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모든 걸 주님 앞에(시39:1~13) 본문
2007-03-16 시편 (Psalms) 39:1~39:13
1. 내가 말하기를
나의 행위를 조심하여 내 혀로 범죄치 아니하리니 악인이 내 앞에 있을 때에 내가 내 입에 자갈을
먹이리라
하였도다
아마도 연단을 통하여
주님 앞에서 옳은 것은 말을 조심하는 것임을 깨닫고 있는 상태인 듯하다.
그래서 침묵을 하기로 결단을 했을 것이다.
오늘 외워야할 구절이 될 듯 싶다.
" 나의 행위를 조심하여 내 혀로 범죄치 아니하리니 악인이 내 앞에 있을 때에 내가 내 입에 자
갈을 먹이리라 "
난 당위성을 많이는 느끼지만 악인이라고 느껴지는 - 더더구나 문제는 악한 자라고..자주 느낀단 것이다
^^;;;-경우는 말을 많이 하게된다.
변명, 질타..
2. 내가 잠잠하여 선한 말도 발하지 아니하니 나의 근심이 더 심하도다
부러운 다윗님의 의지와 인격.
잠잠한 게 성공은 했다.
나와는 다른 분.
그러나
그 분의 속이 동감이 가는 것은 선악을 구분하여 자유스레이 침묵과 공감을 해줄 마음의 흐름이 자유스럽지 못하다는 것으로 보아 이 분 역시 삶이 평탄치 못했고 성장기에 사랑을 받고 크지 못했음을 쉽게 추정할 수 있다.
실제로 그는 형제들에게 왕따를 당하고
식구들의 잡일을 모조리 돌보며 사무엘 선지자가 도착했을 때 조차도 광야에서 양을 기르고 식구들에게 잊혀진 존재였었다.
이걸 보면서
성경 속에 인간의 속내의 흐름을 느낄 수 있도록 해주시는 주님의 살아계신 말씀과
수천년을 지나서도 사랑이 인간이 온전하게 살기 위한 불변의 진리이며 하나님의 좋아하시는 가장 선한 덕목일 것이라는 짐작과,
성장과정의 혼란은 일생을 뒤흔들 여지가 많다는 것,
주님을 모르는 자들의 삶의 뜨거운 고통, 삶이 곧 지옥일 수도 있겠다는 추정을 하게 된다면 이게 지나친 생각일까?
어찌되었든 다윗님의 신앙인격이 다져지는 과정 속의 그 분의 혼란을 목도하게 되니 참으로 흥미로운 묵상이 아닐 수 없다.
그분은 이러한 주님의 깨달음과 곤란을 통하여
시므이가 돌을 던질 때도
사울이 눈 앞에서 끙까를 할 때도 자신을 억제할 수 있는 신앙인격으로 성장하고 있는 것이 자뭇
흥미롭다.
3. 내 마음이 내 속에서 뜨거워서 묵상할 때에 화가 발하니 나의 혀로 말하기를
이것을 보라.
'내 마음이 뜨겁다.'라는 표현이 어찌 이렇게 속속들이 이해가 가는가?
화가 발한다는 말이 어찌나 이리 친숙히 느껴지는가? ㅎㅎㅎ
자주 화가 나본 고수급 화 소유자로서(^^;;) 시편에서 내 속을 이렇게 절묘하게 표현된 구절이 나올 줄 미쳐 몰랐다.
그것도 참으로 닮고 싶은 다윗님의 입에서 이런 절제 못하는 속내의 표현을 들으니 통쾌하기도 하다.
그러나,
위에서와 마찬 가지로 나와 다른 점은 이것이다.
(아니다. 실은 요새는 조금은 닮았다.)
화가날 때, 마음이 무너질 때 난 그냥 멍하니 있었었다.
다윗님은 묵상하고 있다.
닮아야 한다.
화가 나도
힘이 들어도
주님의 말씀을 죽도록 묵상해야 한다.
그것 만이 영혼이 살고 인생이 펴지고 인격이 펴질 유일한 기회이다.
잊지말자.
