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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나를 부르시니[요1:19-28]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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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나를 부르시니[요1:19-28]

주하인 2017. 1. 3. 08:36

 


19.유대인들이 예루살렘에서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을 요한에게 보내어 네가 누구냐 물을 때에 요한의

   증언이 이러하니라

'넌 누구냐' 

누가 물어보면

누구라 대답할까?

그냥 이름 만...?

그리고는..?

 

난.. 누구냐?

 

 

20.요한이 드러내어 말하고 숨기지 아니하니 드러내어 하는 말이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 한대 
  난. .. 내가 누군가 누군가 물어보아 대답할 때

지체없이 대답할 수 있는가?

겨우 내 이름을 대 놓고 , 내 직업 말하고.. 겨우겨우.. 누구의 남편 .. 누구의 아버지.. 누구의 아들...

이정도 빼놓고

누구냐... 라는 그 질문에 더 깊이

더 솔직히

더 드러 내놓고 말하고

이제는 숨기지 않고 말할

내 근본에 대하여 확실히 이야기할 자신이 있는가..?

 

........

 

잠시 돌아본다.

 

이제는 비교적 솔직히 , 정확히, 덜 끊기고 얘기할 수 잇을 것 같다.

 

 

24.그들은 바리새인들이 보낸 자라 
이제는 내가 '왜 이땅에 보내졌는지, 누구에 의한 나 인지' 좀 확실히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도 자신의 일을 할 때

자신이 누구에게 보내졌는지 안다.

 이 들도 이래서 일한다.

오늘 날.. 박대통령의 , 최순실의 어이없음을 알면서도 그들의 일을 하는 자들도

그들이 '그들의 편'임을 알기에 일한다.

그게 그들의 이익에 합당하기 때문이다.

네가 누구냐 물으면  그들 역시 '친박',.. 이라 얘기할 지 모른다.

(아..

 그게 비단 그들 뿐일까?

 정의 편이라 생각하며 촛불드는 모든 사람들도 마찬가지고

 가만히 있는 사람들도 그렇다.)

그러나,

문제는 그런 의식은 '일관성'이 없다.

비단, 박 뿐일까?

세상의 모든 것들은 '유한'하다.

그러기에 그들이 그들의 소속으로 그들의 정체성으로 잡을 만한 그 어떤 것도

절대적이고 영속적인 것이 존재할 수 없다 .

그래서 흔들린다.

오늘 그처럼 모든게 끝날 듯 요동치고 야단하고 촛불 붙여도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조용해질 게 분명하다.

무슨 일이 있느냐는 듯..

그리고 그들의 의식은 깊이 깊이 가라 앉는다.

 세월이 잠식해오며 그들의 마음에는 깊은 어둠이 침잠해 온다.

그러면 그들은 또 깊은 혼돈에 빠진다.

세상에 더 매몰되어 매달린다.

그러다가 생기가 다 하면 깊은 죽음 속으로 '매몰'되어 간다.

그게.. 인생이다.

 

하지만 하나님이 보내신 자임을 아는 '우리', '나'..

나는 이제 그런 짧은 의식과 착각이 아니라

온전한 보내심, 그 보내심 자체를 아는 자다.

그렇다면 문제는 무엇 때문에 보내졌단 말인가?

전도..

아.. 전도도 중요하고 선교도 중요하다.

반드시 해야할 '덕목'이다.

그러나, 그게 목적이라고 하기엔 어딘가 허전하다.

선교사도 , 전도사도 , 목사도 , 장로도...^^;;.. 아닌 바,

내가 성경에 나오는 대로 행동하지 못하는 것에 대하여 팽생 좌절만 하다가 살기에는

내 보내심을 주신 분의 온전한 뜻이라기에는 좀 어딘가 허전하다 .

무엇인가?

 

'사랑'이다.

화합이다.

성경에 나온 말씀이다.

하나님과의 화합, 인간과 인간과의 화합, 나와 나의 화합이다.

그 안에서 빚어지는 '사랑'과 ' 긍휼함', 용서의 커짐을 위하여 보냄을 받았다.

최소한 나는..

말씀이신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내게 말씀하셔오셨다.

변하라고..........

 

내 보내진 목적.

내 이렇게 태어나고 이렇게 만들어졌음에도

날 이세상에 다 아시면서 그렇게 허락되어져 보내진 상황.

오늘 ..

내가

주님을 묵상하며 자문자답해보니..

그렇다.

 

그런데

난.. 지금까지.. 내가 보내진 이 이유를 잘 준행하던가?

아..

아니다.

전혀 아니다.

