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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생을 소망한다는 의미[딛1:1-9]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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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생을 소망한다는 의미[딛1:1-9]

주하인 2023. 7. 1. 06:50

(펌)

부활한다는 것.

다시 살아난 다는 것

주님을 이유로 새롭게 되어진다는 것

 

그리하여 영원을 살아간다는 것

'영생'

 

영생의 의미가 꼭 

물질적 새로움 만을 의미할까? 

정말?

 

 

(펌)

그 어떠한 상황에서도

오직 주님 만으로 이겨나갈 수 있는 것

 

주님이 계시면

그 어떤 것도 아름다움으로

소망의 가슴떨리는 상황으로

만들어져 감을 인식하는 것

 

그리고 그 가슴 떨림을 

인식하고 인정하게 됨으로

주변 사방에 전도할 수 밖에 없으며

인생의 눈으로 바라보아

그 어떤 이유도 발견할 수 없는 곳에서

가슴 떨리는 기대로 차오르게 되는 것

그것이 '소망'의 증거 아니던가?

 

오늘 하루 

또 허락받았다

생물학적으로 

물질적으로 

오래된 내 판단의 습관을 근거로

어디하나 기대할 만한 조건이 없어보여도

 

말씀을 이유로

그 말씀을 놓치지 않고 있는 증거로

가슴 한구석이 따사로와지고

알 수 없는 행복감으로 차오르니

이게 '영생의 소망'의 근거가 아닌가?

 

그를 근거로

또다시 온 전신에 돌아오는

힘과 의지와 행복감이 

그 에너지고.. 

 

할렐루야

살아계신 내 주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하나님의 종이요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인 나 바울이 사도 된 것은 하나님이 택하신 자들의 믿음과 경건함에 속한 진리의 지식과

 꼭 '바울께서 사도되게 하신 것' 뿐일까?

세상의 어떠한 사람도

그렇게 태어나게 하신것,

그 자리에서 '사도된 사명'을 주신 것 같이

일상에서 '사도'의 역할을 하게 하시려 하심이 아닐까?

 

 입을 열어 주님을 전해야 하고 

눈을 들어 주님이 기뻐하시는 것을 바라보아야 하고

전신과 온 마음으로 

주님의 내게 원하시는 것을 행함으로 

주님을 드러내야 하는 것 아닌가?

 

 그것을 위하여 '영적 사도'로 '이 땅'에 

잠시 세우신 것이다. 

하나님의 영광드러내는 것...

 

2 영생의 소망을 위함이라 이 영생은 거짓이 없으신 하나님이 영원 전부터 약속하신 것인데

 이  땅 사는 것,

인생,

광야 연단, 

좁은 길 가는 것,

그 안에서 '나'로 살아가는 것

사도다운 삶을 살아가는 것..........

'영생을 소망하게 하는 과정'일 뿐이다. 

 

 영생.

영원히 산다는 것.

단지 오래살고 죽지 않고 사는 목숨의 의미를 넘어섬을 

이제는 잘 알지 않는가?

 

 주님 안에서

부활체로서 

완전한 존재로서 

주와 함께 살아감의 기쁨,

그 놀라운 흐름..을 이루고

그 이루는 과정을 보려 우리를 지으시고 만드시고 선택해 주셨다는 것.. 말이다. 

 

이제 점차 그게 실제화 되어

가슴에 느껴지고

부활의 영생을 생각만해도 

이 땅의 온갖 시름 중에서도 

걱정을 내려 놓고 '슬쩍' 웃음을 띠울 수 있게 되는것.

그것이 '소망'이 아닐까?

 

 '영생의 소망'

 

자기 때에 자기의 말씀을 전도로 나타내셨으니 이 전도는 우리 구주 하나님이 명하신 대로 내게 맡기신 것이라
4 같은 믿음을 따라 나의 참 아들 된 디도에게 편지하노니 하나님 아버지와 그리스도 예수 우리 구주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네게 있을지어다

그것을 위하여

주께서 우리를 선택하시어 구원하시는 '전도'의 역사를 하시고

또,

우리를 위하여 성육신 하셔서

말씀으로 지금 이시간까지 흘러 보내시는 삶의 지침을 주시고

그 말씀을 근거로 

우리의 부족한 영혼 깊숙이까지 흘러 흘러 오시는

성령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을 에너지 삼아

오늘도 한걸음 더 내밀게 하시는 것이시다.

 

 오늘.

또 하루가 밝았다. 

또 하루를 죽이지 않고 

하나님 앞에 올바로 서서

소망있는 삶을 살게 하시기 위하여

주님은 내게 말씀을 허락하셨다. 

