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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떼 안에서의 담대함 (부제: 할테면 하라)(욥19:6-12 )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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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떼 안에서의 담대함 (부제: 할테면 하라)(욥19:6-12 )

주하인 2008. 10. 2. 11:28

 

제 19 장 ( Chapter 19, Job )

 

 

 

 한참을 찾아야 만

겨우보일 듯한

 이 조그만 꽃이

지난 여름의

여러날의 깊은 밤과

모진 비와 바람에도 불구하고

오직 하늘 만을

그리도 간절히 바라보더니

이렇게나 아름다운

보석 같은결실을 

피워내고야 말았구다.  ^^*

 

 

 

 

4.  내가 과연 허물이 있었다 할지라도 그 허물이 내게만 있는 것이니  

 

 그렇게도 내가 허물이 많아 보이느냐?

너희들 눈에는?

그래

그렇다고 해도

과연

그 허물은 내게만 상관이 있는 것이다.

너희들의 비판을 들을 아무 이유가 없다.

 

 

 

5.  너희가 참으로 나를 향하여 자긍하며 내게 수치될 행위가 있다고 증명하려면 하려니와
 

 정말

너희가 나를 보고

스스로 자긍하고 스스로 위안이 되기 위해

내가 수치스러운 자라고

증명할려면 한번 해 보아라.

 

 할테면 해보아라...

 


 

 

"고전4:3)    너희에게나 다른 사람에게나 판단 받는 것이 내게는 매우 작은 일이라

           나도 나를 판단치 아니하노니"

 

 

 

 

6.  하나님이 나를 굴하게 하시고 자기 그물로 나를 에워싸신 줄은 알아야 할지니라
 

 하지만

너희 보기에 그런 것이

혹시

정말 맞는다 할 지라도

그것은 너희와는 아무  상관없는 일일 뿐이다.

그것은 오직

하나님께서

나를 고통 중에 넣으신 것 뿐이다.

너희 들이 말하는 그 어리석은 징죄의 논리와는

아무런 상관없는 일이란 말이다.

 

 

 

 
10.  사면으로 나를 헐으시니 나는 죽었구나  


 

 아....

정말 힘들구나.

사방 팔방으로 막혔으니

'나는 죽었구나'

  

 

 

 

 아침에 들르신 환우분 한분 께서

'진단서'를 끊어달라고 하신다.

초음파 검사 상 다른 질환이 발견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거기에는 일절 질문이 없으시고

오직 그 분이 관심이 있으신 것은

'냄새'가 나는 문제였다.

아니

정확히 따지면

남들이 하는 말이

냄새가 난다는 사람도 있고

아니란 사람도 있지만

신경이 쓰여서

냄새가 안난다는 '진단서'를 끊어 줘야

자신이 헬스클럽에서 운동하는데 신경이 덜 쓰일거란다.

아무리 냄새안난다는 진단서는 없고

질병의 진단에 대한 진단서는 있다고 설명해도

막무가내시다.

어찌되었던 그냥 돌아가시도록 하였지만

그 분은 못내 당황하는 눈치였다.

 문제는 '냄새'가 아니고

옆 사람을 신경쓰는

그 분의 마음이 문제였다.

실제로 진찰시에도 아무런 냄새가 없었다.

이런 분들은 아무리 설명을 해도 믿으려 하지 않는다.

많은 분들이 건강염려증이나

본 환우 분 처럼 의사의 말을 믿지 않고

많은 병원을 세일하듯이 돌아 다니는 분들이 있다.

 

 욥은

상당히 현대적인 어투로

친구들의 공격을 논박하고 있다.

그리고는

금방 그들에게서 돌아서서는

'하나님'을 향해서 하소연을 한 후

혼잣말 하듯이 '나는 죽었구나 '라 외치는 소리가

한편

웃음이 지어지게 하는 장면이다.

 

 오늘날

세상의 풍조를 돌아보아도

개성을 찾고 자신을 나타낸다고 하면서도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한껏 드러내기 위해

거의 병적으로 혼신의 힘을 쓰고 있다.

 성형수술하고

미니스커트 일색이고

모두 탤런트나 영화배우로 착각을 하는 듯하다.

