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두 세계( 고전15: 12-19 ) 본문
제 15 장 ( Chapter 15, 1 Corinthians )
일본의 다자이후 묘.
부활이 없음은
이들과 무엇이 다른가?
부활이 없음은
우리의 삶 자체가
무덤이다.
14. 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살지 못하셨으면 우리의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 또 너희 믿음도
헛것이며
부활은 진실이다.
부활이 없으면
수천년의 기독교인들의 삶도
바울도
나도
헛사는 게 된다.
19.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바라는 것이 다만 이생 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리라
그리스도 안에서의 부활이 전제가 되지 않으면
이 땅의 삶 밖에
아무런 의미가 없다.
더 잘살 이유도 없다.
그냥
동물처럼
섹스하고
먹고 싶으면 먹고
자고 싶으면 자고
더 편하게 살고 싶으면
남의 것 빼앗고
더 이쁘게 꾸미고
그러다가 죽으면 된다.
온통 말초의 감각과 편안함 추구가 최고다.
그게
동물과 하등 차이가 없지 않은가?
그리고
그게 옳다고 해도
얼마나 갈까?
자는 중에도
즐기는 중에도
시간은 흘러가고
생체 메카니즘은 자꾸만 낡아간다.
그걸 늦추려고
아무리 바이오 사이언스가 발달하고
성형수술이 발달해도
잠시는 몰라도
결국은 어쩔 수가 없다.
늙은 후,
더 늙어서
육신이 아무런 매력을 끌지도
감각은 무뎌져 아무런 기쁨을 느끼지 못할 때는
또
어쩔건가?
다른 종교의 윤회도 마찬가지 아닌가?
이 땅의 삶이 좋은가?
정말 좋은가?
다시 태어나 다시 돌아간 다면
난 죽기보다 싫은 생활이 될것이다.
또 공부해야하고
또 혼나고
또 웃고
또 울고
또 사랑하고
또 가슴앓이 하고
또 고민하고
또 마시고
또 자고...........................................
그걸 또 되풀이........................?
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아니다.
이제
예수님을 영접하고
그 놀라운 기쁨의 비밀을 알고
날로 커져가는 영혼의 평강을 경험하며
천국이 이런 것의 확장일 것이란 것을 알며
그 천국의 비밀이
바로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인한 죄사함과
그 분의 부활 사건으로 인한
성령의 보내지심으로 인한
내 영혼에 기름부음 때문임을 깨달은
이 복음의 비밀을 확연히 안 후
내 삶은 힘이 있어졌다.
그게
어떤 막연한 논리나
이데올로기에 의한
내 내적 현상의 쏠림으로 인한 것과는
너무도 다르게
변함없는 촉촉한 기쁨의 확장이 있다는 사실이다.
그래.
난
한계가 이거다.
나름대로
부활을 증명하고 싶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가며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그것을 한줄로 말하라
증명해보라
너의 인생에서 뚜렷이 나타나신
부활의 증거가 무엇이냐..라 물으면
확실하게 보일 수 있는 것은 없다.
그러나,
난
내 삶을 이리 바꾸어 오시고
늘 회색으로 만 보이던
삶의 색채가
푸릇푸릇하고
붉고 아름다우며
선명한 분홍과
강렬한 노란색과
그외 다양한 색채의 어우러짐으로
아름답게 보이도록 하시고야 마신
내
내적이고
개인적이며
특별한 이 변화된 현상을 통해
증거할 수 밖에 없다.
나와 같은 체험을 하지 못한 자들에게
이러한
영혼의 흐름의 180도 변화를
어찌 설명할 수 있겠냐마는
오늘
사도 바울 선생님께서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바라는 것이 다만 이생 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리라 하신
이 말씀을 읽어가면서
그래.. 이 분도 이처럼
악한 생각들이,
세상의 눈에 보이는 것들이
머리로 이해되고,
오직 만져지는 것들만이
세상의 전부인 것처럼 살던
그 인생관이
완전히 뒤바뀌어
오직 복음
오직 예수
오직 부활....이
그 인생의 나머지를 이끌어갈
온전한 가치관으로 바뀌었기에
이 부활이 만일 거짓이라면
그의 삶 자체가 거짓이고 헛것이고 신기루라는
그런 고백을 볼 때
불신의 그 삶과
너무나도 다른
새로운 세상을 경험해 가는 나의
하루하루의 놀라운 체험이
그 분 하나님이 안계신 ,
부활이 거짓인
그 엉터리 같은 가정을 할 때
어이가 없어진다.
난
예수로 인해 다시 태어났다.
예수님이 날 구속하시고
그 분이 날 부활시켜
새로운 세상을 보게 하셨다.
그 세상은
현재의 삶에 외적으로는 큰 차이가 없어 보이기도 하나
희망이 덧 붙혀지고
움직일 힘이 나고
행복이라는 단어가 더 덧붙혀지게 하였다.
보는 시선을 좀더 아름답게 하고
생각하는 폭은
조금더 여유가 붙혀 졌다.
그것은
이 땅의 젊음.. 동안의 제한적 누림이라는
시간적 쫓김에서 벗어나
영원의 한 부분 속에
스쳐지나가는 방랑자
주님이 소유하고 계시었던
내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에 대한
집착을 버림에서 유래하기도 한다.
그래.
부활은 진실이다.
부활은 반드시 있는 체험이다.
부활은 우리 미래의 약속이다.
적용
1. 부활
갑자기 고린도 전서에 등장한 부활.
오늘의 내 삶과는 어떠한 연계성을 주시기 위해
주님께서 묵상의 제목으로 던지셨는가
묵상을 해본다.
2. 내려놓는다.
용서하고
이해하는 것 까지 주님께 맡긴다.
3. 기도한다.
아시지요.. 주님 !
4. 성경 여섯 장 읽겠다.
5. 마음을 낮춘다.
자꾸만 교만이 올라오려 한다.
말을 줄인다.
6. 전도한다.
한명 이상.
기도
주님.
부활의 주님
살아계셔서 지금도 역사하시는 주님.
늘 제곁에서
말씀으로
성령으로 도우시는 주님
부활하신 주님이 계시기에
나의 나된 모습이 준비되어 있고
지금의 내 모습으로 변화되어 있는 것임을 고백합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허탄한 세상에서 눈을 돌려
진실이신 영원의 세계를
이해하고 믿고 확신하게 해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아무 자격없이
이처럼 부활의 영광에 동참할 자격을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예수님 오실 그 날까지
이 기쁨
이 부활의 기쁨을
전하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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