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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 QT

내 얼굴 보셔서 (왕하 3:13~27)

주하인 2011. 7. 6. 13:09

제 3 장 ( Chapter 3, 2 Kings )

 

 


13.  엘리사가 이스라엘 왕에게 이르되 내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당신의 부친의

      선지자들과 당신의 모친의 선지자들에게로 가소서 이스라엘 왕이 저에게 이르되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여호와께서 이 세 왕을 불러 모아 모압의 손에 붙이려 하시나이다
  이스라엘 백성 중 한 사람인 '엘리사'가

이스라엘 왕이자

나름대로는 '산당'도 제거 했으며 '여호와'의 이름을 잘 부르기는 신앙인인 

여호람 자신에게 저런다.

' 내가 당신과 무슨 상관 있나이까?'

  여기서 표현은 안되었지만 많이 혼란스러웠지 않겠는가?

 

난...

내 신앙 상태는 어떠하던가?

혹여 나름으로 잘 한다 생각하고 있는데

주님에게 '내 너를 모른다' 시고 천국의 문을 닫으면

그 밖에서 이를 갈고 슬피 욺이 있지 아니하란 법은 없던가?

 

그러나, 묵상을 해보아도

저 부분은 아닌 것 같다.. 이제는..

예전에는 '왕따' , 외톨이의 두려움이 없지 않았다.

그래서 저런 표현이 어디에서건 나오면 '욱~' 했을 가능성이 높다 .^^;;

 지금은 확실히 아니다.

주님 앞에서는 아니다.

그것은 어느새 내 내면에

' 그 분은 절대로 변개치 않으시는 분'이라는 확신이 들어 왔거나

' 난 그 분의 사랑 받을 만한 자격이 있는 자'라는

내 의와 상관없는 그 분의 의에 의하여 나름 '사랑받을 만한 자격 있는 자'라는

그 분의 신실하심과

나의 사랑받고 있는 자라는 의식이 커 가서 인지도 모른다.

그것은 다시 말하면

성령의 인도하심에 의하여 영혼의 여러 부분에서

올바르게 나아가고 있는 것을 새삼 의식하게 하시는 것이지 아니하던가? *^^*

 

  
 
14.  엘리사가 가로되 내가 섬기는 만군의 여호와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내가 만일

    유다 왕 여호사밧의 낯을 봄이 아니면 당신을 향하지도 아니하고 보지도 아니하였으리이다
  여기서 엘리사님이 얼굴을 돌려

유다왕 여호사밧을 쳐다보며 이런다.

'내 .. 이 분, 유다왕의 얼굴을 뵙지 안했더라면 ' ..이라한다.

철저하게 이스라엘 왕 여로함을 무시한다.

이스라엘 백성인 그가...^^;

 

 그는 무시 당하고  이분은 올림 받는다.

 

난... 어느 편에 설 것이던가?

주님 앞에서게 될 때 난 과연 어느 편에 서게 될 것이던가?

두 분 다 하나님을 모르는 자가 아닌 바,

이 세상의 모든 기독교인들이 다 칭찬 받을 것이 아님이 분명하다.

 나.

매일 매일 주님 앞에 서는 의식을 가지려 애쓴다.

정말 그런데 주님이 저러지 않으실까?

아니.. 위에도 고백했지만

오히려 '주하인의 얼굴 봐서.. ' 라는 소리가 들릴 것만 같다.

나..

그리 일상의 삶을 여유롭게, 착하게, 본이 되게

영리하고 멋있어 보이게 살지 못했고

주님 앞에 서면서도

매일 일상에서 '욱~' 하려는 성품 탓에

나름 육체적 성질의 강함 때문에

자식에게 그리 여유롭지 못한 아버지 상 때문에

이웃에게 너그럽지 못한 급한 성품 때문에...

죄스러운 일이 많았었는데

그럼에도 말씀에서  '(주하인의~~ ♡) ~낯을 봄이 아니면' ...이라는 저 말씀이

새삼 다감하고 다정하게 느껴짐이 참 이상하다. ^^;


 
15.  이제 내게로 거문고 탈 자를 불러 오소서 하니라 거문고 타는 자가 거문고를 탈 때에

      여호와께서 엘리사를 감동하시니 
  거기에 대한 답이 될까?

이 구절이 역시 쓱~ 하고 마음에 온다.

' 거문고를 타는 자'를 거문고 타게 하고

그로 인하여 '기도'하는 엘리사가 감동을 한다.

 

 거문고.

찬양하는 사람.

찬양하기만 하기보다는 '하나님 기뻐하시는 찬양'을 하는 자.

찬양이 노래이고 풍악의 개념을 떠나

주님의  살아계심을 '운율'로서

일상의 삶으로 올려 드리는 것을 의미하는 듯 하다.

 흐르는 공기, 바람의 움직임처럼 보이지 않으나

살갗에 닫는 실제의 감각으로 느끼는 자...

그들의 입에서 하나가 되는 감동의 소리가 나오게 되는 자다.

그게 찬양하는 자고,

거문고를 타는 자이다.

 

 나.
 찬양을 좋아한다.

참 좋아하고 참 사랑한다.

찬양을 통해서 임하시는 하나님의 임재를 강하게 느끼곤 한다.

일상을 살되 일상에서 흐르려 노력한다.

막힌 부분이 안생기게 하려 노력한다.

가끔은 실패하지만..

그 흐름의 운행을 '성령'께 맡기려 노력한다.

요새 그 연습을 시키신다.

