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내 인생의 단 (22:21~34) 본문
2006-12-21 여호수아 (Joshua) 22:21~22:34
26. 우리가 말하기를 우리가 이제 한 단 쌓기를 예비하자 하였노니 이는 번제를 위함도 아니요
30.이스라엘 천만인의 두령들이 르우벤 자손과 갓 자손과 므낫세 자손의 말을 듣고 좋게 여긴지라
31. 우리가 오늘날 여호와께서 우리 중에 계신 줄을 아노니
난 무슨 단을 쌓고 있는가?
주님을 위한 단은 맞는가?
맞다면 어떤 것인가?
단이 없다면 왜인가?
혹시
주님을 위한 이름으로 하는 모든 것을 단이라 한다면
그 단이 남에게 아픔은 주지는 않고 있는가?
남들의 소리에 너무 민감하여 단을 쌓길 주저하고 있지는 않은가?
르와 므지파 사람들 처럼 당당히 자신의 의견을 밝힐 수는 있는가?
그걸 이해해줄 마음의 여유는 있는가?
혹시 그 단이 인간의 눈에만 좋은 것은 아니지 않은가?
인간 모두의 눈에 좋고 서로 이해가 되고 화합이 되어도 여호와의 보시기에도 그럴까?
오늘 보이는 모든 지파들의 찬양처럼 여호와의 기쁨으로 기뻐할 수 있을것인가?
특별히 오늘 묵상은
내 '인생의 쌓아야 할 단'에 대하여 이다.
주님 앞에 올바르고
남들에게 상처를 주지 않아야 할..
그러나
주님의 뜻과 인간의 논리가 마주치는 지점에서
주님의 뜻을 선택해야 하며
그 과정의 예상되는 표면적 갈등은
성의를 다한 태도로 화합을 일구어야 하는 것이다.
적용
1. 우리 직장이 세울 올바른 단을 위해 기도하자
2. 단을 두고 기독교인 내의 갈등의 화합을 위해서 기도한다.
3. 내 단에 대해서 점검한다.
4. 마음의 걸리는 부분들 내어놓고 기도한다.
기도
주님이시여.
감사합니다.
주님 위해 단을 쌓고싶습니다.
그일이 가능하면 주님과 사람보기에 모두 어긋난 방법이 아니었으면 하지만
주님이 원하시면 그래도
주님을 따를 수 있는 용기를 원합니다.
아니
지혜를 먼저 원합니다.
주위에서 보는 왜곡된 사람우선 주위에 빠지지 않을 지혜 말입니다.
이 땅의 소원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고
주님 계시는 그곳을 향해 끝까지 소원하는 그러한 단을 쌓기 원합니다.
주여 도우소서.
생길 수 있는 갈등은
주님의 영광을 위하여
그대로 참아낼 수 있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최대한 주님의 영광을 위하여
은혜 가운데 화합을 이루어 내기를 원합니다.
주님의 영광을
기쁨 가운데 안도함으로 같이 찬양할 그런 제가되길 원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구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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