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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氏 집안(삿8:1-12)

주하인 2007. 12. 3. 11:54

제 8 장 ( Chapter 8, Judges )

 기드온의 성향을 가진

둘째.

 


1.  에브라임 사람들이 기드온에게 이르되 네가 미디안과 싸우러 갈 때에 우리를 부르지 아니하였으니

    우리를 이같이 대접함은 어찜이뇨 하고 크게 다투는지라 
에브라임) 시기, 질투

              논리적 근거는 이해는 간다.

              형제 애가 없다........ 그러나, 근간은 시기와 질투다.

              난, 형제의 성공에 배 안아파할 자신이 있는가?

 

기드온) 어이없음, 황당함

           대승 후에 찾아온 갈등       

            하나님이 주신 승리.... 이해하지 못할 어리석은 자들의 횡포에 대하여 어이없다.

 

   난 정당하고 굽힘없는 승리에 대하여  질투를 하는 자들의 어리석음에 대하여

핍박하고 손가락질 할 것 같다.           
 
2.  기드온이 그들에게 이르되 나의 이제 행한 일이 너희의 한 것에 비교되겠느냐 에브라임의 끝물

     포도가 아비에셀의 맏물 포도보다 낫지 아니하냐

3.  하나님이 미디안 방백 오렙과 스엡을 너희 손에 붙이셨으니 나의 한 일이 어찌 능히 너희의 한

     것에 비교되겠느냐 기드온이 이 말을 하매 그들의 노가 풀리니라 
 기도온 )   겸손하다.

              오히려 칭찬한다.  

              그리고는 자신을 낮춘다.

             방법론 적에서도 멋지다.

             ' 에브라임의 끝물 포도는 아비에셀의 맏물 포도 보다 낫다.'는 표현이 멋드러지다.

              '어찌 능히 너희 한 것에 비교가 되느냐'라는 말로 분을 풀어준다.

 

 겸손으로 화합을 이루길 원한다.

 필요없는 갈등은 무조건 피한다.

이유가 무엇이든 형제끼리의 싸움은 주가 좋아하시지 않으신다.  

남에 대한 비판은 금한다.

시시비비는 '주님'께 맡긴다.

 시편에 '재판은 주님께 돌리라'고 나온다.

 

 그토록 심약하고

므낫세 지파의

가장 작은 집의

가장 작은 자인

숨어서 포도주 틀에 밀을 빻던

기드온,

이 열등감 투성이의 '소시민'이

어찌 이리 담대히 변했는가?

 

 주님과 철저히 아버지 아들같은 교류를 나누며

많은 체험을 하더니

그가 달라졌다.

 

 전쟁에서 용사로 승리하기는

주님이 함께 계시면 너무나 당연하다.

다른 사사들도 그랬고

성경의 많은 사람들이 그랬다.

베드로도

열두제자도

귀신을 쫓아내기도 하고

기적을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대 승리 후의

미묘한 갈등,

심리적 분쟁은 벗어나기 힘들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부인한 게

3년간의 철저한 교육과 기적의 체험 후가 아니던가?

그는, 디베랴 바닷가에서 철저한 무기력의 어부로 돌아갔다.

삼손은 안그런가?

내내 승리하다가 결국 나태와 음욕으로 일생을 마쳐 버렸다.

 다윗왕은

우리아의 아내를 취하고 우리아를 죽일 음모 꾀한 것은 언제인가?

승리 후가 아니던가?

 그외에도 한없이 많은 예들에서

예기치 못한 심리적 싸움에서 허무하게 무너지고 있다.

 기드온이라고 완전치는 않았지만

그의 멋진 모습은

어제의 삼백 용사 싸움 이후

더욱 크게 그 모습을 들어내고 있다.

 

 바로,

형제간의 알력,

가까운 자와의 시험에서

당당하게 이겨내는 모습에서

더욱 크게 드러난다.

 그 모습이

여유로와 보여서

더욱 더 좋다.

그리고는 , 아예 그들 에브라임의 악덕에 대하여서는 생각조차 하지 않는 듯

외부의 적들과의 싸움에 정신을 쏟는 것이

어쩌면 이리 영웅과 같은 풍모가 보이는가?

 

 '성을 지키는 사람보다 자기의 마음을 지키는 게 더 어렵다'는 성경구절 어디에 나오지 않는가?

 

 오늘 주님은

에브라임,

그 어리석은 자들을 통하여

나 뿐아니라

현대의

내 주위에 아주 많이 보이는 이 어리석은 모습들을 투영시켜 보이시며

그를 이겨내는 것이

'겸손'

즉,

나를 낮추고 남을 높이는 것이 유일한 방법임을 보인다.

