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다 마침내(신8:15-16) 본문
그때
그리 허락하셨음은
돌아보니
모두 다
하나님의 뜻이셨음을
나 이제야
마침내
확신하게 되었다
저 멀리
내 갈 곳 확실히 보이고
그리 어렵던
외로움의 어두움과
해지는 석양의 불안이
이제는
아름다움과 든든함으로 느껴지니
그게 모두
날 위해
눈물 머금고 허락되어진
하나님의 사랑 탓이셨음을
나 이제
고백할 수 있게되었다
15. 너를 인도하여 그 광대하고 위험한 광야 곧 불뱀과 전갈이 있고 물이 없는 건조한 땅을 지나게
하셨으며 또 너를 위하여 단단한 반석에서 물을 내셨으며
이제는 확실히 압니다.
주님.
주님이 ' 나를 인도하심'을 요.
그래서 내 일생이
이제는 무의미가 아닌 의미로 차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주여.
그러함에도
내 인생 앞에 펼쳐진 그 불안한 메마름의 '광야'는
예상만 해도 크고 광대하고 막막해서
때로는 가슴이 답답하기도 합니다.
그러함은
주님 내 인생이 너무도 힘들었었음입니다.
살아오는 내내
불뱀의 물림 같은 아픔을 정말 많이도 겪었습니다.
전갈이 쏘는 듯한 견디기 힘든 찌릿함은
왜이리 도 많았는 지요?
아무도 없어 손내밀자 없는 메마르고 건조한 듯함은
세상에 지옥이 있다면
이런 것이 지옥이었을 듯한 그런 아픔들이었습니다.
주님.
인도하심을 알면서도
그러함을 느낌은
그 자체가 또 한번 제 심령에
너무도 큰 부담이라서
이 남아있는 수십년의
예상되는 제 여명의 나날이
크고 긴 사막의 기간으로 느껴졌던것은 아니었는지요?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살아계심을 아는 것하고
알면서도 제 현실과 가슴에 다가오는
그 차이는
저로하여금 '살아계신다면......' 이란
진정 불신앙의 의문을 가지게 함이
너무도 큰 쏨과 아픔이었습니다.
아.....
이러한 찔림과 아픔과 메마름과 갈등과
불신앙에 대한 두려움을
얼마나 더 겪어야
이 길고 긴 인생을 마무리 할 수 있을까 하는게
저에겐 진정 힘듦이었습니다.
그러나 참 다행임은
아직도 이렇게 디디고 서서
하나님의 감사하심
살아계신 하나님이 주시는
그 평강의 은혜를 찬양하고
말씀 앞에 고개를 끄덕일 수 있음입니다.
주님
그렇습니다.
제가 아무리 '쏘임'과 '찔림'과 '메마름'과 '광대함의 두려움'과
제 영의 어림으로 인한 '갈등'으로 인하여
수도 없이 흔들리고 당황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단단한 반석'으로
내 발디딜 곳을
또 마련해주시고 또 마련해 주시사
이제는
발밑이 어느새 이전과는 다른
조금은 든든한 디딤돌로 느껴진다는 사실이
감사하고 또 감사합니다.
16.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광야에서 네게 먹이셨나니 이는 다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마침내 네게 복을 주려 하심이었느니라리
태에서 부터 만드시고 받으시고
드디어 제 인생에 격정적인
예수 보혈의 구원을 체험케 하시고
걸어 왔던
그 힘든 사막의 여정을 둘러 둘러
여기까지 왔습니다.
지난 거룩한 주일을 마치고
또 평안한 한 주를 시작하며
주님의 말씀을 붙들면서
이 시간 이자리에 왔습니다.
아.
그렇습니다.
이전의 수없는 많은 '부정적 상상'에도 불구하고
저, 여기까지 올때까지
우리 주님은 날 먹이시고 또 입히셨습니다.
그렇습니다.
그 먹이심은 '늘 ' 제 갈증어린 바램과는 다른 듯 하셨지만
지금 생각하니
참 배 든든한 만족함이 느껴졌습니다.
출근길이었습니다.
아침에 앞에 가는 Genesis차량을 보면서
내 저차가 부럽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그런 부러움을 실행으로 옮겨
괜한 세상의 부담으로 날 엮지 않아 얻어지는
이런 영적 평안함과 자유로움이 기쁘게 느껴졌습니다.
그랬습니다.
세상의 원리에 따라
의사라면이라는 허물로 날 엮지 않으시면서
내 욕심의 배가 적당히 채워짐은
바로 '만나'로 제 영혼이 배불러지었음을 깨닫습니다.
깨달으니 감사합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이 더욱 감사함임을 깨달아지니
진정 더 감사합니다.
그게 '영혼의 만나'임을 슬그머니나마 알아지고
머리가 끄덕여지고
행복으로 다가오니
그 만나의 배부름이 얼마나 감사한지요?
저의 발, 확실히 단단한 반석에 밟아지고 있음이 맞는 듯합니다.
