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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실개천(시46:1-11)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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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실개천(시46:1-11)

주하인 2007. 6. 27. 10:24

제 46 장 ( Chapter 46, Psalms )
 
 (고라 자손의 시 영장으로 알라못에 맞춘 노래)

1.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요 힘이시니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   
 

( 생각 만 해도 가슴이 벅차 오릅니다.  샬롬 ~ )

 

 

 

 하나님은 내 피난처가 맞다.
 하나님은 내 힘이신 것도 맞다.
 하나님은 환난 중에 큰 도움을 주신 것도 주실 것도 주시는 것도 맞다.
 
  이상은 내 고백이다.
 내 경험에서 나온 솔직하고 힘있는 고백이다.
 
그러나,
지금처럼 주님의 도우심을 받고 있을 때는 자신있게 고백하지만
어리석은 내 속은 가끔 고백을 놓치기도 한다.
비록, 점차로 그 기간이 짧아지고 있지만..
 
 요새 자꾸 옛 버릇이 나오려 한다.
장래에 대하여 걱정하려하고
속에서 부딪끼는 마음이 든다.
그럴 때 흔들리려 하고 있다.
아침에 그랬다.
하지만 주님의 말씀을 붙들고
말씀에 내 속을 가만히 대입시키니
갑자기 거짓말 처럼
끝까지 밀려 들어올 것 같던 썰물이
순식간에 뒤로 밀려 나가듯이
그렇게 마음이 평정을 유지하게 되었다.
내 노력과는 상관없이 ...
 
 묵상을 집중한다.
그러자 마자,
내 속을 알기나 하듯이 주님이 이리 대신 말씀해 주신다.
 
' 주님,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요 힘이시니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다.' 라고.
 
그렇다.
맞다.
할렐루야 !!
 
 
 
 
2.  그러므로 땅이 변하든지 산이 흔들려 바다 가운데 빠지든지  
3.  바닷물이 흉용하고 뛰놀든지 그것이 넘침으로 산이 요동할지라도 우리는 두려워 아니하리로다 
( 폭풍 전야의 고요함인 듯합니다. )
 
 이 구절을 읽어 가며
난 항상 몇가지 다른 감정을 느낀다.
하나는
나도 저리 되었으면 얼마나 좋을까..하는 생각이다.
삶이 항상 불안함으로 점철되는 삶이고
더구나 산부인과의 항시 대기조 삶을 살다보니
불안함과 두려움이 날 어렵게 했었다.
그러니 이처럼 산이 흔들려도
땅이 변해도
바다 가운데 땅이 빠져도
바다물이 넘쳐 산을 덮어버리고
산이 눈 앞에서 마구 흔들리더라도
전혀 요동치 않은 사람들은 얼마나 좋을까.. 하는 그런 감정이다.
 
그러면서도
나는 믿으면서도 어찌 이리 담대한 마음이 들지 않을까 하는 좌절감도...
 
하지만
이제는 조금은 다른 것을 느끼게 된다.
특별히 말씀이 내 안에 들어와서
날 안심시키고
그 말씀이 살아서 움직이는 듯
효과를 보이기 시작함을 맛본 이후
나도 가능하다는 생각이 가끔은 든다.
 
이제
어떠한 일이 와도
두렵지 않은 내가 될 것임을
미리 예견하고
지금
얼마동안 무기력하고
혼란 스럽고
진토에 구푸러진 것 같이
힘이 없어도
그냥 주님 앞에 맡겨 놓고
기다릴 것이다.
 
 
 
 

4.  한 시내가 있어 나뉘어 흘러 하나님의 성 곧 지극히 높으신 자의 장막의 성소를 기쁘게 하도다  

때론 실개천이 아름 답기도 합니다. )

 

 시내는 강처럼 우람하지 않다.

폭포수 처럼 강렬하지도 않다.

바다처럼 대단하지도 않다.

 

 은빛의 갈라지는 은파를 내뿜는 강같은 믿음도 아니다.

폭포수 처럼 굉음을 내며 시원한 물보라로 시원한 믿음은 더더구나 가지지도 못했다.

