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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 QT

내 하나님과 우리 하나님(느3:28-4:6)

주하인 2006. 9. 6. 09:19

(느헤미야3:28-4:6) 

 

1 산발랏이 우리가 성을 건축한다 함을 듣고 크게 분노하여 유다 사람을 비웃으며

 '산발'한 자가

승질 낸다.

그것도 크게...

 

또 비웃는다.

웃을 자격도 웃을 일도 없는 자가 웃는다.

비웃는다.

코 방귀 아마 뀌었을 것이다.

 

 비웃는 것은 아랫사람들의 가소로운 노릇을 볼 때 자기도 모르게 '풋'하고 웃으면 그게 조금 의미가 있다.

그러나, 크게 분노할 만큼 속에 어떠한 걸리는 일을 가진 자가 비웃기 까지 한다는 것은 상대로 하여금 의도적으로 상처를 입히기 위한 가식적 행위가 틀림이 없으며 자신의 연약함을 숨기려는 의도마져 숨겨 있어서 참으로 가소롭다.

 

 그런데

알면서 속상한게 더 속상하다.

비웃고

성질 부리는 자는 정~~말 ~~ 미웠었다.

 

지금은 조금 덜 그렇다.

 

예수님의 영이 서서히 내 성전에 깊게 들어 앉으시고 내 성벽이 조금씩 그 다음 그다음 해가심에 따라서 말이다.

 

 

2 자기 형제들과 사마리아 군대 앞에서 말하여 가로되 이 미약한 유다 사람들의 하는 일이

  무엇인가, 스스로 견고케 하려는가, 제사를 드리려는가, 하루에 필역하려는가, 소화된 돌

  을 흙 무더기에서 다시 일으키려는가 하고

3 암몬 사람 도비야는 곁에 섰다가 가로되 저들의 건축하는 성벽은 여우가 올라가도 곧

  무너지리라 하더라

 도비야가 도발한다.

말하는 소리가 한마디로 '비아냥'이다.

누가 들어도 기분  나쁜 소리.

 

하나님의 영감으로 지어진 성경에서 이런 '살아있는 비아냥'을 들을 수 있다는 사실이 정말 놀랍다 .

어디서 많이 듣던 소리가 아닌가?

 

'이~~구 ~~ 지 주제에?

 저러다 말걸?

 야~~ 야~~ 웃기지 말라고 해~

 며칠이나 갈까~~ !! '

 

아주 익숙한 내 속의 소리.

아주 익숙한 주변의 다툼.

 

저런 소리가 난 후 몇은 얼굴이 멍이 들고

몇은 경찰서에 끌려가고 하더라....

 

난 이렇게 살아있는 교재인 '느헤미야서'가 정말 맘에 든다. ㅎ

 

 

 

 

 

4 우리 하나님이여 들으시옵소서 우리가 업신여김을 당하나이다 원컨대 저희의 욕하는

  것으로  자기의 머리에 돌리사 노략거리가 되어 이방에 사로잡히게 하시고

5 주의 앞에서 그 악을 덮어 두지 마옵시며 그 죄를 도말하지 마옵소서 저희가 건축하는 자

  앞에서 주의 노를 격동하였음이니이다 하고

 우리의 느헤미야 선지자의 대응 교재를 보고 있다.

 

먼저 다른 일체의 일보다는  깊은 기도하신다.

이게 배울 것이다.

 

그 분께서는 '우리의 하나님'이시라고 고백으로 기도를 시작하신다.

내 하나님을 넘어서 우리의 하나님이다.

 

그 분은 친밀한 인격적이고 개인적 하나님을 아시는 분이시다.

그리고 그 하나님의 사랑과 그에 따른 은혜와 영적 감동을 이웃과 나누기를 원하고

당연하게도 삶속에서 이웃과 연합되는 성벽 공사를  통하여 그는 하나가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의 '내' 하나님이 '우리의 하나님'으로 자연스레이 펼쳐지는 것이다.

 

그의 공동체의 하나님은 곧 그의 개인의 하나님이시다.

