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그 은밀함은 본질의 외로움이었다[단2:24-30] 본문
어느새 또
가을이 벌써 이리도 깊이 다가왔다
이 어느새가
벌써 수십년을 되풀이 했음에도
덜컥하고 놀라게 하기는
어찌그리도 여전하던가
그 수없이 많은 시간들을
변화 없이
여전히
또 똑같이 흘려보내며
죽여보낸 시간들이
그리도 많았단 말이다.
아 ..
어찌 해야한단 말인가
다행이 주께서 그러신다.
오직 은밀한것을 드러내는 것은
하늘에 게신 하나님 뿐이시라고
할렐루야다
난 그래도 말씀을 붙들고 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하루를 시작하고 있다
곧
더 크고 놀라운 인도하심으로
더 밝은 길로 인도하시리라
은밀한 것들의 이유를
밝히 보여주실것이다
그러고 보니
가을이 깊이 익어가는구나
참으로 아름답다
살아계신 우리 주님의 손길이
참으로 놀랍고 감사하다
할렐루야
27 다니엘이 왕 앞에 대답하여 이르되 왕이 물으신 바 은밀한 것은
지혜자나 술객이나 박수나 점쟁이가 능히 왕께 보일 수 없으되
세상에 누가 있어
'은밀한 것'
인간의 깊은 내면을 다 밝혀 풀어낼 수 있을까?
술객이나 박수나 점쟁이가?
능력자가?
.....
세상에 없느니 지혜있는자가 하나도 없다고 하셨다.
믿을 것은
세상이 아니다.
28 오직 은밀한 것을 나타내실 이는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시라
그가 느부갓네살 왕에게 후일에 될 일을 알게 하셨나이다
왕의 꿈 곧 왕이 침상에서 머리 속으로 받은 환상은 이러하니이다
믿을 분은
'오직' 하나님 뿐이시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오직'
'은밀한 것을 나타내실 이'는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시라는 구절이
힘있게 다가온다.
당연하지 않던가?
당연한 것을 당연하게
이제야 새삼 느끼게 되는 것은 ^^;
이 미련한 자의 누추한 믿음이 문제며
이 망각덩어리 주하인의 너무도 게으르고 나태함이 문제라는 이야기다.
어렵고 고난이 있을 때는
그처럼 하나님께 매달리다
조금만 은혜를 입어 마음이 평안해지고 기뻐지면
어느새 하나님을 잊고 마음대로 살다가
내 속의 그 은밀한 습성,
그토록 오랫동안 날 두렵게 하던
이제는 반드시 마주해야할 실체에 도달하게 되면
얼른 '망각'과 '억압'의 기제로 묶어서 도피하려한다.
그러나 그게
마음대로 되던가?
주님 앞에 갈 날이 이제 얼마나 남았는가?
곧 마주할 그날에
내 이 어이없는 '두려움'..
그 두려움의 실체가 '외로움'이었음을
이 아주 아름다운 가을 S강변에서
몸부림치며 ^^; (아.. 정확히는 집중하려 몸부림치며 )기도한 덕에
그나마 눈치 채게 되었다.
30 내게 이 은밀한 것을 나타내심은 내 지혜가 모든 사람보다 낫기
때문이 아니라 오직 그 해석을 왕에게 알려서 왕이 마음으로
생각하던 것을 왕에게 알려 주려 하심이니이다
그것을 어제와 오늘에 걸쳐서
'은밀한 것들'
NIV에서는 'mystery' , 미스터리라 표현했다.
그렇다.
그 오랫동안 마주하려 했던 것의 정체가
드디어 '외로움'이었음을
다시한번 상기해냈다는 것이다.
외로움.
누구나 외로울 수있다.
일시적으로 ..
하지만 그게 심상이 될 정도면 '고독'이다.
외로움의 독.
그런데
외로움이 가장 깊은 인생의 '독'....