밀려왔다 밀려가는 자연의 변함없음과 광대함과 터지는 시원함으로 사람의 심령을 넓혀주는 바다 같은 여유롭고 안정된 믿음도 아니다.

 그냥 졸졸 소리내고 흘러가는 실개천 같은 믿음이다.

가뭄이 들면 곧 말라 붙을 것 만 같은 ...

 

오늘 묵상 구절에 나뉘어 흐르는 시냇물이 과연

신학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는 지 전혀 알길이 없고

알 능력이 없는 자이지만

그러한 실개천의 위태위태한 그 믿음이

바로 나의 오늘의 어리석은 믿음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불현듯 든다.

 

그러나,

그러한 게 나라는

자책적인 느낌에도 불구하고

뒤 이어지는 구절은

지극히 높으신 곳에 계신 하나님을 기쁘게 한다는 말이 나온다.

 

이해할 수가 없다.

이런 묵상의 개인적 성격을 감안하더라도

나는 주님을

기쁘게 할

강같고

폭포같고

바다 같은

믿음이 없는데...

난 늘 그러한 강력한 믿음의 소유자에게

알지못할 열등감을 가지고 왔는데..

간증의 소리를 들으며

항상

눈치 살피고

주님의 이름만 늘 더럽히는 어리석은 기독교인인 듯 하여

쥐구멍을 찾기에 바빳고

그런 경우 오히려 힘을 내서

성경의 말씀대로 열심을 다해

죽도록 다시 일어나 몸부림 치지 못하는

나의 일천한 믿음에 대하여

부끄러워 했는데...

 

그렇다면 이게 이상하지 않은가?

나 같은 자를 기뻐하시다니?

정말 오늘 실개천의 믿음을 기뻐하실 것이란 말인가?

 

정말?

 

 

 

5. 하나님이 그 성중에 거하시매 성이 요동치 아니할 것이라 새벽에 하나님이 도우시리로다 
 늘 연약하게 말라 붙는 내 믿음의 개울은,
안양천 지류가
비만 오지 않으면
모래 투성이인  바닥을 드러낼 듯
똑같이 흔들리고
외풍만 불어오면 곧 날릴 듯 먼지 푸석거리기 일쑤다.
 
 이때는 난 이리 생각한다.
'주님이 과연 나같은 것을 도우실까?'
 이 구절을 읽어가며
주님은 내 심사를 그대로 아셔서
답을 여기에 주시는 것이라 생각이 든다.
 
 성은 나다.
나는 주님의 걸어다니는 성전이다.
내가 있는 곳 어디나 거룩하다.
주님이 계시는 곳,
내가 주님을 부인하고
주님을 떠나지만 않으면
언제나 나는 주님이 계신 성이다.
 이 성은 위의 저런 내 어리석은 생각을 여지없이 반박하신다.
주님의 말씀을 난 믿는다.
말씀은 썩지 않을 항상 있고 살아 있는 것이다.
 성이 요동치 아니할 것이라
내가 요동치 않을 것이라신다.
지금도..
앞으로도.. 
 
그렇다면
이런 약속의 말씀에 대하여 앎에도 불구하고
변화없는 듯한 내 현재의 모습은 무엇이란 말인가?
 
돌아보면
나는 치과에 단돈 1000원도 안 가져다 바친지 오래다.
생각이 나지도 않는다.
크게 아파서 병원에 간적은 없다.
혈압약 이외...
이것 만 가지고도 비들거리는 나에게 주신 금전적 , 육체적 축복이 아닌가?
 
 정말 요동했나?
이리 생각해 보니 아니긴 하다.
지금까지 내 수십년 간의 걱정 걱정 또 걱정의 삶에 비해
전혀 요동하지 않는 삶이 맞다.
 
 아침은
병원에 요사이 줄어든 환자를 걱정하며
그동안 현실에 대하여
제대로 하지 못한 기도를 하고 왔다.
'아버지, 환자를 보내주세요...'
 
