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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좋은 언약 & 온전한 언약[히7:20-28]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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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좋은 언약 & 온전한 언약[히7:20-28]

주하인 2019. 6. 11. 08:11

 

 

22.이와 같이 예수는 더 좋은 언약의 보증이 되셨느니라

 '더 좋은'

언약의 보증. 



28.율법은 약점을 가진 사람들을 제사장으로 세웠거니와 율법 후에 하신 맹세의 말씀은 영원히 온전하게

   되신 아들을 세우셨느니라
 '온전'하고 영원하신 예수님.


어제에 이어 '더 좋은'과 '온전'을 보게 하신다.

당연히도 약속, 영원, 보증... 은 우리에게 허락하심이시고..


이리 이해가 된다.

'더좋은' 이란 우리의 수준에 맞추어 이해할 수 있는 표현이시고

온전하심이란 그 분 예수님의 그러하신 실제.........를 우리 수준에서 최대한 표현할 방법.



 어릴 때

친구들 (얼굴들이 떠오른다.. ^^*) 과 잘난 체하며

우리가 알 최고의 숫자들을 나열하는 경쟁의 놀이를 하곤 했다.

'억'... 엄청난 큰 숫자 였다.

'조'.....숫자로 생각은 하지만 이해가 닿지 않는 수준..

'경'.. '무'.. '극'... 뭐 이런 숫자도 있다하여

누군가의 입에서 나와 아는체는 햇지만 맞는지도 모르는..


그러던 것이 나이가 들어가면서

'조 ' 단위의 국책사업(원화, 우리나라 돈 ^^;) 얘기가 솔솔나오는

1900년대 말이 되면서

그 단위의 '이권' 얘기가 나오더니

최근에 중국의 달러보유고가 3조 1000억 달러( 4천조원...^^;;) 이며

이제는 '회색코뿔소 (보이지 않는 부채)' 포함하여

몇 '경'의 부채가 중국에 있을거란 얘기가 나온다.

 그런데

경......드디어 경까지 나왔다.

(실제의 삶 속에 말이다.)

경까지 나오니 드디어 '조'는 '이해의 지경'에 들어오는 것도 같기는 하다.

이런.....

겨우

지구의 한나라에서 나오는 소리로도

우리는, 아니 나는.. 실감이 가지 않는다.

무서워지려 하고 .. 그 너무도 큼에 아득~해지려한다.

 그런데

어제도 '우주, 아니 그 중 별들'의 크기만을 비교하는 동영상을 띄웠지만

우리 은하, 갤럭시를 넘어서 그런 은하가 수조.. 그 사이사이의 공간의 아득함을

수치로 표현할 때는 '광년(光年, 빛이 도달하는 1년거리)'를 넘어

10광년의 AU단위를 써도 수억 AU..........뭐 이러 표현은 쉽게 나오니

그 어마어마함을

어찌 우리가 감내할까?

 그 를 만드신 '하나님'의 온전하심을

과연 우리가 수치로 담아낼 수 있을까?

형용사로

'온전함'이라는 표현으로

그 무한에 달하시는

하나님, 예수님의 완전하심을 어찌 표현할 수 있는가?

표현한다고 해도

이 작은 지구 속.. 사는 주하인의 '인지한계'에

'온전함' .. 의 표현 이상 어찌할까?


하나님.

그 , 모든 것을 아시는

거대하고 완전하시기가 추정 불가하신 그 분께서

이 땅에 '육신'을 입고 오신

그 이유가

이 부족한 자의 '認知의 수준'으로 내려 오셔서

하나님을 보게 하실

그 철저하시고 완전하고 온전하신 사랑의 배려가 아니신가?

그래서 ' 온전하고 귀하시고 광대하시고.... ^&*%&......이런 묘사'대신

'더 좋은' 이라 는 단어로

우리의 수준에 맞게 표현하심이시고...

그 더 좋은 언약, 더 좋은 약속을 하시는

온전하신 (난.. 그래도 이제 이리 표현하고 싶다. . ^^*) 예수님이

내게

온전한 영생, 불멸의 영생, 사랑의 영생을

실제적, 실존적으로 느끼길

권하시고 바라심으로 느껴진다.

