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담대할 수 있다(히10:26-39) 본문
제 10 장 ( Chapter 10, Hebrews )
27. 오직 무서운 마음으로 심판을 기다리는 것과 대적하는 자를 소멸할 맹렬한 불만 있으리라
28. 모세의 법을 폐한 자도 두 세 증인을 인하여 불쌍히 여김을 받지 못하고 죽었거든
진실로 무서운 것은
세상의 가난과 실패가 아니다.
왕따와 외로움도 아니다.
진실로 두려운 것은,
진실로 힘들어 해야할 것은 '하나님의 불쌍히 여기심'을 받지 못함이다.
32. 전날에 너희가 빛을 받은 후에 고난의 큰 싸움에 참은 것을 생각하라
힘들 때 어려울 때
이전, 전날에 그 주님 가까이 하려 몸부림 치며
되지 않던 영적 전쟁에 몸사리지 않고 뛰어 든것을 기억해야 한다.
그때 그 큰 고난의 싸움에서
어떻게 참아 나왔던가를 생각하라.
세상의 어려움..
무엇이 문제일런가?
34. 너희가 갇힌 자를 동정하고 너희 산업을 빼앗기는 것도 기쁘게 당한 것은 더 낫고 영구한 산업이
있는 줄 앎이라
오히려 기쁘게 생각하라.
낮아짐은 부끄러움이 아니다.
약해짐은 괴로움이 아니다.
힘이 빠짐은 몸부림 칠일이 아니다.
가난해짐은 좌절할 일도 아니다.
주위에 내 도움을 필요로 하는 자들로 넘쳐남은 '자책할' 일도 아니다.
오히려 기뻐할 일이다.
그것으로 인하여 더욱 낫고 영구한 산업이 기다린다.
'약할 때 강함'이다.
그런 소망은 세상적 원리로는 이해 불가하다.
하지만 믿는 우리는 가능하다.
말씀에 그리 써 있다.
예수님이 모범을 보이시고
성령이 그리 보이셨다.
35. 그러므로 너희 담대함을 버리지 말라 이것이 큰 상을 얻느니라
그러니 '담대함'을 버릴 일이 없다.
다시 힘을 내야 한다.
마음의 지평을 한껏 넓혀야 한다.
들숨 한번 깊게 들이 쉬고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다시 한번 자유로와야 한다.
성령이 도우신다.
36. 너희에게 인내가 필요함은 너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을 받기 위함이라
그리고는 '인내'해야 한다.
그 인내는 소망없는 세상의 그냥 견딤이 아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기한의 인내다.
주님 성령께서 도우실 약속의 인내다.
인내는 '연단'을 , 연단은 '소망'을 낳기에 그렇다.
그게 하나님의 뜻이다.
송년 모임이 잦다.
어제부터 지금까지 당직이다.
여성병원 당직.
송년 모임이 이 병원에 있음을 당직서러 와서야 알았다.
솔직히 서운하다.
미리 연락을 빈말이라도 주었으면 좋았을 것을 ...
당직이라서 당연히 가지는 못하지만 마음이라도 풍성하지 않았을까?
나이 들면 '손주'가 '할아버지 사탕 드실 래요.. '라는 소리 한번 안하고 먹는 것만 봐도 서운하다고
새벽에 수술하는 데 나보다 선배이신
병원에 몇 안되는 '오십대' 마취과 선생님이 그러심에
너털 웃음을 웃고는 말았지만..
어제 당직방에 앉아서 잠시 앉아서 기도하고 마음을 달래는 연습을 하였다.
솔직히 '말씀' 이 없었으면 서운한 마음이 내 마음의 한 부분을 할퀴어 상채기를 남겼을 지도 모른다.
세상이 '젊은이' 만을 필요로 하고 나이든 사람들은 도태된 자들로 인식되는 풍조다.
비단 난 의사라 특별히 그런게 심하지 않은 전문가 집단이기는 하지만
점차로 의사의 숫자가 많아지고 새로운 지식을 가지고 나오는
젊고 유능한 의사들이 많아지며 의사들도 점차로
사회의 그런 조류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특별히 소위 '막장과'라고 인식되어지는 몇몇과는 오래전 부터 그래왔다.
문제는 그들이 의도적이지 않은 것을 알면서도
나이든 자의 끄덕하면 '서운해 하려는 ' 이 육신과 심리적 쇠퇴 탓이리라.
그런데 돌이켜 생각하면 이것은 '심리적 연단'의 한 도구일 수 있다.
젊은 시절.
특별히 육신의 힘이 넘치는 시절.