이해할 수 없다.
그 부분은 기도하는 대로 맞는다.
거의 100%
수술 두건,
외래 신환이 부쩍.......
내 개업했을 때 이러시지...ㅎㅎ
 
'이래도 아닌가?' 하시는 것 같다.
이 걱정의 삶은
그래도 그것만 가지고는 아니되고
늘 눈앞에 쏟아지는 풍성한 것이 있어야만 할 것이라 생각하는 것 같다.
 
 오늘 묵상 구절에 눈에 들어오던 것이 바로 새벽에 하나님이 도우시리로다 다.
 고민거리가 생길 때
밤은 깊어가고 마음은 무겁고 잠은 안오고
그러면서도
그 밤이 지나가는 게 무섭기도 하고
한편으로 그 밤이 지독히도 가지 않는
그 양가의 감정으로 더 힘든 경우가 많다.
 
 주님의 은혜와 응답은 이런 것과 비슷한 것만 같다.
늘 일상에서 주님의 응답을 받고 살고
알지 모를 세미한 소리가 
불현듯 느껴져 소스라치게 감동하고
그 감동에 온 몸에 불타는 듯한 전율이 뜨거웁게 올라와
바로 얼마 전까지
그리 힘들었던 생각들이
봄 눈 녹듯이 녹아 들어가고
기도한 게 
나도 모르게 다 이루어져 있던
그 응답의 경험들이
늘 이어져 왔음에도 불구하고 
환란에 들어가면
이전 것은 까마득히 잊혀져 가고
이번 것 만은 
도저히 이루어 질 것 같지 않아서
그 시간의 그 어려움에만 집중이 되어
빠져 있지만,
또 예전에 그랬듯이
우리 주님은
당신이 원하는 최선의 시간까지
바로 곁에서 계시되 보지 못하고 집중하지 못하는
우리의 어리석음을 안타까이 여기면서
새벽까지
새벽까지
지켜보시다가
이제는 동이 트면 나의 희망도 없어질 것 만 같은 그 아득한 불안함을 뚫고
역시,
오늘도 살아 계신 하나님을 혹시나 보지 않을 가 하는
새벽에 대한
그 양가적 감정을 수반한 기대를
우리 주님은 여지 없이 마추실 것이란 것이다.
 이게
새벽에 오시는 주님의 응답이
오늘 나에게 시사하시는 것이시다.
 
그러니,
걱정 하지 말아야 한다.
두려워 할 필요도 없다.
 
양가적 감정은
그 결론에 대하여 안다면,
 전혀 가질 이유가 없는 것이다.
 
즉 ,
주님은 안올 듯한 새벽이어도
과거 유명한 누구의 말처럼
'닭의 목은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는 것 처럼
반드시 우리를 도우실 것이기에 그렇다는 말이다.
 
 전제 조건이 있다.
실개천이 마르지 않도록 하여야 한다.
내 믿음의 개천이
위에 든 다른 대단한 분들과는 다르더라도
내 가진 내 자신의 고유성을 살려야 한다.
실개천은 부드럽다.
실개천은 자연스럽다.
실개천은 둘로 나뉘어 주님의 성전을 아름답게 꾸밀 수도 있다.
그럼에도
절대로 말라서는 안된다.
푹푹 먼지 날리지 않도록 늘 믿음의 물을 유지하도록 애써야 한다 .
그리 되기 위해서는
그 분 응답의 늦어질 수 있는 가능성과
반드시 옴에 대한 확고 부동한 믿음이 전제가 되어야 한다.
 
 그 분은 오신다.
 늦어도 오신다.
 새벽이 되어서 여명이 밝아서 이제는 안될 것이라 생각하는 그 끝 지점에 오실 것이다.
 무조건 기다려야 한다.
 
 
 
 
 
10.  이르시기를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 됨을 알지어다 내가 열방과 세계 중에서 높임을
     받으리라 하시도다 
 나는 이게 너무도 좋다.
게을러서 그렇다고 스스로 생각하지만
그래도 좋다.
너희는 가만히 있어.. .
 
