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주하인아 늘 회개하라(마11:20-30) 본문
제 11 장 ( Chapter 11, Matthew )
아내의 차 속
자동세차기 안에서...
주여
저에게
회개의 영을 주시사
이리 닦아 주소서
제 영혼
주님의 성령으로
이리
깨끗해지길 소원합니다
20. 예수께서 권능을 가장 많이 베푸신 고을들이 회개치 아니하므로 그 때에 책망하시되
권능을 베푸심.
기적을 베풀어 주심
많은 은혜를 허락하심
죽기 보다 힘들었던 삶을 기쁨으로 인도하셨음.
내 한 일과 아무런 상관없이 축복으로 이끌으셨던 일.
늘 실패와 좌절로만 예상되었던 미래가
훨씬 부드럽고 성공으로 이끌려던 일.
.......
이 모든
값없이 받아졌던 축복이
'회개'를 위하여 주어졌음을
다시 한번 깨닫게 하신다.
회개란 무엇인가?
돌이켜 변하는 것.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치 않은
내 속의 더러움이 얼마나 아직도 많던가?
비록 강도는 줄고 빈도는 잦아 들었지만
순간만 되면 튀쳐 나오려 하는
마귀적 속성
사단의 속성이 얼마나 많은가?
이 것들로 부터
다 돌아 앉기 까지는
그래서 하나님 나라에 합당한 인격으로 변하기 까지는
갈길이 아직도 멀다.
그러기에 주님은 나에게 '축복'을 허락하셨고
권능을 허락하셨으며
앞으로도 더욱 그러하실 것이란 것이다.
회개.
생각만 해도 답답해진다.
28.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하지만, 짧지 않은
그렇다고 길지도 않은 내 10여년의 신앙생활도중 느낀 것은
주님 앞에서의 '회개'는
나에게 가벼움을 의미한다.
홀가분함을 의미하고
쉼을 의미한다.
보라.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라 하시지 않는가?
무거운 짐진 자는 무겁다.
발걸음 옮기기도 힘들다.
그래서 십자가.
그 무거운 주제.
그 앞에 나가기는 더욱 힘들다.
사단이 주님 앞에 나가서 회개하는 것을 그냥 두겠는가?
일어날 힘 조차 엎을 때도 많았다.
하지만 그럴 때 마다
주님은 '권능'으로 날 이끄셨다.
말씀으로 날 잡으셨다.
그래서, 주님 앞에 나가기만 하면
그것은 풀림을 의미했다.
상황의 결과와 조건에 상관없이
내 내부는 평안을 허락받았다.
그게 '쉼'이다.
그게 '평강'이다.
그래서 난 더 힘을 내 나갈 수 밖에 없었다.
행복하다.
회개의 원리를 알기에..
누구나 알수 있는 말씀이지만
누구도 쉽게 체득할 수 없는
십자가 앞
회개의 원리에 대하여
그 놀라운 심령천국의 비밀을 눈치채이는 자 많지 않기에
그런 말씀의 진실에 대하여 아는 나는 행복하다.
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30.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회개.
그렇지만
이 단어는 생각만 해도 마음이 무거워진다.
고리타분하다.
상처가 많았던 나는
자꾸만 과거를 들추어 봄은 고통이란 말과 다름없다 .
내 진실을 다가가기에는
머리가 아프고 심장이 뛰는 일이었다.
나 말고도
세상의 자유로움,
아니 방탕함 - 지금은 그렇다. 방탕이 맞다. 내 진료실에는 더욱 증거가 많이 보여져 간다. 점차로 더... - 은
회개라는 단어조차 꺼내기 힘들게 만든다.
점점 더.. .
그들은 쉽고 편하고 즉물적이고 육신적인 것만 필요로 한다.
복잡한 생각은 그들에게는 '죄'다.
우리는 아니라 생각하지만
세상의 풍조는 많은 기독교인들에게도
생각의 틀을 바꾼다.
그게 '회개'를 힘들게 한다.
그러나 '회개'는 돌아앉음이다.
완전히 죄로 부터 벗어나 앉음을 의미한다.
그러기에 천국을 가기 위해서는
'회개'는 절대절명의 의무다.
그래서 위에서 언급한 대로
회개를 하기 위함은
멍에를 짐같은 힘이 듦이 따라온다.
무거운 짐 진자가
근육이 풀린자가
죄의 질질 매달림을 받는 자가
십자가 앞에 나오기 쉬울 것인가?
그러기에 주님이 권능을 주시면서
이리 말씀하시지 않는가?
'나의 멍에를 지라.
단, 그 멍에는 쉽고 가볍다.'
아들 면회에 다녀왔다.
며칠 전 월요일
정말 바쁜데 얼마전 면회 했던 아들이
또 면회 오란다.
울먹이며..
안된다하니 거의 애원 수준이다.
이 아들.
순수하기가 말도 못하는 친구다.
