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그래, 죽어야 할 것은 죽어야 한다( 고전15:50*58 ) 본문
제 15 장 ( Chapter 15, 1 Corinthians )
나는 죽어야 한다.
내 혈기와
내 육신의 과신은
죽어나가야 만 한다.
매일같이..
그리고는
아무 장식없는 하얀 영혼으로
그 분 곁에 소담히 필 수 있어야 한다.
마치
이
적은 흰꽃이
큰 나무 곁에
수줍은 듯이 피어
출근길의 내 발을
잡은 듯
주님 그늘 아래
수줍고 겸허한 영혼으로
거듭 다시 살기를 원한다.
주님 안에서 새로.....
50. 형제들아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고 또한 썩은 것은
썩지 아니한 것을 유업으로 받지 못하느니라
53. 이 썩을 것이 불가불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겠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
썩을 것은 썩어야 하고
죽을 것은 죽어야 한다.
그래야 새로운 부활의 생명을 살 수가 있다.
55.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그렇다.
사망이 이기는 것이 어디있고
사망이 과연 쏘는 것이
어디에 있다는 말인가?
56. 사망의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그렇지.
열심히 기도생활하면서도
열심히 주님 안에서 생활하면서도
쏘이는 것은 웬말인가?
죄에 부닥이고 부딛치는 것은
또 웬말이란 말인가?
그것은
주님 안에서도 자유롭지 못함이다.
57.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다시 말할 이유도없지만
주님 예수님을 다시 만나야 한다.
부활의 그 분을
늘 교류해야 한다.
인격적으로 만나야 한다.
감사할 수 있어야 한다.
한참을 depression이 아니지만
그리 영적이지 못한 듯한 생활을 하고 있다.
큐티만 하면 가끔은
영혼이 뒤틀리는 듯한
귀한 은혜가 내 전 영혼을 강렬하게 뒤흔드는
그런 사랑의 느낌도
오랫동안 느끼지 못하고 있다.
심하게 바빠
예수님과의 교류를 깊이 못한 탓인가?
아니..
그 보다 가만히 주님 앞에
기다리고 있으려니
더 큰 도전이 날 사로잡기에 그렇기도 하다.
주님의 임재를 기다리면서
일상의 삶을 사는게 참 힘들다.
그래서
목요일 금요일
수술, 외래환자, 외부행사로 정신없이 바빠
탈진이 되려는 상태지만
기도원에 철야 기도를 갔다.
눈이 천근 만근이다.
원래부터
눈이 쳐져서 뜨기가 쉽지 않은 내 눈이
더욱 무겁다.
목요일 찬양을 인도하시는 전도사님.
찬양이 참 '희한'하시다.
머리속에서 마구 올라오려는
비판의 소리도 그냥 가만히 기다린다.
그냥 그게 전부였다.
그러면서 수차례나 일어나서 가고 싶은 몸을
의지로 잠깐 누르면서
이리저리 쳐다보는 순간.
멀리 아기를 포대기를 메고
무릎을 꿇고 박자를 마치며
열심히 찬양을 하는 젊은 엄마가 눈에 띈다.
정말 어렵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그 얼굴을 보는 순간
내 마음이 불꽃이 튀는 듯
기쁨이 내 영혼에 타오른다.
아......
그래 저 모습이었다.
이 수많은 기도하고 찬양하는 자 중에도
몇 보기 힘든
그런 예수님의 기쁨을 아는 ...
얼굴에 희열의 미소를 띠고 있다.
아니..
아기가 조그맣긴 하지만
둘러메고 무릎꿇고 옛날 부흥회랑 전혀 다름없는
고전적인 찬양에
사람 냄새가 많은데
무엇이 저 분을 저리도
황홀하게 하는가?
가만히 이곳 저곳을 둘러 보았다.
그런 표정을 짓는 분들이 많다.
머쓱하고 재미없고 질린 표정의 다수의 사람들 속을 뚫고
내 눈에 쏘아 들어오는
황홀해 하는 표정의 사람들...
무엇을 얻기 위해
오신 분으로서는 조금은 얻기 힘든,
주님의 기쁨을 아시는 분들의
달뜬 듯한 표정들........
아 ..
나와 동류의 사람들.
주님을 인격적으로 만나는 사람들.
지금 이 순간 만큼은
혈기와 육의 성질을 벗어버리고
오직 주님으로 만 기뻐하는 분들.
마음이 열리면서
내 찬양이 높아져만 간다.
피곤은 멀리 물러가고
그리 시원치 않은 고관절을
한껏 굴신시켜 무릎을 꿇고
내 두손은 하늘 높이 올라간다.
그 분 인도자의 찬양이
참 달콤하게 들린다.
주님.. 참 감사합니다.
금요일.