4. 여호와여 나의 종말과 연한의 어떠함을 알게 하사 나로 나의 연약함을 알게 하소서
그러면서 다윗님은 화가 나고 힘이 들때
주님께 인생의 덧없음을 잊지 않도록 해달라고 기도한다.
5. 주께서 나의 날을 손 넓이 만큼 되게 하시매 나의 일생이 주의 앞에는 없는 것 같사오니 사람마다
그 든든히 선 때도 진실로 허사 뿐이니이다(셀라)
6. 진실로 각 사람은 그림자 같이 다니고 헛된 일에 분요하며 재물을 쌓으나 누가 취할는지 알지 못하
나이다
NIV에는 나의 날을 (단지) 손바닥 넓이 만큼... 이라고 '단지'라는 단어가 하나 더 들어 가 있다.
그렇게 해석하니 훨씬 뜻이 명확해 진다.
윗 구절에서 인생의 덧없음을 더욱 강하게 표시 한 것이다.
영원 앞에서 인생이 겨우 손바닥 하나로 눈을 가리는 정도의 넓이도 되지 않을 순간의 시간이 되는 것을
사람마다 스스로 든든히 서있다고 착각을 하거나 힘들 때 다윗님 처럼 한없이 긴 것처럼 착각을 해서 원망과 화를 자제하지 못하고 그 짧은 인생을 허비하는 일이 생기지 않는가?
누구에게나 삶을 영위하는 자들에게는 다 그렇다.
그래서 그 분은 '든든히 선 때도' 라고 표현하고 있는 이른 바 든든히 선 것 같이 착각할 만큼 잘 나가는 사람조차도 진실로 그것은 허사라고 표현하고 있다.
비단 억울하고 힘이 들어 견디기 힘든 사람에게도
잘나가서 영원히 단단한 반석에 서있을 것 같은 세상 성공자의 경우도 헛된 일을 하는 것이고
주님 앞에 서 있는 시간은 '손바닥 넓이' 하나도 되지 않을 찰나적 순간인 것을
잘난체도 화난다고 흥분할 일도 없다는 것이다.
문제는 다윗님께서 이것을 형통하고 은혜 받을 때 주님이 주신 순간적인 지혜로 자신의 성화의 정도를 업그레이드 시키는 중이 아니고 억울해서 화가 날 때 주님을 묵상하는 의지를 발휘하고 자신의 주님 앞에서의 결단인 침묵을 아직까지는 유지하고 있는 몸부림의 과정 중에서 주님께 그렇게 느끼게 해달라고 바라는 간구성 기도의 산물인 것이다.
7. 주여 내가 무엇을 바라리요 나의 소망은 주께 있나이다
그것이 머리 속의 상황이 아니고
화로 인하여 마음 속까지 내려 오지 못하는 상황이 아니고
주님의 은혜가 겹쳐져 영혼 깊숙이 까지 내려오면
그게 한단계 더 성장한 아비의 단계의 다름이 아니다.
세상의 것을 바랄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그것은 세상의 유혹으로 부터 한 걸음 떨어져 초연한 상태이다.
세상이 아무리 흔들어도 화가 나지 않는 상태이다.
세상에는 소망이 하나도 없음을 자연스레이 받아 들이고 있는 상태이며
이제 땅에서 찾을 위안이 대상이 없음으로 인하여 자연스레이 눈을 위로 들어 올리게 되는 상태이다.
그러한 후 주님께만 소망이 있음을 알고 기뻐 두손을 올리는 상태이다.
주여 나도 이러하게 고백하고 싶습니다.
머리로 아는
막연히 마음으로 짐작가는 상태에서 벗어나
나의 소망이 우리 주께 있음을 고백하는 다윗님의 그 마음을 닮고 싶습니다.
화가 나도 행위 조심하고 입을 자갈 물리는 노력하다가 주님을 향해 자신도 모르게 눈을 돌리고 묵상하며 소망이 주께 있음을 깨달은 다윗님의 그 맘을 그대로 닮길 원합니다.
나의 소망은 오직 주께만 있습니다...
8. 나를 모든 죄과에서 건지시며 우매한 자에게 욕을 보지 않게 하소서
이제 깨달은 후 현실에 접목시킨다.
원치 않던 죄과에서 회복되기를 원한다.
