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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풀이를 멈추다[계 9:13-21] 본문

신약 QT

되풀이를 멈추다[계 9:13-21]

주하인 2012. 12. 5. 09:21

 

 

 

 

20.이 재앙에 죽지 않고 남은 사람들은 손으로 행한 일을 회개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여러 귀신과

    또는 보거나 듣거나 다니거나 하지 못하는 금, 은, 동과 목석의 우상에게 절하고

21.또 그 살인과 복술과 음행과 도둑질을 회개하지 아니하더라

 

 그런 지독한 고통을 당하고도

정신을 차리지 못한다.

오히려 더 '죄'에 몰두해 간다 .

어쩌면 그들, 그러할 수밖에 없음은

그들이 회개해서 돌려야 할 당위성을 알지 못함이다.

 구원 받은 우리들과는 달리

그들에게 관심은 오직 땅이 모두다.

돌려 회개하여 깨끗 해보았자 더 이상의 소망이 없음이다.

그러니 이땅에서 어떻게라도 삶의 이유를 찾아보고

죽음의 두려움으로 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몸부림이다.

그러니, 그들은 귀신을 찾아가 점을 치고

철저히도 과학을 통한 합리를 신봉하면서도

조금 이상한 신비만 보이면 마치 꿀을 찾아드는 파리떼처럼 몰려간다.

'사탄교'를 표방한 '레이디가가'에도

그녀의 보이는 그 혐오스러운 '무언가'에 홀리듯 열광하는 어이없는 게

바로 그들이다 .

그들은 지옥을 두려워 하면서도 지옥의 무언가 강렬한 있을 듯함에 목을 매단다.

 절집의 우상, .. 이 웃기만 하여도 마음 편함을 느끼는 듯

그들의 영혼은 비어도 한참 비었다.

그래서  그 어이없는 거짓이 '치유'를 주는 듯 착각을 하여 몰려간다.

요새 쉼, 치유, 힐링이 대세인 이유는(대세.. 가 말 그대로 어이없는 몰려다님의 현상이다 ㅜ,ㅜ;;)

그들에게 '두려움'을 잠깐 마비 시켜 주는 마취제의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살인이 부지기수다 .

패륜 살인이라고 부모를 죽인 아들이야기가 며칠 몇달을 신문지상을 달구던 것은

겨우 수년 전이다.

이제는 눈만 뜨면 '묻지마 살인', '부모가 자식을 죽이는 일', ... 은 수도 없다.

이야기 거리도 아니다.

이것 역시.. 그들의 영혼에 이해할 수 없는 '빈 것'을 채울

소망이.. 아니다 .. 가망이 없기 때문에 벌어지는 것임을 이해하면

그럴 수도 있겠다 싶다.

 주일 예배 드리고 나오는 오후 쯤 되면

울 교회 뒤편에 아주 멋드러지게 차려놓은 '모텔'에서

( 교회가 안양 일번가에 위치하여 모텔이 뒤에 있음은 어쩔 수 없다.. ㅜ.ㅜ;;)

너무나 자연스럽게 남녀( 어린 학생으로 부터 나이 지긋하신 분들까지 ..)가

부끄러워하지도 않고 당당히 나온다.

이 살인, 음행, 우상.........의 죄들.......

세상이 언제는 안그랬겠냐마는

요즈음은 정도가 너무 심함은 비단 매스미디어의 지나친 발달로

모두 드러남 탓 만은 아니다.

 

이전에는

수년전까지는 영혼을 위해서 고민하는 시간들이 사람들에게는 많았다.

그게 비록 하나님이란 진리와는 거리가 멀수도 있지만

나름 대로 문학책을 읽고 심신을 닦으려 노력하며

개중에는 '문학소년 소녀'들이 참 많았다.

그러던게 이제는 그 시간이 온통

스마트 폰에 빼앗기고

거기에서 본 것들을 '육신'의 만족으로 채우려

실행하기에 바쁜

육체만 돌아다니는 '괴물 '들만 남았다.

 

오늘 말씀 묵상 중에

6번째 나팔 불어 이땅에 지독한 고통이 임했음에도

저들이 저렇게 더욱 심하게 변하는 것은

그들 영혼에 '빈'곳을 채울 방법이 없음에 벌어지는 현상들이다.

그 빈곳.

그 빈곳은 '하나님으로 ' 채워져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당연히도

예수님 만이 구원의 길임을 알아야 한다.

예수님을 믿는 자들의 죄는

'회개'가 선행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매일 매일 성령의 부어주시는 '사죄의 은총'으로

매일 속죄를 해야 한다.

그래야 . .. 이 되풀이 되는 죄를 멈출 수 있다.

 

나.

회개 .. 한다.

하나님의 사랑.. 깊이 체험한 자다.

예수님의 구원.. 당연히도 받은 자임을 확신확신한다.

성령의 은혜를 경험하고 감동하는 자다.

그러기에 내 영혼의 빈곳을 채우지 못할 자는 아니다.

그러함에도

일상에서 돌아보면

아직도 '되풀이 되는 죄'가 있다.

솔직히 그런 깊은 은혜를 앎에도 불구하고

'용서'의 마음이 온전히 나를 사로잡지 않았다.

이 되풀이 되는 죄..

너무 강해서 저항하기 힘들 논리로 나를 사로잡아

자극 만 있으면 '분노'로 여지없이 튀어나올 듯한

이 깊은 '되풀이 죄'들.