할렐루야.

그게.. 이제

이전 '더 좋은 약속'을 마치 ' 부적' 이나 '복의 근거'로 삼는

어떤 표지 문구처럼 품고 다니는

미신적이고 '한계적'인 의미보다는

그냥..

내 안에서

이해하려는 의식과 의지를 풀어 놓고

그 온전하신 하나님이 내 안에서 역사하셔서

움직이시고 인도하는 대로

살다가

주님의 주시는 환경에

가장 기쁘게 받아진 상태로 되는

그런 내가 될 수 있길

이제는 기대하시는 것 처럼 느껴진다. ^^*


 온전하신 언약의 예수님


그 예수님을

이제는 이 삶속에 적용하고 사는 내가 되고 싶다.

그걸 바라시니 그리 되고 싶다.

어쨰도 '온전하신 약속'을 하셨으니

나도 모르게 기뻐하고 담대하게 사는 것..

아직도 '여전히'.. 날 흔드는 움직임, 현상이 있기는 하고

그 암담함이 '수천조' '수경'으로 느껴지려 해도

그보다 더 크시고 온전하시며

짐작하기 어려운

온전하신 그 분께서

그 보다 '더 좋은 약속'으로 보증을 하시니

늘 담대하고 기뻐지게 되는

그런 나.. 말이다.


감사하다.




주님.

나이가 들어가며

필요한 것들이 줄어서인지는 몰라도

내 안의 흔들거리며 요동치던 '욕심'이나 혼란들의 흔듦대신

말씀으로 하시는 '말씀의 하나님'이

조금더 명확히 느껴지는 듯합니다.


그거..

젊음이 사라져도

소망이 커짐을 대변하는 듯하여

이 아침

이 부족한 자의 의식 속에

감사한 이유로 느껴져 오려 했습니다.


주여.

더 좋은 언약.

그로 인한  더 좋은 상태..

더 좋은 변화로 이해되니

감사했습니다.


주여.

아시지만

제 삶은 늘 위태한 줄 위의 인생 같았습니다.

그래서 조그만 현상의 변화에도

참새 가슴처럼 요동치고 여러 좋지 않은 생각들로

그러면서도 한편으로

가진 '능력에 대한 헛된 자부심'.. ^^;; 으로

더 큰 좌절로 가슴이 혼돈 투성이었고요.

 그러한 제 젊음의 시절엔

말씀이 있으셔도 깊이 다가오지 못했으나

욕심이 줄어드는 나이 탓인지

아니면 그리 믿고 있지만

주님을 인식하는 매일의 삶의 노력 덕인지

이제는 훨씬 더 뚜렷이 말씀이 이해가 되고

그 말씀이 있으시면

제 감정까지 '환해지는 시간'이 단축되어감을 느낍니다.

주여.


은혜입니다.

늙어서 그리되던

주님의 보상으로 이루어진 '성장'의 결과이던

어떤 것이든

은혜입니다.

주여.

그래서 더 감사합니다.

내 주여.


이제 .. 더 좋은 언약에 대하여

가볍고 감사하고 기쁜 마음이 커집니다.

그 배려의 언어에 감사를 드립니다.

주여.

온전하신 언약을 그리 표현하시어 순화시키시니

더욱더 감사합니다.

내 주님의 그 어마어마어마하신 온전하심을

두려움으로 인지 못할 것을 아시고

이해의 영역으로 보내신

그 주님의 약속을

더욱 기뻐 깊이 받습니다.

주여.


오늘.

내일..

어쩌면 모두

이전과 차이가 없을지도 모르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의 약속으로 말미암아

오늘도 또 '밝은 기대'와 소망으로 채워갑니다.

기대됩니다.

내 주여.


강하시고 광대하시며

섬세하신 사랑의 하나님,

우리 인생들의 인지의 영역으로 낮추어 주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그 거룩하시고 사랑많으신 이름 받들어

감사하며 기도하나이다.