주여..
그 만나를 네게 먹이셨다는 말씀이 더욱 가슴에 옵니다.
그렇습니다.
주여.
어느 하나도 제 뜻과 제 의로 된 것이 없습니다.
제 특성을 가지고
그 오랜 기간 연단을 허락하심 탓임을
조금은 깨달아 갑니다.
하나님을 믿음은 '피동의 은총'임을 깨달으니
더더욱 저 같은 의지 박약한 자의 허락받은 적격 은총이니 말입니다.
이런 인생의 허락받은 고난.
구원 받았음에도 지날 수 밖에 없는 고난이
모두 예수님의 '고난'에 동참하게 하심을 앎에도 불구하고
주님...
이 나약한 인간은 그래도 한번씩은
의혹에 빠지려 함을 다시한번 고백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아시어서
이렇듯 지나온 시간의 과정을 되풀이 음미하게 하시고
( 이는 다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마침내 네게 복을 주려 하심이었느니라리 )
'이는 다'라는 말씀으로 제 부정적 나약 심령에 도장을 찍으십니다.
예.
다시한번 귀를 기울이고
제 심령에 각인 시키기 위하여
마음을 집중합니다.
'나를 낮추시기' 위하여
'나를 시험하기 위하여' 이러신다십니다.
예.
지나온 어려움 중의 그 말씀은 알았음에도 불구하고
깊이 가슴에 오지 않았지만
조금은 평온한 새 아침에 다시금 레마로 받아지는
하나님의 말씀은 사실로 느껴집니다.
참 어이없는 부족한 인지력이지만
이렇듯 질타치 않으시고 또 되풀이 하시사
드디어 제 심령에
하나님이 날 낮추시는
절 겸손케 하시는 그 과정이 지나온 광야의 시간의 의미임을
가슴에 집어 넣고 있습니다.
그래서 감사합니다.
주여.
의미가 되고 이유가 생겼습니다.
주님이 날 겸손케 하시는 게
제 인생의 삶의 큰 목적 중 하나님을 다시금 '레마'로 받아
앞으로 남아 있는 인생과정을 붙들고 나가며
넘어지려 할 때 '성령'하나님께 이리 간구하겠습니다.
"주여, 도와주세요.
저 또 교만하려 하나봅니다.
겸손이 제게 바라시는 이 모든 원인임을 깨닫게 하사
조금 더 낮추게 하시고
이 고난을 의미로 지나게 하소서.
제게 평안을 주시고 감사함을 주소서.
그리하여
주님 예비하신 그 크고 놀라운 '복'을
저에게 '마침내 ' 주소서.
그 때를 전 기다리고 간구합니다. '라 기도할 제목이 생기고
참고 인내할 목표가 생기었습니다.
어서 마침내가 되게 하소서.
주님.
복을 주신다 하셨습니다.
마침내 복을 주신다 하셧습니다.
물질도 주시고
관계의 회복도 주시고
주님이 예비하신 통합적 축복을 주소서.
겸손과 말씀 중에 주신 모든 하나님의 뜻이
제 진정한 바램이 되게 하소서.
어느 것이라도 하나님이 원하시는 '겸손'을 해치지 않는
진정한 복을 허락하소서.
풍요도 빈곤도 자족할 줄 아는
주님이 진정 이뻐하시는 제 영혼이 어서 되게 하시사
풍요도 받고
부족함 가운데서도 주님의 뜻으로 기뻐할 수 있는
진정한 '자유'를 허락하소서.
간절히도 빕니다.
내 주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받들어
저를 인도하시는
그 하나님의 뜻을
제 영혼 깊숙이 받아들이며
감사하고 믿고 또 믿으며 기도합니다.
아멘
깨달아감..)
1. 내 가끔의 잔존하는 불안감은 '겸손'하지 못함이다.
반석에 발딛지 못함은 아직도 온전히 겸손하지 못해 허락된
광야의 무서운 증상일 뿐이다.
2. 무서움과 외로움과 광막함 등은 몸부림 칠 것은 아니다.
그것을 통하여 '겸손'을 위한 허락된 고통일 뿐이다.
오히려 겸허히 감사해야 한다.
3. 조금 있으면 '축복'이 넘치리라.
온전히 겸손이 되는 것 만이 그 기간을 단축시킨다.
4. 하나님은 모든 것을 다 아신다.
내 광야의 고난을 다 아신다.
알지만 믿지 못함은 과거로 족하다.
이제는 '믿음'의 훈련시간이다.
5. 감사하자.
무슨일에도 감사하자.
주님께 영광 돌리자.
6.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말씀으로 영혼이 배부름을 보게 하심이
가장 큰 축복이다.
어떤 것도 하나님의 뜻임을 알게 됨이 가장 큰 축복이다.
겸손하게 됨이 가장 축복이다.
7. 겸손은 자기 비하가 아니다.
남이 나보다 낫고
나는 남보다 조금 덜 한 것으로 인식함이라신다.
믿고 기뻐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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