의사라는 대우 받던 시절에, 더구나 불신자의 신분으로
온갖 '영적 죄악'들이 당연시 내 영혼에 죄가 아닌 것으로 체득되어 나서,
38살이라는 늦은 나이에 하나님의 영으로 강하게 사로잡혀
예수님을 영접한 후에 내속의 때가 모두 벗겨나가기에
얼마나 많은 어려움이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기에 지금의 알지 모르는 '외로움'으로 인한 서운함은
교만을 깍아내고 내 지혜를 의지하고 내 육신의 힘을 의지하던
그 죄의 찌거기를 하나하나 벗겨 나가시는 과정인지도 모른다.
너무도 좋아하는
' 예수 그리스도을 위하여.. 약한 것.. 곤란한 것.. 괴로운 것... 기뻐하라. 약할 때 강함이다' 라는
말씀이 얼마나 정확하게 날 위안하고 잡으시는 지 모른다.
하지만, 내 강력한 죄악이 그 말씀 마져 흔들려 할 때
오늘 처럼 아침 부터 확실히 말씀으로 잡으신다.
' 너.
주하인아.
빛을 받은 자야.
그것을 명심하라.
너는 빛을 받은 자 맞지 않던가?'
맞다.
예수님의 빛.
그 강렬한 사랑의 빛을 받아 하나님 나라를 직통으로 경험케 하시고
그 빛을 내 영에 뿌림 주신 자 아니던가?
지난 고난의 시간 동안 얼마나 연단 가운데 '위안'을 받았던가?
얼마나 평강의 샬롬 소리를 외치며 감동하며 살았던가?
기억하자.
다시 일어나자.
그리고는 다시 말씀하신다.
' 담대하라.
인내하라. '
당연히도 그 말씀은 세상의 뜬금없는 '그래 네가 참아야지 어쩌겠니.. '라는 뉘앙스랑은 전혀 다르다.
나에겐 말씀이 있다.
그 말씀은 당연히도 살아계시다.
그러기에 난 인내하고 담대할 이유가 있는 것이다.
당연히도 담대해져야 한다.
'약한 것을 기뻐해야 하고
곤란한 것을 기뻐해야하고
궁핍을 기뻐해야할 이유가 있는 것이다'
그것이 예수님을 위하는 것이고
그것이 강해지는 내가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그런 날,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하여 사랑하게 되고
그 사랑으로 난 풍성한 인격의 향기를 발하게 되며
어떤 상황에도 '심령천국'의 삶을 누리게 되는 것이다.
그게 사람들이 '겸손'하다는 성품으로 표현되게 될 것이다.
할렐루야다.
하나님의 말씀이 계심이 난 너무 행복하다.
그런 내가 됨이 너무 귀하다.
감사하다.
이제 곧 근무를 마치고 예산에 내려간다.
휴가를 냈다.
아버지 생신이다.
잠시 다녀 와서 그 분들...
내 사랑과 갈등의 대상이신 그 분들을 예수님의 사랑으로 녹여 들이고 와야지.
담대함으로 그들을 품어야지.
적용
1. 감사하자.
약해짐을 감사한다.
서운해지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다.
감사하자.
모두 내 문제다.
2. 기뻐하자.
난 말씀이 있다.
말씀으로 난 자유롭다.
3. 성경 세장 읽겠다.
말씀은 생명이다.
4. 아버지 뵙고 최대한 호의로 대접해 드려야지.
내 모든 현재의 이유 중 큰 부분을 차지하시는 분.
그런 그 분을 위해 온전히 기뻐해드리고 와야지.
5. 담대하자.
모든 사람을 사랑으로 보자.
담대하자.
오늘 주님의 말씀이시다.
기도
사랑하시는 주님.
사랑하는 주님
우리 주님의 덕에 많은 자유를 누립니다.
감사합니다.
제 부족으로 인하여
드는 세월로 인하여
주님께 더욱 더 의지할 수 밖에 없음이 오히려 감사합니다.
늘 제편이시고
시시 때때로 정확하게 말씀으로 인도하시는
살아계신 하나님.
오늘은 특별히 담대하라 말씀하십니다.
이전에 빛을 받은 자로 그 고난의 시간동안 인내하면서 얻었던
싸움에서의 승리를 기억하라 하십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의 말씀은 모두 살아계십니다.
주님 뜻대로 하겠습니다.
더욱 인내하고 담대하겠습니다.
걱정과 근심과
미움과 교만과
서운함과 안타까움을 내려놓겠습니다.
주님 뜻이기에 그렇습니다.
성령이시여 도우소서.
주님 성령님이시여 ... 함께하시사
제 부족한 부분 채우시고
말만하고 따르지 못하는 행실을 인도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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