반드시 '홀로가야하는 인생의 끝'에 있는
절체절명의 이유이며
그것을 느끼지 않기위해
그리도 허덕이며 '관계'에 매몰되고
단 한순간이라도 홀로 있으면 마주할것 같은 그 두려움에 벗어나기 위하여
'꾹꾹 눌러' 의식의 깊은 곳에 눌러 놓고 있지만
결국.. 누구나 다.. 나이들어, 병들어
아무도 찾아오지 않고
찾아갈 수 없는 시기가 되면
백이면 백.. 모두 다 똑같은 모습으로
나머지의 시간 들을 '고독'에 매몰되다 죽어간다.
부자든 가난한 자든
권세자든 아니든
학식이 넘치는 자든 무식한 자든.........말이다.
그게.. 인생이다.
느브갓네살은 안그랬는가?
가진 것이 클수록 두려움도 크다.
그러나 그는 버려진 자다.
그래서 저리 몸부림을 친다.
권세있는 무지한 불신자의 대명사의 무지한 행동의 전형 ㅜ.ㅜ;.
'스캇 솔즈 목사님은
'아름다운 사람은 저절로 만들어지지 않는다'에 이리 쓰셨다
인생은 고통스럽고, 그렇게 살다가 죽는다.
이것이 우주와 우리 인간에 관한 여과되지 않은 진실이다.
아무도 이 현실에서 벗어날 수 없다.
모든 것이 수증기 같다. 모든 것이 새어 나가고 있다.
죄의 삯은 사망이다.
전도서 기자가 모든 것이 헛되다고 말할 때 사용한 히브리어는 사실 ‘수증기’를 의미한다. 삶의 좋은 것들을 움켜쥐는 것은 한 움큼의 수증기를 움켜쥐는 것과도 비슷하다. 수증기를 손안에 붙잡아 두려고 아무리 애를 써도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간다. 마찬가지로, 삶 역시 매일 우리에게서 빠져나간다. 해변의 모래성처럼 우리에게 소중한 모든 것과 모든 사람이 결국 쓸려 간다. 우리는 방금 숨을 내쉬면서 마지막 숨을 내쉴 날을 향해 한 걸음 더 나아갔다. 우리가 가장 최근 한 입맞춤, 가장 최근에 받은 급여, 가장 최근에 잔 낮잠, 가장 최근에 간 축제, 가장 최근에 본 책과 영화와 드라마, 가장 최근에 들은 음악, 가장 최근에 한 공원 산책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삶은 실로 경이롭다.
동시에 삶은 애처로울 만큼 덧없다.
그의 '두려움'은
그의 은밀한 두려움은
그냥 다니엘과 이스라엘 백성과 믿는 우리들을 위한 매개체로
쓰여지다 버려질 뿐이지만
다니엘 들은 다르다.
'오직 하나님'께서
'은밀한 일'을 마주하게 하심으로
'겸손'과 '오직 하나님'을 고백하는 도구가 되게 하신다.
그렇다.
주님은 '외로움'마져
고난과 고통과 두려움마져 들어쓰셔서
우리를 선한 곳으로 인도하신다.
할 일이 있다.
두렵고 무섭고 외로운 일이 있어도
그것..
하나님 앞에 가져가면 유익이 된다.
아..
아니다.
그 마져 허락하신 것은 '하나님이 우리의 유익'을 위함이시다.
너무도 당연한 이러함..
이러함을 일상에서 마주하고
일생 고민하게 허락하심은
그 마져,
그 누구나의 본질적 숙명이라 포기하고 휘둘릴 것 같은
그 외로움의 독마져
오직 하나님으로 인하여
밝히 밝혀져
더 선한 일로 쓰임 받는 다는 것이다.
그것을 알고있었지만
이제
영혼 깊숙이 넣어두어지기를
주께서 바라심이시다.
할렐루야..
오늘은 원주의 S강변에 캠핑을 나왔습니다.
가을 이 휘황하게도 주변을 바꾸었습니다.
지난 여름... 온세상을 뒤엎은 기후와 재난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여지없이 아름다운 가을 색으로
이 금수강산 ,
아.. 정말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이 아름다운 국토에
가을 빛이 완연하였습니다.
