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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그만 얽매이자 (히12:1-13 ) 본문

신약 QT

이제 그만 얽매이자 (히12:1-13 )

주하인 2010. 12. 28. 09:13

제 12 장 ( Chapter 12, Hebrews )

 

그래

눈아 내려라

 

그래

비야 쏟아져라

 

그래

바람아 불거라

 

그래도

있는 이 곳은

따스하고

내 가는 그 길은

안전 하리라

 

1.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며 
  죄가 무서운 것은

자꾸만 '얽매이려 한다'는 것이다.

빨리 벗어 버리고 자유로운 영혼이 되길 원하는 나에게

왜그리도 꽁꽁 묶어 들어 힘들게 하는지..

때로는 죄가 나인지 내가 짓는 것이 헷갈릴 때가 있다.

그래서 회개를 하지 못하고 푹 쳐저 있는 경우가 다반사다.

몸에 힘을 내기 힘들 때도 있다.

 

 죄가 진실로 무서운 것은

하나님의 평강,

하나님의 진리에 더 가까이 가는 것을 막는 것이다.

그것은 지옥같은 삶을 의미하는 것이다. 


 
3.  너희가 피곤하여 낙심치 않기 위하여 죄인들의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자를 생각하   
8.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참 아들이 아니니라 
  생각하라.

생각 .. 중요하다.

 

 이 고난이 내 죄로 인한 것이던가?

하나님이 허락하신 연단이던가?

죄로 인한 것이 맞다면 견뎌야 하는 것인가?

기도로 물리쳐야 하는 것인가?

과거의 상처에 의하여 내가 책임져야 할 부분이던가?

그렇다면 죄책감에 시달리기 보다는 회개하고 잊어 버리고

치유 기도를 해야할 부분 아니던가?

 

모든게 지혜가 필요하다.

생각해야 한다.

어차피 이 세상의 삶의 이유가 '하나님 나라 가는 연단 과정'임이 맞다면

주님 뜻에 맞게 나가야 한다.

그래서 생각해야 한다.

 

그런데 그 생각의 기준은 ' 예수님'이다.

세상엔 혼돈 뿐이다.

그럴 듯한 논리에 휘둘리지 않음은 모본이 되신 예수님을 생각함 뿐이다.

그분이 보이신 행동을 모방해야 하고

그 분이 생각하신 틀 대로 생각해야 하고

그 분이 풍기시는 인품대로 내 포지션을 잡아야 한다

그래서 생각해야 한다.

 

 징계.

이제 '죄'에 의한 징계와

상처에 따른 연단의 의미와

성장을 위한 고난의 의미를 정확히 알아야 한다.

그 모든 것을 주님의 참으신 인내로 받아 들여야 한다.

 

  
12.  그러므로 피곤한 손과 연약한 무릎을 일으켜 세우고  
13.  너희 발을 위하여 곧은 길을 만들어 저는 다리로 하여금 어그러지지 않고 고침을 받게 하라
 너무 힘이 들 때

이 구절이 많은 위로가 되었었다.

넘어져 일어나기도 힘이 들때,

깊은 좌절과 자책이 나를 힘겹게 할 때..

'그러므로'...

'그래 이유가 있음을 안다.

 그러므로..힘내라'

'피곤한 손과 연약한 무릎'

어찌나 이리도 절묘히 내 증상을 단 몇마디 말로 표현하시는가?

어깨가 결리고 팔다리에 힘이 쭉 빠져 일어나기도 싫었었다.

그럴 때 ' 네손이 피곤하구나.. 네 발이 연약하구나... '

'그래 저는 다리가진 분들 같이 네가 스스로 그리 생각되는 지  안다.

 그래도 힘내라.

 내가 고치리라... ...' 하시는 위로의 말씀.

공감의 말씀.

그래서 이 구절이 많이 힘이 되었었었다.

이제는 조금 다른 느낌이지만...........................................

 

 

 아침에 일어나니 온 산하가 다 하얗다.

길거리에 눈이 소복이 쌓였다.

내 사는 ' 시흥'은 서해안 바닷바람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습기가 많아서

안양보다 훨씬 많은 눈과 짙은 안개가 자주 낀다.

오늘 아침이 그렇다.