 

그것을 아시고

주님은 아침에 저들의 모습을 투영시키며

특별히 '음행'의 죄 부분에

눈을 주게 만드신다.

음행.

꼭 외간 여자와 그렇고 그런 짓을 하는 것만 음행이던가?

아니다...

그러나, 맞다.

남자의 누구도 하루에 몇번씩 마음을 오가는 '성적 환상의 갈증'을 경험한다.

 

 나 ..

솔직히..이제 그런 본능적 결점에 대하여는

크게 고민하지 않고 있다.

저항하고 눈물 뿌려 없애보려는 시도를 하지 않는다.

그냥... 내가 그 저항하지 못하는 유혹에 반응하지 않으려

말씀 가운데 맞추고 십자가 앞에 내려 놓으려는

선택적 결심만 하고

예수 십자가 보혈로 씻김 받았음을 믿고 있을 뿐이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이 나를 정하게 하심을

난 마음 속의 상쾌함으로

자유로움으로 인식하고 믿고 있다.

 

하지만 오늘의 '음행'은 꼭 그러한 육적 음란함을 넘어

영적 음행을 말씀하신다.

내 영혼 속에 '반복적으로 되풀이 되도록 '하는

어떤 큰 가치............

나로 하여금 '판단'하게 하는 잣대.

너무도 강렬하여 하나님이 앉으실 판단의 자리에

그것을 올려 놓아

예수님의 신부 - 가끔은 쑥스럽기는 하다. . 신부라니.. 남자가 ^^;;-가

그 죄된 '핵심신념 (- 심리적 표현이다)'에 영혼을 맡기는 것이야 말로

영적 음행이 아니던가?

그것.. 정말 음행이 맞다.

그러고 보니..

지금 방금 깨달았지만..

 

그렇다면 그 깊은 신념은 어찌 형성되었던가?

불신의 시절에

하나님이 날 복중에 만드시고 태중에서 받으시어 선택을 하셨지만

그 분의 우주적인 이유로 인하여 아직 내 인생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시던

그 시절에

내 DNA와 영혼에서 유래되는 강한 유전적 특성과

내 가정환경, 주위의 밀접한 사회적 영향 (의미있는 타인 !)들의 영향으로

내 스스로 내 자아에 이런 문구를 새길 수 있는 것이다.

'나.. 부족한 자야.. 이것봐..

 나만 오면..

 나를 이렇게..

 나는 이런데 어떻게 저들이.. '

아니.. 좀 좋은 환경에서 컸다면

'난.. 사랑 받아야만 하는 자.. '...가 들어 있을 수도 있다.

 

 그러한 핵심신념의 문구가 어쩌면 '사단'의 발톱일 수 있고

그러함은 '아담' 할아버지 원죄 사건 이후 누구에게도 허락된

어쩔 수 없는 자신의 인생 방향타일 수 있다.

이러한 개념을 가지고 세상을 바라보고

세상의 주위에 허겁대며 쫓아가는 '욕구'로 나타나기도

이루어지지 못하는 신념에 반하는 깊은 '좌절' 내지 '상처'로 표현되어

그 사람을 그런 모습으로 살게 하는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런 자를 그대로 두지 않으셨다.

때 되어 태중에 선택한 그들을

예수님의 피로 구원시키시는 작업을 프로세싱하시고

그로 인하여 매일 성령의 에너지를 바탕으로

은혜의 힘으로 '당신의 뜻'을 이루어 내도록 하신다.

그것.

그 신념을 허락하시고

잠시 그냥 세상에 홀로 두신듯 지켜 보시는 기간등도

모두 주님이 가장 적절한 시간을 결정하시는 것이다.

 

어찌 되었든

문제는 그러함을 통해서

주님의 소망을 우리 영혼에 채우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이 어리석은 자는

잘못된 선택으로 말미암아

빨리 예수님의 신부로서

영혼의 깊은 곳을 하나님의 영광으로 채워야 함에도 불구하고

여지껏 이 모양이다.

음행의 죄를 회개하지 못함이다.

반복적으로 죄를 고민한다.

에너지가 자꾸만 빼앗긴다.

갈 길은 남아 있는데

어리석은 죄를 되풀이 한다.

 

오늘 깨달았다.

내 되풀이 죄는 '회개할 음행의 죄'다.

반드시 회개해야 한다.

내 논리의 오류는 무조건 하나님의 말씀으로 회개해야 한다.

논리가 부족하며 그냥 십자가 앞에

내 죄일 듯한 상황을 가져다 대입한다.

그리고 성령의 도우심을 기대한다.

그래서 조금  더 녹아내리는

내 오래된 죄.

그 죄의 기본 바탕의 논리를 녹여 냄을 목도하리라.

 

나 .

조금 더 성장할 것을 기대한다.

 

 

주님.

제 마음 아시고

제 상황 다 아시지요?

제가 조금.. 어찌... 라 했던 것.. 주님 아시지요?

그 죄될 듯한 표현이

그리도 안되는 깊은 어려움 탓임을 요?

주님.

전.. 그래도 옳음을 선택합니다.

회개를 선택합니다.

주님의 도우심으로 완전히 돌아섬을 간구합니다..

주님의 방법대로 도우소서.

깨끗이 그리하소서.

완전히 그리되면 전 성화의 때임도 아오니

주님의 시간이 되면

속히 그리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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