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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자랑 예수님 자랑 (갈 6:11-18 )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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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자랑 예수님 자랑 (갈 6:11-18 )

주하인 2010. 6. 25. 11:28

제 6 장 ( Chapter 6, Galatians )

 

아들을 엎고 있는

아버지의 표정이 자애롭다

 

아버지의 등에 안겨 있는

아이의 표정이 편안하다

 

그 뒤를 받치는

세상의 꾸밈이 아름답다

 

모든 것은

주님 안에 연합함으로 만

의미가 있을 뿐이다

 

그 외의 어떤 것도

홀로 떨어져

자랑이 될 수가 없다

 

주여

감사하나이다

알게 해주신

그 사랑에 감사하나이다

주님 십자가의 복음을 앎이

내 자랑입니다

 


11.  내 손으로 너희에게 이렇게 큰 글자로 쓴 것을 보라
 큰 글자로..

갈라디아 성도 모두가 '돋보기'써야하는 노안들의 노인들이 아닐 바에

큰 글자로 씀은 그의 애정 탓이다.

 그분의 갈라디아 인들에 대한 열정적 사랑 탓이다.

하나님이 주시는 열정적 사랑의 전파할 사랑 탓이다.

큰 글자는 열정적 사랑의 표현이다. 
 
 
13.  할례 받은 저희라도 스스로 율법은 지키지 아니하고 너희로 할례 받게 하려 하는 것은 너희의

    육체로 자랑하려 함이니라
'육체의 자랑'은 이제는

 '너희의' 자랑에서 멈추길  원한다. 

나의 자랑이 되질 않길 원한다.

 

그런데 왜 아직도

50년 가까이 쓴 육체에도

칭찬받고 싶은 욕구는 이리도 사라지지 않는가?

어찌 이리 내 입에서 '자랑'의 욕구가 사라지지 않고 있는가?

이 썩을 육체,

이 유한한 생명의 육체를 말이다.

그들의 칭찬이 내 생명에 어떤 선한 영향을 미칠 수 있을까?


 

 
14.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 
  '내게는' 이제

'주 예수 그리스도'  그 분만이 필요하다.

안다.

예수 그리스도 그 분은 살아계시고

그 분의 칭찬은 세상의 무엇과도 바꿀 수없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나에게 필요한 어떤 존재가 있을 수 있단 말인가?

내 삶,

내 정말 쥐꼬리 보다 적은 이 인생에서의 습득한 모든 것이

어찌 예수 그리스도의 도우심이 아닌 것이 있다는 말인가?

그럼에도 나,

이 자욱한 자아의 덩어리는 죽지않고 살아

아직도 모든 영광을 내 안으로 끌어들이고

그들, 결국 주님이 전제가 되지 않으면 모두 한 덩어리로 지옥갈 수 밖에 없는 자들의

서로서로 꿀처럼 위안하고는 공중에 스러지고야 말

그 허탄한 칭찬을

난 아직도 이렇게 간구하고 있다.

마치 꿀 탐내는 파리처럼

타는 줄 모르고 달려드는 불나방 처럼...

 

이제

이리 고백하고 살고 싶다.

'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
정말 그렇다.

저렇듯 터져 나올 듯 외치고 싶다.

사도 바울님의 저 고백이

그냥 머리 속의 정리된 차가운 분석적 소리가 아니고

그 분의 가슴 속에 스물 거리듯 움직이시는 성령의 감동에 의한

통렬한 외침이었음을

난 느낀다.

이 아침 그렇다.

 

 

 어제 저녁

동영상 올리면서 고백했듯이

역삼역 8번 출구에 무거운 기타 가방- 하드케이스다. - 을 들고 찬양 인도하러 갔다.

갑자기 생긴 응급 수술을 무사히 마치고 내려오니

환우들이 2시간 이상씩 기다려서 부리나케 마치고

조금 늦게 밖에서 기다리던 큰아들의 핔업에 의해 '평촌'역으로 달려갔다.

아내와 조금 발걸음을 빨리해서 갔지만

기타는 무거웠다.

날씨는 덥고..

난 가끔 환상처럼 스치는 내 찬양 인도에

저 키타가 꿀처럼 들러 붙어 기쁜 영상으로 보여지는 착각이 들때가 있다.

그래서 힘이 들지만 굳이 굳이 기타가 그곳에 있음에도 들고 갔다.

'사당'역에서 한번을 갈아타고 8번 출구를 나서니 더운 날씨와 더불어

땀이 범벅 되었다.

 예배는 자유롭게 진행이 되었다.

정해진 뚜렷한 포맷이 없고

찬양인도도 그때그때 사정되는 사람들이 와서 한다.

어제는 찬양 후 '하나교회'라는 조금은 특별한 교회의

'이정미 '사모님이라신 분께서 오셔서

거의 3시간을 열정적으로 강의 같은 설교를 하셨다.

지루한 면이 없지 않았지만

그 분의 살아 있는 간증과 더불어 나에겐 '믿음'이란 부분에서

깊은 인상을 남기셨다.

 

 믿음.

이 귀중한 부분에 대하여 난 이상하게 흐릿한 인식을 가지고 있었다. 

그 믿음 부분에서 그 분은 확정적으로 설명하셨다.

'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은 '선'이시다'라는 것을 믿는 것이

그 첫째 믿음이고

' 난  내 안에 십자가로 인하여 합하여지신

예수그리스도를 인하여

나는 대단한 존재임을 믿는 게'  그 둘째 믿음임을

확연히 생각케 해주셨다.