 난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의지도 없고
할 능력도
이제 할 시간도 없는 듯하다 .
그래서
이 교묘한 인간은 가만히 주님이 해주시길 기다리는 게으른 인간이라 생각 된다. ㅎ
허나,
그게 믿음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내려놓음이라면 얼마나 좋을 것인가?
 
 주님은 나의 그것과 바람이 조금 다르신 것 같다.
내가 내려 놓음으로
주님이 영광을 받기를 원하시는 것이다.
내 바램은 내가 내려놓고 내 인생 모두 책임지시길 바라는 유아적 바램인데.. .
 
주여..
어찌 하오리까?
 
 그것마져 가만히 있겠나이다.
가르치소서.
^^;;;
 
 
적용
 
1. 난 실개천의 믿음이다.
 그걸 인정한다.
 그걸 받아들인다.
 그걸 주님께서 그리 나빠하시지 않으실지도 모르신다는 것을 기쁘게 받아들인다.
 그리고 , 내 식으로 최대한 아름답게 주님 성산을 꾸미려 하여야 한다 .
 주님의 이름으로 진행되는 어떤 것이든 귀하게 볼 것이다.
 나 자신의 성전도 아름답게 보려 한다.
 
 난 날 사랑한다.
 내 실개천의 믿음이 날 귀하게 만든다.
 믿음이 없는 난 ,
 정말 비참햇을 것이다.
 
2. 누구든지
  어떤 상황이든지 믿는다.
  특별히 내 자식들의 그 것을 믿는다.
   그 아이들은 잘 될 것임을 믿는다.
  지금은 아녀도 주님이 계시면,
  주님이 그 아이들을 치리하시는 성전이 되도록 그 아이들을 위해 기도한다.
  그 아이들은 그렇다.
  그러기에 내 실개천으로 그 아이들을 잘 가꾼다.
 
3. 성경 다섯 장 읽겠다.
 
4. 오늘 전도한 자들이  내 실개천의 말이 흘러들어가도록, 기도한다.
   주님 K 태지, S 은남 기억하소서.
 
5. 주님은 언제나 날 지키시고 , 날 축복하실 것을 믿는다.
   새벽이 오고, 동이 트려할 때가 찬스다.
   아직은 어둡지 않은 것 아닌가?
   내 주위를 잘 살피겠다 .
 
6. 가만히 기다리는 내가 되도록 한다.
   가만히 나를 위한 욕심을 기다리지 않고
   가만히 내 안에서 역사하시는 주님의 뜻을 지켜보는 자가 되도록 하겠다.
   남을 위하여 사는 내가 되도록,
   주님을 위하여 사는 내가 되도록... 지켜보겠다.
 
 
 
기도
 
주님.
제가요.
어리석습니다.
 
아침 부터 일찍 일어나질  못하니
이리 묵상이 늦어지고
퇴근할 즈음이 되어서야
쓰게 됩니다.
용서하소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리 실개천 마른 것 같은 믿음에도
억지로라도
물은 흐르게 해 주시는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오늘은 가만히 있어. ,
이게 바로 저처럼 게으른 자에게 그냥 하시는 말씀인 듯 싶어
한결 위안이 됩니다.
살아계신 분이시여.
 
새벽에 응답이 오리라...도 저에게 위안이 됩니다.
아직도
욕심이 제 영혼에서 떨어져 나가질 않아서
늘 부족한 것만 같이
욕구 불만에 차 있으니
이 스스로의 어리석음과 죄악 강함에 소스라치고 있는데
오늘 주님은
마치 아시는 것처럼,
이리 말씀하시니 감사드립니다.
 
주여
하나 부터 열까지
모두 지키시는 주님이시여.
돌아보면
주님의 은총이 아닌 것이 하나도 없다는 그 고백.
정말 맞습니다.
앞으로도 그럴 것...
이 실개천 같은 믿음의 주하인.
이제 믿습니다.
언제 마를지 몰라도요..
 
감사하나이다.
감사하나이다.
귀하신이여.
 
예수님의 이름으로 감사하면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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