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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의 온전한 의미[벧후2:10-22]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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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의 온전한 의미[벧후2:10-22]

주하인 2013. 11. 4. 10:02


 

해가 지는 것도

의미가 있다

 

나무

홀로 서 있는 것도

또  의미가 있다

 

나이 이렇게 든 것도

그러함에도

이룬 것 없는 것 같아도

의미가 있다

 

그 어떠한 것도

의미가 없는 것이 있을까

 

 하나님

허락 안에서

이 모든 것 어우러져

이런

귀한 풍경을

이루어 내고 있지 않은가

 

 

 

10.특별히 육체를 따라 더러운 정욕 가운데서 행하며 주관하는 이를 멸시하는 자들에게는 형벌할 줄

    아시느니라 이들은 당돌하고 자긍하며 떨지 않고 영광 있는 자들을 비방하거니와

육체를 따라 사는 자들

더러운 정욕 가운데 행하는 자들.

 

난.. 그런 면은 없는가? 

육체의 성품(肉性).

 

당돌한가? ( 없지 않아 있다 .  단 이전에 비하여 많이 가라앉았다)

자긍한가? ( 없지 않아 있다.   역시 많이 줄었다. )

영광있는자를 비방하는가? ( 내 의견에 맞지 않는 목회자에대한 알지 모르는 ...있을 수 있다  )

 

 

13.불의의 값으로 불의를 당하며 낮에 즐기고 노는 것을 기쁘게 여기는 자들이니 점과 흠이라 너희와

    함께 연회할 때에 그들의 속임수로 즐기고 놀며

불의는 ? (가능하면 멀리하려 애쓴다.)

낮에 즐겨 노는 것 ?( 당구, 골프....거의 성공을 위한 오락은 멀어졌다. ^^;;; )

 그것을 기쁘게 여기던가?  ( 그렇지는 않다.   이제는 날 유혹하는 중독적 성향은 없다.)

                                     ( 더더구나 속임수로 즐기고 놂은 나에게는 없다. 최소한.. )

 그래서 좀 기쁘다 ^^*

 하지만 한편으로 조금은 그립긴 하다.

 세상의 고민없이 성공하는 자들의 '낮에 즐기는 행동'들.

 그러나 "나에게는 , 소수에게는 "...

그게 점과 흠이라니 멀리하게 됨을 기뻐해야 한다.

(아.. 어쩌면 영화나 다른 눈을 자극하는 재미는 완전히 버리지 못함도

 낮에 즐기는 정욕이라면 그럴 수 있겠으나

 기쁘게 여기지는 않고 속임수로 즐기는 영역은 아니니

 아마도 괜찮으시다는 말씀은 아니신지.. )

 

 

14.음심이 가득한 눈을 가지고 범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고 굳세지 못한 영혼들을 유혹하며 탐욕에

    연단된 마음을 가진 자들이니 저주의 자식이라

 음심.

 남자로 태어난 자들에게서 그런 마음이 없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겠지만

적극적으로 찾지 않으니

그리고 마음속의 회오리로 스치고 지나니

최소한 '내 죄의 영역'으로 끌고 나오지는 않은 듯...

하지만 늘 조심하고 또 조심해야 할 부분이다.

훌륭한 목회자들이 가장 넘어지기 쉬운 부분이 여기라 하지 않던가?

명예욕과 더불어..

 

 

17.이 사람들은 물 없는 샘이요 광풍에 밀려 가는 안개니 그들을 위하여 캄캄한 어둠이 예비되어 있나니

 육의 세계에 살면서 육성을 억제한다는 것은

정말 힘든 일이긴 하고

옛이야기를 보아도, 타 종교를 보아도

'도'를 닦는 노력들도 모두 이 육적인 부분, 육성의 '죄'됨을 알기에

그런 것이 아니던가?

그것들을 추구하고 방치함의 결과가 캄캄한 어둠...물없는 샘의 메마름, 광품의 흔들림의 두려움임을..

 

18.그들이 허탄한 자랑의 말을 토하며 그릇되게 행하는 사람들에게서 겨우 피한 자들을 음란으로써

    육체의 정욕 중에서 유혹하는도다

오늘

나에게 주의하라고 주시는 말씀은

내 '자랑'을 하지말라.. 시는 듯하다.

그 허탄한 행동.

그러나 그러함에도 나에겐 어찌나 '내 자랑'의 달콤함이 크던지..

칭찬하는 말을 듣고 나면 온통 영혼이 꿀바른듯

순간적으로 미끄럽게 움직이고 윤기가 나고 살아있는 것 같은 달콤함이

날 사로잡아 어찌할 바를 모르게 기분이 좋아진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나면

꿀이 묻은 몸이 끈적끈적함이 기분 나쁘듯

곧 다가오는 '자괴감'.. 은 또 어떠한가?

