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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 QT

주 옆에서 주변 바라보기[레10:12-20]

주하인 2022. 3. 16. 08:51

(펌)

그냥 광대 막측한 눈으로 바라본

너무도 작은 우리 네 인생만 보세요...

하나님 아니시면

이 광대한 사실,

우주마져 어찌 존재할까요?     

상상을 불허하는 너무 큰 사실에서

불신을 찾는 자들과

더 큰 존재를 생각하는 분 들..

누가 옳을까요?

정말? ^^;

 

 이 숨막히게 하는

끝없는 광대함의 근본에

하나님이 계심임을 

겨우 돌린 숨에서라도 느낀 자들은

비록 '종교'조차(어쩌면 기독교 조차.. 라 하고 싶었을지 모른다.ㅠ.ㅠ;)

한낮 부족하고 작은 인간들의 오류라고 

지긋이 표현하는 이 동영상의 

조금은 부정적 암시에도 불구하고.... ^^;;;

오직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한 자들 뿐이리라. 

 

 아론의 아들 죽음의 아픔보다

더 큰 경외로 인하여

우리의 생각과 느낌을 넘어서시는

아니........

우리의 짐작을 거부하시는 

그 놀라운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영혼으로 느끼게 되는 자들... 

 

 감사하고 

경이롭고

가슴이 터질 듯하다. 

정말... 

 

( 겨우 태양계 밖에서 바라봐도

지구는 저리도 작은데

하나님 곁의 영원에서 지금을 바라보면 

내 울고 웃는 어이없음이 

얼마나 우습고 안타까울까... 

코람데오 하셔서 

제 눈을 들어

매사  주님의 눈으로

바라보게 하소서. 주여..)

 

 

16.모세가 속죄제 드린 염소를 찾은즉 이미 불살랐는지라 그가 아론의 남은 아들

   엘르아살과 이다말에게 노하여 이르되

 정말 중요하다 .

하나님의 말씀 그 자체.

말씀하신대로.. 준행하는 것.

 

 특별히 '아론'들 처럼

하나님을 바로 곁에서 모셔 들여야하는 

'제사장'들........에게는

목숨보다 중요한 것이 

하나님의 말씀 대로 사는 것이다. 

 

 그렇지만

거기에는 '아들을 잃은 ' 아론의 마음도 있었다. 

분노는 당연하지만

노할 상황은 아닐 것인데도

모세는 그랬다. 

왜 일까?

 

 이 대단한 모세들도 

왜 이런 감정적 어려움을 초래하는가?

하나님의 사도로서 당연한 분노지만

왜 인간적이지 않아보이는가?

거기에 대한 해석은 왜 없는가?

 

19.아론이 모세에게 이르되 오늘 그들이 그 속죄제와 번제를 여호와께 드렸어도 이런

   내게 임하였거늘 오늘 내가 속죄제물을 먹었더라면 여호와께서 어찌 좋게 여기셨으리요

'아론'이 

저항하지 못하고 

힘없이 겨우 (힘없이 겨우.. 가 맞다... 그 마음이 마음일 것인가? 하나님이 두려워 모세의 말에 감히 저항하지 못하지만 자식을 잃은지 몇시간 되지 않았을 즈음 아니던가?

"이런 일이 내게 임하였거늘.. 어찌.... " 하며

겨우 목소리를 내어 설명함을 보고 있다 .

항변도 못하고...ㅠ.ㅠ

 

그런데

그 변명이 '부정적이고 기죽고 우울한' 느낌이라기 보다는

조금은 '해탈'(죄송.. 금새 떠오르는 표현이 없어서... 겨우 불교에 흔들리시는 적은 하나님은 아니시리라 믿으며 즉각적인 언어로 영광을 올린다.ㅎ...^^*) 한 

차분한 느낌이다. 

 

 어제부터 

아니 구약내내 마찬가지지만

가끔은 현대인의 입장에서 , 또 부모된 입장에서 받아 들이기 힘든 내용들이 나오기도 한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세'의 아론들에 대한 질타나

아론의 그 마음이 마음이 아닐 듯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하나님의 뜻만 내세우시고 강요하시는 것 같아

마치......정말 죄송하지만 감정을 읽지 못하시는 분이 아니신가 싶은 (대부분.. 너무 우리를 다 아시는 분이시라 묘사되시고 그리 체험하고 아는 사랑의 하나님이시지만... ) 감정적 괴리에 처하게 하실 때가 있다. 

 이럴 때.. 

선뜻, 사단이 귀에 대고 그러는 것 같을 때가 있기도 했다 .(아.. 했다.. 다.. 하다 가 아니고.. ^^;

" 정말 하나님이 살아계셔?  그 분이 사랑의 정수 시라며...?.. 그런데 이게 뭐야... *&^%$,,,, ? " .. 하는 듯한...

