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수레를 버티는 버마재비 마귀 (느4:7-23) 본문
(느헤미야4:7-4:23)
7 산발랏과 도비야와 아라비아 사람들과 암몬 사람들과 아스돗 사람들이 예루살렘 성이
중수되어 그 퇴락한 곳이 수보되어 간다 함을 듣고 심히 분하여
잡마귀들이 많기도 하다.
이것들은 질투심이 엄청나게 많다.
질투심이 생기면 어서어서 십자가 앞에 내려 놓아야 한다.
질투는 마귀를 영혼에 불러들이고 심하게 되면 괜히 분해진다.
분하다는 것은 상대방에게 상처를 받을 일을 당했을 때 반응으로 나와야 하는데 아니다.
이게 마귀들에게 길이든 자들의 특징이다.
호사다마(好事多魔)
마귀들은 좋은 일만 생기면 많이 꾀인다.
9 우리가 우리 하나님께 기도하며 저희를 인하여 파숫군을 두어 주야로 방비하는데
힘차게 나가는 일에는 방해물이 없는가?
이들은 우리..하나님께 기도하며
파숫군도 두며
아침 저녁으로 열심을 부리는 데도 마귀가 기승을 부린다.
하나님의 뜻
그 분은 온실에서 그냥 이쁘게 피는 꽃을 원치 않으신다고 한다.
속상하고 어렵기는 하지만
우리의 행위와는 상관없는 고난은 항상 있다.
10 유다 사람들은 이르기를 흙 무더기가 아직도 많거늘 담부하는 자의 힘이 쇠하였으니
우리가 성을 건축하지 못하리라 하고
문제는 우리의 마음이다.
'우리가 성을 건축하지 못하리라'
부정적인 마음이 문제다.
힘이 없음은 그런 마음에서 생기는 것이다.
일상에서 난 안그런가?
자주 그러지..
이렇게 정확히 묘사해주니 느헤미야가 남이야기 같지 않다..ㅎㅎ
열심히 뜨겁게 시작한다.
그러다가 어느순간 우뚝 ..멈춘다.
물론 성벽이어갈 때 성령께서 역동하시는 것 처럼 또또..하셔서 여기까지 왔지만...
하옇든 백성들의 부정적인 마음은 몸에 힘을 빠지게 하여 무기력하게 하고
흙무더기가 치울수 없을 정도로 많게 보인다.
한참 있으면 옛날로 돌아가거나 우울증이 걸리겄다.
ㅎ
11 우리의 대적은 이르기를 저희가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하는 사이에 우리가 저희 중에
달려 들어가서 살륙하여 역사를 그치게 하리라 하고
12 그 대적의 근처에 거하는 유다 사람들도 그 각처에서 와서 열 번이나 우리에게 고하기를
너희가 우리에게로 와야 하리라 하기로
이성을 잃으니 두려움이 극에 달한다.
어제 울 교회 목사님이 마귀들의 장란과 증상과 대적하는 것에 절묘하게 말씀하신 중
'버마재비'라 하신 얘기가 있다.
버마재비는 사마귀를 일컫는 사투리로서
북한어 속담 중에 "버마재비가 수레를 버티는 셈 "이라는 말은
버마재비와 같은 작은 벌레가 감히 수레를 맞서려고 하는 것과 같다는 뜻으로,
제 힘에 부치는 엄청난 대상에 맞서려는 무모한 짓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마귀는 우리 기독교인에게는 허풍선이다.
허깨비다.
실제보다 훨씬 더 크게 느껴지게 하는게 그들의 특기이다.
무서워 하면 더더 커진다.
13 내가 성 뒤 낮고 넓은 곳에 백성으로 그 종족을 따라 칼과 창과 활을 가지고 서게 하고
좋은 지도자가 정말 그립다.
나라도
직장도
가정도
주님께 늘 고정되어 그 분이 말씀하시는 소리를 듣고 인도하심 받는 지도자가 꼭 필요하다.
세상의 환란과 풍파에 흔들리지 않고
주님으로 인하여 우뚝 서게된 그런 지도자가 그립다.
