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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망도 기뻐할 수 있는 삶[행4:1-18]

주하인 2018. 2. 5. 10:21


6.그들이 알고 도망하여 루가오니아의 두 성 루스드라와 더베와 그 근방으로 가서

그 뜨겁던 성령행전의 시대에도

'도망하는 '게 당연한 현상이었다.

'성령'의 이글거리는 임재와 하나님의 역사가 , 기적이 일상으로 일어나던

그 시대에도 말이다.

우리는 그 사실을 너무도 당연히 여긴다.

그럼에도

하나님을 믿으면서 벌어지는

내 영역 (^^;, 내 지각 반경 안의 일.. ) 혹은 우리 삶에서 벌어지는

어이없는 일들에 대하여

참으로 오랫동안 '어이없이 ' 혼란스러워 해온게 사실이다.

이런거다.

"아.. 예수님 믿는데 왜 우리 집은..

아.. 하나님 왜.. 왜.. ' ..


그런데..

고난은 유익이고

하나님 나라에 가는데 필연적 코스임을 알면서도

왜 그랬을까?

그러함은 예수님 믿으면 '복'이고

그 복의 개념이 '만사형통' 이라는

너무도 기복적이고 무당적인 생각탓은 아니었을까?

잘 되면 너무 좋지..

안되면 왜 믿나.. 하는...


그런 생각이

우리의 삶을 참으로 어렵게 했음이다.


요즈음 한동안 외우고 다니는 성경 구절에

'사방으로 욱여쌈을 쌓여도' ..쌓이지 아니하고..

..........' 다.

사방으로 욱여쌈을 쌓듯 ,

숨도 못쉬게 질식할 듯

죽을 것 만큼.. 힘든 일들이 필연이라는 것이다.

우리.. 인생.. .

'원죄'의 흔적으로 누구나의 영혼에 '죄'의 발톱들이 남아 있는 자들에게는...

예수님은 십자가로 그 전의 죄를 사해 주시고

성령으로 인한 보혜사로 더 이상의 죄' 들을 매사 매일 회개할 기회를 주심이지

한동안 '믿으면 무조건 다.. 끝까지 의인'이라는 어이없던 기독교 일각의

망상적 미련함에는

'이런 욱여쌈'을 이해할 만한 여지가 없어

많은 분들이 실족할 위험을 허락한 것도 사실이다 .

'의인'의 자격을 주어주시고

이전의 죄를 씻어주심일 뿐이다.

매일 십자가 앞.. 은 그래서 우리의 숙명이자

하나님의 뜻이시고

그 도구로 '욱여쌈'이 허락되어짐이고

이들 .. 사도 들 마져

그 이글거리는 하나님의 능력이 있으심에도

도망하게 그냥 두심이시다.

'


7.거기서 복음을 전하니라 
 고난이 '유익' 인 이유를 알아야 한다.

'복음'을 전하게 되는 것...

디아스포라 통해 전세계에 복음이 전해 진 것 처럼

하나님 믿는 자의 역설은

고난이 유익이고

약함이 강함인 것이다.

그것을 통하여 '하나님 나라'가 확장이 됨이다.


할렐루야다.

아멘이다.  
 얼마나 고귀한 일인가?

필생 필사의 일이 '우리 일상의 고난'을 통해서 이루어진다니... 원.. ^^;


그런데 .. 문제가 있다.

나... 우리.. 목회자나 선교자.. 레위지파가 아닌

이 부족한 자들..

아니.. 솔직히 일상을 살아야 하는 분.. 이나 나같이 부족한 자들에게

'복음'을 전함이 어떤 의미이고 어떻게 해야 그렇게 해야 하는가다.

고난이 유익이 되기 위해서

오늘 하루에서 '어떻게.. ' 복음 전파함으로

그 유익이 바뀌야 하는 가하는 문제다.


