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예수그리스도의 것 세상의 것 (롬 1:1-17) 본문

신약 QT

예수그리스도의 것 세상의 것 (롬 1:1-17)

주하인 2010. 7. 1. 10:47

제 1 장 ( Chapter 1, Romans )

 

어떤 때는

무엇을 어찌 해야할 지

막막할 때도 있었습니다

 

어떤 때는

광활한 천하에 홀로 놓여진듯

심한 외로움이 몰아칠 때도 있었습니다

 

또 어떤 때는

날은 저리 창창한데도

진한 어두움이

가리고 있는 것 같을 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언제 부터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꿋꿋이 서 있는

저 자신을 발견하고는

놀랄 때도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태풍이 몰아치려해도

비 구름이 짖쳐오려 할 때도

이제는 당당히

서 있을 수 있을 것도 같습니다

 

상황은 변하지 않았어도

제 안에는

은혜와 평강으로

쓰다듬고 기뻐하시는

주님이 함께 계심을

체험하기 시작하면서 부터 였습니다

 

저에게

너는 그리스도 예수의 것이라

말씀하심을

깨닫기 시작할 때 부터였습니다

 

감사합니다

주여

 


   
6.  너희도 그들 중에 있어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르심을 입은 자니라 
 나도

그들, 세상사람들 사이에서 살면서

그들처럼 삶을 위해 자식들을 위해 똑같은 삶의 방편으로 '일'을 하고

그들처럼 웃고 울을 수 밖에 없는 입장이긴 하지만

난 조금 다른 방향으로 살 수 밖에 없다.

 왜냐하면 난 '예수 그리스도의 것'이기 때문이다. ^^*

그 사실은

단지, 기독교를 믿는 세상 사람이란 이야기 하고는

조금은 다른 의미란 것이다.

그것으로 부르심을 받은 자이란 의미는

세상을 살되 '그리스도 인, 그리스도의 것'으로 살아야 한다는 의미다.

 참으로 대단하고 좋은 선택을 받은 자이긴 하지만

그것은 또다른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편하게 세상의 원리에 맡기고 그 안에 그들과 티격태격하며

먹고 살것만 겨루면 될 것을 신경써야 할 일이 하나이상 더 생겼다는 의미다.

그것은 '하나님의 뜻'에 맞는가 늘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고

또 내가 하나님의 자녀, 그리스도의 것에 합당한 자인지

늘 되물어가며 살아야 하는 것이기에

똑같은 일을 하되 두 세배 많은 에너지를 쏟아야 하고

때로는 세상의 것을 포기해야 할 때도 있다는 것이다.

 가끔은 세상의 것과 예수 그리스도의 것 사이에서 교묘히 줄타기를 하고 싶은 유혹에서

과감히 벗어던지고 하나를 선택해야 만하는 뼈아픈 고통이 필요할 때도 있고

세상 사람이 아닐 운명을 지니고 있는

아직은 세상에 거하는 곧 그리스도의 것이 되어야 할 운명이 있을 자들을 위해

조금은 더 현명히 세상에 적응해 나가야 하는

'그리스도의 것의 처세술'을 익혀야 할 때도 있다.

이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너무 너무 힘든 일이 맞다.

그러나, 그럼에도 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것'이 맞다.

그 사실이 나의 인생을 유지하게 해 준다.

그 사실이 나에게 은혜다.

은혜가 너무 은혜로와 그 은혜로 에너지 삼아

난, 세상을 산다.

그 평강이 너무 평화로와 그 평강을 거처 삼아

난 , 세상에 내 몸을 담글 수 있는 힘이 되고 있다. ^^*

 
 

  
14.  헬라인이나 야만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빚진 자라  
15.  그러므로 나는 할 수 있는 대로 로마에 있는 너희에게도 복음 전하기를 원하노라 
  그런데 정말 부러운 것은

사도 바울님의 그 보다 더 강력한 자기 인식이다.

자기 정체감이다.

그 분은 1절에서 '복음을 위해 부름'을 받은 자로 선언하고 있다.

또 '복음에 빚진 자'라 하고 있다.

 

 이 복음.

이 복스러운 소식,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인하여

누구든지 천국에 들을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다는

이 거부할 수 없이 복이 있는 이 놀라운 복음을

타인 모두에게 전하는 자되어 산다는 것.

그것이 '예수그리스도의 것'이 된 우리 들 모두가

그 분 그리스도께 빚을 진 것 아니던가?

그러나, 모두가 그런가?

아니다.

나 만해도 그렇다.

기회가 있을 때만

마음이 동할 때만 '전도'한다.