 개성이라는 이름 하에

몸부림치는 이런 일련의 모든 행동들의 바탕에는

오히려  남을 더욱 신경쓰는,

더 정확히 말하면

남들의 말에 기죽지 않기 위한 몸부림에 지나지 않아 보인다.

 다른 것 같지만

그들은 하나도 다르지 않다.

오늘날 세상에 유행하는 풍조를 보면

탈개성을 부르짖는 '무개성' 일색이다.

거기서 거기다.

 아니면 반대로 나간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난 다르다... 하면서 '동성애 커밍아웃'한다.

그런데,

그런 다르다고 주장 하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니다.

극과 극은 상통하는 인간의 심리상태로 보아

그게 그것이다.

 가만히 들여다 보면

인간이라는 동물 집단들이

주인 없이

그만 그만한 자들이

서로 바라보고

서로 판단하고

서로 앞으로 나서기 위해

몸부림 치는 듯한 형국이다.

 

 마치

아프리카 대 초원에서

'누'떼들이

어느 시간이 되면

절벽 사이에 흐르는 급한 황토물살 강을

악어와 하마가 우굴 거리는 데도

수천년을 되풀이 된 '관습'과

이해하기 어려운 어떤  이유로

무조건 건너면서

서로가 서로를 짓밟고 앞으로 나서다가

몇은 다리가 부러지고

몇은 물에 익사하다가 잡혀 먹고

그러다가 성공한 자들은 강건너 너머 가

풀을 뜯어 먹는........

그러한 모습과 그리 달라 보이지 않는다.

 그 넘어가기 시작할 때 까지는

누구도 감히 넘어가지 않고 있다가

무리 중에 미련하고 용감한 한마리가 뛰어들면

너도나도 따라 넘어가기 시작한다.

수백만 마리의 누가 넘어가는 것은

정말 장관이다.

 서로 밟지만

누가 밟았는지 모른다.

먼저 나서려고 하지만 그게 그놈이다.  

 이게 무개성 속에서 개성이라 주장하는

그 사람들 같아 보여 실소를 금하기 어려울 때가 있다.

 그 누떼를 보면서

내가 '누 언어를 할 줄 만 안다면'

잘 조절을 할 텐데...하는 생각도 하기도 한다.  

 우리 어리석은 인간들도

조율자 하나님을 잊기 시작하면서

누떼랑 다름없기 시작한다.

 

 어찌 되었든 간에

현대인의 이러한 속성들은

그 속에 파묻혀 갖은 질병을 양산하게 된다.

자신의 존재의 정체성을 잃고

하루 아침에 다른 존재처럼 행동하는

'핵인간' - CS 루이스의 표현-으로 변하기도 하고

그러다가

정체성의 상실로

다양한 정신적 질병이 발생하기도 한다.

우울증.

정신병.

각종 범죄..........

 

  

 아침에

최진실 사망 사건이 크게 보도 된다.

내용은 정말 잘 모르겠지만

다양한 이유가

오늘 날 살아가는 사람들의 정서를 파먹은 이유가

'자살율'을 높이고

너무도 쉽게 자신을 포기하게 만드는 것 같고

연이은 이들 유명인들의 자살이

모든 현대인의 허전한 영혼을 대표하는 것 같아 씁슬하기 그지 없다.

 

 내용인 즉,

돈 이야기가 겹쳐져는 있지만

'악플'이 간접적 영향이 된 모양이다.

  이 엉터리 같은

남의 소리 , 악플.......................

이 마귀의 소리.......

이 소리들이

사람들로 하여금 탈개성화를 촉진하고

집단에서 떨어지면

죽음을 생각하게 하는 원인이 되고 있다.

'누'가 악어에 먹히는 것을 무서워 할 것처럼..

 

 

주님 만을 향한

나팔 수가 되게 하소서.

 

 

 

오늘

욥.

 

시원~하다.

 

 욥을 보면서 느끼는 것은

그 엄청난 고난의 강도와 시간과

되풀이 되는 친구들의 심리적 고문에도

절대로 흔들리지 않고

끝까지 자신을 지켜내는 모습이

시원하게까지 느껴진다.

혹시

이러한 반응을

후대인들에게 보이시고자 하는 목적도

욥을 고난에 빠지게 허락하시는

주님의 뜻이 있지 않을까 .. 짐작하는 면도 없지 않다..ㅎㅎ

주님 안에서 담대함.

