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흘려 보내는 왜곡들을 위하여[눅9:51-62] 본문
51.예수께서 승천하실 기약이 차가매 예루살렘을 향하여 올라가기로 굳게 결심하시고
'굳게 결심하'신다시는 말씀이 눈에 들어온다 .
무엇을 , 왜, 무엇 위하여......다.
예루살렘에 올라가시기를 굳게 결심하심은
그 후에 펼쳐질 십자가 고난을 아시기 때문이신
'육화(肉化) ' 하신 '成肉身' 예수님이시기 때문이 아니신가?
육신을 가지고 인간의 마음을 아시고 지니신 (죄성은 없지만.. .) 분이시기에
그 두려움에 마주하시기 위하여는
'굳게 결심하'심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당연하지만... 하나님으로서의 예수님이시라면 그럴 이유가 없으시지만
그것.. '십자가'를 위하여 이땅에 오신 '성육신' 하나님이신
인자 , 인간 예수님의 본질이 아니시기에 그렇다.
아.. 주여.
감사합니다.
다시 '굳게 결심하셨'음의 기본 감성은
'두려움'이 가장 크셨을 것이다.
누구도 함께 할 수 없는 인간 예수님의 절절한 두려움.
하나님께서 원하시고, 허락하신 두려움 ..
거기에 '한시라도 눈을 뜨고 있을 수 없더냐' 제자들에게 안타까운 , 가벼운 질책의 하소연 하실 만큼
절절한 '외로움'......
그러하심이 '굳게 결심하'시었다는 표현에 느껴져 온다. ㅠ.ㅠ;
53.예수께서 예루살렘을 향하여 가시기 때문에 그들이 받아들이지 아니 하는지라
54.제자 야고보와 요한이 이를 보고 이르되 주여 우리가 불을 명하여 하늘로부터 내려 저들을
멸하라 하기를 원하시나이까
그런데
제자들은 아니다.
아직은 ^^;;;
그들은 그들을 거부하는
'사마리아' , 낮게 여기는 그들에게서 '거부'를 당하고는
올라오는 '속상함' 내지 '분노' 가 있었다.
거기에 '예수님의 능력',
그 대단하신 예수님을 따라다니는 자로서의 교만함으로
'불을 명하여~~' 라 한다.
예수님과 너무도 다르다...
같은 상황에서
완전히 다른.... ㅠ.ㅠ
즉, 아직은 제자... 사도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하지 못한
세상에 발을 담그고 사는 자들이기에..
55.예수께서 돌아보시며 꾸짖으시고
56.함께 다른 마을로 가시니라
예수께서는
돌아보시며 꾸짖으시고는
다른 마을로 돌아가셨다.
어찌 예수님께는
저들 , 제자들의 익숙한 (나와... ㅠ.ㅠ;) 그런 흐름의 마음이 없으시고
자연스레이 피해가셨을까?
분노 대신 자애로운 피함
흐르듯 비껴가심... 말이시다.
그것.
당연히도
주님은
주님의 뜻이 다르시기 때문이다.
아..
그러고 보니 어제 묵상에서
전혀 뜬금없으신 예수님의 제자들에 대한 반응을 보았던 게 연결되는 듯 느껴진다.
마치 그게 당연하다는 듯
세상에서 너무도 자연스레이 보는
아니.. 내 안에서도 '의분 義憤' 이라 생각되며 밀려오던
그런 것들이
오늘 제자들의 저 '유치한 ' 생각들로 인하여
그리 '표현하고 싶은 '것 뿐이지
옳은 , 제대로 된 감정의 흐름은 아닐 것임을 깨달았다 .
그리고 그 옳지 않은 생각의 흐름으로 인한
옳지 않은 분노나 화의 표현은
제자들 처럼
괜한 우월감과 거기에 따르지 않는 배신감의 증폭된 판단..
자격되지 않은 자의 과도한 힘....등이 바탕이 되지 않았던가?
그러함에도 주님 예수님은
58.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집이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도다 하시고
오히려 그의 깊은 외로움과 마주할 뿐
타인에 대한 분노나 거친 화 .. 를
전혀 발하실 느낌이 없다 .
아..
그 분의 그러하신 고뇌는
인간 예수의 그러함에 진정 가슴 아프지만
그 분이 그러하실 수 있음은
위에 기록한 대로
그 분이 '하나님의 뜻'을 순종하여
십자가를 지시는
그러한 사명을 아시기에
인간들끼리의 왜곡된 '죄성'... 들의 부딪침 등으로 인한
'분노'나 '화'의 이유에
흔들릴 일이 없기에 그러함이시다.
62.예수께서 이르시되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하지 아니하니라
하시니라
그렇다.
진정 이 세상의 헛된 감정의 왜곡
그 중에서 분노를 멀리하기 위해서는
'하나님 나라에 합당'한 집중이 문제다.
내가 누구인지..
무엇 때문에 여기 서 있는지
내게 허락되어진 게 무엇인지
더 깊이 알면
세상의 헛된 흔듦과 도전은
어느새 고통과 분노의 이유가 되기 보다는
거목을 스쳐가는
한 줄기 바람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오늘
예수님을 뵙고
제자들을 비교하며
강하게 드는 깨달음이다.
감사하다.
주님 감사합니다.
절 다 아시는 주님.
저의 제자들과 비슷한 심사의 움직임
그로 인하여 있지도 않은 권세를 휘두르고 싶어하는
내면적 휘둘림과
그로 인한 저도 모르는 부대낌들이
말씀을 통하여 비교되고 밝히 드러나게 됩니다.
주여.
제 안의 분노.
그리고 실체가 뚜렷지 않지만
외로움을 가장한 깊은 연민
또한 그를 이유로 더 크게 움직이려는
내 안의 왜곡을
오늘 말씀 통해 다시 한번 바라봅니다.
주여.
부족한 것은
개념입니다.
내가 왜 이 땅에 사는 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 지
내가 누군지.......입니다.
주님.
예수님께서
그렇게 간곡하게 말씀하셨듯
비록
이 삶이 인자가 머리둘 곳 없이 외롭고 힘들다 심처럼 고난이지만
그 고난은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허락되어진 것이며
현재 내게 주어진 그 어떤 것도
실은 '하나님의 원하시는 십자가 지고 따르게 하기 위하신 ' 것임을
인정하고 바라보면
괜한 왜곡과 괜한 어두움 , 괜한 무거움과 갈등으로 부터
멀어질 수 있음을 깨닫습니다
주여.
그들을 향한 분노는
그제야 아무 의미가 없어지고
제 시선은 높은 곳에 위치하게 되어
세상의 그러함들,
지금 내 주변의 또 그러함들은 모두
의미를 잃은
지나가며 스치는 한점 바람에 지나지 않게 됨을
깨달아 알게 되었습니다.
주여.
바라옵기는
홀로 되지 않는 그러한 모든 깨달음들을
기억나게 하시고 집중하게 하시옵소서.
주여.
힘을 주소서.
눈을 들어 하늘을 바라보게 하시고
주변에 달려드는 모든 헛된 생각들의 꼬임들을
스쳐 흘러가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
거룩하신 주의 이름들어 간절히 빕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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