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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 QT

다른 관점(행7:1-7:16)

주하인 2005. 7. 30. 21:50

 

1 대제사장이 가로되 이것이 사실이냐

2 스데반이 가로되 ~아브라함이 하란에 있기 전 메소보다미아에 있을 때에 영광의 하나님이 그에게 보여 

 

5 그러나 여기서 발붙일 만큼도 유업을 주지 아니하시고 다만 이 땅을 아직 자식도 없는 저와 저의 씨에게 소유로 주신다고 약속하셨으며

  

 1. 묵상

 

대제사장 일파가 ’이것이 사실이냐~’고 무섭게 질타한다.

그들은 눈에 보이는 사실 만을 믿으려 애쓴다.

자신들이 쌓아 올린 기득의 성에만 안주하려고 애쓴다.

이 말은 ’자기 확신’이 흔들릴 위험에 대비한 자기 확인용이자... 그 확신을 흔들 위험 있는 자의 말에 제재를 걸기 위한 엄포용일 뿐이다.

 

 

 스데반이 ’천사의 얼굴’을 하고 - 어제 묵상 했다... !! - 대 제사장 일파 앞에서 당당히 말을 이어간다.

 논리의 정연함. .. 힘이 있는 달변...

단순한 자기 확신에서 우러나온 교만함은 보이지 않고 뭔가 달관하여 깨달은 자의 ’여유’가 느껴진다.

 

 그의 웅변에서 나오는 내용은 이렇다.

 

’ 아브라함은 눈에 보이는 땅한 조각없었지만 주님의 약속에 의거하고 고향을 떠났고 그 후의 삶은  ’고통’의 연속이었다.     그럼에도 대를 이은 언약의 자손들은 말씀을 지켰고 결과적으로 예수님의 상징인 요셉을 통하여 형제와  일흔 다섯명의 식구를 구원하게 되었다.’

 

 하나님의 뜻은 ’선’을 이루심이다.

그 뜻을 준행함은 고통일 수 있다.  

고통 중에서 가장 큰 고통은 ’시간’과의 싸움일 수 있다.

 

믿음과 시간이 지남에 따라 오는 의혹...과의 싸움.

주님이 보시고자 하는 것은 버리는 용기와 믿음을 유지하는 인내와 정결함..

 

약속을 믿고 나가면 결국은 ’선’이다.

 

 

 세상의 사실 만을 보는 기득권 제사장의 눈

 고통을 통하여서라도 선을 이루시고자 하는 주님....

 주님과 같은 시선으로 바라보는 스데반의 눈

 

어느 눈을 선택할지는 너무도 명백하지 않은가?

 

 

 2. 적용

 

 하나님은 선이시다... 순종이 최고의 미덕이다...  너무도 귀한 주님의 뜻을 알면서도 살다보면 자꾸만 흔들린다.

 

 예수님 공생애 내내 기적 체험을 하던 제자들이 순간적으로 배반하는 모습처럼...

 

오늘 스데반의 입술을 통하여  영광의 주님이 유업하나 주지 않고 약속하신 이유에 대해 알만하다.

 

주님은 약속은 받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고난과 환란 속에서 생길 의혹과 혼란에 대해서 위로하시고자 하는 것이다.

 

 결국은 ’선’이다.

 

스데반 처럼 눈을 들어 주님을 보라.

 

눈 앞의 것을 보지 말고 멀리 보라.

 

주님은 나에 대한 확실한 프로그램 - Happy Ending-을 가지고 계신 것이시다.

 

사실이냐..를 묻는 머리 속의 의혹에 가볍게 흔들리기 보다는 ..... 우리의 삶은 결국은 Happy ending 이고 천국을 향해 나가는 것이며, 그 과정에서 생기는 갈등과 혼란이 주님이 주신  평안과 평강을 맛보게 하시기 위한 도구임을 인식하고 기뻐해야 한다는 것이다.

 

 빌 4:4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고후 4:17  우리의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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