그리고 그 전에 찬양인도 중 나에게 허락하신

강한 성령의 임재하시는 느낌.

 찬양할 때 난 그렇다.

그리 많은 연습을 하지 않는다.

정해진 멘트를 적어가지 않고

언제 멘트할 지 몇번 되풀이 할 지 정하지 않는다.

일정부분은 나와 아내의 성대에 의지하지만

다른 부분은 성령께서 인도하실 여지를 두기 위해서다.

그러다 보면 깨어있지 못할 때

죄를 짓고 회개가 충분치 않을 때는

혼자 깊은 곤란을 느낄 때도 없지 않다.

그러나, 그럼에도 그때에 은혜 받았다는 분들도 있음을 볼 때

모든 것이 주님의 성령의 운행이심을 깨달아 왔다.

그런 깨달음은 어떤 상황에서도

주님은 주님의 뜻대로 행하실 것이란 생각으로

훨씬 편안한 인도를 해왔던 것이 사실이다.

내 감각과 상관없는 하나님의 은혜........

 

 끝나고 나니 10시가 넘었다.

힘이 든다.

문제는 나였다.

누군가 '은혜 받았다' 하는 칭찬 이상의

진심의 눈빛으로 스타에 하듯하는 그런 칭찬을 바라고 있는 내가 느껴졌다.

허전했다.

아마도 스타들의 우울증이 이런 것임을 난 자주 생각한다.

이 '자기의 육신의 자랑'

하나님의 일을 함에도 하나님의 일을 잘해나가는

'나'를 칭찬해주길 은근히 바라는

이 간교한 '육신의 자랑' 이 날 계속 허겁하게 했다.

 안다.

아니 더 당혹스럽다.

물론 강도 면에서는 이전의 허겁과는 비교할 수도 없지만

처제가 태워다 주는 차 안에서도

누군가 칭찬했다는 소리를 듣고 겸손을 가장하며 '아니 ~ 뭘~' 하는

멘트를 날리고 싶은

이 육신의 자랑의 유혹과

그 욕구가 채워지지 않은 허전함과 싸워야 했다.

하지만, 입 밖에는 내지 않았다.

그러다 잘 녘에 침대에 누운채 아내에게 말했다.

'여보~ 괜 찮았어? '

 

 자고 일어났다.

아침에 일어나니 여지 없이 하나님은 저리 말씀을 주신다.

살아계신 분.

" 저희에게는 '육체의 자랑'"

"'나에게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외에는 무엇을 자랑할 것이 있던가?"

 그렇다.

살아계신 하나님은 이제 서서히 십자가외에는 자랑할 것 없는 자로서

조금 더 성장하길 바라시는 것이다.

내가 내 자랑 해보았자 무엇이 유익이던가?

자랑할 것은 그토록 질기게 나를 물고 발톱을 휘감고 들어오는

내 자랑,

내 허전함을 채우려고 하는 아귀같은 사단의 장난을

십자가에 못박는 것이다.

세상에 내가 가짐은 무슨 자랑이 될까?

세상에 내가 이룩한 것은 또 무슨 자랑이 될까

세상에 내가 만들어 놓은 관계의 망이 무슨 자랑이 될까?

............

죽으면 모두 한점 재가 되어 버릴 것을..

하나님의 이름으로 이루어 놓은 것 역시 마찬가지 아닐런가?

하나님은 내 영혼에서 이런 헛된 자아의 자랑을

십자가에 벗어놓고

믿음과 사랑.. 의 성령의 열매로 그 부분을 채워 이루는

이러한 영혼의 성장 이외에는

그리 그 분에게 의미를 드릴 것은 없는 것 같다.

 

그러기에 그렇다.

이제는 '나의 자랑'은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만 되어야 한다.

그 분처럼 내 십자가,

특별히 내 육신의 자랑을 내려놓는 아픔을 십자가의 못박힌 아픔 처럼

십자가 앞에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내려 놓아야 한다.

그래서 그 분이 날 기뻐하신 그 임재의 충만함,

성령의 함께하심 만 기뻐해야 한다.

그게

내가 이땅에서 살아나가며

하나하나 이루어야 할 의미가 될 수 밖에 없다.

 

적용

 

1. 찬양의 은사를 허락하신 하나님 만을 감사한다.

 

2. 어제의 찬양 어떠셨어요.. 하고 묻는 하루가 되겠다.

 

3. 자랑이 올라오는 것을 막자.

 주님 십자가의 이름으로 그리한다.

 

4. 겸손하자.

  더 낮춘다.

 목소리를 낮게 , 머리를 낮추고 , 시선은 조금 더 아래로 , 말은 한번 더 생각하고 ..

 

5.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내 영혼의 원리로 삼는다.

 성경 세장 읽겠다.

 

6. 하기오스 찬양팀.

 목소리 낮춘다.

 

기도

 주님.

감사합니다.

그리고 죄송합니다.

감사한 것은 주님의 찬양을 앞에서 드릴 수 있는 자 되게 하여 주심이요

죄송함은 그것을 제 자아의 만족으로 채우려 했다는 사실입니다.

주님.

죄송합니다.

주님

사랑합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이제 간절히 소원할 것은

자랑할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만 되게 하소서.

그 십자가의 복음을 알고 깨닫고 내 영혼에 받아드리게 되었음만 그리하게 하소서.

주여.

오늘 하루 겸손하게 도우소서.

주님 십자가만 생각하고 그리하게 하소서.

예수 시여.

제 가정 지키시고

제 아들들 성령으로 잡으시고

제 깨달음 그들에게도 똑같이

더 크게 알려 주소서.

힘을 주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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