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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온전한 믿음과 고침 받음(마12 :15-21 )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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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온전한 믿음과 고침 받음(마12 :15-21 )

주하인 2010. 1. 30. 10:55

 제 12 장 ( Chapter 12, Matthew )  흐름을 모두 다 고치시다(마12 :15-21 )

 

주님 가신길 따라

쭉 나가렵니다

참으로 어리석어

발걸릴 때

주님 붙들어 주소서

 

주님 예비하신

그 나라

제 앞에 이를 때까지

 힘을 주소서.

인도하소서

 

곧 오실

주님 예수님

재림 나팔 소리

재림을 알리는 기적 소리

기대합니다

  

 

 

 


15.  예수께서 아시고 거기를 떠나가시니 사람이 많이 좇는지라 예수께서 저희 병을 다 고치시고 
 예수님은

모두 다 고치신다.

어느 때라도 고치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에

병을 고치음 받은 자가 많지 않은 이유는

그들의 믿음 탓이다.

아니.. 어쩌면

누구나 다 가지고 있는 간증을

주님이 하셨을 것이란 믿음을 잃었기에 그런 듯하다.

 

 

간증이 많다.

불면증, 예수님 영접하는 그 즉시 없어졌고

담배 , 3년만에 끊겨져 버렸고

두통, 어느샌가 없어졌고

가슴 뛰고 자다가 헉헉거리며 일어나는 것, 정말 모를 때 없어졌다.

가슴이 아픈 것도........

 

 참 돌아보면 신기한 게 많아도

어쩌면 그 신기한 것을

내가 주님의 기적으로 '정말 믿느냐 ' 물어보면

입으로는 백번 다 '확실하다'면서도

, 아니 점차로 확신의 마음이 커지면서도

이상하게 내 속 깊은 곳에는 자꾸만 잊어 버리고 있다.

정말 그 분이 하셨음을 확실히 믿는다면

100% 내 일생의 삶이 걱정하나도 없어야 하고

아니.. 늘 기대하는 맘으로

아이처럼 눈 반짝 거리면서 살아야 할 것을

그렇지 못한 것을 보면

내 속에는 '어쩌면 그것은 내 착각일지도 몰라'라는

막연한 의심이 있기에 그런지도 모른다.

 비단 나뿐일까?

세상의 어느 누구는 안그럴까?

 

 이 '믿음'과 '의혹'과의 줄다리기에서

어느쪽으로 조금 더 치우쳤느냐가

그 사람을 '신앙적'이고 '영적'이냐

아니면 '즉물적'이고 '비 영적'이냐를 결정하는 것 같다.

 

 수개월

주님의 인도하심에 따라 전혀 흔들리지 않고

또한, 잘 인내하고 나서

요 며칠 흔들린다.

 아이들에 대한 '하나님의 섭리하심'에 대하여서......

 작은 아이는 며칠 전부터 글을 썼다 시피

주님의 인도하심에 잘 맡기고 추스려 가고 있지만

큰 아이에 대하여서

갑자기 흔들린다.

 세세한 것에서 부터 걸린다.

다시 옛날에 내가 그 아이를 보던

그 냉랭한 눈으로 보는 것처럼

사사건건 걸린다.

 변화없는 아이(아니다, 나이든 청년이다.)

들어가는 나이.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좌절하려 한다.

그러다 보니 하나하나 또 , 거슬리는 부분이 나타난다.

당황스럽다.

왜 그런가?

가만히 분석해 보았다.

 스스로 내가 또 조정하려는 '통제의 욕구'가 올라옴이다.

'이렇게 저렇게 해라.. 할 때 잘 따르면 좋을 것을.. '

'저렇게 시간을 보내면..  장래가.. '

그러나 아이와 벽이 있다.

'벽'은 이제 두꺼워 아이가 해결하고 부수지 않고는

더 이상 어찌할 수 없다.

그러나, 아이는 어리석게도 내 눈에 과거의 틀에서 나오지 않으려 하는 것같다.

그리고는 무대책으로 지금처럼........

 

그런 갈등이 또 일어나는 것이다.

  그것은 다시 분석해 보면

 '내 문제'' 내가 어찌할 수 없는 문제'의 충돌이다.

'내 문제'는 내가 기대치를 다시 높이어서 생기는 것이다.

아직 시간이 많고

시간의 조정자이신 주님이 하실 것을

내가 움직이려 하고 내가 어찌하려하는 마음에서 생기는 것이다.

내가 중심이 되어

내가 존중 받고 내 마음에 맞지 않는 것에 대한 당황에서 생기는 것이다.

주님 앞에 내려 놓고 회개할 문제다.

내 노력이 들어가야 할 문제다.

이 문제에만 내 의지를 발휘해야 한다.

잘못한 내 문제에만 내가 회개해야 한다.

'내가 어찌할 수 없는 문제'는 말그대로 내가 어찌할 수 없는 문제다.

그냥 기도하고 내려 놓을 수 밖에 없는 문제다.

전적으로 주님이 어떻게 해야할 문제다.

