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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은 sign이다 ( 왕하 3:1-12 )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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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은 sign이다 ( 왕하 3:1-12 )

주하인 2011. 7. 5. 14:11

제 3 장 ( Chapter 3, 2 Kings ) 

비가 올 때

마른 곳이 더 그립고

어두울 때

밝은 곳이 더 드러나 보인다

 

그러기에

기도로 피할 곳 미리 마련하고

말씀으로 안온한 곳 사모함이 마땅하다

 

고난은 주님을 바라보고 계기이기도 하지만

고난이 오지 않기를 미리 기도할

주님의 뜻이기도 하다

 

 

 

10.  이스라엘 왕이 가로되 슬프다 여호와께서 이 세 왕을 불러 모아 모압의 손에 붙이려 하시는도다
 여호람은 나름으로는 '산당'을 폐한 신앙인이다.

그런 그가 모압을 치러 갈 때는

유다와 에돔왕과 연합군을 형성할 지언정

하나님께 여쭙지는 아니했었다.

이것을 오늘 묵상에서는 ' 아버지 아합 보다는... '이라 표현하셨지만

그리 좋은 신앙인의 모습은 아니었던 것 같다.

 그런  그가 기도하지도 않고 실행한 어떤 일이

뜻대로 되지 않으니 '하나님'을 원망한다.

이 어리석음..

어쩌면 나의 모습의 일 부분과 아주 닮아 있을 지도,

어쩌면 현재 신앙인들의 대부분의 모습을 대표하는 모습일지도 모른다.

아니라고 어떻게 장담하는가?

 


11.  여호사밧이 가로되 우리가 여호와께 물을만한 여호와의 선지자가 여기 없느냐   
  여호사밧.

유다의 왕.

조금은 더 영적인 왕.

그도 그제야 '하나님'을 생각한다.

그래도 여호람왕의 원망성 발언보다는

하나님을 '현실적'인 유일한 대안으로 생각해낸 것이다.

 

 생각할 바다.

세 나라가 연합하여 '모압'을 치러가는 길은

하나님이 안계셔도 '성공'일 듯 싶은 탄탄 대로의 길이였다.

그때,

정말 누가 보아도 하나님의 축복이라 생각되는 시간이

오히려 더욱 조심할 때다.

고난이 심할 때는 누구라도 하나님을 부르짖을 수 밖에 없다.

 우리나라의 이 놀라운 번영,

피원조국에서 원조국으로 탈바꿈한 세계 유일의 나라.

세계에서 가장 빠른 경제 성장.

세계에서 제일 큰 교회가 있는 나라.

세계에서 '한류'라는 이름으로 아시아권의 문화를 세계에 전파시키는 나라.

세계에서 미국 다음으로 선교사를 많이 파송한 나라.

세계에서 드물게 경제성장 후 정치적 개혁을 이루어내는 나라.

세계에서 가장 IT가 발달한 나라......

 세상에 없는 유일 또는 최초의 기록이나

드물게 보여지는 성적들은

그 어려운 시절,

세상에 유일하게 '자생적'으로 선교가 이루어진 후

그토록 열렬히 기도하던 나라이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 기도는 '고난'을 이겨내게 했다.

그러나, 이제 가난이 물러가고 경제적으로 번성해지니

사회 곳곳에서 상상하기 힘들었던 부도덕과 부정이 번성하고

무엇보다 기도하는 사람들의 수가 급격히 줄어가고

열렬한 기도는 더욱 줄어들어 가고 있음을 보고 있다.

 지난 주일

목사님의 직접 경험하신

'중국 ' 지방 회사 사장일행의 격정적인 기도 예화 뿐만 아니라

간간히 들려지던 선교 소식을 통해서 들려지는

중국 교회의 강렬한 기도는

'촛대'가 옮겨진게 아닌가 걱정이 된다시던

목사님의 설교 처럼

이 나라의 영적 냉랭기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유럽은 안그런가?

미국은 또 어떻고 ?

유럽의 종교개혁이후 그 종교적 흥황기를 넘어서며

그 촛대가 청교도를 통한 미국의 부흥으로 넘어가며

점차로 아시아 그 중 '한국'을 뜨겁게 이끌어가시던

하나님의 영적인 부흥과 따르는 물질적 부흥이 거의

그 흥망과 성쇠가 일치해 가지 않던가?

너무 부해지면 영적으로 나태해지고

그 나태는 기도를 생각지도 못하게 한다.

 

 그러기에 세상의 축복은 어쩌면 영적으로 가장 호된 도전일 수 있다.

많은 영적 지도자들이 끝까지 유지되지 못함도

너무 급작스럽고 풍족한 부흥 탓이 아닌가 싶다.

시편의 '너무 부하지도 가난하지도 말게 하여 달라는 ' 기도는 새삼스럽지 않다.

 

 그러함에도 여호사밧은 그 풍요롭고 그럴듯한 유혹에서

고난이 있자마자 '주님 하나님'을 먼저 생각한다.