미움이 아직도 내게 득실 거리고

내 성품에 이곳저곳 브레이 덩어리다.

그래서 관계가 이곳 저곳 문제다.

 

그렇다면 주께서 나를 보내신 이 이유에 대하여

이처럼 형편없이 만들고 있고 아직도 고칠 수 있는 가능성도 별로 없어 보이는 나는..

어찌해야 하는가?

나는 왜 보내졌는가?

하나닝이 보내신 내가 이처럼 행동해서는 되는가?

 

그러함에도 며칠전 성경을 읽다가

다시 한번 가슴을 뚫어주시는 말씀을 되새기게 되었다.

'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 허다한 죄를 덮는다.'

 

그래.

근본이고 원론적인 (사랑하고 화합하고.. 성결스러워지고...) 다른 것 포기하고

오직 전도만 하라는 말씀은 아닌지 안다.

나처럼..

각 사람의 빛으로 오신 하나님께서

나 같이 어이없는 ...다 알면서도 실제로는 형편 없이 만들어가는

머리와 가슴과 영혼이 따로도는 듯한

정말 부족한 자들에게는 또 하나님이 이렇게 이렇게 어루 만지시는 것이시다.

나..

그럼에도

내 자리에서 조금조금은 계속 말씀을 전하기도 했고

이 블로그를 통해, 내 하는 일을 통해 조금씩 전도했다.

그래서 그것으로 내 잘못을 조금은 어루 만지신다는 이야기는 같다.

가만히 나를 돌아 보면

그 당시의 그 마음에 절절한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었고

그들의 영혼을 조금이나만 긍휼히 여기어서 전하려는 의도가 있었다.

분명히...

그것.. 주님을 영접하고 내 안에 나도 모르게 생긴 '사랑'의 훈련의 결과임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다시 나는 보내심을 받은자... 가 맞는가.. 하는 질문으로 돌아온다.

맞다.

아직은 부족하지만

내게는 아직도 주께서 괜찮다고 하실만한 품성이 있는 듯하다.

스스로 돌아보아도..

함께 하시는 성령께서도 날 어루 만지시는 듯하다.

그 선한 품성의 하나는

'늘 주님을 의식하며'

' 아직도 주님 말씀에 부담을 가지고'

'조금씩이나마 발전' 을 지속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아..

그래서 난.. 감사하다.

주님이 그 마져 깨닫게 해주시니

난.. 힘이 있다. 

주님이 날 보내셨고

그것을 내가 알고

그러니 힘이 있다.

 

감사할 뿐이다.

 

주님.

아침에 보내셨다는 말씀에 꽂혔습니다.

주님.

감사하나이다.

어딜 돌아보아도 희망을 가질 만한 것들과 상황이 아닙니다.

주여...

어둡기만 합니다.

국내외 적으로..

내부적으로

외부적으로.. .

지구적으로도...요.

주님.

그럼에도 감사한 것은

주께서 절 보내셨음을 제가 알고

그리하심을 잊지 않으려 노력하게 하심입니다.

비록 저...

매사에 넘어지고

주님이 그토록 원하시는 나의 나됨,

온전한 사랑과 긍휼과 온유에는 아직도 거리가 멀어

정말 주님 앞에  설 자격도 없지만

주의 온전하신 사랑, 매사의 부활을 믿고 ,

성령께서 이끄시는 대로 맡기고 살아간다 생각하고 있습니다.

주여.

그 믿음대로 절 용서하시고 제 부족함을 잊어주심을 믿사옵니다.

그러기에 다시 힘을 내서

주님이 날 보내심을 기뻐하고

오늘 삶을 열심히 다시 도전 .. 예 도전 해보렵니다.

주님... 아시지요?

제게는 주님의 어루 만지심이 없으셨다면 그냥....하루 하루 죽여가고 잇을 하루 였을 것임을요.

그런 제가 도전하고 있습니다.

주여.

이 도전하고 넘어지고 다시 일어나고...

이 상채기뿐인 저.. ... 그래서 주하인되어감을

주님아시지요?

열심히 살 ... 부르심을 받은 저를 스스로 깨달아 가오니

힘을 주소서.

이 마지막 세대에 어찌 저와 제 가족을 쓰시려는 지요...

도저히 제 머리로는 갈피조차 잡히지 않습니다.

그러나 돌아보면 무조건 선으로 이끄셨던

그 암담함을 기억합니다.

이번도.. 또 더....그러리라 믿습니다.

나를 부르신 내 하나님이시여.

 

감사하오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받들어

자꾸 단속되어 짤릴 수 밖에 없었지만

제 기도.. .드리오니 받아 주실줄믿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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