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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가 되면 때가 되면( 삿 6:25-40 )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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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가 되면 때가 되면( 삿 6:25-40 )

주하인 2007. 11. 30. 08:33

제 6 장 ( Chapter 6, Judges )

 때가 되면

밤은 오고

때가 되면

가로등은 켜지며

때가 되면

은행잎은

노란 물로 물들고

때가 되면

내 속의 작은 십자가가

확연히

어둠을 사르고

빛을 발할 때가 있으리라.

 

 주님의 빛은

어두울 때 더 밝아보이고

 

 주님의 보혈은

문득 보기에

세상의 화려함에 못 미쳐 보일지라도

실은

가장

붉게 타오르고 있다.

생각과는

아무 상관없이..

 

 

25.  이날 밤에 여호와께서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네 아비의 수소 곧 칠년된 둘째 수소를 취하고 네

     아비에게 있는 바알의 단을 헐며 단 곁의 아세라 상을 찍고
 이날 밤에.

주님의 시간에.

 아세라 상을 찍고.

주님 앞에 결단을 요구하시고.

 

 단 한번도

기브온의 인생 계획에 그려진 바 없던 인생의 항로가

주님의 때에..

그것도 밤에...

어찌하면 마음이 느슨해지고 풀어질 때에

주님은 주님의 시기에 오신다.

 물론,

그 시기는

기브온이 '여호와 샬롬'의 제단을 쌓은 이후이다.

 

 이게 정답인 것 같다.

무엇하나 내가 그려왔던 그 그림대로 인생이 이끌려온 것이 없는 것 같다.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그것은 육신의 건강이나 마음의 혼돈을 담보로 그럭저럭 끌려왔던 것 뿐인 듯 싶다.

 

주님의 때.

내가 샬롬의 시기를 누리고 있을 때.

그 때가 그때다.

 


 
26.  또 이 견고한 성 위에 네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규례대로 한 단을 쌓고 그 둘째 수소를 취하여

      네가 찍은 아세라나무로 번제를 드릴지니라
 쉬운 일이 아니다.

결단은..

과거

세상에 살면서 누리고 왔던

육적인 모든 정욕적 삶을 찍어내기란

절대로 쉽지 않다.

 처음에

예수님을 영접하고는

그 강렬한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첫사랑에 못이겨

나도 모르게

어느 정도 세상적이고 중독적이던 성향이 가라앉던 바

시간이 지나며 다시

알게 모르게 내 속에 심겨져 왔던

그 아세라 속성이

다시금 서서히

내 의지로 더불어

주님의 도우심을 인하여

찍어 버려 내놓을 시간이 다가온 듯 싶다.

 

27.  이에 기드온이 종 열을 데리고 여호와의 말씀하신 대로 행하되 아비의 가족과 그 성읍 사람들을

      두려워하므로 이 일을 감히 백주에 행하지 못하고 밤에 행하니라
 그것은 두려운 일이다.

기브온

그 사람은

이상히도 많이 공감이 간다 .

말씀은 준행은 한다.

그러나,

마치 다른 분들은

주님의 인도를 받으면

과감하고 철저히 돌아서더만,

그는  이런 모범은 별 상관 없는 듯이

밤에

도둑질 하듯이..

주님 앞에 염체 없이..

기왕에 할 것 같으면

낮에 당당히 하지..

 

 

  
30.  성읍 사람들이 요아스에게 이르되 네 아들을 끌어내라 그는 당연히 죽을지니 이는 바알의 단을

     훼파하고 단 곁의 아세라를 찍었음이니라
 아니나 다를 까.

두려워 하던 일이 벌어진다.

사람들이 끌어내라한다.

 망신도 개 망신이다.

개처럼 끌려 나오는 망신이다.

두렵기도 하다.

죽도록 맞을 수도 있다.

믿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우상 파괴로 인해

우상의 저주가 혹시..

뒤끝이 두렵기도 하다.

그러면 안되지만...

 

 내가  지금의 현재 모습으로 저 상황에 갔더라면

혼란스러웠을 것이다.

 

 
31.  요아스가 자기를 둘러선 모든 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바알을 위하여 쟁론하느냐 너희가 바알을

     구원하겠느냐 그를 위하여 쟁론하는 자는 이 아침에 죽음을 당하리라 바알이 과연 신일진대 그

     단을 훼파하였은즉 스스로 쟁론할 것이니라 하니라
 그럼에도

세상의 시끄러운 것들은

내 예상 속의 복잡한 생각들은

하나로 이끌려 갈 것이 분명하다.

 

 '허락되지 않은 것은 벌어지지 않는다. '

 

스스로 쟁론할 것이라는 결론을 짓고

그 무서웠던 상황은 하나하나 종결된다.

 

 

33.  때에 미디안 사람과 아말렉 사람과 동방 사람들이 다 모여 요단을 건너와서 이스르엘 골짜기에

     진을 친지라  
 때에.

그때.

 죽을지도 모를 것이라고 생각하던 차에

예상 못하게.

바로 그때에..

 

 주님은 그러신거 같다.

