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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으라 하신 말씀[마13:18-23]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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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으라 하신 말씀[마13:18-23]

주하인 2014. 2. 22. 11:49

 

18 그런즉 씨 뿌리는 비유를 들으라 
  오늘은 '들으라'시는 단어가 눈에 들어온다.

 

 씨 뿌리는 비유.

너무도 유명하여 자칫 '교훈'이나 ' 설화' 정도로 지나갈 것으로 느껴져

나에게 주시고자 하시는 아버지의 말씀으로 듣고자 하는

' 큐티 ' 말씀으로는 그리 적절하지 못하게 느껴지는 ..

그래서 이런 말씀이 나오면 먼저 가슴이 '턱'하고 막힐라 한다.

어쩌면 살아계신 하나님 대신 '내 자아'가 기승을 부리며

아는 것 만 드러내고 싶은 유혹에 치받치고 결국 가슴은 '텅비어 버릴 ' 공허함의 두려움.

 

 하지만 늘~ 경계하고 말씀을 보면

그것을 통하여 다른 말씀을 주시거나

동일한 내용이어도 그 때 그때 상황에 맞는 은혜로 날 이끌어 오심을

체험하는 경험이 쌓여져 있기에

또 마음을 내려 놓고 말씀을 붙들려 하니

'들으라' 는 단어가 눈에 들어오며 마음이 풀어지는 듯하고

나름 은혜의 육체적 상태로 규정하는 ^^*  ...

가슴 한 구석에서 따스한 기운이 올라오며 마치 싸우나 들어가 있는 듯한

나른함, 기분 좋은 나른함이 조용히 올라온다.

그렇다.

그래서 다시한번 '도장' 받은 느낌 ^^*으로 말씀에 집중한다.

내 걱정과는 상관없이

지금껏 하나님이 십여년간 이끌어 오셨는데

내가 노력하여 어찌 이 블로그의 공간을 채울 수 있단 말인가?

 

환자 많은 때는 정신 못차리게 뛰어다니면서도

잠시 잠시의 틈을 타 말을 이어가는데도

문맥이 잘 연결되고 그럴 때 오히려 더 큰 은혜로,

어떤 때는 정말 모르겠어서

주신 말씀을 붙잡고 있으면 하루를 몇 분 안남겨 놓고 깨달아 지게 하시기도..

그러면서 깊은 은혜를 체험하며 그 남은 시간동안

글을 정신없이 써내려 가던 체험도 아주 많다.

그렇지 않고는

내 의지로, 내 지식으로 이 오랜 시간을 채우려는 노력은

절대로 불가능한 시간들이었다.

....

살아계신 내 하나님.

 

그렇다면 오늘은 그 하나님이 나에게 ' 들으라 '하신것 같은데

무엇을 들으라시는 말인가?

 

'씨 ' 에 대한 것 밖에 더 있는가?

 

 

23 좋은 땅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니 결실하여 어떤 것은 백 배, 어떤 것은 육십 배

    어떤 것은 삼십 배가 되느니라 하시더라

'씨'

 

하나님의 말씀.

그 씨가 내게서 백배 육십 배 ,삼십배 되도록 결실을 보는게

너무나도 영광이고 다행이다.

나로 하여금 타인들에게 그렇게 귀한 영향을 미쳐서

나와 같은 '구원', 그것도 '진정한 구원'에 들어올 기회로

내가 쓰임 받는 다는 것이니

그들에게 얼마나 내가 좋은 자가 될 것인가?

또 하나님께는 얼마나 이뻐보이는 자가 되게 될 것인가?

 

그런데, 천국은 겨자씨의 풍성한 발전 비유에서 마찬가지지만

그게 진정 겨자씨 자체에게도 어떤 의미가 있을까?

타인에게는 목재로 쓰이고 하나님께 영광을 드러내는 도구가 되어서

너무 다행이긴 하지만 말이다.

 

아마....

저렇게 질문하는게

하나님을 깊이 만나지 못했던 과거,

하나님의 은혜의 본질을 눈치채지 못했던 미성숙했던 이전...

아니.. 솔직히 조금 나태해지면 금방 흔들려 버리는 지금의 나에게

슬그머니 의혹처럼 다가오는 '사실'이 아니던가?

 

나에게 '씨'가 천국이 되기 위해서 어떤 '이익'^^;; 이 있던가?

