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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영혼의 울부짖음(시 44:9-25 )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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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영혼의 울부짖음(시 44:9-25 )

주하인 2007. 6. 25. 09:13

제 44 장 ( Chapter 44, Psalms )


9.  그러나 이제는 주께서 우리를 버려 욕을 당케 하시고 우리 군대와 함께 나아가지 아니하시나이다  

15.  나의 능욕이 종일 내 앞에 있으며 수치가 내 얼굴을 덮었으니  
16.  나를 비방하고 후욕하는 소리를 인함이요 나의 원수와 보수자의 연고니이다 
 

( 이 개도 비웃는 것 아닌가?    어때요?   정말 비웃는 거 아닌가요?ㅎㅎㅎ )

 

 주님이 어느때는 얼굴을 보이지 않으실 때가 있다.

시인의 표현대로

전쟁터에 나가도 함께 하시지 않는 것 처럼...

이 분은 늘 주님이 함께 하셔서 있던 자이기에 얼마나 당혹스러울까?

 수치가 얼굴을 덮었다고 한다.

이 메마르고 당혹스럼의 정도를 짐작하겠다.

이유가 없이

놀리는 소리가 들린다.

 

 이해가 간다.

요 얼마 동안 난 깊은 무기력에 빠져 있다.

아무 것도 하기 싫다.

그래서 그냥 가만히 있다.

가만히..

모든 걸 내려 놓고 가만히..

 


 
17.  이 모든 일이 우리에게 임하였으나 우리가 주를 잊지 아니하며 주의 언약을 어기지 아니하였나이다 
18.  우리 마음이 퇴축지 아니하고 우리 걸음도 주의 길을 떠나지 아니하였으나  
19.  주께서 우리를 시랑의 처소에서 심히 상해하시고 우리를 사망의 그늘로 덮으셨나이다
  이 분.

자신의 내 면을 깊게 들여다 보았던 모양이다.

그러니 이리 자신있게 ..

아니면

자신에 대하여 성찰이 없는 도덕성이 강한 가정에서 자라서 율법적 성향이 있던 분이던지..

그러나,

성경에 쓰일 글을 쓸 분이시면

당연히 전 자의 경우에 해당하리라 생각된다.

 

 난 어떤가?

조금의 성공과 나름대로의 성장의 기쁨에

교만하였다.

그래서 마치 내가 모든 걸 다 아는 듯,

하나님의 뜻을 잘 아는 듯

마구 정죄하며

마구...그랬다.

 

그러니,

저 분의 저 심사가 잘 읽혀진다.

더더욱..

주님은

사랑하는 깨끗한 자에게 까지 메마름을 허락하신다.

마치 전쟁에 총없이 나가고 군대없이 홀로 나가는 외로움.

얼굴이 찌글 찌글 제 마음대로 근육이 움직이는

교감신경 실조의 증상이 나타나고

나름대로 주님 앞에 온전히 행하고 가르침 대로 따르려 하고

그래서

주님이 선하게 여겨서

늘 나와 동행하고

주님은 온통 '사랑'이고 '기쁨' 뿐이실 것을 전혀 믿어 의심치 아니하고

그 분의 축복은

끝없이 온전히 나 만의 것이 될 것이란

느낌으로

주님의 이름을 주위에 힘있게 전파하고

얼굴에 충만한 성령의 빛으로 가득했는데...

 

 어느 순간에 이유없이 갑자기

아무리 기도해도

주님의 흔적을 찾을 수가 없고

공허감과 허전함이 밀물듯이 밀려오고

온통 감성은 메마른 듯 하여

어디에도 계시지 않은 듯 하며

내 이성은 혼란 스럽고

육신과 감성의 부조화가 이루어져

예전의 험악한 분위기가 다시 순간 순간 내 육신을 점유하여

스스로 생각해도

이게 될 말인가 하며 소스라치게 놀라고

그러다가

기도하고 주님께 집중하고 묵상하여

회복하려 아무리 애를 써도

주님은 보이지 않아

이제는 더 이상 어쩔 수 없을 것 같은

좌절감에 깊숙히 빠져 들어가서

오랫동안  힘을 잃고 있기도 하다.

