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예수님 십자가의 비밀(창50:15-26) 본문
제 50 장 ( Chapter 50, Genesis )
15. 요셉의 형제들이 그 아비가 죽었음을 보고 말하되 요셉이 혹시 우리를 미워하여 우리가 그에게
행한 모든 악을 다 갚지나 아니할까 하고
( 죄에 대하여 고양이의 신경처럼 예민할 필요가 있습니다. )
죄를 지으면 이게 싫다.
속에서 계속 밀고 올라오는 무엇이 있다.
두려움이다.
죄책감으로 인한 자괴감도 싫다.
결과적으로
주님의 용서하심과 십자가 보혈의 그 귀한 은혜를 가까이 하기 어렵다.
너무 쉬운 길을 열어 놓았음에도
다가가지 못하는 것은
죄로 인한 두려움이다.
결국 이것이다.
구원의 은혜도
하나님이 선택지 않으면 되지 않는다는 것이 이러한 이유이다.
수많은 사람이
기독교 인이면서
구원이 모두에게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그래도
이러한 자들
죄에 의하여 갈등하는 자들은
조금 상태가 나은 자들이다.
자꾸만
죄의 덫에 걸려들고
조금씩 신앙 양심이 무디어 지고
나중에 그것이 죄인 줄도 모르는 자들은
아무리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어도
받을 수가 없다.
양심에 화인을 맞은 자들..
TV를 틀고
뉴스 프로그램을 트니
여중생 유괴 얘기가 나온다.
얼마전에 일가족 존속 살해 얘기가 나오고
11만원 살해 범
또 얼마 전에는 이승희.................
문제는
범죄의 빈도가 너무 잦을 뿐 아니라
그 강도가 예전에 상상을 하기 힘든 게 너무나 다반사로 벌어질 뿐 아니라
그 범죄에 대하여
별로 놀라지도 않는 사람들의 반응이 그것이다.
그래도
양심을 아파하고
그것 때문에 고민하는 것은 희망이 있다는 얘기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나면
그 영혼의 운명도 그것으로 끝이다.
희망이 없다.
16. 요셉에게 말을 전하여 가로되 당신의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명하여 이르시기를
무섭고 두렵고
곧 봉변을 당할까 뒷골이 당기고 심장이 조여도
죄는 반드시 해결 받아야 한다.
죄를 벗어날 첫째 덕목은 '정직'이다.
그리고
그것을 다른 누구에게 솔직히 '고백'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하다.
올바른 선택이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또 , 지혜가 필요하다.
참 어렵다.
그러나 쉽다.
그냥 단지 용기를 조금만 내어
십자가 예수님 앞에 달려가면 된다.
그리고 , 이실 직고 하면된다.
오늘
형제들이 보이는 이 비굴이
실제로는 용기다.
그들은
동생에게 비는 비굴함을 보인다.
그것도
아버지 장사 지낸 후 돌아오는 길에서
자신들의 안위를 위해서 만 걱정하는 듯 한 비굴이다.
슬픔과 안타까움 보다
자신의 죄에 대한 겁이 우선인 듯하다 .
또한,
요셉의 용서를 아직도 믿지 못하는 어리석음이 답답하기도 하다.
우리가 예수님의 용서를 받고도
자꾸만 믿지 못하고
또 같은 죄를 짓고
또 죄책감에 시달리고
결국은 우울증이나 심리적 질병에 허덕이는 것도
어리석은 것이긴 하다.
그러나,
여기에서 보이는
형제들이
과연
십자가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지 못하고
머리로만 아는
나같은 초보 신앙인 들 모두 보다
신앙심과 신앙인격이 부족하고
하나님이 그들의 삶에 보인 그 이적과 기적에 대한 경험이 부족할 까?
비록 예수님을 몰랐어도 말이다.
아니다.
그럼에도 이들이 보이는 이 어리석은 태도는
시대를 불문하고
나이를 불문하고
경험을 불문하고
나라를 불문하고
상황을 불문하고
사람이 겪는 동일한 반응을 보이시기 위한 하나님의 뜻이 있으실 것이라 생각한다.