 그리고 그 질질 끄는 듯 

연약하고 지루하지만

지속적으로 걸어가는 우리의 작은 몸짓과 결심을 보시고

기뻐하시려는 

하나님의 그 감사함을 이유로

오늘도 다시 힘을 내고 있게 되는 것이다. 

 

나는 그냥 하루를 죽이는 자가 아니다. (주하인아 명심하라.. 심 같다.} 

나는 '내가 어떠한 자'임을 확실히 알고 있는 자다. 

난.. '주님의 영광'을 위하여 사는 자다. 

그러함은 이제 서서히 커져 가고 있는

내 안의 '소망'이 그 이유다. 

소망의 근거는 '영생'이다. 

 

 저 천국의 부활 뿐 아니라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은혜를 이유로

이 땅에서의 매일 '부활'에 대하여

점점 더 실제로 느껴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 저 천국에 가면

영생의 의미가 얼마나 엄청날 것인가 

내 영혼의 한구석에서 소록 소록 기대가 커져 가고 있음을 느끼기 때문이다. 

 

그것을 주님은 '영생의 소망'이라고 정의 하셨다 

 

그렇다.

그러하기에 내가 '전도 '받아 누리는 

이 인생의 진실.. 

살아가야할 강하고 옳은 이유를 

주변에 아낌없이 전하고 

나 스스로 또 그러함을 '다행'과 '행운'으로 기뻐해야 한다. 

 

의지로 되는 가.

오직 하나님의 말씀이 오늘도 또 있으셔

내게 '영생의 소망'을 가질 수 있게 하시고 

영생의 소망의 어떠함을 알게 하시며

그 영생을 소망하는 자의 태도로 점차 발전하는 자의 

인생 가운데 느껴지는 '진정한 행복'을 

다시금 '은혜'로 '평강'으로 채워 주시는 

전적인 하나님의 인도하심 덕 아니던가?

그래서 그 기쁨을 알기에 

이처럼 피곤 (오 주여.. 제 어리석음으로 인하여 또 피곤한 하루를 시작합니다. .. 불쌍히 여기소서... 어제도 늦잠잤습니다.. 주님 아시고 계시지요?.. 주여.. )한 가운데서도

또 그 게으름의 유혹을 박차고 일어나 

말씀을 붙들게 하신 것을 

이제 난 '온 영혼'이 다 안다. 

감사하다. 

 

 

주님.

날로 절 지루하게 하고 지치게 하려는

인생의 숙명들과

제 오래된 성품적 결함들이 

자꾸만 붙들려 하고 있습니다. 

 

때로 이게 하나님께서 '옹그려 붙들려 하는 세상의 욕심의 손'을 풀게 하시는 과정이신지

위의 고백같은 세월의 이유로 무감각 해져가는 과정인지

잘 구별이 가지 않아

혼란 스러워 지려하고 

그러함을 빌미로 

또 머리 복잡해지고 마음흔들림을 피하려 

다른 세상의 것으로 도피하려 하고 있습니다.

 

주여.

그러나, 

저는 이렇게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찾아 오시는 하나님...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실제하셔서 

제 영혼이 '영생'이 어떠한 것인지 알아채려

그 비밀을 놓지지 않으려 

아침마다 일어나 '말씀 묵상'.. 

하나님 말씀을 듣고

하나님의 손을 놓치지 않으려 

나름의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다행이도 이제는 압니다. 

그마져.. 아니..정말 그것이

제게 허락되어진 

주님의 은혜,

주님의 평강이 이유고

그를 놓치지 않기 위한

최선의 몸부림인 것을 요.

 

주여.

이제는 더 뚜렷이 바라보게 하십니다. 

 

영생의 소망이다. 

내 지금껏 살아 움직이게 하고

그래도 한걸음씩이나마 다시 발걸음을 옮기게 하는

그 오직의 이유와 목표는 

'부활' '영생'이고

그게 이제 '소망'으로 커져 감임을 요.

 

감사합니다. 

주여.

제게 허락되어진 이 '소망'

이 영생의 소망이 

조금 조금더 커져서

이웃에게 틈만 나면 이 소망의 가슴떨림으로 

더 전도하는 자 되게 하시고

어떤 일이 있어도

부르실 그 날까지 

이젠 흔들리지 않는 '소망'있는 자의 삶의 평강을 놓치지 않기를 요.

 

주여.

홀로 하나이신 우리 주 여호와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그러한 하나님 안에서 살

'부활의 삶'

영생의 삶을 기대합니다. 

소망합니다. 

 

거룩하시고 귀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감사하며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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