어리석은 난

예전보다 훨 나아졌다고 스스로 생각하기도 하지만

아직은 그래도

급한 성품도 남아 있고

교만함도 그렇고

여러 주님 보시기에 선하지 못할 성품이 있기에

이러한 메마름이 오니

더더욱 힘이 들다.

 

 이분.

이분은 그래도

'주님  난 ~~괜찮게 해왔잖아요 ~ !'라고

소리지르면서 기도할 명분이 있기나 하지..

난, 뭔가.

 


 
20.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이름을 잊어버렸거나 우리 손을 이방 신에게 향하여 폈더면  
21.  하나님이 이를 더듬어 내지 아니하셨으리이까 대저 주는 마음의 비밀을 아시나이다
 이거보라.

주님은 '마음의 비밀'을 안다고 하지 않는가?

그런 분이 자신의 율법적 성향으로 교만하게 위에 글을 시로 썼을 것인가?

 이 분은 분명코 성장된 믿음이다.

주님의 동행하신 경험과 경력이

우리보다 훨 앞서신 분이시다.

 장래에 대한 걱정도

이웃에 대한 미움도

자신에 대한 경멸이나 좌절도

다 버리고

오직 주가 원하시는 성령의 열매를 충분히 맺어 왔던 분이시다.

그러시기에

그 마음의 비밀을 안다고 자신있게 선언 하지 않으시는가?

 

 이토록 자신의 속 깊은 곳 까지

주님에게 다 이해받고

주님에게 공감받고

모든 죄악을 속속 들이 다 보여드린 자로서

힘있는

성령충만의 삶을 살다가

갑자기

그 분이 안계신듯 하니

세상에 이 보다 더 큰 괴로움과 시험과 고통이 어디있겠는가?

 

아버지 어머니의 사랑을 듬뿍 받던 가정에서

갑자기 자고 일어나니

그 분들이 어디에도 보이지 않고

집안에는 혼자만 덩그라니 남은

그런 허무함과 괴로움을 느끼는 어린 아이와

필경 다를 바 없는

그런 괴로움이 아닐런지?

 그들은 존재의 위기 의식을 느끼는 것이다.
 그러기에 초두에

'우리 군대와 나아가지 않으셨다'고 하지 않는가?

 

 죽음보다 더한 고통이

주님이 곁에 안계시는 그 메마름인 것이다.

 

잘한 것 없이 메마르니

더욱 힘들다.

지금..

 

 

 
22.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케 되며 도살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23.  주여 깨소서 어찌하여 주무시나이까 일어나시고 우리를 영영히 버리지 마소서 
 그래도

이 분은 다르다.

 

 난 이랬다.

맘대로 하세요... 주님.

 

이 분은 이런다.

" 하루 종일 주를 위하여"

 

그러면서

나는 가만히 있었다.

기도도 잘 못하고

그냥 집에 가서

무조건 기력을 잃고 쉬었다.

 

이 분은

주님께 열렬히 매달렸다.

버리지 말라고...


 
25.  우리 영혼은 진토에 구푸리고 우리 몸은 땅에 붙었나이다  
어제

요새 TV에 매달리는 결과로 '세상에 이런일이' 재방송을 본 일이 있다.

거기에 60대 노인 분의 스트레칭이 이채롭게 다가왔다.

다리를 완전히 벌리고

그 다리를 몸으로 깔고 누울 정도로 정말 땅에 착 붙는 그런 이완의 능력.

그토록 나를 낮추면

난 죽겠다고

몸이 찢어진다고 소리소리 질렀을 것이다.

 

이것을 보며 그 장면이 연상된다.

 

내 영혼이

가능치 않은 스트레칭으로

먼지(진토) 위에 던져져서 위로 부터 눌리고

몸이 어제 그 스트레칭 노인처럼

땅에 붙어 버릴 정도로 눌린다.

