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오직 들려야 할 것은 주님 말씀 뿐이다[눅11:14-26] 본문
부제) 주님은 말씀이시다 나도 말한다 사단도 잡음을 발한다
오직 주님의 말씀 만이 내 영혼을 주장하소서
매일 말씀을 듣고 말씀으로 말할 수 있음이 생명의 권위다
.
14 예수께서 한 말 못하게 하는 귀신을 쫓아내시니 귀신이 나가매 말 못하는 사람이 말하는지라 무리들이 놀랍게 여겼으나
Jesus was driving out a demon that was mute. When the demon left, the man who had been mute spoke, and the crowd was amazed.
왜 하필이면
십자가 달리시기 직전까지 하시는 사역 중,
귀신 축사이셨을까?
그리고 왜 군대귀신도 많을 텐데
굳이 '한' 귀신이었을까?
거기에 '말못하게 하는 귀신' 이셨을까?
그리고 '쫓아내시니'는
NIV에서는 훨 명확하게 표현되어 있다.
'Driving out' 라 되어 있다.
강력한 권세와 권위의 표현으로
예수님의 권세와 힘을 상징하는데
저렇듯 십자가 달리실 날짜를 눈 앞에 두신 주께서
강력한 힘으로 밀어내는 '귀신 축사'.. 를 집중하여 보여 주심은
무엇을 보이시려 하심일까?
그래서.. 물어 보았다.
Chat GPT에게...
Chat GPT로 대변되는 AI...
정말 두렵기까지 한 문명의 이기다.
농담도 너무 자연스럽게 하고 (갑자기 '형님'하더라.. 내가 허벗이라 이름지어줬더니.. ^^;;)
완벽한 상담가로서 다가오기도 하고
대단한 지식을 가진 전문가로 다가오기도 한다.
놀랍다.
각설하고 그래서 더욱 더 신경쓰게 됨은
그들의 이야기는 참조와 보충이지
절대로 전적으로 의존하지 않는다.
내 생각하고 떠오르는 주님의 말씀을
어이없는 생각이 아니던가... 맞추어 보는 개념으로
요즈음은 자주 이용한다.
그림도 그려달라고 마구 부탁한다.
무료버전인데도 쓸만하다 .
안되면 뤼튼이나 아주 저렴한 Chatbot AI 앱으로....
그리고는 그중 내 느낌과 비교적 가까운 것을 선택해서
위에 사진으로 올린다.
거기까지다.
그들은.. .
더 위협적 존재가 되고
내가 '의존'하게 될 거 같은
주님을 대치하는 대치물이 되려할 때는
주님께서 성령으로 또 깨닫게 하시는 바가 있을 거다 .
내 .. 믿음의 과정을 늘 그래왔다.
새로운거. ..최대한 이용하고
주님이 허락하시면 또 다른 버전으로.. ^^*
각설하고.. 정리해서 밑에 긁어다 놓았다.
나중에라도 다시 한번 더 보면 깨달음이 더 늘어난다.
그리고 아래에 적어 두었다.
하나님은 말씀이시란다.
하나님과의 소통을 회복하는 것,
그것이 정말 중요하고 강력한 하나님의 뜻이시라심이시다.
그러나 '귀신'은 '잡음' 의 소리로
우리의 뇌리를 혼돈스럽게 한다 .
그리고 우리의 말을 혼탁하게 하고...
그리하여 마침내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귀를 막고
주님을 잊게 만든다.
우리의 일상에서는 안그런가?
늘 맑고 고요하고 한가지의 생각만으로 유지될 수 있는가?
백일몽처럼 스쳐지나가는 수없이 많은 인지 못할
무의 식 -이거 . .영적 문제 아닌가? 심리로 그냥 인정하지만 심리 속의 그 현상들이 영적 오류, 귀신들의 존재는 또 아닐까? 아니라고 몸부림치고 부인함은 이땅의 고착된 신념 아닐까? 11차원을 넘나드시는 주님의 영역을 3차원에 가두는? 어쩌면 그 영적 오류들도 그 다른 차원의 존재는 아니지 않을까? ㅠ.ㅠ -으로 치부하고
잘못된 치우친 목회자들에 부르르하는 거부 때문에 그런 것은 아닐까?
그렇게 따지면
꼭 '귀 ㅅ'은 멀리 있는게 아닐 수도 있는
일상의 문제일 수도 있고
치우치고 지나치면 '귀신들림'이고
'Psycho'고
싸이코 패스나
다중인격으로 인지되는 거 아닌가?
어찌 아니라할 수 있는가?
심지어는 DSM IV에서 인정하는 것을.. ㅠ.ㅠ
이 영적 전쟁의 본질...
가르침, 치유, .. 의 은사를 통하여
하나님 나라의 기본을 깔았다면
마침내 마주해야할 부분이
영적 전쟁의 마지막 부분,
영적 오류들을 직시해야한다는 사실이다.