때가 되면

나타나시고

때가 되면

현상을 바꾸시고

때가 되면

주님의 뜻을 알게 되게 하신다.

 

 

 

34.  여호와의 신이 기드온에게 강림하시니 기드온이 나팔을 불매 아비에셀 족속이 다 모여서

     그를 좇고  
 그때는

아무리 머리를 써서

알려고 노력해도 짐작을 못하던 것이

마치

당연히 그랬던 것처럼

벌어진다.

 

그게 하나님의 때이다.

시편에 '하나님이 주시는 부는 재물을 주시되 근심을 겸하여 주지 않는다'고 분명히 나와있다.

이것은 비단

물질적 부 뿐 아니라

영적이나 심리적 축복도 마찬가지 인 듯 싶다.

모든게 그런 것 처럼..

그렇게 하는 게 당연한 것처럼 그리 오신다.

그 분의 때에

신비롭게..

 

 얼마전

강직성 척추염으로 아내가 심히 고통스러워 하는 형제 분을 위하여

여러 분이 모여서 중보하던 중

느낌으로

팍~하고 오는 깨달음이 있었었다.

응답이란

강하게도 미리 오기도 하지만

어느때는

그냥 잊어 먹어 버리는 때가 온다.

회복이 되어 버려서

잊어 먹고 있다가

돌아보면

그때가 응답의 때였음을 아는..

 

 어제

기브온의 모습을 보고

나도 환자 분들의 기적적 회복과 아니면 다른 현상을

표징으로 보여 주시라는 마음을 가지고 내려갔다.

자주 그렇듯,

무대에 서는 것은 나에게 부담을 준다.

내려가니

심정적으로 많이 의지하던 - 역으로 알았다.- S 목사님께서

12월까지만 계시고

중국 선교지로 가시기로 결정하셨다 한다.

충격이 몰려온다.

나름대로 영적인 기대처로 삼던 분이시고

하나님을 기뻐하던 모습이

아주 비슷한게 많아 위안을 많이 받던

형같은 분이다.

 

 마음에 부담이 상당하여

마치

되돌아 생각하면

오늘 기브온이

두려워 밤에 아세라 목상 깨러 가는

그런 심정이 아니었을까 하는 상상도 해보게 된다. 

힘을 내었다.

사람들이 은혜를 받았다 한다.

나도

환경과는 상관없이

입이 마구 하나님의 은혜에 대하여 떠벌이고 있다.

이게 표징인가?

 

 

35.  기드온이 또 사자를 온 므낫세에 두루 보내매 그들도 모여서 그를 좇고 또 사자를 아셀과 스불론과

      납달리에 보내매 그 무리도 올라와서 그를 영접하더라
 저녁에 가서

가만히 힘을 잃고 누워 있는 나에게

기도원에서 기도하고 내려온 아내가  -대강절이라 열심히 기도한다 .   귀한 내 아내... - 다 알고 있다는 듯이 정리를 해 준다.

주님이 기도하니

내 마음을 읽혀지게 하셨단다.

 힘이 들지만

그것은

사람을 의지하지 말고

주님을 보라는 신호라고..

그러면서, 영적리더 얘기를 한다.

 믿기지 않으려 한다.

기브온 처럼..

그러나,

때가 되면

생각과는 다르게

어느새

므낫세의 지도자가 되어 버리고 마는

주님의 원리를 보고 있다.

 

 돌아보면

과거의 내 눈으로 보아

예수님 믿는 것 자체가 기적이다.

그렇게 성질이 더러분-^^;;   진짜다.^^;;;;;;;;- 자가 기독교인이 될 거라고는

내가 스스로 생각해도 믿기지 않는다.

'성경책을 끼고 다녀?'

'찬양을 해'

얼굴이 두껍기도 하지.. 하면서

너털 웃음을 웃었을 것이다.

온 몸에 소름이 돋고

머리를 벅벅 손으로 긁었을 일이다.

 

기브온은 안 그럴까?

그럴 것이다.

 
36.  기드온이 하나님께 여짜오되 주께서 이미 말씀하심 같이 내 손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려

    하시거든 
 그러니 이러지 않는가?

'이미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지만... ' 이라고..

 

그럼에도 그의 성품이 읽혀지는 것이 흥미롭다.

또 한번 의심한다.

'여짜오되'

'주께서 이미 말씀하셨지만' 이라고..

이렇게도 의심 많고

소심하고 두려움 많은 자를

무엇이 이쁘다고 주님은...

 

그럼에도

주님이 그를 선택하신 것은

덜 완악하지만

그 의심에도 불구하고

순종하여

앞에 서는 것이 귀하여 그런 것이다.


 
37.  보소서 내가 양털 한 뭉치를 타작마당에 두리니 이슬이 양털에만 있고 사면 땅은 마르면 주께서

     이미 말씀하심 같이 내 손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실 줄 내가 알겠나이다 하였더니  
38.  그대로 된지라 이튿날 기드온이 일찌기 일어나서 양털을 취하여 이슬을 짜니 물이 그릇에 가득

      하더라  
39.  기드온이 또 하나님께 여짜오되 주여 내게 진노하지 마옵소서 내가 이번만 말하리이다 구하옵나니

       나로 다시 한번 양털로 시험하게 하소서 양털만 마르고 사면 땅에는 다 이슬이 있게 하옵소서

       하였더니 
40.  이 밤에 하나님이 그대로 행하시니 곧 양털만 마르고 사면 땅에는 다 이슬이 있었더라 
 아주 유명한 구절.