느헤미야는 그런 지도자다.
14 지극히 크시고 두려우신 주를 기억하고 너희 형제와 자녀와 아내와 집을 위하여
싸우라 하였었느니라
그가 지도자로 설 수 밖에 없는 원리를 가르쳐 주신다.
리더는 이래야 한다.
늘 주를 기억해야 한다.
그 분은 크신 분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무서운 건 그 분이지 외부적 세력이 아니다.
남을 위하여 싸울 용기를 가져야 한다.
남을 불쌍히 여길 긍휼함을 지녀야 한다.
남을 끌고 다니기 보다는 남의 입장에 설 줄 아는 자가 되어야 한다.
15 우리의 대적이 자기의 뜻을 우리가 알았다 함을 들으니라 하나님이 저희의 꾀를
폐하셨으므로 우리가 다 성에 돌아와서 각각 역사하였는데
믿는 자로 필요한 또 한가지
기도하고 정비하고 나면 주님이 우리를 괴롭히던 상황을 다 폐하셨음을 믿는 마음이다.
그리고 이들 처럼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는 믿음이 필요하다.
16 그때로부터 내 종자의 절반은 역사하고 절반은 갑옷을 입고 창과 방패와 활을 가졌고
민장은 유다 온 족속의 뒤에 있었으며
완벽한 준비.
기도하고 마는 것은 올바른 신앙이 아닐 수 도 있다.
기도하고 최선을 다하는 일상의 삶
그리고는 결과는 이길 것을 믿는 마음.
이것이 올바른 신앙인이 아닌가?
기독교는 절대로 세상을 떠나 무위도식하는 종교가 아니다.
일상에 부딪쳐 그 일상의 한걸음 한걸음에서 주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힘이 든 상황에서 주님을 위하여 그냥 묵묵히 최선을 다하는 삶.
그럼으로서 주님의 뜻대로 성적표를 받아
우리의 인격이 차차 변하고
주님이 주신 상품으로 세상의 축복도 가능하면 받는 것.
그것이 원리일 듯 싶다.
20 너희가 무론 어디서든지 나팔 소리를 듣거든 그리로 모여서 우리에게로 나아오라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싸우시리라 하였느니라
준비한 후 담대히 대적하라.
그리고 주님이 그 위에 임하시는 뜻을 보자.
우리의 삶의 형태가 어찌 달라도 좋다.
그 삶속에서 겪는 고난과 갈등이 어때도 할 수 없다.
그리고 우리가 현재 지든 이기든 그것은 아무 차이도 없다.
문제는 어떤 상황에서든 주님을 의식함이 필요하다.
주님이 우리를 위해 싸우실 것을 잊지 않으면
결과에 상관없이 주님은 우리를 위한 것이며
그것은 눈앞의 성공여부를 지나 시간이 지나면 알게 된다.
그 때 바로 우리 주님이 그리하셨음을...
오래지 않은 신앙생활이지만 난 돌아보면 그때그때 그 분이 항상 반드시 서계셨었다.
적용
1. 두려운 것은 허풍선임을 기억한다.
2. 두려운 것은 주님이심을 안다.
3. 그 분이 내 모든 것을 다 아심을 인정한다.
4. 그 분께서 다 해결하실 것임을 믿는다.
5. 기도하면 현실적 대처를 주님께 여쭙는다.
6. 내 계획을 말씀드린다.
7. 주님이 인정하시면 걱정은 다 버린다.
8. 남을 위해 기도한다.
9. 애통하는 맘을 달라고 기도한다.
10. 계획을 세운다.
기도
주님..
특별히 느헤미야서는 남 얘기 같지가 않습니다.
마치 저의 신앙지침서 같은 느낌이 듭니다.
어찌나 절묘하게 힘을 주시는 지요.
감사하신 예수님께 기도합니다.
아멘
의미 있는 사건에는 강력한 리더, 구체화된 비전, 항상 적수가 존재한다.
- 프레드 스미스 시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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