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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수리 나무 아래 (왕상13:11-19)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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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수리 나무 아래 (왕상13:11-19)

주하인 2010. 10. 7. 09:47

제 13 장 ( Chapter 13, 1 Kings )

 

 

 

주님

볕 뜨거울 때

오히려

주님 말씀이

더욱

간절했었습니다 

 

주님

이제

뜨거움 잦아지고

흐르던 땀도 식어지니

마음이 해이해집니다 

 

주님

붙드소서

 

곧 있으면 허락하실

주님의 축복,

하나님의 사람으로서의

저를 기억하여

다시한번  힘 받게 하소서

 

주여

 

 

상수리 나무 아래 (왕상13:11-19)  

14.  하나님의 사람의 뒤를 좇아 가서 상수리나무 아래 앉은 것을 보고 이르되 그대가 유다에서

      온 하나님의 사람이뇨 대답하되 그러하다 
 하나님의 사람, 'man of GOD' 도 쉼은 필요하다.

특별히 그 길이 세상의 영달과 달콤함을 버리고

홀로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서

'고독'한 길일 때

때로는 그 고독함이 '그득한 외로움'으로 변할 때가 있다.

 말씀으로 집중하고 말씀대로 움직이다가도

때로는 ' 감정'이 휘몰아 칠 때가 있다.

 하나님의 은혜로 열심히 전사처럼 기쁘게 나가다가도  

때로는 우울한 마음이 엄습하여 센티해질 때...

그때도 '하나님의 사람'이라 이름 지을 수 있을지는 몰라도

어째든 이 대단한 영적 용사도

마치 '엘리야'가 그러셨듯 '상수리 나무 아래'에서 쉴 때

그의 영적인 틈을 사단이 비집고 들어 왔던 모양이다.

때로 감정은 감정 자체가 아니고 그를 선행하는 어떤 생각들이 있음을

점차로 확신하고 있다.

 감정과 생각과 행동과 증상의 이 네 바퀴는

현실요법이라는 심리 요법에서 극명하게 들추어  낸 바 있음을 수년전 부터

내 블로그에 써 오고 있다.

 이 하나님의 사람은 '엘리야'처럼 상수리 나무 아래에서 쉴 때

'생각'에 사로잡혔고 그 생각은 그로 하여금 아마도

영적으로 해이하게 하였을 것이다.

 

 아마도 이랬을 것이다.

'여로보암'과의 영적인 일전을 벌인 후

생명의 위협을 건너 뛰고

쉬고 가라는 세상의 유혹을 물리치고

처절히 하나님의 말씀을 준행하여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않고 오지 않을 길로 오다가

멀리 보이는 '상수리 나무' 의 그늘이 보이자

그는 하나님의 위로로 자위하며 얼른 가서 쉬게 되었을 것이다.

 여기까지는 괜찮다.

쉬려 앉으니 바람이 시원하게 분다.

머리의 땀이 식으니

식사를 하지 않은 배가 꾸르륵 소리를 내고 입은 타 들어갔을 것이다.

그래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배부리니 덜하다.

시간이 지나니 일어나기 싫다.

아마 이때 그는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하기 보다는

잠시 돌아온 시간들을 회상하며 감상에 몸을 맡긴 것 아닌지..

 엘리야도 그 시간 동안 깊은 '우울증'에 빠져 들어갔음은

이 쉼의 시간, 특별히 영적전투를 격렬히 해 승리한 후가 주의해야할 시간임을

다시한번 주의해야 할 것이다.

사단은 '틈'을 노린다.

그들은 자지도 않고 그렇다.

하나님의 사람의 길은 좁은 길이기도 하다. 

 
17.  이는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이르시기를 네가 거기서 떡도 먹지 말고 물도 마시지 말며 또 네가

      오던 길로 돌아가지도 말라 하셨음이로라
 '선지자'의 유혹.

선지자는 무엇을 의미하는 가?

나름 영적인 경지에 올라 '세상적 공인'을 받은 상태로

지금으로 말하면 '목회자'님들은 아닐까?

하지만 목회자가 반드시 '하나님의 사람' 일까?

훌륭한 목사님도 매사 단 일초도 하나님의 사람으로 흔들리지 않고 설 수 있을까?