아멘






----------  과거 묵상


1. 2006.07.11 

그래

( 그래..하고  주님의 실에 붙들려 창공을 날아다니는 '연'이 되고 싶습니다. )

 

 

22 이와 같이 예수는 더 좋은 언약의 보증이 되셨느니라.

 더 좋은 게 무엇인가?

천국인가?

천국이 더 좋은 것이 확실하지만 이 땅을 살면서 천국만 생각하고 다 잊어질 수 있는가?

가끔은 현실이 암담하지 않을까?

암담한 게 예수님 안믿는 증거일까?

........................

 

 그게 어떠한 건지 머리 속에는 많은 생각이 떠 오르려 하지만

예수님을 믿고 나서

그 것을 앞서는 게 있다.

 

 그냥 믿음이다.

 

아침에 조금 심란한 소리를 들었다.

엊 저녁에 잠시 혼란 스러웠었다.

 

 그래도 그 분이 더 좋은 언약의 보증되셨다하니 기분이 좋다.

이론을 넘어서는 말씀의 효력을 또 체험하니 기쁘다.

 

아침에 큐티는 욥기였다.

욥2:10  우리가 하나님께 복을 받았은즉 재앙도 받지 아니하겠느뇨 

라는 구절이 눈에 들어오며

그래 맞기는 해... 그렇지만 그게 어디까지 받아들여질까?

언제까지?

 

과거의 습관을 볼 때

하루에도 수없이 '그래'와 '혹시'를 넘나들다가

넘어지길 되풀이 했었었다.

 

 그러면서 점차로 '그래'쪽 비율이 강해지면서

마음에는 평강이 찾아오는 폭이 커졌다.

 

욥기의 그 구절을 보면서

'그래

 이론적으로 이해하고 분석하고 과거의 임재하셨던 여러 상황을 조합하여

 그러니.. 재앙도 주님이 주신거니까 견딜만할 거야..'하고 나름대로 믿을 구조식을 형성하고나서  믿었던 것이었던 것이 ' 아..그냥 그분은 '선'이시니까 모든게 당연히 선해...' 하고 간단하게 믿어져야 하고

점차로 아무런 생각없이 그냥 말씀이니까, 자동적으로 , 일상에서 믿어져야 흔들림이 없을 것임이 깨달아 졌다.

 

욥은 그랬다.

아무런 생각이 없었다.

그냥 모든게 주님이 알아서... 하니 아무런 흔들림이 없는 것이다.

 

오늘 주님이  더 좋은 언약의 보증이 되시겠다고 하니 그냥 기대해도 될 듯한 마음이 슬그머니 들기 시작한다.

덜 흔들린다.

 

 

 

24 예수는 영원히 계시므로 

 예수님은 영원히 계시니....

 

 

 

25 그러므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이는 그가 항상 살아

   서 저희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그분이 나를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다고 약속하시기에...

그분은  항상 살아나를 곁에서 지켜 보신다.

그것도 그냥이 아니다.

나를 위하여 간구하시면서 곁에 계신다고 하신다.

 

 

 

 

 

적용

 

1. 그냥 믿기로 결정했다.

 

. 주님이 살아계신다.

. 나를 위하여

. 간구하신다.

. 좋은 것을 주신다.

 

 

2. 영혼 구원이 물질 축복보다 선함을 가슴 속에 받아 들이자

 가끔 도피의식이 아닌가.. 혹은 실패자의 자기 합리화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때

영혼의 성장을 위한 물질적 결핍을 진심으로 기뻐하기로 선택한다.

주님이 살아계셔서 도우실 것이다.

  일상에서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음이 어찌 흔들리는 이유가 될 수가 있다는 말인가?

 신행일체가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3. 현실은 주님께 구한다.

지혜 주시라고...

살아계신 그 분께

 

 

 

기도

 

주님

실은 부딪치는 삶의 이슈가 절 자극하여

힘들 수도 있는 상황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아침 큐티로

또 한번 아버지 처럼 말씀을 건네시는 군요.

 

더 좋은 것을 보증한다구요.

옆에서 계신다네요.

늘 살아계신다고요.

 

주님 믿겠습니다.

아무런 생각없이 그대로 믿기를 원합니다.