이런 모든 것이 '육체의 정욕'이란다.

육성의 끎..!!

 

 

 

22.참된 속담에 이르기를 개가 그 토하였던 것에 돌아가고 돼지가 씻었다가 더러운 구덩이에 도로 누웠다

    하는 말이 그들에게 응하였도다

 이렇게 하나님은 '경계'하신다.

 '오늘은 주하인아.

 특별히 육체적 끎 부분에 마음 소진 되지 않도록 주의하라

 그 중에서도 자기 자랑이나 칭찬에 대한 부분에 그러하라' 라 시는 것 같다.

 

 

참.......잘왔다.

기특하게..

비틀비틀 대면서도 요기까지 오고

나름 '신앙과 실 생활의 조화',  '생활속의 신앙인'으로

날 잘 조화시켜가며

이제 원리를 알것만도 같다... 싶을 때엥

전후좌우 밀려오는 삶의 버거움들은 다시 내 속의 약함을 건드리며

'불안'하게 하려하고

두려워 하게 하려 한다.

나를 사뭇 이리 저리 흔들려 한다.

광풍에 밀려가는 안개처럼

주님의 허락하신 선한 생각과 느낌들이 마치 아무것도 아니었던 양

그리 생각되려 한다.

 현실이라는 이름에 이 땅의 것만을 쳐다보아야 할 것 같고

그러기에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하여 흔들리려 하고

어느순간에 허송세월 한 것은 아닌가하는 의구심까지 들려 한다.

아........

강하지는 않다. ㅎ

이전에 잘 훈련된 내 불안 메카니즘이 조금 꿈~틀 대었다는 이야기다.

매일 매일 훈련된 말씀을 바라봄의 습관은

다시 하나님의 '평강'으로 날 이끌고

그 습관조차 허락하신 성령의 이끄심을 감사하고는 있지만..^^*

 

 

 아침에 눈 떴다.

예의 ' 오늘 하루 또 어찌 사는가'하는 생각과 더불어

힘겨운 매일이 버거움으로 다가오려한다.

 얼른, 눈을 감고 기도하였다.

말씀이 떠오른다.

마음은 가라앉는다.

그렇다.

깨달음이 다시온다.

' 내가 지난 삶동안 어찌 살았는가?

 하나님의 말씀을 매일 하루의 '의미'로 붙들고 살아왔더니

 여기까지 인도받지 않았던가?

 그 의미란 ' 말씀으로 내적인 정화하는 걸음'이다.

 매일매일 성령의 검이신 말씀으로 내 영혼의 정결화를 추구하면서

 나머진 주님이 인도하시는 대로... ' 가 아니던가?

그렇다.

나머지란 세상의 필요한 '육신적 필요'다.

당연하게도 하나님은 세상의 것도 필요시 인지하게 하시고 기도하게 하시고

자연스럽게 주셨다.

 그 결과 , 처음 말씀 묵상을 시작하던 시기에 내가 바라던것과

 전혀 달리 날 인도하셧다.

 그 이룸은 간증으로 수도 없이 써내지 않았던가?

 

그런데 왜 나는 또다시 흔들리어야 하는가?

육신적 부분에 가지게 된 어찌할 수없는 삶의 무게 탓이 아니던가?

환경, 내 가진 상처를 자극하는 부분들, 현실......현실..

그러함은 다시 내 속의 '의미'를 잊어 버리게 하고

의미인 '하나님의 말씀으로 매일 정화의 노력'하고

"그에 따르는 내 현실의 변화를 감사함으로 드러냄"을 망각하게 되는 것이다.

 

다시 난 내 삶의 의미를 돌아보게 되었다.

마음은 가라앉고 내 심령 깊숙한 곳에서 힘이 솟아나는 것 같다.

어느새 무기력은 사라지고

두려움이나 불안감은 없어진다.

감사함으로 주님께 기도하고 말씀을 들여다 보았다.

어려운 내용들.

하지만 肉性에대하여 말씀하시고

그의 죄됨을 이야기 하신다.

 

 그렇다.  

눈 앞의 것들.

살아가야 하는 것들.

살면서 어찌 취할 수 밖에 없는 것들..

다 육신에 속한 것들이나

그것들을 일차적으로 앞세워 세상만을 추구하거나

하나님의 말씀과 병립 시킴은

어쩌면 '육적 성질'을 강화시킴이다.

그것.. 어느새 '광풍'에 휘말리는 안개처럼 밀려나게 되는 자 되게 된다.

어쩌면 '토한 것'에 다시 눕는 자 될 수 있어 실족의 위험성도 있다.

 

나.

