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빈들에,빈들에서 & 빈들에 서서[눅3:1-14] 본문
부제) 내 영혼의 빈들에서 하나님의 임재로 가득 채워지다
빈들에 내가 서 있다
가치있을 것이 하나도 없는 빈들
관계의 빈들
그토록 추구해왔던 것들의 되돌이의 빈들
빈들
빈들에
내 가 서 있다
하지만
말씀이 있으시다
오늘 말씀을 통해
말씀으로 임하신다
빈들에 서 있는 내게
빈들에 서 있는 진실을 알게 하시고
이 빈들에서
서 있게 하신 그 원래의 이유
그 진실
그 진리를
오늘 묵상하게 하신다
하나님의 말씀으로만
이 인생의 빈들
이 허무의 빈들
이 무의미가 될 수 밖에 없는
빈 영혼을 가득채우셔
빈들이 빈들이 아님
빈들이 성령으로 가득채워짐
그를 목도하고 깨닫고 체험하길
기다리라 신다
빈들에 서 있는 내게
빈들에서
하나님의 영광으로
1 디베료 황제가 통치한 지 열다섯 해 곧 본디오 빌라도가 유대의 총독으로, 헤롯이 갈릴리의 분봉 왕으로, 그 동생 빌립이 이두래와 드라고닛 지방의 분봉 왕으로, 루사니아가 아빌레네의 분봉 왕으로,
2 안나스와 가야바가 대제사장으로 있을 때에 하나님의 말씀이 빈 들에서 사가랴의 아들 요한에게 임한지라
황제, 총독, 분봉왕, 동생 , 분봉왕, 분봉왕, 대제사장... 으로 있을 때...
'빈들에' 있는 나.
재판정에 눈을 꼭감고 앉아있는
윤ㅅㄹ씨의 얼굴이 마귀 같다.
온통 아집과 적개심 욕심 불안 초조로
자신의 안위만으로 세상을 정쟁과 투쟁으로만 이끌어 간다 .
황제, 대통령으로서의 권위와 권세를 놓치지 않기 위하여
온통 매달려 있다.
그에겐
나라나
자신을 키워준 부모의 영향이나
주변은
단 한톨도 들어갈 '빈구석'이 없는 것 같다.
온통 '사단의 생각'으로만 가득찬 거 같아
보기에 괴롭다.
나라가 괴롭고
주변이 괴롭고
나도 괴롭다. ㅠ.ㅠ
그러나 그러한 그들을 볼 때에
추하다는 생각이 아주 많이 들고
대부분 하나님의 모르는 인생들의 끝이
저들의 모습일 것이란 생각이 들어
한편 경멸하고픈 마음이 들면서도
내 마음 한구석, 아주 작은 곳에서이지만
그들의 그 화려함이 일견 부럽기도 하다 .
그 끝은 너무도 확실히 알지만
아직은 바글거리는 그 화려한 이력과 힘의 충돌에 대하여
어쩌면 내 반발심은
부러움,
내가 갖지 못한 힘에 대한 반대적 현상일 수 있다.
그런데 오늘
'빈들'을 말씀하신다.
나.
'빈들에 있다'
실제다.
육신 나이의 빈들을 향해서 가고 있고
관계의 빈들.
많은 빈들..
실제로 아주 많은 부분 주님의 은혜를 인하여 내려 놓았기에
가능하기도 하였지만
난.. 실제의 빈들에 있고
내 영혼의 일부분에서는 아니라고 아니고 싶다고
반발하고 있는
실제의 빈들을 향해 가고 있음이 맞다.
그것을
말씀을 근거로
인정한다. ㅠ.ㅠ
그러나
'빈들에서'라 하신다 .
끝에 '서' 자 하나 붙었지만 뜻은 완전히 다르다.
빈들에... 는 위의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좌절내지 속상한 것이지만
'빈들에서'는
빈들에 놓인 후 가져지는 ,
얻어지는 그 어떠함을 기대하게 하지 않는가?
'빈들에서' 무엇을 했단 말인가?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신'거다 .