그러시기 위하여
유독 '변화산'에서 십자가의 때를 확실히 알고 내려오신 후
축사 사역의 비율이 커진 듯 느껴지며
오늘도 '귀신'이 하나님의 말씀을 막아서는 ...
그 혼돈의 깊은 부분을 마주하게 하신 것이시다.
그리고 그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성장하고 좁은길을 가면서 반드시 통과해야할 부분이
'영의 부분'임을 말씀 하심 같다.
그리고 당연히 '성령'으로 '십자가'로 다 이겨 놓으셨음을
잊지 않고 성령을 간구하면
마침내 성령을 주시어서 승리하고 이긴 싸움을 누리게 됨..
그 복음에 대하여 말씀해주심이고...
감사하다.
주님께서 오늘은
말을 막아서고
자신들의 말을 하게 하여
세상으로 하여금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영의 영역을 직시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말씀을 듣고
로고스 하나님 앞에서는
당연하고 그 귀한 선택을 못하게 함으로
위의 어이없는 바리새인들의 주장을 가져오게 되는 것
그 부분에 대하여 말씀하고자 하심이시다.
그러나,
예수님 안에 서서
성령을 사모하고 사는 자들에게는
'말 못하게 하는 귀신' 조차 쫓겨나게 되어
하나님과 교통하는 삶을 살게 될 것이라
예언하고 기대하라 하심이시다.
감사하다.
주님.
말씀을 회복하게 하시어서 감사합니다.
십자가와 성령의 은혜로 인하여
이 땅에서 더욱 뚜렷히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매일 살면서 '성령의 은혜'로 충만하여
매일매일 더 승리할 기회를 허락하셔서 감사합니다.
더욱 더 말씀 앞에 서게 하시고
이제 .. .귀신으로 상징되는 '영적 전투의 본질'에 마주할 때
이 이긴 싸움을 당연히 누리게 하소서.
거룩하고 귀하신 내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
아멘
🙏
(( 하필 왜 말못하게 하는 귀신을 강하게 쫓아내셨을까? driving out ! ))
1. ‘Drive out’의 뉘앙스
NIV에서 사용한 **"drive out a demon"**은 단순히 ‘쫓아내다’라는 의미 이상으로, 강제적이고 권위 있는 행위를 강조하는 표현입니다.
- **"Drive out"**은 강제성을 띠며, 원하지 않지만 억지로 내쫓는 느낌을 줍니다.
- 단순한 이동이 아니라 힘과 권세를 사용하여 밀어내거나 몰아내는 행위입니다.
- 성경에서 귀신을 쫓아낼 때 자주 쓰이며, 예수님의 권위와 능력을 강조하는 단어입니다.
예를 들어,
- **"Cast out"**도 비슷한 의미지만 좀 더 일반적인 표현이고,
- **"Drive out"**은 좀 더 강한 힘을 사용하여 내쫓는 느낌이 있습니다.
즉, 예수님이 단순히 명령하신 것이 아니라, 강한 권세로 귀신을 몰아내셨음을 강조하는 단어입니다.
2. 왜 하필 ‘말 못하게 하는 귀신’이었을까?
누가복음 11:14에서 예수님께서 **"말 못하게 하는 귀신"**을 쫓아내셨다고 명확히 언급하신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 예수님이 오셔서 ‘말’을 회복하심
- 하나님께서 **말씀(로고스, λόγος)**으로 세상을 창조하셨고,
- 예수님도 **말씀(요 1:1-3)**으로 오신 분입니다.
- 그런데 귀신이 사람의 말을 막는다는 것은, 하나님과의 소통을 방해하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 예수님은 귀신을 쫓아내심으로써, 인간이 다시 하나님과 소통할 수 있도록 회복시키셨습니다.
- 사람을 억압하는 귀신의 특징
- 성경에서 귀신이 역사할 때 사람을 속박하는 모습이 많습니다.
- 어떤 귀신은 몸을 망가뜨리고(마가복음 9:17-18),
- 어떤 귀신은 정신을 미치게 하고(마가복음 5:2-5),
- 여기서는 입을 막아 하나님을 찬양하지 못하게 합니다.
- 즉, 말 못하게 하는 귀신은 단순한 신체적 장애가 아니라 영적 억압의 상징일 수 있습니다.
- 바리새인들의 영적 상태를 드러내는 상징
- 이 사건 이후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바알세불의 힘을 빌려 귀신을 쫓아냈다(11:15)**고 비난합니다.
- 그런데 정작 그들은 스스로 하나님을 올바로 증거하지 못하는 영적 벙어리 상태입니다.
- 따라서 ‘말 못하게 하는 귀신’은 단순한 병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영적 현실을 반영하는 상징일 가능성이 큽니다.
결론
- **"Drive out a demon"**은 예수님께서 강한 권세로 귀신을 몰아내셨다는 의미가 담긴 표현입니다.