이분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 에 충실 했을 때는 하나님의 사람이다.

 


 
18.  저가 그 사람에게 이르되 나도 그대와 같은 선지자라 천사가 여호와의 말씀으로 내게 이르기를

     그를 네 집으로 데리고 돌아가서 그에게 떡을 먹이고 물을 마시우라 하였느니라 하니 이는 그

     사람을 속임이라 
19.  이에 그 사람이 저와 함께 돌아가서 그 집에서 떡을 먹으며 물을 마시니라 
  또한, 이 하나님의 사람으로 지칭되는 분은

거짓 선지자의 말처럼 '선지자'이기도 하시다.

 

 아쉬운 것은 이것이다.

그 쉼동안 그가 말씀에 충일했더라면

그는 '천사'의 이야기를 들먹이는 '선지자'의 이야기에

선지자가 하는 이야기니 무턱대고 하나님의 말씀일 거라는 당연한 공식을 믿고

하나님께서 '먹지도 마시지도 말라'는 말씀을 믿지않는 우를 범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것은 그가 '상수리 나무 아래'에 있을 때

말씀에 충일함을 놓친 것이다.

 

 그게 오늘 묵상의 포인트가 아니던가?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이름' 아래에서 놓여진 '세상의 말'과 구분하는 지혜.

그 지혜를 얻기 위하여 명심해야 할 '말씀의 철저한 선택'이 아니던가?

분명코 하나님 말씀과 어긋 나는데 '천사'라는 하나님 근처의 이름을 대니

정반대의 말임에도 불구하고 들어가서 먹고 마시게 된 것은

'그의 영적인 나태'에 의함이다.

상수리 나무 아래 쉼 동안 말씀이 흐려진 상태이기에 그렇다.

 

 

  외적으로 힘들던 일, 마무리 되었다.

참 오랜 시간 마음 고생도 했고 얼마동안은 말씀대로 열심히 살았었다.

잠시 흔들렸지만..

그리고는 그 갈등을 말씀으로 '깨끗이' 해결했다.

주님을 믿고 좋은 것은 마음이 돌아서면 확실히 깨끗한 것이다.

십자가 예수 보혈이 정말 더럽고 더럽기 그지없는 이 마음을 온전히 사심없이 바꾼다는 것이다.

그게 좋다.

자유롭다.

 그럴 때마다 느끼는 나 자신에 대한 생각은

정리된 것은 아니었지만 요 며칠의 묵상의 말씀을 들어 생각하면

어쩌면 나도 '하나님의 사람'이었다는 자기 정체감이 있었을지 모른다는 것이다.

그게 스스로 사랑스럽다.

그러나, 그런 사랑스럽고 자랑스러운 개념이 늘.. 유지되지 않았던 것이 문제였다.

처음 말씀 접하고는 며칠에 한번 정도 아주 잠시 말씀이 쓰나미처럼 몰려올 때

아주 잠시였었다가 시간이 흐르고 몇년이 지나니 거의 매일 같이는 아니어도

자주 였었고 하루 중 말씀에 붙들리는 시간이 점차로 길어졌었고

이제는 예전처럼 내 감정의 기본 기조가 '불안'이 더 이상은 아니고

'기쁨' , '평화'... 즉,평강..그 하나님 나라의 기본 감성에 가까워 지긴 하는 것이다.

 아마도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단어에

그리 어색하지 않고

그리 쑥스럽지 않게 자신을 적용시키고 담대할 수 있음은 - 이전 같으면 소스라치게 소름끼쳐 했을 ..^^; - 그것이 사실이고 하나님이 주시는 확인이시기에 그렇지 않을까 생각되는 것이다.

말씀은 살아계시고

말씀은 진실이고 진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직도 그 평화를 뚫고 하루에도 자주자주 들어오는 부정적인 생각을 금할 때가 없지 않다.

아니 .. 여차 하면 내가 말씀을 묵상하는 자가 맞던가 하고 당혹스러워 할 정도로

부정적인 생각과 더러운 생각으로 몰입되다가 불현듯 놀랄 때가 자주 있다.