화를 나게 하는 원인인자가 아직도 상존해 있으므로 어찌되었던 피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을 주님께 부탁드리는 것이다.
소망이 주님께 , 하늘에 있음을 알고 나서도
땅의 유혹과 도발을 잘라 달라는 부탁을 해야 하는 것이다 .
그것 역시 주님께다.
9. 내가 잠잠하고 입을 열지 아니하옴은 주께서 이를 행하신 연고니이다
주님
저도 다윗님 처럼 입을 열지 않게 하소서.
입을 열지 아니함도
주님의 이유임을 알기 원합니다.
10. 주의 징책을 나에게서 옮기소서 주의 손이 치심으로 내가 쇠망하였나이다
11. 주께서 죄악을 견책하사 사람을 징계하실 때에 그 영화를 좀 먹음 같이 소멸하게 하시니 참으로
각 사람은 허사 뿐이니이다(셀라)
회개할 것이 남아 있으면 회개한다.
12. 여호와여 나의 기도를 들으시며 나의 부르짖음에 귀를 기울이소서 내가 눈물 흘릴 때에 잠잠하지
마옵소서
13. 주는 나를 용서하사 내가 떠나 없어지기 전에 나의 건강을 회복시키소서
주여.
적용
1. 입을 다문다.
침묵한다.
억울한 일 당해도 참는다.
2. 화가 나도 묵상하겠다.
가슴이 타 들어 가는 증상이 있어도 오늘 묵상의 다윗을 생각하겠다.
3. 모든 걸 기도로 주님께 알리겠다.
4. 내 삶이 일순간 임을 묵상한다.
지나온 시간들,
앞으로 올 시간들..
영화를 누리다가 스러져간 역사의 인물들, 그들의 화려했고 무한 할 듯했던 시간들을 묵상한다.
박정희 유신 시절의 시간, 전두환... 아무것도 남은 것이 없다.
5. 다윗의 사랑 회복에 대하여
6. 내 현실적 문제를 해결 해 주시길 기도한다.
자꾸만 되풀이 되는 내 죄를 차단시켜 주세요.
건강도 회복시키시옵소서.
7. 모든 것을 주님 앞에 가져올 것임을 명심하겠다.
기도
주님
아침에 다윗의 인간적 심성에 대하여 드러내어 보여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아침 출근 시간이 참으로 감미롭습니다.
하나하나 어찌 이렇게 이해가 가게 하시는 지요.
오늘은 특별히 다윗님의 막내로서 성장기의 어려움이 그냥 그를 그대로 지나가게 만은 하지 않았음을 느끼게 해주십니다.
버걱거리는 감정의 흐름을 보면서 아주 조금이지만 그에게도 주님의 말씀을 내적으로 성화시켜 그 인격 깊숙히 받아들이는데 어려움이 있을 것이었음을 짐작케 해주십니다.
그가 어찌 왕으로 기름 부음을 받고 이십년 간 그 고통을 받았는지 역으로 이해가 가며 끄덕여 지기도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 영접하고나서도 오랫동안 큰 변화 없이 되풀이 되는 저의 부족함에도 좌절보다는 힘이 나게 하심을 느낍니다.
아울러 오늘 하루 살아나갈 말씀의 지표를 주심을 참으로 감사드립니다.
다윗님 처럼 입술을 닫고 잠잠히 지낼 수 있도록 도와 주십시요.
그리고 억울해도 주님 앞에 나가 모든 것을 내려 놓을 수 있기를 소원합니다.
화가 나고 가슴이 타는 듯 뜨거워도 머리 속이 뒤죽 박죽이어도
도저히 집중할 수 없을 것 같은 혼란이 있어도
주님 앞에 나아가 이 인생의 덧없음을 묵상하게 하소서.
일 순간의 삶의 부질없음을 묵상하게 하소서.
그리하여 그것이 누구나 되풀이 하는 앵무새 같은 의미없는 소리의 소치가 아니고
진실임을 잊지 않고 가슴깊이 받아 들여
세상의 덧없음을 단단한 터로 알고 살아가는 자들에 대하여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주시옵소서 .
예전과는 다른 삶을 허락 하소서.
한단계 성장한 삶을 허락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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