예전에 긴 사유의 꼬리를 잡으려고 애쓰며 이루던 평화가

이제는 그냥 습관적으로 믿어지길 원합니다.

 

욥이 그 강력한 고통의 회오리에서

그냥 믿어 버리고 아무 요동없이 견뎌 나가던 것 처럼

저도 그리 되길 원합니다.

 

그래와 혹시를 왔다갔다 하지 않고

그래.. 하고 멈추기를 원합니다.

 

결과는 어떻든

우리 주님이 가장 선하게 인도하실 것이니까요.

 

특별히 오늘 주님께서 속죄에 대하여 말씀하셨지만

저에겐 이리 말씀하여 주시니 감사합니다.

 

흔들리지 않고 주님 부르실 그날까지

늘 그렇듯

지켜 주소서.

 

그리고

걱정보다는 대처할 방법도 가르쳐 주소서.

 

예수님의이름으로 감사하며 기도합니다.

아멘

 

 

 

 

 

 

큐티를 통해, 개념적 하나님이 실제로 살아나셔 내 일상에 함께 하심을 느낀다.

-주하인 


 
  우리는 은혜 위로걷고, 은혜를 호흡하고 은혜로 살고 죽는다.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 

QT

 





2. 2010.12.17

더 좋은 약속


 

주여

저는요


주님 품에서

매일 매일 안식을 누리며

제게 허락된

이 평강의 열정

그 놀라운 비밀을


다른 이에게

알릴 수 있는 자 되길

간절히도 원합니다


주여

바램보다

더 좋은 것 주시는

내 사랑하시는 주시여


당신의

그 변하지 않으시는

언약의 온전하심에

이 아침

이리도 기뻐옵니다

사랑합니다

내 주님이시여

 

 

22.  이와 같이 예수는 더 좋은 언약의 보증이 되셨느니라 
 ' 더 좋은' 것.

무엇을 좋아했던가?

내가 일생을 살면서 무엇을 욕심냈던가?

무엇을 좋아하던가?

.......

 좋아 하는 것.

 

 

여행.(매니아는 아니지만 삶이 허락한다면 전세계를 여행하고 싶다.  

        그게 내 돈에 대한 유일한 관심이 되는 이유다. )

찬양.  언제나 가능하다.   

사진 찍는 것.

분석하여 글 쓰는 것.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 본질 깨닫기.

관심 받는 것.....

 모두 세상적 '성공'과는 그리 연관이 없는 것들이다.

공통점은 어쩌면 '탈피'로 인한 '자유'가 아닌가?

 

 더 좋은 것을 주신다.

그 분이 주실 만한 것이 '평강'이다.

위에 말하는 모든 내 좋아하는 것의 내 심리적 바탕을 보면

'고요한 기쁨'이 아닌가?

푸근한 안정.

더 좋은 것은 '평강'으로 표현되는

'평안한 기쁨'

'눈물 나올 듯한 고요한 열정'

' 지평이 넓어지는 깨달음'

' 여명이 물러가는 아침의 햇살을 보는 경탄'.....어느 것으로도 표현하기 힘든

자유로운 느낌.

잠시 들었다가 사라지는 감정의 변화에 의한 것이 아닌

실체적 현상.

 

" 더 좋은 언약"

'언약'

언약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것.

반지.

결혼.

믿음.

안정.

확신

눈물.

삶의 이유.

흰옷

순결.

예수님의 신부.

......

 

예수님의 신부라는 표현을 보면서

난 속에서 꿈틀거리는 어떤 거부 반응을 느낀다.

남자를 남자가.... 더럽다... 는 거부반응이 들면서 동성애에 대한 상기가

예수님의 그 언약으로서의 신부라는 표현이 거부된다.

그러나, 예수님이 진짜로 '남성'이던가?

성이 있으신 분인가?

너무 인간적 관점에서 하나님을 재단해가는 것은 아니던가?

오늘 '언약'이란 단어를 '연상'하며 떠오르는 단어를 클러스터링 해보다가

'예수님의 신부로서의 나'를 잠시 묵상해 보았다.