내 성품에 맞지 않는 일로 자꾸만 '어려움'을 경험하게..

그러나, 조금은 힘들지만 그 일을 말씀에 맞추어 해결할 수 있도록

말씀으로 성령으로 인도하심을 느낀다.

그리고 성공하고 , 성공한 다음에 남는 어이없는 속상한 감각,

즉, 흐름을 막아서려는 내 내면 안의 장애물 들이

하나하나 작아지고 적어지는 듯하다.

그래서 이전보다, 어제보다 오늘이 조금 더 잘 흐른다.

내 속에서 운율이 흐른다.

성령의 흐름을 입으로 기타로 가끔은 사진으로 비추어 낸다.

난...

흐르는 자고 찬양하는 자다.

 그런 나를 주님은 기뻐하신다.

그 런 자를 엘리사는 초빙하여 하나님의 감동을 엮어내고

거기에 예언하여 낸다.

 

 주님.. 나.. 기뻐하신다.

오늘의 메시지다.

감사하다.

 

 새로 오신 P교수님.

Y대에서 주임교수까지 하신 나름 저명하시지만

연세가 많으신 퇴임 후의 자리.

그 분께서 조금은 급하신 성품이 있으시다.

여러차례 말씀을 드리고 직원들 통하여 제안을 했으나

또 잊으셨는지 오늘 수술 두분을 덜컥 잡아 놓으셨다.

덕분에 내 수술시간 - 월, 수 ,금 오후 -이 자꾸만 비틀거린다.

마치,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ㅜ.ㅜ;; 이다.

이구..

어렵고 힘드신 어른이시라 조심조심 기도하며 모시는 마음으로 있으려 했지만

어제는 내 급한 성질이 부딪혀 혼자 그냥 '부르르' 했다  ㅜ.ㅜ;

분노까지는 아니지만 덕분에 다섯시 넘어서 수술을 시작할 운명이 되어 버렸으니

속이 상한 것은 사실이 아닌가?

그리고 원망이 나오려 한다.

'내 나이가 얼만데 새로오신 분에게 이리.. ' 한다.

억울하려 한다.

' 이건.. 젊은이에게... 이제는 나이드신 분에게 까지.. '

이런 장애물이 마음 속에서 슬슬 나를 자극한다.

일견 맞은 생각이긴 하지만

하나님의 원리는 아니잖은가?

나.

급한 성격이 이래서 어렵다.

기도하고 나름 정리는 했다.

낮추자.

겸허하자.

이해하자.

그러나 약간 들 뜬 마음을 난 느낀다.

 

아침에 묵상이 이렇다.

날 위로 하신다.

감사하다.

 

조심스레이 출근하신 P선생님 방의 문을 두드리시니

아주 다급히 사과하신다.

그것봐라.

말씀을 중심으로 사니...

예전에는 그리 어렵던 것들이 조금조금 나아지지 않는가?

나... 말이다.

오늘 주님이 나에게

'네 얼굴 봐서... '라 하시는 소리가 들리는 듯

기분이 좋은 아침이다.

 

 

적용

1. 내 얼굴 보셔서.. 라신다.

 기쁨으로 받아 들이자.

 

2. 난 왕따가 아니다.

 주님의 왕따만 아니면 된다.

 세상의 모든 것 가지는 것 보다 낫다.

 사람의 모든 칭찬 받지 못해도 된다.

 기뻐하자.

 

3. 성경 세장 읽겠다.

 

4. 난 찬양하는 삶을 살겠다.

 주님이 좋아하신다.

 주님이 귀히 여기신다.

 나.

 찬양하는 것도 열심히.. 삶도 찬양하듯이.. 매사에 운율있게 흐르는 삶을 살자.

 성령의 움직임에 날 맡기자.

 흐르는 내 삶.. 막히지 않은 내 삶.

 인도하심에 물처럼.. 바람처럼..

 

 

 

기도

 주님.

정말 기쁩니다.

나..

주님의 사랑 받는 자임을 다시한번 확인했습니다.

제가 잘해서 사랑해주시기라기보다

절 사랑해주셔서 제가 잘함을 알게 되었습니다.

 주님.

제가 무엇이관대 절 이리 사랑하시나이까..

가슴이 따스해옵니다.

뿌듯해옵니다.

이전..

똑같은 일을 했을 때 많은 부담이 날 막았을 때가 많았지만

이제 참.. 많이도 자유롭고 여유로와졌습니다.

주님의 사랑 탓이십니다.

주님이 날 보시는 그 눈길을 체험하는 시간이 늘어나고

그 사랑을 깨달아가는 내 영혼의 폭이 커져서 임을 압니다.

감사합니다.

절 사랑하십니다 .

주님은 절 사랑하십니다.

제가 그리 뛰어나지 않지만

주님이 사랑하시는 그 크기가 너무 크셔서 제가 이리 살아있고

제 입에 노래가

제 눈에 기쁨이

제 행동에 조손함이

제 반경에 흐름이 생김을 많이도 체험하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주여.

감사하나이다.

제 찬양하는 삶을 기뻐 보시고

마치 이방의 왕같이 날 생각했지만

덜컥 쳐다보시며 여호사밧왕을 지명하시는 그 엘리사님의 눈길처럼

절 바라보시며 사랑하시는 그 주님의 눈빛을 다시금 느낍니다.

감사합니다.

제 부모님..

제 아내

제 자식들..

제 식구들..

다 그리하소서.

간절히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감사합니다.

주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또 한번 기도 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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