경이로운 '하나님 나라의 에너지'가
이 작은 '인간'의 영혼에
성령으로 이어지신 거다.
그렇다.
빈들에 나가
빈들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기다리니
빈들에서 요한님은 하나님을 만난 거다 .
빈들에 나가야
빈들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게 되는 거다.
그렇다면
내 '빈들'은 무엇인가?
나.
일상에서 ''빈들에 '' 있다.
정말 빈들이다.
아무도 없다.
아무도 날...
아무도 내게 관심이 있게 하지를 못한다.
온전한 빈들이 되어간다.
그런데 정말 나는 '빈들에 '있는 거 맞는가?
고백했지만
난.. 화려한 저들,
황제,총독, 분봉왕, 대제사장,
대통령, 변호사,국회의원 ...............
힘이 넘치고 권력이 이글거리는 저들의 이름을 들어가며
난.. 속상해 하고 있다.
그게 빈들인가?
그렇다면 빈들이 나에게는 어떠한 의미인가?
'혼자 빈들에 있어도'
고요한 마음의 빈들이 되는 것.
초연
그러함은 그 빈들에
하나님의 말씀이 가득채워지는 거다.
하나님의 임재로 내 영혼의 빈들에 충만한 상태..
그것이
'오늘 말씀하시는 내 영혼의 빈들'은
아직도 완전히 내려놓지 못한 미련, 사단의 흔적.. 을
이제는 '예수님 앞'.. 에 내려 놓고
빈 마음이 되기를 바라심이 아니신가 싶다.
빈들에.. 버려진 자가 아닌
하나님의 말씀이 충만히 임하시게 되기 위하여
더 선택적으로
좀더 노력으로
'빈 마음'이 되는 것.
그노력이 내 자아가 아니고
내 면벽이나 내 스스로를 침이 아니고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심 만을 묵상하며
다른 어떤 것도 생각하지 않아도 됨을
마음에 인식하고 기다리는 것.. 말이다.
그게 '빈들에서'
주님의 말씀이 임하시는
'빈들에 '있는 마음이 맞을 거다 .
8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 말하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그러기 위하여
'빈들에' 있을 나를 사모하며
'회개'해야 한다.
자꾸만 내 영혼을 채우려 달려드는 '사단'의 발톱을
회개를 해야 한다.
주님 앞..
십자가 앞에 '내 이런 백일 몽'
이 두려움을 붙들고 있는 것은
'나'이며
'내 욕심'..
아직도 세상에 인정을 받고 싶어하고
아직도 '권위자'들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함이며
그것은 '빈들'이 아니고
버글거림임...
그러함을 잊기 위하여
또 매일 유튜브.. 등으로 내 머리를 메꿈은
그 충돌하는 버거움의 증거라... 고..
주님..
빈들에.. 서 있는 마음이 되길 원합니다.
온통 가지고 있는 버거움을 내려 놓고
주님 만으로 채워지길 기다리는
'빈들의 마음'이 되길 원합니다.
주여.
그러나 그러하지 못하게 막아서는
모든 악한 것을 다 회개합니다.
주여.
빈들에 서 있음을 두려워함을 고백합니다.
그러고 보니
주님 말씀 만으로..
주님의 임재 만으로 채워지는 것을
그리 깊이 사모하지 못함이 맞는 듯합니다.
대치되는 것들로
나를 자꾸만 채워갔던
그 모든 것을 용서하소서.
회개합니다.
그게 '죄'였음..
그게 하나님의 말씀이 더 깊이 임재하게 하지 못하는
내 '죄' 탓이었음을 고백하오니
주여.
제게 힘을 주소서.
오늘이후 더..
'빈들에 '있는 자 되길 원합니다.
그러한 빈들의 나를 기뻐하길 원합니다.
그럴 수 밖에 없는 나를 감사할ㄹ 수 있길 원합니다.
주여.
주님 말씀이외
그 어떤 것도 나를 채우지 못하도록 도우소서.
빈들에 서서
빈들에서
주님을 깊이 만나는 세례요한님의
그 빈들의 마음을 닮길 원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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