 

 정말.. 아론에게 

그 아들이 죽은 슬픔에 대하여

전혀 이해하지 못하시는 주님이 맞으실까?

 

 솔직히 곧 이어 나올 여러 반론의 제기로

난... 그렇지 아니할 것임을 안다. 

하지만... .

안다는 것과 마음에 받아 들여지는 것은 분명코 차이가 있다. 

 

이러고 싶었다. 

내 급박한 성품으로 

'그게 맞으시지요?' 하고 얼른 눈을 감고 

"예수님... 감사합니다.  

알게 하셔서.. 아멘"하고

마구 마구 글을 쓰고 

다 안것 처럼 그리하고 의식의 한켠에 꽉 묻어두고

하나님이 하시겠지 하면서 기억하지 않으려면서

기억하고 드러내는 것은 사단이 날 혼란케 하는 것인 것처럼

그냥 '믿음'으로 치부하고 눌러 놓는거......말이다. 

 

 하지만.. 그게 

하나님의 방법은 아니시지 않은가?

꼭 이해를 시키지 않으셔도 

내 아는 듯함이지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 

그 말씀을 레마로 받기 위한 '묵상', 큐티.. 

그 레마로 하루를 사는 옳은 삶의 태도, 궁극적 내 목적.. 에 합당한 이유는 아니지 않은가?
거기에 ...........

그렇게 그렇게 사는게 옳지 않음을 아는데

그러하게  내 마음에 맞는 것만 섭취하며 사는것은 

내 살아가야 할 이유와 의미에 대하여 

타당한 것이 아니지 않는가?.. 싶다. 

 

 

  가만히 묵상했다. 

이해가 되어지는 단초가 떠오른다. 

 

 '아론'들은 

전 인류 중에 , 이스라엘 백성 중에 

모세를 제외하고는 

가장 하나님과 직접 마주하게 되는 

영적 최전선에 서 있는 자다. 

 그러한 분들이 

우리 모두가 될 수가 없지 않은가?

 

 하나님은 사랑이시며 동시에 '경외'와 '공의'이시다. 

그 분에 가까이 다가가며 

영적으로 성장할 수 록 '공의'와 '경외'가 사랑의 부분 보다 커질 수 밖에 없다. 

비록 , 자식의 죽음까지 목도 하는 것은

너무 과하다 느껴지지만 

그 시대의 죽음 및 자식에 대한 관점과

지금의 관점이 다른 점,

무엇보다 '성경'에 기록되어질 가장 영적 최극단에 서 있는 자에 대한 부분......이 

지금의 우리 보통 .. 신앙인들과는 달라야 함이다 .

 그리고 ,

또한 그 공의와 경외의 댓가가 

어쩌면 천국..........이 땅 이후의 다른 차원의 영생의 삶에서

달리 주어질 것을 

어찌 이 '짐승처럼, 지렁이처럼 (아.. 성경적 표현 ^^;)  우매한 ' 인생들에게

모조리 다 드러내어 설명해 주실 것이신가?

그리고 그 마져도 

어쩌면 믿음에 꼭 필요하시기에 

'상징'과 '소경의 코끼리 만지기' 같은 허락되어진 부분이 아니실까?

 

 우주로 나가 지구를 살펴보면

나는 , 지구는, 심지어는 태양계도 , 안드로메다 은하도................................

정말 아무것도 아님이 사실임을 

확실하고 쉬이 알수 있으면서도

마치 '내 , 살고 죽는 것,  내 자식의 그러한 것......................' 이 

전 우주의 모든 관심의 중심인 것 처럼 

착각하고 사는 것 이 너무도 어이없는 것임을 

왜 그리도 잊고 사는 것인지?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그 모든 것, 다 말씀으로 창조하시는 

하나님의 살아계심이 

이토록 절절하고 

그 분이 이 적은 곳에 몸소 내려오셔서 

십자가에 달리시기 까지 한것이 

얼마나 놀라웁고 경이로운 사실인지 알면서도

왜 ......나는

자꾸만 내 바로 앞, 내 시선, 내 안, 내 경험, 내 것............만 중요하게 

착각되어지는 지???????????????..........ㅠ.ㅠ

 

 

 나.

그렇다면

그게 우리 , 이 평범한 자들

특별히 믿음의 체험이라는 면에서 

그러면서 '왕같은 제사장'으로 자격이 부어졌지만

수 많은 인생광야의 시간을 거쳐 마침내 지금의 아론은

다른 시야를 가지고 있지 않을까?
 그게

오늘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시는 말씀의 중심이고?