하얀 눈을 보면서도 그리 마음이 뛰지 않는 것을 보니

내 나이 많이 들긴 들었나 보다.

출근 길이 걱정이지만 그래도 '군의관 시절'

깊숙한 태백산중 '사북'에서 지냈던 나 아니던가?

겁은 나지는 않지만 막힐까봐 걱정이다.

 다행이도 생각보다는 그리 많이 막히지 않는다.

출근하면서 묵상을 되뇌이었다.

 

'피곤한 손' '연약한 무릎'

하나님이신 예수님의 인내.

 

그래.

약속을 받은 우리고 그 것을 믿지만

주님이신 예수님도 인내가 필요하신 게 맞다.

징계라 표현된 고난도 받으셨다.

그래도 '힘듦'을 꼭 피해야 할 것으로 만 받지 않아도 될 것임을 생각하니

막연히 견딜 만하다는 생각이든다.

 

그러다가 생각에 사로잡힌다.

얼른 머리를 털려 하지만 운전하면서 하나님 말씀에만 고정시키는 게 너무 힘들다.

 내 의지와 상관없는 생각들이 날 사로잡는다.

 그 하나.... '괜한 오해' 로 인하여 서운해짐.

선을 베풀려 하는데 나에게 너무 값싸게 대한다는 생각..

어.. 아닌데 하면서도 계속 .....

 다른 하나.

어제 모임에 '약속의 말씀을 믿음'으로 확실한 승리를 했다.

난..

타고나길 권력이나 성공과는 거리가 먼 이상주의자로 살지만

나이가 들면서 '소외'의 감성을 이기는데는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고

말씀은 그 부분에서 나에게 성공을 가져오고 있다.

자유로와 지고 있지만

아침에는 갑자기 '한 분'이 머리 속에 떠오르면서

그 분의 어이없는 '잘난 체'가 미워지려 한다.

 어..

이것도 아닌데..

말씀의 원리도 아니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 아닌데.. 하면서도

운전하며 집중하기 혼란 스러운 머리 속에 빙빙 돈다.

  그리고 또 혼란한 생각을 뚫고 들어오는 것은

작년에 비하여 비교적 줄어든 '환우 분'들이다.

그리고 내년에 새로운 산부인과 과장이 오시는 것에 대한 염려가 겹치려 한다.

 '걱정' 이다.

 

참 ...가지가지다.

어제의 말씀에 '난 약속을 받은 자임을 믿는다'라는 것을 묵상하지 않았더라면

아침의 출근길이 원하지 않는 사단의 횡포에

괜히 녹지 않는 눈길 보다 더 위험하고 질척거리는 기분이 들뻔했다.

 

 진료실에 무사히 들어와 자리에 앉아 잠시 묵상을 하고

들여다 보니 집에서 보이지 않던 말씀 구절이 눈에 들어온다.

'얽매이기 쉬운 죄'

저 처럼.. 굵게.. .

그렇다.

또 하나님이 나에게 주시는 말씀이다.

늘 그러시다.

주님이 보이시고 싶으신 부분이다.

 

죄는 얽매이게 한다.

감정에 얽매이게 하고

감상에 상처입힌다.

그러다 보면 주님의 말씀이 멀리 보이고 회복의 시간을 너무너무 느리게 하고

마음은 멍해지고 삶에 대한 걱정으로 어깨는 무거워진다.

'지옥'의 삶이 지속되는 것이다.

예수님 영접하고 말씀으로 난 얼마나 많이 날아갈 것 같았는가?

 그런데 ' 징계'에 대하여 예수님이 계속 몸소 당하시고

인내하심에 대하여 나온다.

 

 그렇다.

그게 원인이 무엇이든

'하나님의 허락하신 연단'의 과정으로 받으면 된다.

'죄' 탓이든...

' 상처 ' 탓이든...

' 허락하신 예정된 어려움'이든..

이제 그게 무슨 문제이던가?

난 하나님의 약속을 받은 자다.

예수님이 당연히 그러신 것처럼 하나님 계신 천국의 백성으로 예정 받은 자가 나고

내 인생이 당연히 하나님의 성령으로 인도 받을 것이 분명하여

'성공'할 자인데

'예수님' 조차도 어려우심을 견디시고 인내하실 수 밖에 없었음은

그리 두려워하거나 '죄책감'으로 고민하기 보다는

그냥 '받아들이고 ' 십자가 앞에 내려 놓으며 고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래야 한다.

