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다윗에게 주님은(삼하22:1-13) 본문
2 가로되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를 건지시는 자시요
3
나의 하나님이시요 나의 피할 바위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
나의 높은 망대시요 나의 피난처시요 나의 구원자시라 나를 흉악에서 구원하셨도다
블레셋 군사에게 겨우 3.4kg(삼백세겔)짜리 칼에 죽을 운명에 처해 있었다..
천하의 다윗이....
그 다윗이 ... 그 천하의 다윗이.. 그 순간 무엇을 느꼈을까?
만일 나같으면 ....................................
아무것도 안 느꼈을 것이다.
왜냐구?
창피하니까?
두려워하는 사실이 두려우니까?
왜냐구?
그걸 인정하는게 더 두려우니까...
천하의 내가...
나이가 들어서..
겨우...
블레셋 따위의.. .
그것도....
이름없는 군졸한테..
천하의 다윗인 내가...
장비의 큰 칼도 아니고 ..
겨우 3.4kg 짜리 군도에의해... 비참하게........
그것을 인정함은 모든 것의 좌절을 의미하기 때문에 의식 깊이 묻어 버리었을 것이다.
그러나..
다윗은 달랐다.
역시 다윗이다.
그의 고백을 들어 보자 .(5-12절)
" 죽음의 군대가 나를 에워 쌌다.
이제는 날
파괴하려는 거부할 수 없는 물결이 날 짓누르고 있었다.
지옥으로 부터 나오는 줄이 나를 꽁꽁 묶은 것 같았다.
그리고는 한발 한발
나에게 죽음이 다가 오고 있었다.
난 할게 없었다.
그냥 외쳤다.
"하나님 살려 주세요"
그러자 바로 그때
정말 다행으로 주님이 하늘에서 내 말을 들으셨다.
그 손길이 나타날 때 난 마치 땅이 진동하고 흔들리는 것 같이 느껴졌다.
그 손길이
얼마나 엄청난 전율인지...
코에서 연기가 나고 입에서 불이 나는 것 같았다.
그분은 바람날개를 타고 나타나셨다.
구름으로 장막을 두르고 주위를 불사르는 빛을
동반하고 ..."
정말 그랬나?
실은 아비새, 그의 장수가 구해준 것이다.
그런데..
다윗은 어찌 이렇게 느꼈단 말인가?
그는 육신의 힘이 모두 빠진 상태에서 죽음의 위기에 빠졌다.
그때 그는 가장 깊은 절망에 빠졌다.
그 절망은 범인이 가질 수 있는 절망 보다 몇배는 컸던 것이었다.
그게 순간 엄청난 무서운 환상을 가져왔던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 짧은 순간에 조차 하나님을 놓치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평범한 믿음이라면 백지처럼 머리 속이 하얘지고 멍할 수 밖에
없는 그런 상황에서 조차 아주 절실히 주님을 불렀다.
그러자 주님께서는 아비새의 몸을 빌려서 다윗에게 나타나신 것이다.
다윗은 아비새를 보았지만..
그 뒤에 있는 하나님의 현신을
본 것이다.
그래서 그는 앞서 고백한 내 입장의 멍함과는 다른 ...
솔직한 고백을 감동을 담아서 하고 있는 것이다.
보자..
하나님에 대한 감사함과 .. .
그 순간의 환상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 그의 감정을 들여다 보자.
"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를 건지시는 자시요.........
나의 하나님이시요.............
나의 피할 바위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 ......
나의 높은 망대시요...........
나의 피난처시요 ..............
나의 구원자시라............... (10~~~~번~~이나... !!!)
나를 흉악에서 구원하셨도다 (2-3절)"
이게 단순한 칭송인듯 처럼 느껴지는가?
그는 Ecstasy를 맛본 상태처럼 한 말 또하고 또 되풀이하고...한다.
마리화나 피운 사람처럼...
다윗을 보면서 항상 느끼는 것이다.
그의 감정은 평범치 않다.
사람의 눈으로 보면 이해할 수가 없다.
죽음에서 벗어난 평범한 노인이..
다행이긴 하지만 ..
어찌 저리도 주님을 황홀해할 수가 있는가?
늙고 힘없음이
정말 비속어로 "쪽'팔릴 상황에서.........
그러나...
그는 다른 사람과는 다른 눈을 가지고 있었다.
어떤 상황에서도 ..
주님을 누린다.
그 주님은 그를 만나 주신다.
황홀하게 현신하신다.
그의 육신의 쪼그라듬은 그의 영광이 끝남을 의미하지 않았다.
최소한 그에게는..
그는 육신이 쪼그라 가는 대신..
더 큰 주님의 기쁨을 약속 받은 것이다.
그래서 오늘 저렇게도 황홀하고 강렬한 고백을 하고 있는 것이다.
기도)
주님은 기쁨입니다.
주님은 열정입니다.
주님은 사랑입니다.
주님은 힘입니다.
주님은 반석이십니다.
주님은
요새이십니다.
주님은 모든 가능성입니다.
주님은 생명의 근원입니다.
주님은...
이 아침
다윗과 하나가 되어 한번 고백해봤습니다.
이 고백이 늘 제 고백이 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내 구원이신하나님을 수시로 기뻐하라-십자가의
요한
------------
'구약 QT' 카테고리의 다른 글
풀위를 스치는 바람(삼하23:1-12) (0) | 2005.11.19 |
---|---|
커피한잔 하고 다시 가자(삼하22:29-51) (0) | 2005.11.18 |
인생의 후반전을 맞이하여(삼하21:10-22) (0) | 2005.11.15 |
완전한 기쁨(삼하19:31-43) (0) | 2005.11.11 |
포근한 주님의 음성(삼하19:16- 30) (0) | 2005.11.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