내가 어찌 해서라도 움직이려는 노력은 '금물'이다.

아들과의 문제.

나의 문제는 내가 노력해야 한다.

내려놓고 회개하고 고치시도록 기도해야 한다.

 아들 자체의 문제.

주님이 하실 영역이다.

그냥 기도할 뿐이다.

 그나저나 저 간극을 깨닫고 메꾸기가 쉽지 않다.

혼선이고 뒤죽박죽이 되려한다.

참 오랫동안 기도하고 말씀 앞에 내려 놓으려는 노력으로

이제는 되었다 했지만

나도 모르게 내 속에서는 익숙한 옛마음이 올라오려는 것이다.

비단, 아들과의 문제 뿐이던가?

모든 일에서 그럴 소지가 없지 않다.

 더 깊은 속은 어떠한가?

날 저항하고 반항하려는 자라 판단되는 상황에서

냉정해지는 것.

내 문제는 주님이 치유하시어야 한다.

깨닫고 결심해야 한다.

 더 열심히 낮출 것이고

더 나의 낮아짐을 기뻐할 것다.

더 '배려'를 선택할 것이다.

 내가 해결할 수 없는 상대의 문제는

'받아 들일 수 밖에 없다. '

그리고는 주님이 고치시도록 기도할 수 밖에 없다.

 

 토요일.

오전 근무 마치고 퇴근 전

시장해서 식당에 내려가  점심을 먹는데

인턴 하나가 옆에 와 앉는다.

'J선생 잘지내?'

'아닙니다.'

'왜"

' 온통 부딪치네요..'

'누구랑...환자랑?

 이곳 지역이 사람들이 좀 거칠지?

 응급실이라서 더 그럴거야..'

 ' 환우 뿐 아니라 ...'

'그래서 레지던트를 그 과로 선택한거야?'

' 예.. 그런 면도..'

' 피하는 거네.'

' 예... '

 '잘 생각해봐...

 교회는 다니지? '

 '예.'

...........

 차분하고 좋은 친구인데 아픔이 있나보다.

 사는 곳 어디에나 갈등은 있다.

 

 진료 중

출혈이 오래간다면서 내원한 중년 여성.

검사상 이상은 없다.

의심이 많고 묻는 것이 많다.

'어머니.. 부정자궁출혈 예요

 이유없이 나오는 ...

 많이 스트레스 먹어도 나와요.

 의사말 믿고

 가만히 기다리면 좋아지는 경우 많아요.

 제가 믿음을 좀 주지요? ㅎㅎ ' 했더니 그렇단다.

 그래서 '믿음'을 주제로

성경말씀을 속사포처럼 쏘아대면서

양자의학까지 들이대며

믿음의 중요성에 대하여 갈파했다.

그리고는

' 예수님 믿으시면 훨씬 좋아질 확률이 많답니다.' 하니

뜬금없이 남편에게 '스트레스 ' 이야기 좀 해주란다.

그래서 농담 삼아 '예수님 믿겠다면' 해주겠다니

그러란다.

'할렐루야'

 두분은 만족하고 돌아 가신다.

 

 반가운 환우가 들어오신다.

열심히 신앙생활하며 날 기뻐하시는 분.

배가 아프다고 오셔서 진료하고 나니

아무렇지 않다.

 나가면서 사는게 힘이 들고

믿음이 흔들리는 외로움이라신다.

가슴이 찌르르한다.

'참 잘알지..'

속으로 생각이 들면서 아무렇지 않다는 듯

'폐경이 힘든 시기지요.'하면서 보내드렸다.

그 분은 믿음이 좋으셔서 날 감동시키신 분이다.

그래서 곧 자리 잡을 흔들림이라 생각하면서도

가슴이 답답하다.

 부지기수다.

세상엔 '아픔 '덩어리다.

병원에는

육신이 아픈 사람들로 북쩍거리지만

마음이 아픈 분들도 많다.

그 아픔들.

흐름과 이유를 다 알면서도

왜 이리도 엮어져만 가고 묶여져만 가는지...

 

 나.

이전에 꽁꽁 , 그 상처로 묶여 있어

그 안에서 숨도 못쉴때는

내 아픔이 너무 아파 죽을 것만 같고

누구라도 이 아픔을 풀어주길 기대하며

이곳 저곳에 찌르듯 호소하였고

그 찌름으로 가까운 자들 많이 아파했었는데..

이제  주님으로 인하여

한걸음 떨어져 조명할 여유가 생기니

흐름이 보인다.

흐름이 막히면 '아프다'

 아픔은 영적인 것이 먼저일 수도 있고

심리적인게 먼저일수도

육신적인게 먼저 일 수도 있다.

어쨋든 막히면 '아프다'

 그 흐름을 막고 있는 것이 '사단'이다.

 

 우리는 새 생명의 존재다.

십자가 구원에 의한 생명을 얻은 존재다.

'생명'이란 원활히 흐름을 이야기 한다.

