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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 QT

시공의 만남 (행7:17-7:34)

주하인 2005. 7. 30. 21:44
시공의 만남

1. 묵상

 

 어려서 부터 자라온 환경 탓인가? 
난 안정하지를 못했다.  
아마도 잘해주다가도 쉽게 표변하는  아버지  탓이었을 듯싶다.

지금은 거의 평정된 상태이지만...
예수님 믿고나서도 오래토록 가슴 깊숙히 불안감이 자리 잡았었다.

 

무슨일만 터져도 ’덜컥~’
평안도 불안했었다 .


마치 ’새임금’이 들어와 정권 바꾸어 이스라엘의 적대세력으로 바뀐 불행처럼........

 

주님은 그래도 오늘도 아니나 다를까.......................당신의 프로그램 안에 예정된 출애굽...을 위해 이런 불안을 조성하시었다.

 

그분은 바둑의 이창호보다 더 묘수를 써서 이 난국을 타개할 준비하고 계시었다.

 

이런 것이다.

 

모든 것은 주님의 손아래 있다 .

 

현재 즉, 점은 답답해도 ’긴 직선’으로 보면 다 ’善’이다.


 일상의 내 모습인 애굽 백성과는 달리 앞으로 될 내 성화의 과정의 예표인 모세는 이랬다.

40살 다되어서 예수님 영접했다.

기쁘게 의욕적으로 주님의 일 하고 싶었다.

그러다 .. 일상의 함정에서 넘어지면서 하루하루 지나가며 서서히 나태해지고 게을러 졌다. (미디안 광야)

 

일상의 나태함...................

 

 모세가 드넓고 황량한 미디언 광야를 양을 몰고 습관적으로 지나다니는 장면이 연상이 된다.

건조한 바람........멀리 보이는 하늘에 드문 드문 걸려 있는 구름 구름...
강렬한 햇빛.
가끔씩 들려오는 양들의 메에.. 메에.. 울음소리.
황토빛 짙은 광야 멀리에 듬성 듬성 나 있는 떨기나무 들...............

 

그길을 모세는 처음에는 끓어오르는 다양한 기분을 가지고 왔다 갔다 했을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에 대한 정의감,  그들에 의한 배신감,  자신의 가벼운 처신에 대한 후회, 현재의 모습에 대한 좌절감.......그리고 자신의 가슴 깊숙이 스며나오는 인지하지 못할 정도의 ’선택 받은 자로 서의 의무’............이 뒤섞여 끓었을 것이다.

 

그러나...

 

황량한 사막에서 끝없는 시간과의 싸움에서.....서서히 지쳐가고 있었다.

아마 넋을 놓고 살게 되었을 것이다.


처음 얼마는 아마도 지나가다 발에 걸리는 떨기나무 그루를 찼을 수도 있고... 갑자기 하늘 쳐다 보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던 것이.....서서히.....떨어진 나무가지나 한번 ’툭~’하고 차게 되다가..나중에는 넋 빠진 모습으로 터덕 터덕 지나다녔을 것이다.


 이제 아무런 희망도 없다.
절망도 없다.
그냥 답답함 만이 있을 뿐이다.
왕자로서의 자존감도 잊어버린지 오래다.
미디언 족속으로 낮아진 것에 대한 좌절감도 희미해졌다.
백성에 대한 배신감도 잊은 지 오래다.

그냥................백지장 같이 ........멍해져서.....왔다갔다 할 뿐이다.

 

 ( 주님은 이 비우는 과정을 통하여 완전히 비워 졌을 때에야 이제 역사하기 시작하시는 것이다. )


그러다.............

 

드디어 때가 되었다.

 

그날 아침도 다른 때와 다름없이 반쯤은 감긴 눈으로 의욕없이 노인 모세는 일어났다.
하지만... 아침 공기는 여느 때와는 묘하게 달랐다.

설명하기는 힘들지만 코끝이 상쾌한 것 같았고 나름대로 영혼에 힘이 솟는 것 같았다.

시야는 훨씬 선명하고 잘보였다.

두리번 두리번 무엇인가 모르지만 그는 찾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떨기 나무에 불이 붙어 있음을 보았다.

그리고는 그는 주님을 만났고..........
그때까지도 전혀 그는 희망은 없는 상태였다.

그러나...  이제...그에게도 그에게 이끌림 받을 백성에게도 거대한 역사가 시작된 것이다.

 

하나님의 프로그램안에서 약속된 두 시공이 이제 곧 만나게 될 것이다.


 2. 적용

 

1) 불안함 조차도 주님이 쓰신다.   기대하자.
2) 현실은 암담해도 길게 보면 반드시 ’선’이다.
3) 주님의 역사는 인간의 눈으로는 예측할 수가 없다.
  전혀 관계 없을 듯한 두 시공이 만나는 순간.. 주님의 역사가 시작이 된다.
4) 주님이 쓰시기 위해서는 나의 자아를 버릴 만한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다.
5) 그 시간은 여러가지 형태로 나온다.
. 어려움, 불안
. 좌절
. 인내
. 자신을 비움
. 하나님의 부르심
6) 주님은 예기치 못한 시간에 나타나신다.
 항상 주님께 촛점을 맞추고 살아야 한다.
7) 부르실 때 ’신’을벗을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변명과 타성은 필요없다.
8) 하찮게 느껴지는 ’나’를 통해서 이스라엘의 역사가 바뀔수도 있다.
 주님 안에서 좌절할 이유가 전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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