솔직히 격한 동성애 반대자로서 감정적으로 용인되지 않음을 내려 놓고

언약자, 나와 동행하는 것을 약속하는 자로서의

그 분을 연상하니 마음이 조금 숙연해진다.

 내 나이 지금.. 까지

나를 거의 '나'처럼 헷갈리게 붙들던 것들이 무엇이던가?

'사단'의 생각들 아니던가?

그 생각들은 시도 없이 내 머리 속을 밀고 들어와

내 성품을 '급'하게 만들었지 않던가?

 

 어제 무지막지하게 추운 날을 뚫고 늦은 수영을 마치고

몸을 말리고 헤어드라이기를 쓰려는 데 '학생'으로 보이는 세명이

차례로 기다리지 않고 자기들끼리 나누어 쓴다.

울컥.. 하려는 것을 '이해'하는 마음으로 한참을 기다려서는

- 이때까지는 스스로 대견했다  ^^* - 잡으려는 순간

내 한참 후에 나오신 분이 슬그머니 다가오더만 그걸 새치기 하려는 거 아닌가?

아니.. 그 분.. 목소리 조차 날카로와 하이톤의 나이 든 남자로

좀 거북스럽더니 그러신다.

다행이도 내 잡으려는 순간에 0.05초 ㅎㅎ 차이로 늦으셔서 내가 잡아서

시작은 했지만 내 속은 이미 부글거린다.

' 나이가 들었거나 어리거나 남을 배려하는 게 전혀 없다.. ' 라는 생각이 날 사로잡으니 

그들이 내 배려하는 태도를 드라이기 사용하지 않으려는 것으로 착각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잠시 날 스쳐갔음에도 짜증이 올라옴을 멈추기 어렵다.

다행이도 입 밖으로 말은 내지 않았지만 '화' 남을 멈추기가 어렵다.

한참을 보란 듯이 말렸다.

그리고는 느즈막히 퉁명스레이 내려놓고는 돌아섰다.

 

 아침이다.

눈이 심하게 많이 와서 거북이 걸음으로 차를 몰고 나왔다.

겨우 겨우 안양 시내 들어서는 데

그 느린 구석 중에도 버스 한대가 조금 빨리 추월 해나가더니

그러지 않아도 될 상황에서 거의 사선으로 두 차선을 물고는

세워 놓고 사람들을 내려 놓는다.

 눈 때문이 아니다.

그 차 때문에 미끄러질 까 조심하면서 겨우 차선을 바꾸어 나가는데

속이 상하다.

눈이 오기에 자꾸 늦어지니 빨리 빨리 가기 위해 그러는 마음은 이해가 가지만

그 자신만 생각하는 '이기심'이 밉다.

더구나 뒤에서 오는 차들이 미끄러져 부딪히기라도 하면 어쩌려구...

계속 쌍라이트를 켜고 경적음을 몇번 울려 주었다.

다음 정류장까지 무대뽀로 다른 차를 추월해 나가 또 그런다.

짜증이 가라 앉지 않으려 한다.

내려서 충고라도 해 주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이 든다.

 

 그러다가 묵상의 구절이 생각난다.

'참으로 오랫동안 '내 속'에서 나와 사단이 한 가락지를 낀 것처럼

 내 생각인양 나를 자유롭게도 조정하는 구나... ' 라는 생각.

 이제 예수님께서 날 출애굽 시키신 후

그 강력한 '첫사랑'의 경험을 허락하시고

성령으로 날 매일 동행하시는데

아직도 난 내 의지로 이전의 생각들과 손가락 걸고

그들의 나쁜 속삭임을 그대로 내것인양 받아 들이 고 있는 것이다.

 

   
  
25.  그러므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이는 그가

      항상 살아서 저희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더 좋은 언약.

성령으로 통한 예수님의 손가락 걸으시고 약속하고 언약하시는

그 좋은 평강의 영혼이 되기 위해

그 분의 말씀을 들어야 한다. 

그게 그 분을 힘입는 길이다.

'말씀'을 선택해야 한다.

이해할 수 없을 것 같은 상황도 말씀으로 붙들어야 한다.

그제야 주님의 도우심을 힘입을 수 있다.

