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기쁨과 고통(행5:29-5:42) 본문
1) 능욕이나 고통이 올 때
기뻐하라
2) 기뻐할 이유
예수님의 이름을 위하여 합당한 자로 여기심 받을 것이기에(41)
3) 어떤 고통이 기쁜가?
. 예수님을 위한 고통 ( 가르치기와 전도하기 등 시행 시오는 고통 )
. 일상에서 어떤 일이든 예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할 때 혹시 비웃음이 있으면 이것도 기뻐해야 할 고통이다.
(골 3:23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
4) 진짜로 고난이 주님을 위해 기뻐할 것으로 느껴지는 자들의 모습
. 사람을 의식하지 않고 당당하게 된다.
. 하나님을 순종하게 된다(29)
. 쉬지 않고 가르치기와 전도하게 된다(42)
. 사도들이 기뻐하면서 공회 앞을 떠난다고 나온 것처럼 자신감과 의욕이 넘친다. 항상 행복하다 (41)
2. 느낌
아침에 나오면서 집사람이 돈에 대한 답답한 심사를 퉁명스럽게 얘기했다.
괜히 가슴이 답답해 지려 한다.
이것도 고통이라면 고통인데..........
어찌 난 기뻐하지 못하는가?
고난이 기뻐할 것임은 분명한데....혹시 내 고난은 너무 세속적이라서 주님이 안기뻐하실 것일 것임이기에 고통으로 느끼는가?
그렇다면 고난을 기쁨과 고통으로 구분하여 반응해야 하나?
전도나 예수님 이름 증거하다가 핍박 받는 것은 당연이 으쓱거려야 하지만.......
만일 이렇다면 이 구분하는데 에너지가 얼마나 소모가 되는가?
어딘지 모르지만 고난을 기뻐하는데도 갈등이 생긴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침에 큐티 집을 펼쳐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주님은 답답한 가슴을 아시고 또한번 도전할 기회를 주셨다.
고난을 기뻐하는 제자들의 모습을 보면서 나와는 다른 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약간은 답답하다.
이들처럼 순전히 ’주님’만 을 위해서 살며 주님 재림만 기대하면서 공동체 생활하면 이처럼 당당해지기는 쉬울 텐데........라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주님이 세상 기독교인에게 바라시는 것이 일률적인 순교자, 전도자, 수도자가 아닐 바...... 그렇다면 일상에서 고난을 기뻐하기 위해서는 내가 겪고 있는 주님 일-가르치기, 전도...- 이 아닌 곳에서의 고난도 기뻐하라는 이야기가 아닌가?.. 라는 의문은 너무도 당연하다.
’모든 일을 주님께 하듯... ’ 하는 삶.
고객을 보고 웃어주는 것도 주님을 위해서 하는 것이다.
고민이 몰려 올 때... 주님이 허락하신 고난이고 웃기를 바라시는 것이 그 분의 뜻이다.
주님 생각하기 전혀 어려운 현실적 상황에서 ’주님’을 생각함으로 단지 한번 웃어주는 것.
이웃을 ’예수님’의 또다른 모습으로 생각하는 것.
애꿎은 고통이 주님이 허락하신 것이라는 성경의 구절을 생각해 내고는 그냥 아무 거룩하지 않은 고통에서 그냥 한번 씨~익 웃어보는것...........
뻔히 손해보는 줄 알면서도 형제의 우애를 위해서... 십자가의 고통을 한번 묵상하며 참는것.
오늘 아침 처럼 현실적 고민과 답답함이 중년의 영혼을 향해 무겁게 다가올 때........주님께서 내 영혼의 성장을 위해 예비하신 연단도구이구나....라 인식하며 기뻐할 때...
세상의 모든 고통에서 주님이 허락하신 상황임을 인식하는 것.......그리함으로 가슴 한구석에서 아련히.....간질 거리는 느낌이 솟아오른 후 이것이 확연한 기쁨으로 내 영혼을 사로잡은 후 ’주님의 기뻐하시는 모습’까지도 그려진다면..................................
이것은 기쁨이 확실하다.
’고난이 기쁨이다.’라는 대명제가 들어 맞는다.
고난이 기쁨임을 인식하면.........기쁨을 선택하게 된다.
주님은 우리의 좋은 선택을 기다리신다.
오늘 큐티를 통하여 사도들이 담담하고 힘있게 공회 앞을 떠나는 발걸음의 힘참을 보았다.
그리고 약속이나 한듯이 제사장 일파의 말을 ’깡그리 무시’하고 ㅎㅎ... 오히려 ’쉬지않고’ 하나님의 일 즉, ’가르치기와 전도(42)’하는 모습을 보고 있다.
이것은 ’사람을 의식하지 않고’ ’하나님을 순종(29)’하는 자의 당당한 모습이며 그 안에서 넘치는 기쁨과 그에 의한 자기도 모르는 행동을 하게 됨을 보게 된다.
이들은 ’고난’이 ’기쁨’이었음을 체득적으로 알고 있는 자들이었고 아니나 다를까 ... ’고난’이 오자 또 한번 힘이 나서 자연스럽게 쉬지도 않고 증거하는 자의 모습을 보이게 되는 것이다.
3. 적용
. 고난이 오면 기뻐하자
. 고난을 주시는 것은 사랑을 주시는 것임을 묵상하자
. 전도하자. 1명이상
'신약 QT'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정체성(행4:13-4:22) (0) | 2005.07.30 |
---|---|
공의와 사랑 (행4:36-5:11) (0) | 2005.07.30 |
파(분열)행6:1-6:15) (0) | 2005.07.30 |
다른 관점(행7:1-7:16) (0) | 2005.07.30 |
시공의 만남 (행7:17-7:34) (0) | 2005.07.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