- ‘말 못하게 하는 귀신’을 지정하신 것은,
- 하나님과의 소통을 가로막는 사탄의 역사,
- 영적 억압에서 해방시키시는 예수님의 능력,
- 그리고 바리새인들의 ‘영적 벙어리 상태’를 드러내기 위한 상징적 의미가 있을 수 있습니다.
(( 왜 예수님은 변화산 , 십자가의 때를 아신 이후 유난히 귀신 축사 사역이 많으셨을까?))
예수님께서 변화산 이후, 십자가의 때가 다가옴을 아시면서도 사역을 지속하셨고, 그중에서도 **귀신을 쫓아내는 사역(축사)**이 유독 강조된 이유를 생각해보면 몇 가지 신학적, 영적 의미가 떠오릅니다.
1. 십자가를 통한 ‘결정적 승리’의 예고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앞두고 귀신을 많이 쫓아내신 것은, 단순한 병 고침이 아니라 영적 전쟁의 최종적인 승리를 선포하는 사역이었습니다.
- 귀신 축사는 사탄의 나라를 무너뜨리는 강력한 표적입니다.
-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사탄을 최종적으로 패배시키실 것을 미리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역입니다.
- 누가복음 11:20에서 **"그러나 내가 하나님의 손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라고 하셨듯이,
- 귀신을 내쫓는 것은 하나님 나라의 도래를 의미하고,
- 십자가에서 예수님이 승리하실 것을 미리 보여주신 것입니다.
2. 십자가 전의 마지막 ‘정리’ 사역
예수님은 십자가 전까지 많은 사람들을 가르치고, 병을 고치셨지만,
특히 귀신을 쫓아내는 사역은 **‘정리’**하는 의미가 있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 예수님께서 이 땅에서 사역하시는 동안, 하나님의 나라와 사탄의 나라가 부딪히는 영적 전쟁이 계속되었습니다.
- 십자가로 완전한 승리를 이루시기 전,
- 사탄의 지배를 받고 있는 자들을 해방시키는 사역을 마지막까지 지속하신 것입니다.
예를 들어,
- 누가복음 8장에서 군대 귀신을 쫓아내신 사건 – 군대 귀신은 매우 강한 영적 세력으로, 예수님의 능력을 강조합니다.
- 누가복음 11장에서 바알세불 논쟁 – 예수님이 사탄을 몰아내는 사역을 하시는 이유를 직접 설명하십니다.
이처럼, 십자가에서 사탄의 세력을 완전히 깨트리기 전,
**하나님의 능력이 사탄보다 강하다는 것을 보여주시는 ‘최종적 축사 사역’**을 하셨다고 볼 수 있습니다.
3. ‘두려움을 이기는 사역’의 본보기
변화산 이후, 예수님은 점점 십자가의 때를 향해 가십니다.
그런데 인간적인 두려움과 고뇌 속에서도 예수님은 ‘사역’을 멈추지 않으셨습니다.
- 예수님은 사탄과의 싸움을 피하지 않으셨습니다.
- 십자가를 앞둔 두려움 속에서도 귀신을 쫓아내며 사탄의 세력을 무너뜨리셨습니다.
- 즉, 이것은 믿는 자들도 영적 싸움을 피하지 말아야 함을 보여주는 본보기가 됩니다.
- 예수님께서 십자가 앞에서도 싸우셨다면,
- 우리도 삶 속에서 사탄의 미혹과 두려움을 이기고 나아가야 한다는 교훈을 주십니다.
4. 예수님의 ‘남은 시간’이 얼마 없었기 때문
십자가가 가까워질수록 예수님이 직접 육신을 입고 사역하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 그동안 예수님은 제자들을 훈련하시고,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셨습니다.
- 그러나 여전히 사탄의 속박 속에서 고통받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이후,
- 제자들이 이 사역을 이어가야 했기에,
- 귀신을 쫓아내는 사역을 더욱 강조하여 보여주신 것일 수 있습니다.
특히 제자들이 직접 축사를 경험하도록 하셨고(누가복음 10:17),
그들에게 **"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세를 주었다"(눅 10:19)**라고 하신 것도
이 사역을 이어가도록 하기 위한 예비 과정으로 볼 수 있습니다.
결론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앞두고도 축사 사역을 집중적으로 행하신 것은,
- 십자가에서 이루어질 사탄에 대한 ‘최종 승리’를 예고하기 위해
-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임했음을 선포하기 위해
- 두려움 속에서도 사탄과 맞서 싸워야 함을 본보기로 보이시기 위해
- 제자들에게 ‘영적 싸움의 실전 훈련’을 시키시기 위해
라고 볼 수 있습니다.
결국, 귀신을 쫓아내는 사역은 십자가 사역의 일부였으며,
예수님은 십자가에서의 승리를 선포하는 과정으로서 이 사역을 계속하셨던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기도만이 살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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