누구처럼 적당한 신앙생활을 가지고

모든 것을 다 받아야 할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가

그들이 생각했던 부흥과는 다른 방향의 고난이 있자마자

'원망'하는 그런

현대의 대부분의 기복적 믿음과는

너무나도 다르다.

그 누구는 '이스라엘 왕 여호람'이다.

그럴듯한 '기독교인'이다.

어쩌면 너무 편안해져 나태해질 때의 '나'다.

어리석은 자다.

 

어리석지 않으려면 늘 깨어 있어야 한다.

깨어 있는 다는 것은 '하나님을 늘 의식'함이다.
늘 의식함은 기도하고 말씀 보고 때로는 금식하고.....의 열심을 보임이다.

 그 당위성은 '하나님을 잊지 않기 위함'이다.

하나님을 잊음은 여호람의 잘못이다.

어리석음이다.

적당한 신앙은 무서운 불신앙이기도 하다.

 

 그러기에 고난은 어쩌면 유익이기도 하다.

고난은 주님을 잊지 않게 하시는 주님의 배려이기도하시다.

고난이 더욱 고난스럽지 않기 위해서는 어서 무릎꿇음이 필요하다.

우선 주님을 다시 생각함이 필요하다.

자신을 돌아보는 기회가 되어야 한다.

예상못한 고난은 내 신앙을 점검하는 시간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어서 회개하고 돌아와야 한다.

새로운 결심을 해야 한다.

 

세상의 어떤 것도

하나님의 허락하신 그 '평강'을 비길 것이 있던가?

하나님의 은혜에 비견할 것이 있던가?

하나님의 혹여나 주실 세상의 부수적 축복의 크기에 비교할 바가

' 또 ' 있던가? ^^;

 그리고 다른 그 무엇을 이야기 하더라도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마련하신

그 영원의 영생을 생각할 때

그것을 잃게할 이땅의 어떠한 중요한 일이 있을 수 있던가?

일시적 젊은 치기의 '사랑'이란 이름의 남녀간의 화학적 끌림?

썩어죽어 들어갈 재물?

조금 더 시간이 지나,

신경에 나이의 해독이 쌓여 느껴지지 않을 수 밖에 없는

그 세상의 말초적 쾌락?

그 어떤 댓가를 통하여

하나님의 그 천국의 영생을 잃을 이유가 있던가?

 

그러기에..

늘 깨어 있어야 한다.

어찌되었든 세상은 주님의 뜻에 의하여 거쳐가는

'연단의 장소'일 뿐이다.

이 연단의 도구는 여럿이다.

'고난'

' 넘치는 복' .

어쩌면 후자가 더 위험할 수 있음을

오늘 묵상을 통해 다시한번 깊이 생각해본다.

 

나 .

어찌해야 하는가?

요 며칠 날 잠시 흔들었던 어려움들.

오랫동안 가지고 온 '터부'들의 흔들림.

.......

그게 그리 버려야만 하는 가치없는 고통 뿐이던가?

오늘 묵상을 역으로 생각하면

고난은 '싸인'이다.

더욱 주님께 다가갈 기회이다.

기도하고 묵상할 일이다.

 

 다행이도 어제 두끼 금식 과정 중,

그 배고픔을 두려워 하기보다는

두려운 고통을 그냥 누려보려는 마음이 들었었다.

그리하니, 참으로 배고픔이 고통스러워도

그 고통은 영적 평안함을 가져왔다.

기뻤다.

금식은 사단의 멍에를 자르는 역할을 한다시던

목사님의 설교가 다시한번 새로웠다.

 금식을 통하여 너무 편안하려는 육신의 유혹을

조금은 자극해봄도

영적으로 유익이 있음이다.

 

 

적용

1. 힘들 때 가만히 기도해보자.

 주님께서 알리실 뜻이 있으신지도 모른다.

 

2. 너무 편할 때 경계하자. .

  나태는 불신앙의 유혹이다.

 

3. 성경 세장 읽겠다.

 

4. 여로함의 모습은 내게는 없는가 돌아보자.

 

5. 순간 순간 회개하는 삶을 살자

 

 

기도

주님.

오늘 하루 돌아봅니다.

요 며칠도 돌아봅니다.

내 인생도 돌아봅니다.

주님.

그러고 보니 고난이 유익일 때가 많았습니다.

거쳐올 때는 많이 힘들었지만

그 때는 더욱 풍성한 하나님의 은혜가 있었음을 압니다.

그리고 그에 따르는 현실적 축복도요.

감사합니다.

이제 세월이 많이 지나가고

편안했던 시절이 누려지며

또 다른 생각과 어려움이 받아집니다.

당황하려 했습니다.

하지만 오늘 말씀을 묵상하며

고난을 두려워하지만은 말자는 그 진실을 다시한번 깨닫습니다.

귀하신 주님.

고난은 두렵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함께 하시면 오히려 축복임을 압니다.

그 사실이 잊혀지지 않게 도우소서.

그런 것을 명심하고 눈을 들게 하소서.

땅 만 보지 않고 하늘 보게 하소서.

주님 만을 보게 하소서.

그래서 흔들리지 않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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