이전과는 다른 양상의 시험이 다가옴을 느낀다.

그리고 다른 반응을 난.. 또 보인다.

세상의 버거움은 이전보다 더 쉽지는 않지만

내 반응은 그러함에도 '말씀'을 더욱 들여다 보고

하나님의 은혜로 잔잔한 '평강'을 회복하는 시간이 늘어나고

육신적 성공은 주위에 비하여 덜하나

그것으로 인하여 흔들림은 더 덜하다. ^^*

아직도 내 노후에 대하여

똑똑한 그들에 비하여 덜 대비가 되어 있고

자식들을 기대할 만큼 그들의 앞길에 온전한 대비가 되어 있지 못하나

그래도 '주님이 하시겠지' 하는 기대의 마음이

현실 도피로 느껴지는 비율이 훨씬 덜해진다는 이야기다.

그것.

하나님은 지난 십수년, 예수님 영접한 후 이끌어오심을 통해서도

깨닫게 해주신다.

내가 예기하지 않았던 방향으로

날 이끌어 오시며

대박은 아니라도 (- 난 이걸 늘 바라지만.. ㅎㅎ )

내 달란트계발 및 드러남... 등,다양한 변화를 가져오도록 인도하시고

지금까지 참.. 단단하게 발을 딛고 현실에서 굶지 않고 살도록 이끌어 오셨다.

그 모든게 말씀 안에서

매일 내 삶의 의미를 파악하고 받아들이고 변화하려는 시도 가운데서

이루어 져 왔음을 오늘 아침 '새삼'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오늘 주제는

'삶의 의미' 로 정하고 싶었다.

그 삶의 의미는

매일

말씀 만을 붙들고

내 변하지 않은 내적 부분들을

성령으로 ,

십자가 앞에

하나님의 은혜로.. 녹이며 사는 것.

그러함의 결과로

난 '평안함'을 누리고

결과적으로 노후 마져 이끌어 주심을 경험하는 것.

말씀대로 '백발까지 노년까지 '  안고 품고 구하여 내심을 경험하는 것...

어떤 상황에서도 내 영혼이 흔들리지 않는것..

그러다 주님 부르시면

홀연히 주님 곁에 가는 것을 경험하는 삶으로

느껴지게 되었다.

 

더 뚜렷해져 야한다.

삶의 의미를 더 뚜렷이 말씀 안에서 잡아야 한다.

그럴 수록 내 삶은 더욱 강건하여질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주님.

오늘도 또한 말씀으로 절 사로잡으십니다.

세상 만을 바라보면

어떠한 의미도

이 인생에서 찾을 수가 없어

내 젊은 시절,

예수님을 영접하기 전까지

그토록 허무하고 허탈하게 살았습니다.

그때는 그래도 젊음의 호기심과 욕구가 있어

이것도 해보고 저것도 해보았으나

재미 이상의 것은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제 안의 갈등들은 '제 육신'을 치고

제 심령 속의 상처들은 절 마구 갈구어

저로 하여금 많은 좌절 속에서

혈압이 올라가고 불면증에 시달리는 등

위기의 순간에

주님이 오셔서

절 첫사랑으로 잡으셨습니다.

그 후에 전 그 사랑으로

그리고 인도하신 말씀을 통한

제 영혼의 개조 작업을 통하여

하루 하루 이끄심을 경험하면서

전, 여기까지 와 있습니다.

 

주여.

올해들어 새로운 형국의 도전이 시작되고있습니다 .

육적인 어려움이 가중이 되어가고

현실적인 도전들이 마음을 흔들려 합니다.

과정에서 또다시 제 허무와 허탈이 자극이 되고

불안함이 용트림하려하지만

말씀을 통한 '하나님의 살아계심'은 절 가만히 두지 않으십니다.

그래서 그 저주와 복 사이에서

전 다시 그마져도 '복'임을 알아 채려가고 있습니다.

하나님 안에서

하나님이 모르실 일이 없는

하나님이 허락하신 그 연단과정을

매일매일 인도하시는

말씀 가운데 '의미'를 찾기 시작하여

다시 하나님의 뜻대로 기다리고 인도받음을 시작하려 합니다.

다시 발걸음을 뗍니다.

지금까지도 살려 주시고 인도하신 하나님께서

더욱 더 잘 붙드시어

저와 제 가정, 이나라를

더 좋은 곳으로 인도하실 것임을 믿습니다 .

저로 하여금 더 깊은 의미의 삶을 살 수 있도록

또 다시 Insight를 주시고

강력한 말씀의 깨달음으로 절 수정하시사

새로운 도전을 이겨낼 수 있도록 하소서.

제 삶의 온전한 의미이신

내 하나님이시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받들어 진정으로 감사드리며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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