 

' 날 곡해 시키는 죄'는 주님께 일러야 한다.

' 비교' 하여 오해하게 만들려는 사단은 주님께 도움을 청해야 한다.

' 걱정'거리는 주님이 지금까지 그렇듯 잘 인도하셔서 다시 잘 될 것으로 믿어야 한다.

' 새로운 변화'에 대하여서는 주님 생각함으로 잘 하려 결심하면 된다.

그리고 생기는 모든 감정적 어려움 들은

그냥 '예수님도 받으신 고난'으로 이해하면 된다.

감사한 하루다.

또 얽힘을 풀어주시려 이처럼 체험시키시는 하루다.

 

 

 

적용

1. 모든 고난 .... 주님 허락하신 것이다.

 그냥 받아 들인다.

 주님 영광위해 선하게 이용될 것이다.

 그냥 말씀 앞에만 서 있는다.

 

2. 말씀 앞에 현재 서 있다.

 그게 중요하다.

 이전 것은 다 갔다.

 주님 말씀 앞에 서 있는 한 난 자유롭다.

 

3. 죄의 얽매임으로 부터 벗어나자

 자꾸만 밀려오는 죄의 유혹으로 부터 자유로움은

말씀을 묵상하고 늘 기도함 밖에 없다.

 

4. 연약해 지기 전에 힘내자.

 피곤해지기 전에 정신 차리자.

 모든 것 주님 앞에 미리 미리 고하면 된다.

 그리고 고난은 누구든 받는 것임을 인정하면 된다.

 

5. 겁 날것 무엇인가?

 주님이 내 곁에 계시는 데..

 창피할 것 무엇인가?

 주님도 받으신 망신이신 것을...

 주님 영광 위해 모든 것 받아 들이면 된다.

 

6. 말씀 세장 읽겠다.

 말씀 만이 내 삶의 이유와 원인과 방법이다.

 말씀은 살아계시다.

 

7. 트럼펫 교실에 간다.

 교회에서 한다.

 폭설 아니면 간다.

 내 년에는 주님 영광위해 온전히 배워 보리라.

 

8. 조금 더 겸손하리라.

 교만이 죄를 가져온다.

 내 선택을 겸손에 두리라.

 욕심은 교만과 상통한다.

 

 

 

기도

 주님

감사합니다.

정신을 조금만 놓으면

이 죄는 어찌 그리 내 생각과는 상관없이 파고드는 지요.

말씀을 묵상하던 그 시간에도 틈을 주니 여지없이 죄는 밀려듭니다.

그리고는 저를 사슬로 칭칭 동여매어

염려와 걱정

비교와 미움

욕심과 냉정함의 틀 안에 가두려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는 숨도 쉬지 못하게 가두려 합니다.

그 안에서 그들이 원하는 대로 날 잡아 가두려 합니다.

 

 예수님.

주님도 고난을 받으셨음을 가슴 깊이 이해하지 못할 때는

저런 아픔이 모두 떨구어 내야만 하는 아픔인 줄만 알았습니다 .

그러나 주님 말씀 앞에서

주님의 십자가로 인하여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

그냥 인식하고 내려 놓고

올 수 있는 모든 어려운 마음을

마땅히 받아야할 하나님의 허락하신 고난으로 받아들이려니

훨씬 마음이 편합니다.

영혼이 조금은 숨통이 트이려 합니다.

괜한 죄책감도

어지러운 생각들도 잠잠해지고

오직 주님 만의 평강이 지금은 절 사로잡습니다.

감사합니다.

주님.

고난이 주님의 뜻이시면 굳이 벗어나려 애쓰지는 않겠습니다.

현실이 그렇다면 그렇게 받아 들이겠습니다.

변화할 것은 내 속이지

외부 환경이 우선은 아닌 것을 깨달아 갑니다.

귀하신 주여.

오늘도 주님 영광위해 살 수 있도록 절 도우시고

죄로 부터 얽매이지 않도록

말씀으로 절 붙드소서 .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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