새로운 OCS가 바뀐데다가
오전 중에만 엄청환자 분 밀린다.
수술 환자 두분.
입원 네분.
수술을 마치고
신 전산시스템 정비하다 보니
10시다.
그래도 한번 더 가기로 결심했다.
전날보다 더 많다.
일반 교회가 금요 예배를 문닫고
주님을 사모하는 분들이 전부
기도원으로 몰려 든듯..
발디딜 틈이 없다.
아픈 허리를 기댈 벽을 찾아
구석쟁이에 주님 예비하신 곳에 비집어 앉았다.
조금 있으니 80중반은 훨씬 넘어선
할머니가 옆에 앉으신다.
뒤에는
뇌성마비 청년이
가족과 더불어 앉았다.
사람들이 점차로 많아지며
냄새는 왜이리 많이 나는가?
몸은 어제보다 더 피곤한데.......
하지만
이제는 안다.
주님은 환경에 상관없는 은혜로
날 이끄신다.
그래서 기다렸다.
찬양이 시작이 되며
사람들이 달뜬다.
역시 사람들의 얼굴을 보았다.
열심인 분들을 뚫고
어제 처럼 황홀한 얼굴로 깊이
찬양을 하는 분이 계신다.
시간이 지나면서
깊어가는 깊은 밤에도 불구하고
성전은 뜨거움을 가득찬다.
뒤에서 그 소리를 뚫고
장애 청년의 찬양이 들린다.
어눌한 목소리로
가끔 가끔 들리는 박자를 놓치는
박수소리.
뒤를 돌아 보았다.
아버지가 오른쪽에 계시고
왼쪽에 어머니가 계시다.
청년은 그 사이에서
찬양을 하는 데
그 열렬함이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손벽을 치는 데
두 손을 맞추기 위하여
열심히 조절되지 않는 몸을 움직여
소리를 내려 애를 쓴다.
두 분 사이에서
청년은 주님의 사랑을 만끽하고 있는 듯 보여
가슴이 뜨거워진다.
옆에 앉으신 할머니.
눈이 잘보이지 않으셔서 인지
성경도 없으시다.
힘들어 보이심에도
연신 고개를 끄덕이시며
늦으시는 리듬을 맞추시려고
박수를 치려 하시는게
가상하시다.
몇몇 분들의 눈을 파고드는찌르는
기쁨의 표정을 볼수 있다.
피곤한 몸은
어느새 육신의 어려움을 감추고 있다.
찬양의 가사에 집중하며
난 기도대신
주님께 올려드리려 애썼다.
감사하고 귀하다.
감동이 밀려온다.
눈물이 나려한다.
세상일에 치대여
관계 속에 휘말려
난 내 특질 속에서 갇혀
답답해지려 하는 삶을 지속해오고 있었다.
자꾸만 혈기가 올라오려한다.
아침에 들어 본 묵상 집에서
'사망아.. .쏘는 것이.. '란 구절이
잘 느껴진다.
그래,
주님 안에서 새로움으로 부활하면
그런 게 어디 있는가?
괜한 헛된 욕망에 사롭잡히고
그로 인한 필요없는 자만심으로
자신의 성을 굳게 함은
하나님의 유업을 받을 수 없음이 분명하다.
주님은 어제와 그제의
주님의 기쁨을 깨우쳐 주심으로
부활의 삶이 얼마나 황홀할 것인가를
간접적으로 보여 주시었다.
상황에 하나도 상관없는
그 기쁨.
아기업은 다리가 저려도
팔다리 꼬여도
세월이 육신을 짓눌러도
주님을 깊이 체험함은
그를 멀리하게 한다.
오히려 기쁘다.
부활체를 입고
주님의 나라에서 산다는 것은
비록 찬양하거나 예배드리는 그 짧은 순간의 경험을 넘어서
매일 같이 체험하고
매시간 느끼는 놀라운 기쁨의 연속이 분명하다.
57.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난 이길 것이다.
지금은 그냥 주님의 인도하심을 기다린다.
그리고는 팔다리에 힘을 빼고 있다.
주님을 놓치지 않고
주님이 기쁨이심을 잊지 만 않고 기다리면
내 삶은
그리 잘못된 결과는 가져오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기도
주님
감사합니다.
주님은 기쁨입니다.
삶에 짓눌려
가끔 잊을 뿐이지만
그 시간 조차도
주님 당신께서도 무뎌지는 시간이 되지 않도록
이끌어 주실 줄 믿습니다.
근심 걱정
염려.. 혈기.......
모든 주님의 원리가 아닌 것을
주님 십자가 앞에 내려 놓고 있나이다.
주님 올바른 길로 인도하소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주 하나님께 감사하는 삶이 되도록
오늘 하루도 지키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감사하며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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