거기에 의경,
그것도 군대로 따지면 백령도 보다 더 힘들기로 유명한
'특수 기동단'에 떨어졌으니
그 언어와 보이지 않는 자그마한 육체적 핍박이
아이를 힘이 들어 견디지 못하게 했나보다.
자꾸만 연초부터 몰려오는
문제 문제 문제... 에
조금은 더 성숙하기를 바랐던 아들 둘의 변함없는 반응들.
아내와 나는 중년의 깊은 골짜기.
힘이 들다.
수요일에 제발 와달라는 간곡한 매달림에
혹시나.. 큰일.. 이라는 버거운 생각으로
수요일 수술 을 오전으로 땡기고
휴가원을 내고 다녀왔다.
오전 수술을 부리나케 마치고
최신 복강경 수술에 회복이 급속도인 걸
하나님의 은혜로 감동감동하시는
'터키 선교사'님의
마치 '도사'같은 인자한 모습으로
당신의 간증을 열심히 기쁨 가운데 들어들이고는
서둘러 전철을 타고 가니 3시가 다 되어 도착했다.
가는 내내 기도하려 했지만 집중이 안되었다.
아이의 전화를 받고 답답한 마음을 들고
기도를 하고 성경을 읽던 중 시편인가에
'가족을 방치하는 자는 ... '이라는 구절이 나온다.
아.. 주님이 경고하시는 구나.
가끔 무게가 무거울 때
한번 씩 어딘가 사라졌다 왔으면..하는 생각은
비단 나 뿐 아니라
많은 중년 남자,
특별히 은퇴즈음의 베이비 붐시대 남자들이
겪는 두려움 중의 하나일 것이다.
말씀을 붙들고 잠시 기도했다.
어려웁지만 요새는 그래도
문제를 가지고 십자가 앞에 나가는 것이
그리 어렵지만은 않다 .
탓인가?
많이 편안해지고 안정이 되었다.
수요일 전철에 앉기 까지는
편안한 것이
난 주님이 주시는 '쉼'임을 잘 알고 있다.
걱정을 잊어버리는 '망각'과는 차원이 다르다.
심리적 차원의 방어기제에 의한 망각은
말그대로 멍한 상태를 유발하지만
주님은 '온유하시고 쉬는 쉼'을 주시는 것이다.
전철에는 많은 사람들이 오르 내린다.
안타깝게도 그 좋은 시간을
대부분 'DMB'나 핸폰에 붙들려 즉물적으로 살아간다.
개중에 어떤 할머니는 기독교 서적을 열심히 탐독하신다.
어떤 늘씬한 처녀는 들어서자 마자
성경을 서서 읽는다.
어떤 아가씨는 '존비비어 목사님의 열정'이란 책을 읽다가
어디에나 그렇듯
찬송가를 크게 틀어 놓고 다리 하나 걷고
휠체어 밀고 다니시는 노인이 오시자
읽던 책을 밀어 두고는 호주머니에서 천원짜리와
동전 몇개를 닥닥 긁어 드린다.
넘 사랑스럽다.
왜 이리 이뻐 보이누...
막, 생기려던 비판을 멈추고 나도 호주머니에서
제법 묵직한 동전을 얼른 밀어 드렸다.
사람 들 구경하며 멍한 내 머리를 마취시키다 보니
어느새 기차는 신도림을 도착했다.
걸어서 환승을 하고 거의 다 와가서야
나는 회개의 기도를 집중할 수 있었다.
간구했다.
'주님..
부디 내 입장 보다는 아이의 아픈 가슴을 만지게 하소서.'
아이는 날 너무 반긴다.
생각보다 훨씬 건강하고 튼튼한 모습이다.
아이는 하소연을 하되
조심스럽고 어른 스럽다.
둘째는 다변에다가 대화를 좋아한다.
귀엽다.
연신쳐다보고 만져주고 끄덕거려 주었다.
그것을 기쁜 눈빛으로 받아 들인다.
그 나이에
이 시대에
아버지와 사이 좋은 아들이 - 자기가 늘 하는 말이다 ㅎㅎ - 취할 수 있는 태도로
나에게 기쁨의 눈빛을 쏘아 보낸다.
'아빠, 이상하게 안그러려는 데도
전화해서 엄마 아빠의 목소리만 들으면 눈물이 나오고
울음이 나와요....... 편지를 닳게 읽었어요...'
걱정이 사라지고 안스러움과 사랑스러움과
멘토로서의 책임감만 그득하게 생긴다.
주님이 인도하신 마음이다.
아이의 전화를 받고 며칠동안
많은 분들이 조언을 해주시고
기도해주시고
도움을 준다.
내가 원하는 것보다 훨씬 더 ..............
하나님이 붙들어주심을 느낀다.
아이에게 난 그 하나님의 붙드심을 이야기 했다.
아이는 나에게 그런다.