그의 이러한 열정과 주님과 하나된 연합은 자연스레이 파장을 펼쳐 그 공동체까지 모두가 '내'하나님으로 고백할 '우리 하나님'으로 바뀌게 한 것이다.

그러한 체험을 한 동료들은 마치 느헤미야가 그랬듯이  '내 '하나님으로 고백할 것이고 그 고백은 또 그분처럼 이웃을 향해 펼쳐갈 것이다.

 

이게 바로 우리 주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통해서 그리도 펼치고 싶어 주님 안에서의 연합이요 포도나무 예수님의 열매 포도의 고백이다.

 

 어쨋든 그 분은 기도를 이어가신다.

 

이런 기도를 일상에서 하면 힘이 될것이라는 시청각 교재가 또 한번 힘있게 진행이 된다.

 

우리가 업신 여김을 당한다는 사실을 그대로 주님께 Crude하게 고백한다.

그리고 상대를 저주하는 기도까지 한다.

 

성경을 보면서 가끔 가끔 당황할 때가 있다.

시편에 보면 다윗께서 자주 그러신다.

어느 때는 너무 원색적으로 공격을 퍼붓는다.

기도로...

그나마 시로 표현 되어서 그렇지 현대적 감각으로 재 해석하면

" 저 ~~ 나쁜 ~~ 개 XX~들을 ~~'이라는 표현처럼 들리는 것 까지.ㅎ.ㅎ

 거룩하고 귀한 책에 '저주'가 웬말인가?

오늘도 느헤미야님의 성정과 그 분의 열정을 이해치 못한다면 약간 오해하고 픈 여지가 있다.

그럼에도 그 분이 닮고 싶은 것은 이렇다.

 기도는 힘이 있어야 한다 .

 기도는 절절히 끓는 기도가 되어야 한다.

 기도는 있는 그대로 ...

 기도는 숨김없이...

마지막엔 주님의 뜻대로 맡겨야 한다는 걸 보이시는 것이다.

그리고는 완전히 잊고 일상에 열심히 임해야 하는 것이다.

 

주님은 우리의 가식을 보는 것이 아니다.

어른이 애 같은 기도는 물론 합당치 않지만

아이가 애 어른이 되어서 눈치만 살피고 기도하기를 원치 않으시는 것이다.

 

항상 주님께 고정이 되어서

내가 몇살인지

나의 고민은 무엇인지

나의 원함은 무엇인지

내가 나갈 바는 어딘지

나의 원하는 바와 현실과의 괴리는 어느 것인지

늘... 피드백을 받아서

내 영적 나이를 앎이 필요하고 이 영적 나이에 따른 행동이 자연스레이 나올 정도로 주님과 늘 동행하며 대화하는 삶이 필요하다.

어렵다고 생각이 될 수도 있다.

하나

매일 묵상과 나눔이 있으면 가능하다.

거기다가  성무일과 같은 준수와 회개와 감사의 삶이 더해지면 빠른 성화가 가능케 된다.

 

느헤미야서는 힘이 있다.

 

 

 

적용

 

1. 어리석은 자들의 손가락질이 있어도 참을 것이다.

 

2. 기도한다.

 일찍 끝나는 수요일

 오랫만에 운동하고 기도원 가겠다.

 

3. 성경 5장 읽겠다.

 

4. 공동체의 요구에 가능하면 맞추는 하루가 되도록 한다.

   내 이웃을 위해 기도한다.

 

 

 

 

기도

 

주님

역시 모범을 보이시는 느헤미야를 묵상케 하셔서 감사합니다.

이처럼 확실한 선례를 보이시는 이유에 대하여 잊지 않게 하소서.

확실히 따르도록 노력하겠나이다.

기도로 무장하게 하소서.

진실하게 기도하게 하소서.

그리고 잊어버리게 하소서.

주님의 힘있는 일상의 역사를 체험케 하소서. .

그리하여

세미한 소리를 오늘도 들을 수 있도록 하소서.

그래서 가슴 한 구석의 따스함이 더 커질 수 있도록 하소서.

그럼으로 담대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산을 바라보는 일을 줄이고, 산을 움직이는 이를 더 자주 바라보라.

 - 빌 하이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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