양털을 가지고 시험하는...

 유명한 것은

하나님의 관점에서

의심하되

그의 심성을 다 알아서

그 의심이

악한 사단의 그것과는 다른

순종은 하려 하나

도무지 자신의 유약함을 극복할 만한 담대함이 부족한

성품적인 결점이기에

주님은 그걸 '의심'이라기 보다는

힘을 얻기 위한

결심의 노력으로 보시기에

기쁨으로 다 들어 주시기에 그렇다.

 이것은 달리 말하면

유약한 우리 인생들이

주님 앞에서

얼마든지 어리광을 부리고

그 어리광을 통하여서

열번이고 스무번이고

다시 일어나고

결국은 성장할 기회가 보인다는 의미에서

그 온전한 사랑의 한 단면을 읽게 되기에

그토록 인기가 있는 유명 구절이 된 것이다.

 

 한편

기브온의 입장에서 보면

그의 심성이 읽혀져서

더욱 공감이 간다.

 이토록 인도해오심이 눈에 보이는 데도

마음 속에 또

안절 부절함이 있다.

' 나같은 자를'

' 내 자리가 아닌데'

' 주님이 무엇인가 착각을.. '

그러하면서도

주님의 그 카리스마를 경험하고

상황이 그 분이 말씀하시는 대로 변하여

자신이 어느덧 알지 못하는 사이

리더로서 올라 앉아 있는 현상을 보아

부인하지도 못하는

묘한 입장에 서 있는  상태.

 늘 여러 생각들이 속에서 충돌함을 경험하는 나로서는

이처럼

성경 속의 인물들이

옛날 이야기의 '권선징악' , '영웅' 이야기 속의

단순함을 넘어

오늘 날

우리 들 속에

움직이는 심리의 움직임이

잘 묘사 되어 있음이 놀랍다.

수천년 전 사람들이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유약함과 생각과 놀라움과 경이로움과 평강과

그들의 심령안에 움직이시는 하나님의 평강이

전혀 하나도 나와 다름이 없음이

한편으로 놀랍다.

 

 나도

내 흔들림을 가만히 기브온처럼

주님 앞에 내려 놓겠다.

그리고

정말

그 분처럼

믿지만

전혀 믿기지 않는 이 불신의 죄송함을

주님 앞에 고하고

필요하다면

두번 세번이라도

표징을 구하고자 한다

그게

주님을 사랑함이 다름이 아니면 말이다.

 

 

 적용

 

1. 기도한다.

 

2. 결단한다.

 한끼 금식하겠다.

 과도한 식욕은 아세라 목상일 수도 있다 .

 여호와 샬롬을 맛본 후 기드온은 목상을 찍어냈다.

 

3. 기다린다.

 무엇을 하겠다는 인본적 계획은 잠시 내려 놓는다.

 단, 무엇을 원하는 가,

 무엇을 원하시는 가는 기도해 본다.

 

4. 회개한다.

어제 성경 읽음을 잊었다.

 

5.  스스로 생각하기에 아닌 듯한 일에도 순종을 할 수 있겠는가?

표징을 자꾸만 구함도 필요하다.

 양털로 표징을 구한 것은 왜인가?

 그 양털은 나에게는 어떤 의미의 표징을 말하는가?

 언제 표징을 구하라 하는가?

 

 

6. 성경 열장 읽겠다.

 

 

 

 

기도

주님

흔들립니다.

두렵습니다.

무언가 시기가 온 것도 같은데

막상

아세라 목상 같은

육신의 오래된 허물을 벗기가 어찌 이리 두렵고 힘든지요.

우선

금식 만 해도 그렇습니다.

해야할 당위성도

할 시기임도 알지만

저에게 힘든 일입니다.

도우소서.

오늘

기브온의 숨어서 하는 치졸한 결단을 봅니다.

그럼에도

그 분조차 그러하심이 한편으로 위안이 되기도 합니다.

자꾸만

표징을 보여달라는 진득한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기도 하지만

그렇게 하여라도

주님 앞에 온전히 붙어 있을 수만 있다면

그런 것도 괜찮으리라 생각됩니다.

 

주님.

기드온은

저에게 시사하는 바가 많습니다.

소시민

그보다 더 낮은 자로서

땅바닥에 붙은 자존감을 가진 저로서는

한편으로

동감이 많이 되기도 합니다.

주여

그러한 자마져 쓰심을 보고 있습니다.

쓰임이 기쁘기 보다

명령이 두려워 지려 하지만

주님이 원하시면

'평강'이 선물로 주어지기에

그것만으로 만족하고

순종하길 결심합니다.

주여.

아시지요?

아시는 만큼 절 인도하실 줄 믿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 아침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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