말씀을 묵상하며

얼마나 많은 도움을 체험했던가?

상황이 전혀 그렇지 않음에도 말씀으로 얻어지는 그 놀라운 변화의 체험을 했던가?

일순간에 내면에 요동치던 폭풍이 멈추고 고요로 변하던

그 말씀의 위력에 대하여 체험을 했던가?

 

주님은 '항상 살아서' 계신다.

그 분은 내 손에 끼우셨던 그 가락지,..

내 영혼에 깨닫게 해주셨던 그 언약의 편지를 기억하길 원하신다.

내 부족한 인격이 아직도 내 속에 휘몰아치는

사단의 풍파를 착각하고 흔들릴 때

하나님은 그 때도 내 손을 놓치지 않고 기다리고 계시니 말이다.

다시 정신을 차린다.

그 분이 내 손을 잡고 있으신 내 하나님이시다.

그 분이 나와 대화하길 원하신다.

그 분의 말씀 만으로 내 '감정'을 표출하길 원하신다.

이렇게도 항상 살아계셔서 그러신다.

 그분을 힘입기를 얼마나 원하시는가?

특별히 오늘 하루

'더 좋은 것'을 주시길 원하시는

그 분의 더 좋은 것을 받아 누리는 하루가 되길 원한다.

그 더 좋은 것에 반드시 '심정적'인 안정만이 아니고

내가 받을 수 밖에 없는 '복' 중에

내 과거의 이유로,

내 안될 거라는 사단의 소리에 속아 누르고 있던

현실적 '좋은 것'도 기다려 본다.

 오늘 하루를 가슴 조이며 더 좋은 것에 대하여 기도해 보리라.

 

 언약을 묵상하자.

내 손가락에 끼워진 생명의 반지.

보증의 반지... 기억하자.

그래서 주님 말씀 만 내 영혼의 흐름으로 선택할 결심한다.

나쁜 것은 근접하지도 못하게 하리라.

 

 

 

적용

1. 더 좋은 언약의 보증'을 묵상하고 기다리자.

   무엇을 주실라나..

 오늘 하루 기대한다.

 무엇이실 까?

 

2. 항상 살아계신 예수님.

 그렇다.

 살아계심은 늘 고백하고 알고 있다.

 항상 살아계신 예수님을 오늘 하루 더욱 뚜렷이 느끼는 계기가 되길 기도한다.

 하나님이 말씀 하시는 것을 늘 생각하는 하루가 되어야 한다.

  그 분은 내 손가락에 언약의 반지를 끼우시고

 죽을 때까지 날 동행하시는 하나님이시다.

 

3. '함께 함 에 대하여 생각해 보자.

  매시간 나와 함께 해도 아무렇지 않으신 내 예수님.

  그런 예수님이 내 일생을 함께 하심이 부담보다는 기쁨일 ...

 

4. 말씀을 세장 읽겠다.

 

 5. 난 진심으로 무엇을 좋아하는 가?

 주님이 진심으로 주시고 싶으신 내 좋아하는 것은 무엇이시던가?

 그 로 인하여 난 이 남아 있는 인생에서

 어찌 주님을 위해서 살아갈 수 있는가? 

 

기도

 주님.

오늘 말씀은 참으로 좋습니다.

 언약

더 좋은 언약

더 좋은 언약의 보증.

내가 진심으로 가지고  싶어하시는 것을 주신다니요.

일단 전 '안정'을 원합니다.

그리고 '자유'를 원합니다.

또, 그로 인하여 내가 세상에 , 내 자식들에게 조금이라도 선한 영향을 미치고 가길 원합니다.

주님의 이름을 들어내면서요.

그게 어떤 것인지 뚜렷하지는 않지만

주님께서 함께 해주시기만 하신다면

항상 살아계셔서 나를 위하여 '더 좋은 것을 받고' 

주님을 힘입어 제가 더욱 나갈 수 만 있다면

어찌 가능치 않겠습니까?

주여.소망의 말씀 감사드립니다.

뚜렷함은 아니라도

주여 약속이 내게 이루어지는 것을 보길 원합니다.

예수님

기대하며 기다립니다.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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