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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매달릴 이유[마15:21-28]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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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매달릴 이유[마15:21-28]

주하인 2014. 3. 3. 12:14

 

 


22 가나안 여자 하나가 그 지경에서 나와서 소리 질러 이르되 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 딸이 흉악하게 귀신 들렸나이다 하되
 그녀는 매달렸다.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곧 알게 되지만 '절박한 믿음'의 소유자이다.

그런 그녀가 매달렸다.

 

 

23 예수는 한 말씀도 대답하지 아니하시니 제자들이 와서 청하여 말하되 그 여자가 우리 뒤에서

   소리를 지르오니 그를 보내소서 
 
그런데도 주님은 '한 말씀도 대답하지 아니하셨다'

 

 

24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 하시니
 심지어는 ' 나랑 너는 상관없다' 식으로 말씀하신다.

 

 

25 여자가 와서 예수께 절하며 이르되 주여 저를 도우소서
 그래도 그랬다.

그녀는 그랬다.

'주여 저를 도우소서'

 

 

27 여자가 이르되 주여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하니 
 매달렸다.

주님께 열정적으로 그랬다.  

어쩌면 불경할 수도 있을 어투로 ' 옳소이다마는' 이라면서

매달렸다.

 

 

28 이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하시니 그 때로부터

    그의 딸이 나으니라

 '이에'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네 믿음이 크도다'

 

 시험?

정말 단지 그것 뿐이실까?

세상에 보이시고자 하는 '흐뭇함'이 아니실런가?

자신의 '믿음'에 실망하고 있을,

오랜 신앙의 연륜에 비하여 아직도 현상은

'귀신들린 딸 가진 것 같은'

추악하고 더러운....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환경을

가지고 있어

자신이 '사마리아 여인' 같은..... 이란 '자괴감'을 가지고 있을 지 모르는

수많은 '실족'의 위험을 가진 사람들에게

무언가를 보이고 싶으신

'흐뭇한' 눈길을 가지신

하나님이신 '예수님'의 반어법이 아닐런가?

그게 그리 느껴지는가?

나야........

주하인아...

세상의 모든 '버거운 지금'의 오늘을 살고 있는 모든

예수님을 열렬히 사랑하시는

'고뇌하는 '신앙인들아...................

 

그리 느껴지는가?

 

 그렇다면 오늘도 '하나님'이 이리 말씀하신다.

"더 매달려라."

도저히 스스로 '이방인' 같이 여겨지고

가진 것이라고는

예수님을 절절히 사랑하고 나온 자로서는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

'귀신 들린 딸'을 가진 듯,버거워도

'더 매달려라'

"예수님께 더 매달려라"

 

그렇다.

그게 정답이다.

예수님이 꼭 금방 대답하실련가?

아니다.

묵묵답답하시지 않는가?

오늘?

 

이때  여인은 좌절을 맛보았을 수 있겠지만

그녀는 그것을 넘어서는 것이 있었다.

그것도 잠시다.

그녀는 '절박함' 이 컸다.

예수님 아니고는 해결할 곳이

천하 어디에도 , 이후에도 이전에도 없었을 것임을 절절히 알았고

그것에 흔들릴 이유가 전혀 없을 정도로

'믿음'이 컸다.

 단순했다.

그녀는 주위에서 나아가는 사람들을 목격했고 보았다.

귀신들이 쫓겨나가는 것을 보았다.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그래서 의심하지 않했다.

예수께서는 '자기보다 더러운' 자들을 고치심을 보았다.

그 분의 말씀에서 느꼈다.

절대로 버리지 않으실 확신이 있었다.

 왜 주님이 그녀에게 그런 말씀하시는 지 생각해볼 여지조차 없었다.

그보다 딸이 나아야할 절박함과 '믿음'이 훨씬 더 컸으니..

그녀의 무식한 입에서

세상에서 보기드문 지혜로운 소리가 나왔다.

' 그 날에 성령께서 입술을 주장하셔서 할 말을 알게 '하시는 것이

이런 일은 아닐런가?

 

오늘...

세상을 보지말고

내 머리의 의구심을 듣지말고

오직 하나님 만 바라보아야 겠다.

아니, 더 매달려야 한다.

주님이 도우심을 믿고 간구해야 한다.

 

 

주님.

아시지요?

 

주님은 아시리 압니다.

제가 진정 어려워 하는 것은

제 스스로 규정하고 한계하는 '이방인 느낌'이란 것을 요?

그래서 열심히 주님을 따라다녔지만

나의 그 부족함으로 인하여 더 매달리지 못했음을요.

아..

주님의 가만히 계심을 전 .. 제 사마리아성(性) 탓인줄 알았고

힘풀고 뒤로 앉으려 했습니다.

주여.

더 매달리라 하시네요.

힘 주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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