그 분은 웃고 몇시간 그러지만

난 운다.

 

 아파서 운다 .

찢어지는 고통에 운다.

숨이 답답하여

끼익 끽

나도모르는 숨을 토해낸다.

주님이 갈급하여

소리높여 찬양하고 노래하고 싶지만

마음 뿐

어딘 가 모르는 눌림에 눌려서

고개조차 들 수 없다 .

 

 

 

26.  일어나 우리를 도우소서 주의 인자하심을 인하여 우리를 구속하소서
  그렇다.

 

그래

이제는 이게 필요하다.

이 분.

이 글을 쓰신 분을 통하여

예외없이 주님은 날 인도하신다.

 

"주하인

힘이 드는가?

이렇게 해보아라.

이전에는

전 적으로 내 도움으로 했지만

이제는 이리 해보아라.

 

내게 소리 질러 외치라.

네가 혼자 일어나

네 노력으로 머리를 들고

끽끽 거리는 숨통을 트이고서 날 보려 하지말고

그냥

숨이 쉬어지지 않아도 그냥 해라.

마치 폐 속으로 깊은 먼지의 찌거기들이 몰려 들어올 듯 두려워도

무거워 머리를 도저히 들 수 없을 것만 같아

그게 불가능할 것 같아도

그냥 외쳐라.

엎드려서 외쳐라

구겨져서 외쳐라.

입에 먼지가 들어갈 것 같이 두려워도 외쳐라.

그냥 주님을 바라 보며 외쳐라 .

불가능할 것 같은 상상은 버리라.

60대 노인도 노력에 의해 스트레칭하지 않던가?

그냥

그보다는 쉽다.

그냥 외쳐라.

믿기만이 필요하다.

주님인, 나에대한 신뢰와 사랑 만이 필요하다.

그냥 외쳐라 !

일어나 우리를 도우소서 주의 인자하심을 인하여 우리를 구속하소서 라고..

네가 할 것은 그것이다."

라 하시는 듯 싶다

 

 

 

 

적용

 

1. 그냥 주님을 보고 기도하겠다.

 

2. 기다린다.

 

3. 소리 나오지 않더라도 주님을 바라본다.

 

4. 일체의 노력을 배제한다.

 

5. 일어나시는 주님을 상상한다.

 

6. 주님은 인자하심을 믿는다.

  나같은 자도 도우실 것임을 확신하려 노력한다.

  안되어도 한다.

  주님은 그 인내를 보신다.

   날 사랑하낟.

 

 

 

기도

 

주여.

힘이 듭니다.

누구도 알 수 없을 힘이 나에게 듭니다.

힘이 빠집니다.

설명할 이유도

설명할 기운도

누구에게 받을 위로도

가능치가 않습니다.

 

주여

당신은 아시리라 압니다.

어제는

깊은 어둠 속 기도굴에서

당신에게 외쳤습니다.

그냥요.

힘이 든다고요.

 

그랬더니 인가요.

주님이 똑같은 말씀을 주십니다.

이 귀한 묵상의 끈을

놓고 싶었습니다.

그럼에도

가능하지 않을 듯

늘 생각하는 사단의 장난에도 불구하고

주님

당신의 말씀을 접하면

주님

당신을 향한 기도를 힘내면

나는 가능치 않은 일이 전혀 생각조차 나지 않습니다.

 

주여

지금이 그렇습니다.

힘을 내기를 원합니다.

주여 도우소서.

일어나 우리를 도우소서 주의 인자하심을 인하여 우리를 구속하소서

일어나 나를 도우세요

주여 ..

당신은 인자하신

그것 때문이라도 나를 구원하세요.

내가 평생 죽을 때까지 가지고 갈 듯 무거운

내 삶의 무게를 치워주소서.

힘을 주세요.

날 구원해주세요.

이 물없는 웅덩이에서 속히 날 구원하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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