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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행( 잠13:14-25)

주하인 2007. 7. 26. 16:23

제 13 장 ( Chapter 13, Proverbs ) 
  
 
19.  소원을 성취하면 마음에 달아도 미련한 자는 악에서 떠나기를 싫어하느니라
 왜 그럴까?

왜 악에서 떠나기를 싫어할까?

악은 악인데..

남을 나쁘게 하는 것이고

스스로를 파괴하는 것이 분명한데.

거기에다가

좋은 일을 소망을 두고 하면

마음이 편하고 좋으며

결과가 윈-윈 인데..

왜 악에서 떠나지를 못할까?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습관이라는 것에서 벗어나기 힘든 이유도 있을 것이다.,

오랜 습관을

벗어난 다는 것은 

결단을 요구하는 것이고

거기에는

상당한 인내가 필요하다.

 또 어떤 것이 악인지 모르는 판단 기준의 미비가 문제다.

사람들이 날로 악해져 가고 있다.

악은 유혹적이다.

주위에서 너도나도 하다보면

어느새 그것이 진리가 되어 버린다.

그러니, 악이 악이 아니고

선도 선이 아니다.

고만 고만한 아이들끼리 두면

그들 세계에서 목소리 큰 자가 대장이 되는 것과 같은 원리다.

 악은 쉽다.

쉽기에 어려운 일을 하면서까지 선을 할 자신이 없어지는 것이다.

 

 이것은 틀리다는 것을 알아도

속에서 부딪기는 소리가 있어왔다.

습관이다.

부끄러움이기도 하다.

그것의 유혹과 저항은

어느 때 너무도 강해서 주저 앉아 옛날로 돌아가고 싶을 때도 많다.

 특별히 하나님을 믿으면서

그 분이 주신 은혜로 모든 것이 힘이 있을 듯한 때는

그래도 선한 것을 준행함이 당연할 듯하기도 하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은혜가 떨어지면

여지없이

이 악한 구습은 날 사로잡는다.

걱정이나

근심으로 날 똘똘 묶어 두기도 했었다.

 

 수요일

기도원 가니 장학봉 목사님이 설교를 하고 계셨다.

참으로 맑고 건강한 사고를 가지신 분인 듯하였다.

미가 7:8에

 나의 대적이여 나로 인하여 기뻐하지 말지어다 나는 엎드러질지라도 일어날 것이요 어두운데 앉을지라

 도 여호와께서 나의 빛이 되실 것임이로다

라는 구절을 두고 설교를 하셨다.

 

 어두운 데 앉을 지라도

그래,

악이 이끌 때

자기 연민에 빠져 '그래' 해버리면

어두운데 앉아 버리는 것이다.

그 때는 우울하고칙칙하고 눅눅하고 참 기분 좋지 않아

근심과 걱정이 온통 회오리 치듯이 다가와

심장이 빨리 뛰었고

머리가 지끈 지끈 아파 오지만

어찌 그 악에서 그리 빠져나오기가 쉽지 않았던가?

 일단 무기력 했었다.

부인하고 싶지만

스스로를 자책하는 묘한 재미(?)도 없지 않아 있는 듯 싶었다.

 

이렇듯

악의 길은 유혹적이기도 하다.

그래서

어리석은 주하인 같은 자들은

떠나기를 싫어 했었던 것 같다.

 

문제는 악에서 떠나기 싫어한다는 이러한 표현은

주관적인데 있다.

 

그렇다면 떠나기 위해서는

주관적인 '선택'을 해야 한다는 명제를 적어 놓고 계신 듯

오늘 묵상에서 느껴졌다.

 

 '주여

 이제 부터 난 주님을 선택하고

주님께 맡기고

주님을 위하여 살기로 결정했습니다.

 날 도우소서.

믿기로 결정했나이다. '

하는 선언을 하고

주님 앞에 무릎 꿇고 눈을 감고

십자가를 바라보는 의지만을 발휘해야 한다는 것을 암시한다.

긍정적인 마음 바꾸려고 어찌 내가 할 수 있겠는가?

 

 장목사님의 설교 후 기도는 정말 대단히 힘이 있었다.

아주 간결한 언어로

내 속을 어찌 그리 잘 표현하시는 지...

비단 나뿐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악을 떠나기를 싫어하던

어떤 미련하였던 자들도

내뒤에서 많이 '주~~~여~~~'하면서

기도하는 듯 했다 .

내 생각인가?ㅎㅎ

 

 미련한 자로 남아 있을 기회를 주시지 않을 작정이신 모양이다.

주님은..

 

주님 안에서는

선한 은혜가 있다.

그 분은 진리다.

그 안에서는 고민도 걱정도 근심도 없다.

잔잔한 평강의 유혹이

날 미련의 질곡에서

벗어날 힘을 주시는 듯 하다.

 

 

 

 


 
20.  지혜로운 자와 동행하면 지혜를 얻고 미련한 자와 사귀면 해를 받느니라 
 잠언이 유난히 묵상하기 힘든 부분이다.

그렇지만

주님은

그 분을 깊이 묵상하면

주시고자 하시는 부분에서 유난히 눈에 걸리는 부분이 있다.  
 

 同行

 

 지혜로운 자는

지혜로운 자와 동행하는 것이란다.

 

미련한 자와

사귀면

해를 받고...

 

 사귐과 동행

 

동행은

서로에게 융합되지 않고

서로를 위하면서

격조있는 만남을 유지하는 것이고

사귐은

어떤 의미에서는

내것과 네것이 명확히 되지 않고

그의 슬픔과 그의 모든 것을 다 떠맡는 의미까지도 -극단적인 경우-

포함하는 의미가 될 수가있다.

 

여기서는 그 의미를 정확히 다 표현하기는 힘들지만

나에게 개인적으로

동행에 대하여

주시는 의미는

경계선과

그에 대하여

다 아시는 주님이시다라는

위안적 의미이다.

 

 그러시면서

지혜있는 자와

동행하라고 하신다.

누구와 누구와의 예속의 개념이 아니고

서로가 서로를 위하면서

그를 위해 가슴아파 해줄 수 있고

필요할 때 손내밀어 도움이 되어 줄 수 있고

서로

서로 멘토가 되어 줄 수 있는 ..

존경하는 상태.

 

주여

늦지만

오늘 그런 동행할 자를 볼 눈을 주소서.

남에게 동행할 상대자가 될 마음의 지평을 넓히소서.

예수님

내 속의 미련하고 악한 것들을

이제 주님의 이유로 해서 과감히 버릴 수 있는 하루가 되게 하소서.

특별히 오후에 있을

집회에 최선을 다할 수 있게 하시고

그 후의 모임에도 축복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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