솔직히 이 어려운 삶을

발을 질질 끌며 가는데

너무 '위대하고 크신 분'의 '너무 대단한 유토피아적'인 선언은

'인지의 괴리'가 있을 수 있다는 말이다.

 

그것을 하나님은 아시고 '들으라'라고 말씀하신 것 같다는 뉘앙스다.

내가 백배가 되는 게

지금 이 상황,

큰 변화없이 나이만 들어가는

남자 산부인과 의사에게 어떤 의미가 있다는 말씀?

누구들처럼 '먹고살기 힘든데 천국이 웬 뜬금없는.. ' 처럼

아주 약간은 그런 괴리가 있지 않은가?

그러기 위하여 씨와 나의 복에 대하여 다시한번 더 '적극적'이고 현실적인

들여다 봄이 필요하다.

마치 말씀을 보면 '나의 유익'은 없이

타인을 100배까지 유익하게 하는 도구이고

'하나님'만을 위한 도구 인 느낌이지만

진정 그게 그럴까?

 

 성장한 자에게

진정한 기쁨은 무엇일까?

하나님 말씀을 준행하고

그분이 기뻐하시는 것을 느끼는 것 이상의 기쁨이 있을까?
 열렬히 연애하는 자들에게는 연인의 웃는 모습하나로

모든 시름이 사라지고

온 우주 , 별이라도 따다 주고픈 감동으로 벅차오른다.

그녀의 웃음 , 그 입꼬리의 올라감, 눈의 그렁거림, 감동스럼 콧 김이

세상에서 제일 큰 '보답'인 것으로 느껴지지 않는가?

누구나 경험한 바 이지만..

 

이제.. 그렇다.

씨의 백배 결실의 진정한 축복은

내가 '천국 높은 자리'의 상급을 보장 받는 자격심사의 의미도 있겠지만

단지 하나님 만으로 이땅에서 누릴

온전한 기쁨에 대하여 암시하고 있음이다.

다른 어떠한

비 본질 적인 축복 ( 돈, 자식, 성공, 건강.. ) 이 있거나 없거나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만으로

온 영혼이 격정적으로 될 마음의 상태로 바뀌는 것.

결과적으로 세상에 어떠한 방향으로든 영향, 소출을 남기고 감을 보며

하나님이 기뻐하실 것을 직감하게 되는 영혼의 성숙.

그것 만으로

진정한 축복임을 알아가

더 이상 그의 영혼을 채울 다른 대체물 (갈채, 우정, 술, 담배, 연인, .... ) 이 필요없어지는 것.

있으면 좋지만 없어도 아무 차이가 없어지는

진정한 기쁨이 그 인생을 채워가는 것이

씨의 나에 대한 축복이신 것 같다.

 

그것을 들으라 하심이시다.

씨를 묵상했다.

씨의 나에 대한 축복의 의미에 대하여 그랬다.

진정한 복이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것을 기뻐함이란 것이다.

감사하다.

 

 

토요일입니다.

주여.

밤낮이 바뀐 올림픽 열기 때문에

적극적은 아니어도 자꾸만 취침 시간이 늦어집니다.

주여.

그 들을 통한 기쁨과 안타까움도 잠시의 행복감을 주지만

진정과는 거리가 먼 것임을 압니다.

이제 다시 하나님의 말씀으로 회귀합니다.

오늘은 '들으라'하십니다.

진정한 '씨의 축복'에 대하여 묵상케 하시고 듣게 하십니다.

진정한 기쁨은

하나님의 말씀이 세상에 퍼져 그들로 알게 하고

내 영혼이 말씀대로 발아되고 말씀대로 성숙해져

보는 자마다 예수 그리스도의 향기를 느끼는 그것입니다.

주여.

그렇게 하기 위하여 간절히 간구할 것은

이전의 생각, 이전의 구습들이 없어지게 하소서.

저항하여 변치 못하게 하는 습관들이 사라지게 하소서..

주여.

어찌되엇든 이 땅,

이 사단의 권세잡은 곳에서 하나님의 뜻대로 성화되어가기 위하여서는

그래서 하나님께 영광올리는 자 되기 위하여서는

성령의 도우심이 절실합니다.

이제 씨의 나에대한 유익에 대하여 들었사오니

이루어질 힘을 주소서.

자아는 죽어지게 하시고

울컥하고 불컥하는 엉터리들이 사라지게 하소서.

오직 성령으로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만 하나님의 뜻대로 살게 하실수 있사옴을 아오니

저로 인하여 제안에서 백배의 소출자가 되게 하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들어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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