사람은 원죄로 인하여 구멍이 뚫린 자들이다.
그러기에
용서에도 불구하고
개인적인 성향에 따라
이들이 보이는 이러한 반응을
누구나 보일 수가 있다.
그러기에
어리석음은 이해가 된다.
문제는
서두에도 썼지만
죄에 대하여 민감하여야 하며
그럴 때 마다
솔직히 자신을 인정하며
예수님 앞에 달려 와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
있는대로 그 분 앞에 내 죄를 내려 놓아야만 한다.
그것이
이 어지러운 세상에서
나름대로
마음의 부담을 해결 받아 편히 살 수 있는 지름길이며,
억압에 의해
더 깊은 죄악 속으로 빠져 들어가
왜곡된 삶을 살다가 실족할 위험에 빠질 조건에서 벗어날 지름길이다.
17. 당신의 아버지의 하나님의 종들의 죄를 이제 용서하소서 하매 요셉이 그 말을 들을 때에
울었더라
( 십자가 비밀을 아는 나는 너무나 대단한 행운아입니다. ㅜ.ㅜ;; )
요셉 앞에
뜬 금없이 형들이 용서를 빈다.
싹싹 ~
아직도 아버지의 돌아가심에 대한 슬픔이 가시지 않았을 상황에서 하는
그들의 돌발적인 행위.
아마
진중한 요셉의 얼굴에
잠시 의아한 빛이 떠돌았으리라.
그리고는
굵은 눈물이
주르르
그의 볼을 타고 흘러 내렸을 것이다.
어이없지만
어이 없는 일을 할 그들의 심정이 그대로 읽혀진 것이다.
만일
나였다면 이랬을 것이다.
'아니
이 녀석들이,
이렇게도 어리석는가?
자신들의 생각만 하고........................'
하며 심장이 요동질 하며 동공이 커지면서 얼굴이 벌개졌을 것이리라.
그러나, 요셉은 그러지 않으셨다.
이러셨다.
그 말을 들을 때에 울었더라
울었다고 한다.
화내는 대신..
더욱 감동스러운 것은
그 말을 들을 때에다.
난 죄 지을 때마다,
가슴이 미어 터지려 한다.
그리고는 한동안 가슴이 멍한게 가라앉을 때 까지 가만히 있는다.
조금 힘이 나서
나름대로 성경도 읽고
기도가 가능할 때야
주님 찾는다.
그럴 때는 벌써 나의 속에는 양심으로 인한 힘듦은 좀 사라진 후이다.
그냥 착한 모습 만 보일 때 간다.
어리석은 자이다.
주님은 날 이렇게 기다리신다.
난 가슴이 두근거리고
내 죄악은 도저히 용서 받을 수 없을 것이고
단지
주님께서 날 구원하실 때 나름대로 불신 투성이인 이 가슴에 흔적으로 남겨 주신 것이라 생각되는
무조건 용서에 대한 일말의 기대를 가지고 있기에
이들 형제들이
야곱, 아버지의 이름 뒤에 숨어서
길 듯이 다가가는 그런 것과 너무 비슷하게 찾아가지만
실제로는
인간적인 생각
특별히 내 거칠고 사나운 인품으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을
그런 눈물로서 날 맞아 주실 것임을
오늘 보기에
참 감동스럽다.
그것은
또 다른 해방을 뜻한다.
우리의 삶이
훨씬 가벼워 질 수가 있다는 것이다.
난 사랑 받고 있다.
언제든 용서 받을 수 있다.
그 용서가
그냥 용서가 아니다.
요셉님이 형제들을 위해 흘린 그 눈물이
그냥 형제 애에 의한 일차원 적인 눈물이 아니고
그 들이 얼마나 오랫동안 어리석은 인간적 심성에 묶여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만 사는 자신의 용서를 이해하지 못하고
그 죄책의 어둠의 사슬에 묶여 살아왔던가 생각하면
그들의 그 어둠의 고통이 살에 찔리듯이 아프게 다가왔기에
그는 눈물을 흘리게 되는 것이다.