그것은 너무도 오랫동안 , 오십여년 가까이 내 삶을 유지해오던 생각이기에

자연스럽게 날 붙들고 놓아주지 않는 것이다.

 

 그렇다.

정말 그렇다.

세상은 끈질기다.

세상의 불합리하고 부조리한 사단 들은 날 쉽사리 놓아주고 싶겠는가?

그게 비단 나 혼자 만의 문제가 아님은

성경을 통해서 다시한번 재차 삼차 확인 받을 수 있기에

난 혼자의 좌절감에 빠지지 않을 수 있어 좋다.

말씀을 묵상함 - 큐티란 단어가 난 싫다.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함이 단 일초라도 없으면 안될 것을

제자 훈련 같은 교회 활동의 한 분야 같이 국한 시켜 버리는 느낌이라서 그렇다.. - 은

날 살린다.

오류로 부터 날 구한다.

 

 아침에 눈 뜨고 나서 부터

잘 정리된 마음이 걸리는 부분이 새삼 느껴진다.

그 생각에 사로잡히면 내 감정의 기조는 흔들린다.

그런데, 깨닫게 된다.

'아... 이런 때가 바로 하나님의 사람이 되어감을 막는 때'구나.

아마도 오늘 하나님의 사람이 상수리 나무 아래에서

잠시 쉼을 가지며 넋을 빼놓고 있을 때,

바로 그때 '사단'이 광명의 천사, 선지자를 가장하고

그럴듯하고 달콤한 감언이설과 합리라는 이름으로

그를 흔들었을 것이다.

그러기에 근본적이신 하나님의 뜻이신

'왜곡된 문화와 섞이지 말라'는 것을 무시하고 금식을 깨버리고 어울리고야 말게 된것이다.

먹고 마시는 것.

그게 무에 문제이겠는가?

하나님의 뜻을 ,

하나님의 말씀을 잊는 거가 문제지..

 

 다시한번 머리를 털었다.

'난 가장이다.

 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산다.

 낮아지고 약해지고 받들어주고 겸손해지고  이해함이

 내가 할 일이다'

 갈등이 생기려 하다 멀리 간다.

하나님의 사람의 훈련을 한번 더 한 아침이다.

 

 

적용

1.  선지자가 반드시 하나님의 사람은 아니고 하나님의 사람이 항시 하나님의 사람 같지 않을 수도 있지만

    선지자가 하나님의 사람일 가능성이 많고 그들이 말씀 앞에 순종할 때 더욱 거룩한 자임을 안다.

    목회자님들을 위하여 기도하자.

    그들이 말씀 앞에 바로 서기를...

 

2. 상수리 나무 아래를 기억하자.

 쉼의 의미.

 육체적 쉼은 흔들릴 가능성을 의미한다.

 나태와 해이를 경계하자.

 

3. 늘 회개하고 돌이키자.

 회개를 놓침은 교만의 지름길이고 그것은 패망의 길이다.

 오늘 말씀이 증거한다.

 

4. 감정을 의지하여 세상을 보려하지 말자.

 감정을 생각이 앞서는 게 보통이다.

 생각중에는 사단의 것들이 많을 수 있다.

 말씀으로 생각을 바꾸라.

 감정으로 모두 믿지 말자.

 

5.  말씀을 세장 읽자.

 말씀은 생명이다.

모든 것 말씀을 바탕으로 생각하고 바라고 원하자.

 

 

 

기도

 귀하신 주님.

저로 하여금 말씀 앞에 온전히 사로잡히게 하소서.

읽고 끝나고

묵상하고 잊어버리는 그런 단순한 자 되지않게 하소서.

말씀이 내 삶의 전 영역에 깊게 들어와

말씀을 중심으로 고뇌하고

그 말씀의 중심이신 하나님의 뜻이 어떠하신지 늘 고민하게 하소서.

그리하여 흔들리지 않도록 하소서.

그럴 듯한 자의 말이 있더라도

하나님의 말씀의 뜻에 어긋나면 단호히 거부할 수 있도록

힘을 주시고 의지를 주시고 지혜를 주소서.

저 뿐 아니고 제 자식들 , 제 아내 그리하게 하시사

세상에 드문 귀한 성가족이 되도록 하소서.

모두 맡깁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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