 

 마치

전문의 되고 세상에서 전문진료하며 모든 책임 지기에는

너무도 많은 시간이 남은 이 초보 의사 때는  

지금 나이의 나.. 제법 많은 인생의 시간들을 거쳐서

많은 경험을 한 전문의 주하인되니

이제 겨우알 수 있게된 너무나 당연한 원리가 

아직은 그 때에는 겁도 나고 아는 것도 아닌 것도 같았던 

그 시점의 마음이 

아마도 지금의 내 신앙의 눈으로

아론의 그 마음을 들여다 보는 것 같은

비슷한 상황이 될 것도 같다. 

 

 그렇다면.. 

묵상기도 후에 든 느낌으로는

이제 조금 신앙의 간증거리들이 쌓인 눈으로 

아론을 바라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았다.

 

 그 느낌.

때로는 '강력한 하나님의 질타'같으신

허락되어진 어려움이 

도저히 그동안의 내 상식이라 생각했던 판단 근거로는 이해가 가지 않고

두렵고 어려운 말씀이나 상황이 

오히려 '은혜'과 '감사'로 바뀌던 것.

 말씀에서 나오시는 대로 '약함이 강함이고 곤란이나 핍박이 감사'로 바뀌던 

그 체험의 경험들이 있었다. 

 

 아마.. 

아론은 그 엄청난 비극 가운데서도

더 중요한 것은 

'경외'임을 깨달았으며

그 공의와 경외의 상황이 

순전한 공포와 두려움이라기보다 

놀라운 안정감과 어쩌면 둥둥 떠다님(나..........많은 체험했다. .. 아내의 수술과 입원 때... 나 사고.......과정.....그때의 단단한 은혜..  지금도 너무 뚜렷하다..)의 기억들.......

 다 이해는 가지 않아도 

다 받아 들이기는 어려워도 

그럴 수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마음 가득히 채워온다. 

 

 이제.. 

그렇다면 

내게 원하시는 말씀의 뜻, 레마는 무엇이실까?

 '더 성장하는 자

하나님 말씀에 가까이 살려는 자

영적 성화에 다가가는 자들은

'공의'가 무조건의 사랑보다 낫다. 

그러기에 

너무 달콤한 감정적 용인으로 내 마음대로 살려 하기보다는

매사 하나님의 뜻가운데 두려움으로 하루를 조심하며 

주님 앞 신앙으로 

코람데오로 

오늘을 살아야 한다는 것 아니실까?

 그것.. 무겁고 두렵지만

어쩌면 무서움보다 더 큰 하나님의 공의의 사랑,

날 자랑스러워 하시는 그 은혜가 더 크게 되는 것 아닐까 싶다 

깨달아짐이 감사하다. 

 

정말 어려웠지만

정말 많은 깨달음을 주신 아침의 시간이다. 

 

 

 

 

 주님.

처음에는 아론의 자식 잃은 아픔이 가슴에 다가오려 했습니다. 

그러다가 모세와 하나님의 냉정하심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잠시 혼란과 주춤함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살아계신 하나님의 본질과는 다른 생각에 

머리를 털고

그 마져 내 생각을 빌미로 타고드는

내 자아를 흔들려는 혼돈인줄 알고

눈을 감고 하나님 무엇을 주시려시는 지요.. 하고 머리를 비웠습니다. 아.. 그러면서 깨달음이 왔습니다. 

 

성장해가는 자들.. 주님의 좁은 길에 들어선 자들에게

주님은 어린 아이 같은 무조건 오냐오냐보다는

때로는 가만히 지켜보시고 

때로는 냉정히 매를 드는 부모의 그것과 더불어 

그 어려움을 통해 

그러함에도 옳고 크신 부모의 마음은

날 사랑하셔서 그러하심이 맞으시고 

더 성장을 기대하심으로 허락되어진 것이며

실은 우리네 

겨우 이 땅에서 고착되어 삶과 죽음 , 관계 .. 안에서 바라보는 시선보다

훨씬 더 큰 상상하지 못할 크기의 하나님의 뜻은

마치 위에 긁어다 붙혀 놓은

'우주' 에서 바라다 본눈으로 바라보면

그 죽음 조차도

결국 다른 차원의 시선,영생의 눈으로 바라보면

하나님이 옳으실 것임을 

또 .. 알게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정말 제게 필요한 것.. 

하나님의 시선을

'공의'롭고 경의롭게 느끼며

오늘 제가 마주하는 모든 상황을 

하나님의 뜻가운데 헤쳐나갈 수 있길 원하나이다. 

 

주님 말씀에 있으신대로 

주변을 대하고

제 속을 청소하며

주님 하시는 것이 

그 어떤 것...

그 어떤 아픔이라도 

주님 사랑을 의심하지 않으며

더 깊이 주님을 찾는 계기가 되게 하여 주소서.

 

홀로 되지 않사오니잊지 않게 하시고 

은혜로 이끌어 주소서.

감사 감사하오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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