 또한,

에브라임은 '므낫세의 그 작은 자 , 기드온'을 핍박하여

실리를 얻은 듯하나,

누가 보아도 치졸하고 엉터리같아 보이는 자들로

낙인이 찍히는 결과를 가져 오게 되었고

반면

속상하고

화도나고

형제끼리 이 웬 말인가.. 억울하기도 하지만

그 모든 걸

'자신을 낮추고 남을 높이는' 겸손의 모습으로

이겨내고 있는

기드온은

영웅의 풍모가 물씬 풍기고 있다.

 

어제 묵상 중,

적진을 내탐하고 돌아오면서

확신에 차서

경배하고 변하기 시작하여

양손에 항아리와 꽹가리 등으로 지략을 짜내며

확신에 차서,

'나, 내, ....'를 무려 다섯번 이상이나 선언하던

기드온의 확신이

엉터리 같은 자기 확신이나,

일시적으로 성령 충만하여 달뜬 초보 신앙인의 그것이 아님을

분명코 보여주고 있다.

 

 주님은 이러시다.

어떠한 모습으로

약한 모습이건,

회의적인 모습이던..

일단

주님 앞에 올바로 서기를 원하신다.

그 분을 시험하는 듯하는 것이 죄스럽긴 하지만

실은

여호수아나, 요셉 같이

선천적으로

의심없이 태어나도록 태중에서 허락받은 자들이 아니면

철저히 도마처럼, 기드온 처럼

하나하나 확인하며

자신의 성장을 이루어

온전히

내적 성장과 외부적 믿음의 성장이 일치되는

그런 신앙인이 되는 것이 바람직 할 수가 있다는 것이다.

 

주님의 적극적 개입이 아니었다면

베드로나,

열두 제자는

그 강렬한 믿음의 용사같던 행진이

결국

디베랴 바닷가의

정신 이상 '전 현직 어부'로 전락할 위험이 있지 않았던가?

 

 오늘 배울 것은 이것이다.

 

1. 어떤 논리적 이유를 대던,

 형제의 성공에 화를 내는 것은 '시기'이며, '질투'이다.

 시기나 질투는

 하나님의 질서를 위반하는 무서운 죄악이다.

 힘들어도

 형제의 성공을 사랑하고 미덕을 격려할 마음을 주시길 기도한다.

 

2. 예기치 못한 갈등은 하나님의 또다른 시험이시다.

 이전의 하나님과 동행하며 이루었던 외적인 성과는

 내적 평화를 위한 이 연단에 비교하면

 오히려 상급이 적다 .

  주님은 기드온 같은 온유를 원하신다.

 절대로 싸움에 응하지 말자.

 

3. 겸손

 나를 최대한 낮추라.

 '스스로를 낮추어서 가장 낮은 사람들을 위한 가장 낮은 직무를 수행하라 - 윌리엄 로우'

 

4. 남을 높게 여겨라.

 주님은 나를 낮추면 높이신다.

 주님의 원리다.

 

5. 성경 다섯 장 읽겠다.

 말씀은 나로 변케 하신다.

 그 분은 힘이 있으시다.

 

6. 지혜를 원한다.

 칭찬하자.

 매사에 하는 칭찬은 싸움을 멈추게 한다.

 칭찬은 아부와 다르다.

 아부는 개인적 이익을 위함이지만

 칭찬은 타인과 나의 영적 안녕을 위한 것이다.

 주님이 원하시는 화합을 위한 지름길이다.

 

7. 전인치유 리더들이 둘이나 빠진다.

 기도하자.

 새로 참여하실 O와 K 선생님을 위하여 기도한다.

 환자 분들이 기적으로 낫길 기도한다.

 

 

기도

 

주님

감사합니다.

예수님

겸손에 대하여

다시 한번 배우게 됨을 감사드립니다.

 어찌나 그리도 닮았는지

약한 자존감과

의심 많은 저와

하나도 다른데가 없는

이 기드온을 통하여

하나 하나

깨우쳐 주어가시는 주님의 인도하심이

신기하기까지 합니다.

이역 만리에서

수천년 전에 살던

아주 시골의

기氏형제가 저를 닮다니요?

 주님.

겸손과 지혜를 원합니다.

그 분께 주셨듯이

저에게도

믿음과

지혜와

은사와

겸손과

온유와

통큼을 주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감사하며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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