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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속의 디오드레베 [요삼1:9 - 1:15]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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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속의 디오드레베 [요삼1:9 - 1:15]

주하인 2013. 11. 11. 10:05

과연

내게 있어서

가장 으뜸되는

가치가

무엇인가

 

 

 

온 천지가

다 어두워져도

십자가 만이

내 모든

가치의 중심이

되고 있음이 맞던가

 

 

 

오직

그 분 만으로 인하여

내 어리석고

이 답답한 영혼에

빛으로

비춰지고 있던가

 

 
9. 내가 두어 자를 교회에 썼으나 그들 중에 으뜸되기를 좋아하는 디오드레베가 우리를 맞아들이지

    아니하니

 

 

 내게 으뜸되는 가치는 무엇인가?

디오드레베 처럼

그냥 앞서기를 좋아하고

남들 앞에 칭송받기를 좋아하는 감정은 아닌가?

 

누구하나

남들 앞에서 칭송받기를 싫어하고

일등하기를 싫어할까?

다만, 모든 사람들의 특질이 천차 만별이기에

어떤 사람은 그냥 솔직히

어떤 사람은 좋으면서도 자기 속에 감추며

어떤 사람은 그냥 운명이라 포기하면서 표출을 안할 뿐이겠지..

 

나는 어떤가?

앞서기를 싫어한다.

눈총 받고 관심 받는 것은 싫어한다.

비교적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하고

조직에 소속되는 것을 싫어하여

자유로운 영혼으로 남고 싶은 것이

내 바램이다.

 

그러나, 다시한번 들여다 본다.

나... 안그렇다.

누구 앞에 나서는 것 좋아한다.

찬양..때 특히 그렇다.

그러면서도 칭찬에 굉장히 안절부절 못한다.

이 이중적인 감정.

그것이 싫어서 가능하면 조직이라거나 남들의 눈에 안뜨이는 자리에

가만히 있고 싶어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으뜸되는 것'을 좋아하나

내속의 오래된 '터부'로 인하여 못하고 있을 뿐이란 생각이다.

더구나 하나님 말씀이 들어오며

예수님의 원리가 '낮아짐을 기뻐함', '약함이 강함'이고

십자가는 나서기보다

자아의 죽음이기에

그 사실을 너무도 잘 아는 자로서

그 갈등이 싫어서 멀리 피할 뿐이다.

병원에서도 초기의 내 외양을 보고

많은 보직을 제안 받았던 것은 사실이다. 

그 멀리 앉음은

나로 하여금 영적 평안을 유지하는 데 많은 도움이 있지만

열심히 앞서려 하는 분들을 보면서

아직도 내 속에 '뒤엉킨 마음'이 가끔 있음을 느낀다.

이 나이에도

아직도 '호승심', 누구보다 나아보이고 싶은 마음이 있다.

'질투' 다 .

정확히 말하면..

 

하나님은 오늘 내가 더욱 들여다 보아야 할

내적 투쟁의 근본을 '으뜸되고 싶은 마음'이다.

 

그렇다.

더욱 겸손해져야 한다.

빨리 겸손해져야 한다.

어쩌면 지금 낮추었다고 생각하는 많은 부분이

실은 '상황'에 의하여 '도피하고 있을 뿐', 기회가 되면

얼마든지 '디오드레베'와 다르지 않는 행동을 할 기회가 상존해 있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

 

돌아보면 이 인간 사회에

얼마나 만은 디오드레베들이 득실대는가?

더구나 세상은 ' 포스트모더니즘' 시대다.

자신이 좋아하면 거칠 것 없이 표출해도 되는 시대적  추이다.

그 때 자신의 깊숙이 남아 있는

이 명예욕,권력욕, 존재감 확인의 욕구는

드세게 영혼을 드잡질하여

속에 꺼멓게 가라앉아 있는 인간의 '죄성'을 마구 마구 들뜨게 한다.

그것.

자신에게 머물어 있으면 좋지만

때로는 '하나님의 이름'을 들어

주위에 지다한 타격을 주고

거창한 명분으로 하나님을 마구 반역하는 일이 나온다.

 그것.

얼마나 무서운일인가?

배도.

배교.

그게 꼬..옥.. 유다처럼 나쁜 유전자를 타고난 자의 말이던가?

아니..

유다도 처음엔 그리 악한 자가 아니지 않던가?

그냥 조금 욕심이 많았던 '배운 자'아니던가?

그 배움이 배우지 못한 '베드로' 같은 자들이 수제자로 사랑을 받자

으뜸되고자 하는 욕구가

다른 방향으로 치달아 폭팔하면서

결국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을 반역하는 역사적 죄인이 되지 않았던가?

 

 그렇다.

죄는 들여다 보아야 한다.

그 깊은 배경을 돌아보아

싹이 적을 때 짤라야 한다

나.

오늘 내 속의 많지 않은..

아니 .. 실은 아주 많았지만 하나님의 말씀과 시간의 힘 때문에

어절 수 없이 내 속에 쪼그라 들어 있지만

언제든지 튀어나와

타인과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나쁜 손가락질과 질투와 무지로

상처를 주고 왜곡될 위험성을 깨달아야 한다 .

 

오늘 .

하나님은 그런 나를 다시금 들여다 보길 원하신다.

내 속의 디오드레베 말이다.

 

 

 주 하나님.

솔직하게 살날이 살아온  날의 반도 안남은 제게

아직도 젊은 혈기처럼

슬금 거리는 욕심이 남아 있습니다.

그토록 오랫동안 그게 정답이 아니었음을 경험으로 알아왔고

체험하였으며

말씀으로 또한 깨닫는 기회를 수도 없이 받아왔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저는

제가 앞에 서서 으뜸되기를 칭송받을 만한 용기도 없으면서도

남이 제 앞에 서는 것은 제대로 보질 못합니다.

누가 잘되었다고 나서면

속이 뒤틀리려 하고

누구 아들이 잘되었다 하면

그 입에서 자랑 나오기만 기다리고 있는 제자신을 봅니다.

그러면 '속으로'나 겉 표정으로 '무시하고'  한심하다는 뉘앙스를 그들에게 보이고 싶은

아주 가냘픈 복수의 심사 같은 생각말입니다.

주님.

그것도 제가 디오드레베와 같은 마음임을 압니다.

 

주님 안에서 해결받기를 원합니다.

십자가 앞에 내려놓고 솔직히 해결받기를 원합니다 .

주여.

제게 허락된 상황을 그냥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하나님 안에서 그냥 허락된 나를 기뻐하길 원합니다 .

당당하길 원합니다 .

잘한자를 칭찬하고

기뻐할 자를 같이 기뻐하는 주하인이 되길 원합니다.

제 부족함을 오히려 하나님이 허락하신 강함의 기회로 삼길 원합니다.

그게

제 영혼의 흐름이 되길 원합니다 .

주여.

'나머지는 주님이 다 알아서 해주실 것이고

주님의 뜻가운데 제게 허락된 것 까지만 기뻐하는 자 되게 하소서.

 

이 부족한 죄악들을 용서하시고

깨우치시고

디오드레베를 쫓으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합니다 .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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