거기에는 빚의 개념은 전혀없다.

의무라는 생각도 않는다.

해야할 당위성 조차 생각하지 않는다.

그냥, 가끔 기분내킬 때 , 번뜩 생각날 때 ...그런다.

솔직히 해야하는 이유는 안다.

그것이 내 삶을 윤택하게 할 것도 안다.

주님의 명령이기에 그러한다는 너무도 당연하고 단순한 이유를 떠나서도...  
 
 
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그럼에도 '전도'를 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이던가?

게으름이다.

난 안된다는 자신없음이다.

자신없음은 믿음 부족이다.

무엇에 대한 믿음 부족인가?

 

 일단은 '하나님'에 대한 그것일 수 있다.

그 분이 지금도 살아계셔서 운행하시는 그 사실에 대하여

이제는 비록 아주 약간이긴 하지만 그래도 잊어버림 탓일 수 있다.

 

 또한 '타인'에 대한 믿음의 부족함이다.

그들 모두 나와 마찬가지로

'구원 받을 가치와 자격'이 너무나도 많다는 사실에 대하여

믿지 못하는 것일 수 있다.

달리 말하면 '인간에 대한 절절한 사랑'의 부족 탓일 수 있다.

그것은 아주 오래된 역기능의 소산일 수 있다.

타인에 대한 묘한 거부감.

이제 그것은 사실이 아님을 안다.

그럼에도 그런 성향이 오래 남아 그럴 수 있다.

타인을 믿음을 회복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에 대한 믿음 부족일 수 있다.

'나란 인간이 과연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로 부터 시작하여

'내가 전하는 것을 과연 남들이... ' 라는 낮은 자존감이다.

그것은 자신이 주님의 사랑을 받아

그 분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실 만큼 나를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믿지 못하는 것이다.

 

 나.

말씀 묵상을 오래하면서 많은 부분 회복이 되었다.

하나님에 대한 사랑 ,

하나님의 나에 대한 사랑에 대한 믿음.

하나님이 내 이웃 역시 똑같은 사랑으로 사랑하시고

내 미워하는 자들을 위해서도 역시 십자가를 지셨다는 사실을

이제는 이해하면서도 깊이 믿지는 못하고 있는 것같기는 하다.

그 부분.

이제 주님께서 '믿음에서 믿음으로 '라는 말씀으로

나에게 하나하나 짚어가기를 바라시는 듯하다.

 

 8월 중순에 주일날 강의를 해 달라는 목사님의 부탁의 이유는

'큐티를 통한 삶의 반전'이 주제다.

난, 그 부탁을 받고 기도하면서

그 분이 나에게 부탁하신 이유에 대하여 생각해 보았다.

그 분은 나의 외적인 변화를 보고

내면적 성찰을 관찰하고 계셨지만

그 분의 마음에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것은

나로 하여금 '세상을 살면서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것'에 대한 방법론

뿐 아니라 그 분이 살아계셔서 이 땅에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선택한 자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아주 작은 모델로서

나를 택하신 것이시다라는 느낌이다.

그게 무얼까?

그것이 무엇이기에 나에게 저런 기회를 주셨을까.. 하는 것을 깨닫도록 기다렸다.

 말씀 앞에 서려는 노력을 시작한 이후 나의 변화는 이러했다.

1.심경적 변화다.

 부정에서 긍정으로

 의무에서 사랑으로

 어두움에서 밝음으로 .

 평강과 은혜로..........

 

2.  능력의 개발이다.

 트럼펫이 불리고

 기타가 쳐지고

 사진이 찍히고

 글이 써지고

 찬양 리더로서의 경험,

 아이디어가 솟아나고...

늦은 나이임에도 오랫동안 수술해도 버틸만한 체력 (디스크 있음에도 문제 안될 정도로.ㅎㅎ )

 특별히 배우지 않았지만 하나님의 일을 증거하기에는 비교적 넉넉할 정도로 개발되었다.

 

3. 영감이라는 이름의 깨달음들의 연속

 은혜와 평강이라는 현상을 동반해오는..

 

4.  인생관의 변화

 내 삶의 의미가 뚜렷해짐

 주님의 영광 위해.........................

 그 안에 '전도' '선교' '찬양' .. 어떤 것이든 배제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지금 바라기는 주님이 인도하시면

 내나이 조금 더 들어 내 의료 사업- 사업이다- 하면서 책 등을

 내고 수익금으로 일년에 몇개월 단기 선교 했으면 한다.

 단, 주님의 시간이고 주님의 때이다.