 

하옇든,

오늘은

또 한번의 진실을 발견하되

재미가 있다.

 

'과연, 허물이 있다 할지라도'

' 증명하려면 하려니와'... 등의 표현이 너무나 재미있다.

주님께 금방 돌아서서

'나는 죽었구나' 표현하는 게

부모 앞에서 하소연하던 어린 아이가 '아이구 이젠 죽었네'라는

표현을 들을 때

불쌍하다가도 웃음이 터지려는 것만 같은

그러한 묘한 불쌍함이 가슴에 일렁인다.

 

 

 그는

친구들의 '권선징악'적 공격에

정말 아무렇지 않다.

성질이 나는 것은

그냥 있어도 힘든데

어이없는 자들이 어이없이 건드리니

짜증이 나는 것이다.

그리고는

그는 요번에도

주님께로 돌아서서

주님에게만 앙탈 부린다.

 

 주님 만이...다.

 

 

 나.

아주 남의 소리에 민감했고, 하다.

남의 싫은 소리는 조금도 듣기 싫어했다.

남에게 폐를 끼친다고 생각하는 것은

절대로 못했다.

그러다 보니

어찌보면 도덕적이기도 하고

그것이 나에게 순수하다는 일면은 주었지만

내 삶은 많은 제한이 있었다.

스스로..

눈치를 많이 보고

화도 많고...

 

 

 이제

주님은 그러신다.

'  사람들의 비판은 비판일 뿐이다.

   그들은 어리석은 소리를 할 때가 많다.

   진실은 주님 앞에서만 가리라.

   섣부른 판단은 금물이다.

   빠른 좌절은 더욱 금물이다.

   담대함이 필요하다

   할테면 해보라.

  오늘 욥이 그러하신 것처럼

  증명하려면 하여 보아라..해라.

   그리고는

   가슴 속에 드는

   자신을 향한 회의감이나 죄책감은

   십자가 앞에 가지고 나와라.

   힘듦은 그 분에게 아뢰라.

   솔직하게..

   '아이고 죽겠습니다.'

    그리고는 잊어라.'

 

이러시는 것이다.

이게

오늘의 '레마'다.

 

 

 

적용

 

 1. 할테면 하라.

 소리들이여 가라.

 나는 주님 만을 보리라.

 100번 소리지른다.

 '증명하려면 하려니와 '

 

2.  친구가 오랫동안의 숙원이던 개업을 한다 .

 당직이 겹쳐서 못간다.

 다른 친구의 볼멘 소리가 들린다.

 약해지고 불쾌해 지려 하지만

 담담했다.  

 그래도 속상하려한다.

 미안하지만.. 주님 앞에만 심사를 해결받자.

 

 

3. 죄책감이나 '나는.. '할 때 십자가에 맡긴다.

 

4. 모든 판단 자는 주님이시다.

  주님 앞에서만 ' 아이고, 나는 죽겠습니다. '하자.

 

5. 성경 여섯 장 읽겠다.

 

6. 애꿎은 고난은 의인의 필수다 .

  오히려 기뻐하자.

  도저히.. 혼자는 안되니  .. 주님이여 하소서.

 

7. 난 의롭다.

 주님 앞에서 해결 받기에 그렇다.

주님이 아니시라면 회개하겠다.

 기도한다.

 늘...................

 

 

 

 

기도

 

  내가 꼭 해야 할 소리를

주님이 해주십니다.

속이 시원하게 긁히는 느낌도

재미있는 표현이기도 합니다.

주님

간절히 소원하옵건데

욥의 그것처럼

 주님 만을 향해 돌아앉게 하소서.

남들이 뭐라하면

대꾸보다는

주님의 뜻대로 생각지도 않게 하소서 .

남들이 하는 소리나 비난은

할테면 하라고 하게 하소서.

그 이유가

주님 만은 내 억울함과 내 진실함을 아시는 분이시기에 그렇다는 것을 잊지 않게 하소서.

주여.

감사합니다.

오늘

당직입니다.

힘이 부치지만

너무 과도한 일이 없도록 하소서.

내 나이에.. 하지만

내 나이에도.. 하게 하소서.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감사감사 하며 기도하여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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