'힘이 너무 들어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성경읽고 큐티 매달릴 수 밖에 없었어요.
하루에 성경 스무장 읽을 때도 ... '
할렐루야.
고난이 유익이다.
아이와 6시에 헤어지려 나오려니
아이가 따라나오다
' 아빠와 엄마는 네 편이다.
하나님이 그렇듯 ...'
나를 갑자기 '버럭'하고 안는다.
어.. 이건 마치 어른이 아이를 껴안듯이 그런다.
두번이나..
둘째는 막내라서 그런지 그런 감정 표현이 자유롭다.
아버지 학교 허깅 연습이 아이에게 자연스러운 행동을 하게 한다.
그게 좋다.
어색하더니
웬지 가슴이 푸근한 느낌이 들고
눈물이 찡~한다.
내 영혼이 또 한번 쉼을 얻는다.
주님의 뜻으로 인해
아이를 위로 하는 입장이 되어서 와서는
내가 '쉼'을 얻고 가게 되는 것 같다.
계단을 내려 오려 한발 딛다가 돌아보니
아이의 선임들이 둘이 따라오고 있다.
100일이 채 안된 신병들은 면회시 선임이 따라온단다.
의경은 너무 사회에 가까와서 탈주가 많아서 그렇다.
그들을 보니 아이에게 곤란을 주던 선임들로 보이질 않는다.
어찌 그리 선한 아이들로만 보이는가...
돌아서서 선임들에게 악수를 청했다.
' 나.. 의사요. ( 둘째 아이에게 조금 힘을 실어주고 싶은 유치한 의미..ㅎㅎ )
아이가 내 어릴 적이랑 너무 닮은데다 ( 그런 나도 이렇게 되었으니 너희들 내 아들 무시하지 말라는 뜻으로 ㅎㅎ )
어린 나이에 군대를 빨리 보내니
더 마음이 걸려요.
그래서 오늘 갑자기 오게 되었는데
선임님 들께서 신경 좀 써주세요. .' 라니
어쩔 줄 몰라 하다.
잘 될 거 같다.
바라기는 고난은 이겨내야 한다.
주님 말씀을 도구로 그리해야 한다.
말씀은 '권위에 순종'하라 되어 있고
'고난을 주님을 위해 기뻐하라 '고 되어 있다.
그래서 아이가 자신의 영적 성숙의 도구로 고난을 이겨내길 권유하고 왔다.
하지만 뜻이시면
도우시는 분들의 손을 통해 피할 길도 주실 것을 바란다.
하지만 난 부탁을 했을 뿐이고
이룸의 방향은 아이의 기도와 주님의 뜻이 어우러져야 한다.
그것을 확실히 했다.
아이는 충분히 이해하고
나와 교감이 되었다.
그게 포옹으로 화답된 것이다.
돌아올 때는 한결 마음이 좋다.
집에 와서 아내와 대화하니
3일째 금식하던 아내가 얼굴이 화사해진다.
그렇다.
갈등과 곤란이야 어디야 없겠는가마는
그 가운데서도 이리 흐르도록
이전의 엉터리 같던 내가 펼쳐내던
어리석은 자아의 표출은 자제가 되고
잘 흐르는 이 권능은
주님 앞에 서려는 '회개'의 노력,
말씀을 준행하려는 의지를 가지고
주님이 보이시는 것이시다.
아직도 갈 길은 멀다.
회개의 삶.
오늘 당직이다.
그 시간에 조금더 내 내면을
주님 십자가 앞에 가져가야 할 모양이다.
적용
1. 회개하자
회개는 주님의 뜻이다.
2. 죄책감과 회개는 다르다.
죄책감이 몰려올 것이 두려워 회개를 못함은
올바름이 아님을 안다.
늘 판단을 보류하고 주님 십자가 앞에 간다.
3. 잘 될 수록 더욱 회개지심을 갖는다.
축복은 회개를 위한 조건일 뿐이다.
내 궁극은 주님 나라다.
4. 성경 여덟장 읽겠다.
5. TV 안켜겠다.
당직방.
컴. 자제 한다.
6. 큰 아이와 둘째 아이를 위해 기도한다.
기도
주님
귀하신 주님.
난
축복과 죄 사이에서 왔다 갔다 하고 있습니다.
주님
정말 회개가 필요한 시점입니다.
그것을 앎에도 불구하고
회개의 무거움에
자꾸만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조금 더 회개에 치중을 하겠습니다.
눈만 뜨면 짓는 것이 죄임에도
그것을 잊어 버리고 눌러버리고
사는 이 죄인을 불쌍히 여기사
주여
죄는 짓되
그보다 더 회개를 하는 제가 될 수 있도록 하소서.
주여.
무거운 이 맘
주님 앞에 내려놓고 가벼워 지길 원합니다.
도우소서.
제 아들들 그리하소서.
말씀 앞에
주님의 뜻을 기대하는 마음으로
인내하길 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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