 당연히도

가장 좋은 것은

어떤 어이없는 일이라도 '하나님을 의식 (그렇다.. 이게 가장 선결될 문제다 ) 함"으로

기쁨으로 인내 되어야하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자 만이 누려지는...그 진정한 기쁨)

그로 인해 '주변' .. 우리 그러함을 보고.. 하나님이 살아계시구나.. 감동하는

이웃들에게 '그러한 우리의 변화된 기쁨의 영혼'을 보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증거하게 되고

거기에다가 '전도'의 말을 건넴으로 이루어지는게

진정한 '복음'을 전하는 하루가 될게다.


하지만..

누구나..

(아니.. 나는 나의 어이없는 한계를 잘안다.  그렇게 우아하고 성스럽게 대하지 못할 개연성이 많은 사람이다. ..ㅠ.ㅠ;; )

그렇게 할 수 잇는가?


그렇다면 ' 고난이 유익이고, 망하는게 복음 전하는 길'의

그 역설적 행동이 오늘 말씀의 레마가 되기 위해서는

어찌 이해가 되어야 하는가?


어떻게 해야 우리가 이 어지러운 삶속에서 그나마

복음을 전하는 삶이 될 수 있다는 말이던가?


우선.. 하나님을 무조건 인식함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

그리고 '고난.. 그 눈물나는 어려움.. 도망'.. 이 있게 되더라도

'은혜'를 사모함으로

예수님 십자가에 그 고난을 일러 바치기라도 함으로

성령 하나님이 '임하셔서'

내 불가능한 '몸부림'치려는 약한 영혼이

그래도 '나도 모르게 ' 무엇인가 터지고 받아 들이게 되는 변화를 느끼고

그로 인하여 그게 하나님이 살아계신 증거임을 확신하게 되는 (점차로.. )

그러한 경험이 쌓이게 되고

그러함으로 다시 한번 이라도 다시

주님이 살아계셔서

상황에 상관없이 변하는 내 영혼의 상태..

'평강'.. 샬롬을

그들에게 전하려는

마음의 부담이라도 가지게 됨을 가지게 되면

그것만이라도 족한 것 아닌가 싶다.


고난.

삶.

복음..

그 모든게 우리의 일상과 괴리된 게 아니고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어떤 상황.. 이라도

말씀으로 이해되게 되면

그게 내가 인지하든 못하든.. (입을 열어 그 기쁨을 전하면 최선이지만.. .)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는 일에 동참하게 됨으로

매일 매일 하루만 살아가다 보면

어느새 주님 인도하시는 ..

주님과 내가 하나가 되어

내가  주 안에

주께서 내 안에 거하시는

심령 천국의 삶을 살게 될 것이다.


진실한.. 진리의 행복...

바로 곁에 있다 .




주님.

말을 길게 늘어 뜨리게 되었지만

깨달아 지는 바가 있습니다.

죽도록 따라다니는 이 인생의 버거움들이

참으로 힘겹고 이제는 손을 놓아 버리고

이 나약한 육신을 벗어 버리고 싶은 충동이 드는 게 한 두번이 아님을 고백합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주께서

날마다 말씀으로 다가오시고

은혜의 상령으로 깨달음과

마음의 지평이 넓혀지도록 하심으로

고난이 필시 '유익'임을

이제는 고백하게 되어갑니다.

내 주여.

그러나.. 그러함에도 아직..

내 나약한 심성을 사로 잡으려는 사단의 발톱이 걸고 오면

내 속은 순간적으로 뒤죽박죽.. 지옥의 연기를 맡는 듯

힘들어지기도 합니다.


주여.

오늘 말씀으로

'도망하고 욱여쌈'을 쌓이는 한이 있어도

그게 모든 '사람'.. 특별히 사랑 받는 자들에게는 더 .. 숙명임을 깨우치십니다.

감사합니다.

이제 주께서 말씀하시는 대로

이 작은 인생의 반경에서 지만

주님 나라를 증거하는 ..

삶의 태도로 .. 입술의 말로 소리내는 자 되길 원합니다.

주여.

그 모두도 성령으로만 가능하오니

도우소서.

내 모든 것이신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의 이름 받들어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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