그들의 가슴조림의 육신적 반응이 또 가슴에 지미어 오고,
얼마나 두려웠으면
이 상황에 맞지 않는 자리에서
이렇게도 용서를 다시한번 비는가 생각하니
불쌍하기가 그지 없어
그 자리에서 듣자마자
국무총리,
그 지엄한 자리의 그가
위신을 생각지 않고
큰 눈물을 터뜨리고 만 것이다.
아..
예수님.
예수님은
늘
날
이리 생각하고 계셨다.
아
내가
이 거친 성품의 잡아 끎을 물리치고
힘이 빠진 다리를 이끌고
겨우겨우
주님의 전에 와
주님 앞에
내 어리석고 부조리한 일을
아주아주 어렵게
고백하려 할 때,
그 분은
내 그 어려움을 아시는 것이다.
그
남들과는 다른 힘듦을 아시는 것이다.
그리고
내 속에서
얼마나 많은 내적인 갈등이 있는가 그 분은 아시는 것이시다.
그래서
나의 행실에 상관없이
그 분을 찾아오는
그 용기와
내 올바른 선택 만을 가지고
들을 때에 울었더라
라 하시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 예수님 십자가의 비밀이다.
이것이
세상 어느 것으로도 되지 않던
온전한 인격 중생의 비밀의 단초이다.
18. 그 형들이 또 친히 와서 요셉의 앞에 엎드려 가로되 우리는 당신의 종이니이다
나에게 필요한 것은 이것이다.
절실히 내 잘못을 고백하는 것이다.
진실하게 마주하는 것이다.
19.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두려워 마소서
그렇게 될 때
우리 주님의 위로가 시작이 되는 조건이 되는 것이다.
인격적으로 그 분을 만날 수 있는 것이다.
20.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만민의 생명을 구원
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예수님도
아무런 선한 것이 없는
나 같은 자를 위하여
내 생명을 구원하시려
이천년 도 더 전에
십자가를 지셨다.
그 고통을 감내 하셨다.
아.....
얼마나 감사한 우리인가?
얼마나 은혜인가?
얼마나 행운인가?
적용
1. 십자가를 묵상하겠다.
2. 죄를 지으면 무조건 십자가 앞에 내려 놓는다.
3. 죄를 짓지 않으려 노력한다.
4. 주님의 눈물을 묵상하겠다.
그 말을 들을 때에 울었더라
5. 말씀을 다섯 장 읽겠다.
6. 오늘 하루 겸손하고 중보하는 삶을 살아보겠다.
기도
주여
귀하신 분이시여.
모든 것을 다 아시고
하나하나 챙기시는
귀하신
사랑의 정화시여.
이 답답한 삶속에
불현 듯 찾아오셔서
삶의 의미가 되어 주시고
늘
격려하시고
잡아주시는
다정하신 분이시여.
오늘은
특별히
형제의
어찌할 수 없는
터질 듯한 감정의 찢어짐을
눈물로서
받아주시고
풀어주시고
이해해 주시는
그 귀한 모습을 보이십니다.
당신은
이 시대의
도저히 헤어날 수 없는
갈등의 지옥 속에서도
유일한 탈출구로서도
또 그러하나이다.
주여 감사합니다.
주여 감사합니다.
귀한
주님의 눈물로서
다시금 위로 받은 이 어리석은 주하인.
주님 앞에
늘 고정된 시각으로 살수 있길 소원합니다.
다짐합니다.
주여
잘못이 있어도
주여
해결 받지 못한 상처가 있어도
또
주여
안될 것 같은 지독한 부정감이 있어도
주님
당신 앞에 나올 수 있기를 소원합니다.
당신께서
늘
눈물로서 맞아 주실 줄 믿사오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감사
또 감사하며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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