웬일인지 그토록 어렵던 어넥스 피칭까지
그리 어렵지 않게 자리잡은 이 가을 강변은
'노지 캠핑'을 기뻐하고 즐기는 저에게
축복이었습니다
지난 2주 열심히 일하고
드디어는 반근무하는 금요일 근무를 마치고 부리나케 달려온 이곳은
모든 조건들이 맞는 곳이었습니다.
힘써 이틀을 거할 거처를 마련하고는
풍성한 여유로움과 더불어 잘 지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새벽부터 '영하 6도까지 '떨어지는 기온으로 인하여
준비해온 동계 캠핑 장비에도 불구하고
추웠습니다.
갑자기 마음이 안좋아졌습니다.
익숙하던 두려움과 허전함이 범벅이 되어 몰려오려 했습니다.
새벽... 몇차례나 깨우던 '꿈'과 속상함의 정체는
그토록 오랫동안 누르고 눌러 왔으며
주님의 은혜 가운데 피하며 마주 하기 어려워 햇던
감정의 정체였던 것 같습니다.
'외로움'이었습니다.
깊은 외로움.
살아오면서 내내 그랬고
주님 안에서 많은 해결을 받았고
자주도 주님 품안의 평안으로 위안이 되었으나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그 '은밀한 미스터리' 말입니다.
솔캠의 여유로움이 비례하여 커지는 그러함의 혼란...
정체를 알 수 없는 '은밀한 것'들에 더 크게 마주하게 된 것 같습니다.
루프탑 위에서 '강변'을 내려다 보면서
추운 텐트 안에서
외로움의 추움이 더 커짐을 알았고
그것 ..
주님이 기뻐하시지 않을 것..
그대로 가지고 또 눌러 놓고 억압하려면
주님께서 기뻐하시지 않는
믿는 자나 믿지 않는 자나 반드시 거쳐가야 할
어이없는 노후,
죽여가는 노인들의 사망냄새 나는 매일이 되어 버리다가
주님 앞에 얼굴 들기 힘들것 같은
그러함을 '불현듯' 깨달았습니다.
그러면서
말씀을 통하여
당연하지만
꼭 필요할 때 필요한 말씀으로
레마로 인도하시는 하나님께서
그 것을 가지고 '하나님 나라'에 가지고 올수 없으니
두렵지만 더 마주 하고와야함을
다시 확인 받는 것 같았습니다.
주여..
그리고 말씀으로 다시금 확인하게 하셨습니다.
두려워하지 마라.
주하인아.
오직 하나님께 아뢰면
주께서 그 은밀한 일을
너 혼자.
네 인생들이 홀로는 도저히 이겨낼 수 없는
그 사망의 두려움,
사망의 가시...
그 외로움을
깊이 마주하고 해결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마져 주님의 뜻 안에서 허락되어진 것이고
해결책인 '오직 주님'이 계시니
흔들리지 말거라... 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두렵지 않아졌습니다.
그러면서
이 그냥 늙어가는 매일이 아닌
그 은밀한 일들을 더 깊이 마주하며 깨달아가는 매일을 살아가는
그것이 내 나머지 삶의 의미인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주님께서 그러시는 것 같았습니다.
나이들어가면서도
할 일이 남고
의미를 찾고
깨달음을 가져가는 자는
절대 늙는게 아니다.
그것.. 발전이고 생명이다.. 라고요.
그러한 자에게는 '외로움'은
단지
하나님 안에서 깨닫고 깨우치고
그러함으로 주변에 선한 영향을 끼치게 될 도구일 뿐이라고...요.
감사합니다.
주여
점차 더 깨달아짐이 많아지고
영혼에 점점 더 깊숙이 내려가 자리 잡아 지는 것 같습니다.
주여.
온전한 성화가 이루어질 그날까지
저.. 더 붙들어 주소서.
나머지의 캠핑 시간...
여유로운 시간들을 즐기다 가렵니다.
주안에서요.
나머지...
제가 가지지 못했던 것..
그러함으로 그렇게나 깊이 눌러두며 마주하기 어려워했던 거..
다 하나하나 풀어서 해결케 하소서.
선한 하나님이시여.
귀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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