 봄에는 푸릇한 새싹이 돋고

여름에 무성하며

가을이 되면 성숙하고 익어가며

그들의 성숙함을 낙엽으로 흩날리다가

겨울이 되면 고요한 休眠으로 들어가는

그러한 '흐름'이 생명의 현상이다.

 지구의 그러한 순환은

인간들의 더럽힘으로 막히고 끊어져

온난화다 새로운 냉각기다...

지진

쓰나미

역병......정신없이 지구적 병이 생기는 것이다.

 아이들은 어떤가?

깨끗해야할 청소년 들 조차

더러운 성병으로 짐작하기 어려울 만큼 감염이 되어 있고

나이든 자들은 '암'으로 죽어간다.

중년 들은 '우울'의 병으로 시들어간다.

그러면서도 문명의 발달을 자랑하고 있다.

 이렇듯 선순환의 흐름이 멈추고

악순환으로 바뀌거나

흐름이 멈추어 버리는 것이 '병'이다.

 

 

병.

 

 주님은

죽이려는 유대인들의 음모를 아시면서 조차

'병'을 고치셨다.

'다' 고치셨다 .

'모두 다' 고치셨다.

왜인가?

흐름을 만지신 것이시다.

흐름을 고치심은

비단 육신의 것이 조절이 되어졌지만

그것을 통하여 '영 육 혼'의 흐름이 완성되기를 기대하신 것이시다.

쉽게 말하자면

그 분은 그 치유행위를 통하여서

고쳐진 그들 자신의 내면의 순환까지 원활케 되어

온전한 구원을 이루시길 기대하시는 것이다.

그것에는

위에

'내 문제' & '내 문제가 아닌 것'으로 구분한 것처럼

내 의지를 발휘할 부분에 발휘하고

기도할 부분에 기도하며

온전한 신앙인의 모습으로 회복되길 기대하신 것이시다.

치유를 통해서 자신을 돌아보길 바라시며

'다 고치신 것'이시다.

 주님은 이땅의 육신의 치유 만을 목적으로 하신 것이 아니다.

온전한 통함적회복.

그것을 통하여 주님 나라에 합당한 자로 되길 바라시는 것이다.

 

아직 온전한 통합은 아니되었다.

아니.. 그것은 어쩌면 시기 상조일 수 있다.

흐름을 완성함은

내 죽어 천국 가기 직전에야 이루어질 수 있는 문제다.

아직도 갈 길이 멀다.

그렇다면

오늘 다 고치신다는 말씀은

나에게

내 문제에 더욱 치중하여

고치다 보면

온전한 흐름이 이루어질 것이고

그것은 아직도 기회가 있음을

희망적으로 말씀하시기 위함일 수 있다는 것이다.

 오늘 내가 필요한 것은

'믿음'이다.

주님이 다 고치실 것이란 믿음이다.

할렐루야

 

 

 

적용

1. 내 문제는 조금 더 주님 앞에 가져간다.

 다 이루어지지 않았다.

 더 고침 받아야 한다.

 다 치유하실 것이다.

 희망이다.

 

2.  내가 해결할 수 없는 문제는 다 내려 놓는다.

 주님이 하실 것이다.

 희망을 내려 놓지 말자.

 기다리자.

아직 갈 길이 멀다.

 내가 할 수 없는 것은 주님이 하셔야 한다.

 

3. 성경 여덟장 읽겠다.

 

4. 오늘 성가대 연습 가겠다.

 오랫동안 일이 있어 토요일 연습 못갔다.

 주님을 위해 가겠다.

 내 작은 정성이고

 모든 일이 주님의 일임을 잊지 않으리라.  

 

5. 다 고치신다 하셨다.

 믿자.

 믿으면 된다.

 내 모든 것,

 아들들 모든 것 .. 다 고치신다.

 

 

기도

 

 기도합니다.

주님

이 어리석은 자 

정말 믿음 부족하고

아직 내적 성숙 부족하여

많이 흔들립니다.

그럴 때 마다 말씀으로 붙들어 주시는

우리 주님이 계셔서 얼마나 기쁜지요.

참 감사하게도

오늘

예언의 말씀

확신의 말씀

위로의 말씀처럼

'다 고치신다.

'다 고치실 것이다. '

'다 고쳐야 할 부분이 있다. ' 하시어서

힘이 되는 듯합니다.

주여.

아시지요?

길게 쓰지 못하고

길게 나열할 수 없어도

주님은 제 속 다아시지요?

주님은 내가 모르는 내 미래 , 과거 현재의 문제... 다 아시지요?

내 자식들..

다 아시지요?

내 주위..

내 나라..

내 지구..

다 아시지요?

다 고치시리라 압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

주님께 의탁합니다.

의지 발휘하여 의탁합니다.

할 수 있는 것, 지혜를 주시고

의지를 주시오소서.

기쁨으로 절 만지소서.

절 위로하시고 붙드시어

제 문제 해결하게 하시고

제가 할 수 없는 것

주님께 온전히 맡겨 버리니

주님 알아서 하소서.

예수님

온전하신 사랑의 이름을 받들어

간절히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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