 늘 동행하시는 분이시고

그 분은 늘 우리 오른 손을 잡길 원하시고

그 분의 손을 잡고 동행하는 순간

우리는 '진리'를 알 수가 있으며

그 순간

그런 경험을 하는 순간,

우리는 우리의 생각과 사고가

바로 '짐승'같은 것이었음을 '자각'할 수 있는 기회가 되는 것이고

이 땅의 모든 것이

비록 소발의 표현이라 좀 그렇긴 하지만

"똥" 같은 것들이었고

사도바울의 표현 처럼 '배설물'같은 것에

우리의 사고가 고착되었음을

절실히 깨닫게 되는 것이다.

그 순간,

우리는

상황이 변하지는 않았지만

'주님 우리가 어리석은 짐승같았었나이다...'라고

통렬히 고백할 수가 있는 것이다.

 그리 되면

악인의 최후는 반드시 올 것이며

그 시기가

반드시 이 땅에서 국한 되는 것에 끝나지 않거나

우리가 바라는 대로의 파멸과는

또다른 양상의 심판이

그들 악인에게 있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그러한 깨달음은

삶의 자유를 가져온다.

 똥으로 부터의 자유로움....

    

 그러한 우리에게는

자랑할 것은 주님 밖에 없고

의뢰할 것도 '주님'뿐이시다.

     (갈6:14)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또한

이 그럴듯한 바보, 소발의 잘못은

마구 말을 한다는 것이다.

'똥'이 뭔가................ㅎㅎ

하고 많은 표현 중에서

동서 양이 모두 알아 들을 수 있는

'똥~         덩~'을 표현하다니...이구..ㅎㅎ

 언어 표현에 주의 하라는

레마의 말씀이시다.

 

 당직을 무사히 마치고

걸어서 '본원'에 왔다.

날씨가 유난히도 좋다.

마사이 워킹으로 운동도 하는 일석이조의 걸음이

참 행복하다.

 잠시 공부를 하고

들여다 본 '성경구절'에 나오는' 똥'이란 표현이

잠시나마 웃게 만든다.

주님은

별거로도 다 웃게 해주신다.

성경이

가끔은 참 재밌다.

시원하고

통렬하기도 하고

공감을 주는 감정의 흐름도 읽혀지고..

살아 있는 하나님의 책이

맞다.

 

 

 

적용

 

1. 성경 여섯 장 읽겠다.

 

2. 공부 하겠다.

 

3 . 말투를 조심하겠다.

 

4. 주님의 동행을 늘 인식하고 산다.

 걸어서 퇴근하는 길이 기대가 된다.

 특별히 마사이 워킹이 쓰러질 것 같이 위태위태한 느낌이다.

 손잡고 가면

 더욱 안정감이 있으리라.

 

5. 세상의 것은 똥 같다.

  너무 욕심 부리지 않으리라.

  특별히 힘든 세상이다.

  있을 수 있는 어려움에 마음을 내려놓는 기회로

  물질의 '똥'같음을 마음에 새기리라.

   어디든 무엇이든

 날 욕심 부리지 않게 하자.

   주님 도우소서. 

 

6. 주님은 주님의 뜻이 계시다.

 내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을 속상해 함이 불신의 시작이다.

모두

주님의 장중에 있다.

 모두 감사하자.

 

 

 

기도

 

주님

소발이 그럴듯한 말을 합니다.

웃음도 나오게 하고

그 미련함이 어찌 절 그리도 닮았는지요.

그럼에도

시편 73편의 그 깨달음이

저에게도 매일 일상에 있게 해 주실 줄 믿습니다.

주님의 모든 간섭을 믿게 하시고

하나 부터 열가지

이해하지 못할 것 까지

주님의 배려이심을 믿게 하소서.

구분하여

몸부림 치고

구분하여 감사하고

구분하여 간구하고.......그러지 않게 하소서.

그냥

주님의 뜻 안에 있음을 알게 하시고 믿게 하소서.

주님의 동행하심을 믿고

주님의 손 잡음을 느끼며

걸어가다 휘청거릴 때

한번씩 잡아주시는

그 주님의 따사로운 체온을

그 주님의 뜨거운 붉은 보혈을

아주 잠시나마 느끼는

그럴 수 있는

제가 되게 하소서.

그리하여

짐승같은

이 우매무지로 부터

벗어날 수 있는

한 줄기 가능성을

저 스스로 느끼게 하시고

그 느낌이 쌓여가고 증폭되어

살아계신 하나님이

늘 제안에 계심을

인정하고 기뻐하게 하소서.

 똥 같은

이 세상의 가치체계를

그리 추구하지 않게 하시되

경멸하지 않게 하시고

오히려

그들을 가련하고 동정있는 눈으로 쳐다보게 하시사

갇혀 있는 그 들의 삶에

도움이 되는 자가 되게 하시고

그들의 불쌍한 삶에

쉼이 될 수 있는 자가 되게 하소서.

자유의 가능성 느끼고

자유의 기회를 비로소 아는 자로서

긍휼한 마음으로

세상을 향해 마음을 열게 하소서.

저로

흔들림이 적게 하소서.

진리에 고착되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그 평강의 구속 이외에는

아무 것도

절 구속하지 못하게 하소서.

의미가 없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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