 절대로 앞서지 않을 것이고 슬슬 기도하고 있다

 

 

5. 삶 형태의 단순화

..느림이다.

 남들은 투자다 좋은 것이다 할 때 '무소유'의 개념이 생기고

 천천히 다니면서 꽃을 찍고 생각을 하는 쪽으로 바뀌어 간다.

 오래된 옷을 입고 차를 두고 걸어다닌다.

 내가 원한 것이 아니다.

 주님의 기쁨을 표현하는 사진을 찍고, 묵상하다보니 아침이 맑아 보여 그렇게 변했다.

 

6. 삶 행태의 변화.

 수술 기법의 비약적 발전과 소득의 증가

 비교적  덜하던 공부를 통해 '논문'쓰는 의욕의 증가

  자신감이 생기고 삶에 여유까지 주님이 책임져 주신다.

 그분은 이론상이고 단지 개념적인 분이 아니시다.

 통합적인 분이시다.

정말이다.

 살아계신 분이시다.

 자식들과의 관계가 많이 호전되었다.

 아이들, 특히 큰 아들이 놀랍도록 변했다.

 둘째도............

 

7.  살아가는 이유가 뚜렷해짐.

 나에게 주어진 모든 현재는 주님의 말씀 전함이고

내 인생의 목적은 '인격의 변화'에 있다.

 틈나면 말씀 전한다.

틈나면 찬양한다.

그 모든 이유가 내 가진 기쁨, 내 말씀 앞에 섬으로 얻어진 이 기쁨,

주님의 살아계심을 전하는 것이고

난 그 과정에서 주님의 기뻐하심으로 성화되어간다.

 

 그렇다.

난 예수 그리스도의 것이다.

그것이 맞다는 것을 확실히 깨닫기 까지는 시간이 오래걸렸다.

그리고 난 점차로 뚜렷해져 가고 있다.

내 삶의 목적

내 사는 하루하루의 해야 할 일.

그리고 그 궁극적 끝의 환희..........

 

가끔은 흔들린다.

내가 열심히 추구해오는 이런 것들이 혹시.. .라는 의구심으로 흔들릴 때도 있고

잘못하고 나서는 그 죄의 여진으로 흔들릴 때도 있다.

하지만 말씀 앞에 설 때마다 주님은 이렇듯

또 한번 나를 붙드시고 놀라운 은혜 가운데 서게 하신다.

살아계신 그 하나님이

오늘 특별히 나에게

'주하인 너는 세상의 것이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것

바로 내 것이다.'라 하신다.

그 하나님이 참으로 기쁘다.

살아계셔서 얼마나 기쁜지 모른다.

 

 

 

적용

 

1. 성경 세장 읽겠다.

 

2. 전도하겠다.

 여유가 닫는대로 주님 말씀 전한다.

 

3. 나의 주어진 모든 환경은 주님의 뜻 안에 있다.

  난  주님의 것이다.

 

4. 기뻐한다.

 난 주님의 것이다.

 

5. 화 내지 않겠다.

 난 주님의 것이다.

 

6. 두려워 하지 않겠다.

 힘들어 하지 않겠다.

 난 예수 그리스도의 것이다.

 

기도

 

주님

귀하신 주님.

오늘 흔들리려는 제 마음을 또 이리 잡으십니다.

어떤 일을 맞이하게 되면

늘 실패하는 상상이 밀물듯이 밀려와

그 중압감에 포기하거나 가슴 앓이 하다가 겨우 하는 경우가 다 반사였습니다.

다른 사람은 어떤지 모르지만 전 늘 그래왔었습니다.

그래서

삶이 그리 힘이 있질 못했었습니다.

이제 조금은 내 반응이 달라짐을 느낍니다.

그래.. 하겠습니다.

그리하고 합니다.

그 변화 후의 다가오는 실패의 생각들에

주님께서 도우실 줄 알기에 믿음이 생기었기에 그렇던듯합니다.

역시 주님은 말씀으로 그러십니다.

난... 예수그리스도의 것이라고..

그것을 믿게하십니다.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는 체험을 시키시려

하나하나 변화시키는 것만 같이 느껴집니다.

살아계신 아버지께서 변화를 위하여

오랜시간 기다리면서 인도하시는 듯한 느낌이 듭니다.

감사합니다.

제 삶의 방향을 점점더 뚜렷이 해주시고

그 삶 속에서 흔들릴 때마다 이렇게 잡아주시고 답주시고 기뻐해주시고 인도해주시니

그 얼마나 놀라운지요.

하나님 아버지를 찬양합니다.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것이

감사하며 감격하여 기도하였습니다.

아멘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