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내 노래로 여호와를 노래하다(출15:1-21) 본문
느즈막히 퇴근하며
숙소로 올라가다 바라본
눈 덮힌
외로운 그곳
뒷산 뒷뜰입니다
봄 오면 또 다르겠지만
이 순간 갑자기
마음이
답답하여 오려 했습니다
그러다
모두 하나님의 하신 일임을
기억해내고 나니
새삼
선하고 기쁜 외로움을
사진에
담아내고 싶어졌습니다
그래서
부랴부랴
핸폰으로 찍었습니다
기계의 성능
내 부족한 감성
추운 날씨 등은
사진의 현상을 좌우는 했겠지만
내
하나님을 노래코자 하는
기쁨 만은 막지 못햇으리라
전 혼자
그리 자위합니다
1 이 때에 모세와 이스라엘 자손이 이 노래로 여호와께 노래하니 일렀으되 내가 여호와를 찬송
하리니 그는 높고 영화로우심이요 말가 그 탄자를 바다에 던지셨음이로다
'이때에'
홍해 갈라짐을 경험하여
애굽 군인들의 손으로 부터 완전히 벗어나고
출애굽을 마친 그때,
몇시간 전까지 죽을 것 같이 울부짖던
원망의 시간이
자신들도 모르게 완전히 가라앉아 버린 그때에..
그 때의 이때에..
그들은
원망이 '환희'로 바뀌면서
노래한다.
모세의 노래라 부제목으로 이름지어진
오늘 묵상의 글대로
그들은 '울음'대신 '노래'를 한다.
그 격정의 환희를 담아
여호와께로 방향을 틀어 '노래한다'
그 상황을
' 이노래로' 여호와께 '노래한다' 라..한다.
여호와를 '찬송 한다' 한다.
2 여호와는 나의 힘이요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시로다 그는 나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그를 찬송할 것이요
내 아비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그를 높이리로다
그 이스라엘의 격정적 환희
그 안에 담긴 환희가 '자신'의 안위에 대한 안정감 뿐이었는지
죽은 , 괴롭히던 애굽 군인들에 대한 고소함이었던지
이스라엘 백성 들의 지금의 기쁨 안에 담긴 격정 안에
어떠한 내용이 들어 있는 지 모르지만
어쨋든 '모세'는
그 안의 핵심을 담아 노래한다.
핵심이란
그 무엇도 '하나님이 하셨던 것을 경험'하는 자의
마땅히 드려야 할 고백이다.
여호와는 나의 힘이고 노래며 나의 구원이시다.
그 분이 내 하나님이시니 내가 그를 찬송할 것이고
내 아비의 하나님이시 내가 그를 높이는 것이다..라는 고백이다.
그렇다.
그러나 거기에는
아직도 '내'..가 담겨 있다.
하나님이 내게 하신 놀라운 은혜가 있으니
내가 높인다....
3 여호와는 용사시니 여호와는 그의 이름이시로다
그러다 찬양은 다시 바뀐다.
'여호와는 용사시다
여호와는 그의 이름이시다'
하나님은 홀로 계신 분이시다.
온 우주를 만들고
그 안에 시간을 콘트롤 하시고
우리 인간의 상상으로 상상하기 힘든
차원의 세계를 수십 차원까지 만드시는 분..
그러기에 우리 인간은 어떤 존재의 손을 통하여
만들어졌는 지 모르고
그 손... 도 또 어떤 존재로 인하여 그리되었는지 모르지만
(이거 .. 모든 진화론과 창조론의 주장,
인간의 태동이 우연의 단백질의 조합이라던가
우주인의 씨뿌려 놓은 태초의 지구에서 생명이 만들어져
진화되었던가 ..
인간이 생물적 로봇, 알고리즘으로 이해되는 생각하는 로봇 으로 ...
모두 고려해보아 .. ..이해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모든 존재는 다 그 위의 차원의 창조주체가 있다고 가정해보면
모두 '신'이라 생각할 수 있겠지만
그 들은 또 모두 '홀로' 있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온 우주의 궁극에
홀로 계신 분이 계신 것이고
그 홀로 계신 분의 뜻을 통하여
다른 과정,
도저히 우주의 원리를 이해키 어려운 우리 인간들을
그 과정을 통하여 만드신 것이란 이야기다.
너무 복잡한가?
보라.
괜히 주님은 모세를 아론과 더불어 고생시켜 가며
10번의 재앙을 만드셨다.
바로는 그 과정에서 그리 이용되었다.
그리고는 또 바로가 쫓아오게 하시며
홍해 앞바다를 가르시고
이용된 바로들을 물로 덮으시며 수장시키기까지
모두 주님이 하셨다.
그러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겐
밤낮 거르지 않고 불기둥 구름기둥으로 인도하게 하시고
그들을 초조케 하시고
원망케 하시더니
홍해를 넘어가서는
당신의 살아계심을 환희 하게 하시고..
난. .성경을 읽을 때마다
특히 출애굽기 읽을 때마다
마음 속에 드는 생각은
주님 홀로 두시는 장기 판의 '졸' 이 인간이 아니던가..하는 생각이다.
그거..
믿음이 아니고
하나님이 선하심을
은혜로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매일 걸어오시는 '묵상'의 말씀을 통하여
당신의 살아계심을
나에게 손잡고 가르치시지 않으신다면..
그래서 내가
하나님이 힘이시고
하나님 만이 구원이시고
그 분 만이 진리이시고
길을 밝히시는 불이고
발을 밝혀주시는 등불이심을
믿어 깨닫고 감사하기 전에는
어찌
이런 구절을 이해할 수 가 있단 말이던가?
오직 하나님의 뜻
오직 홀로 계신 하나님.
우주 궁극의 계신 홀로이신 하나님
그 분의 선하신 뜻이심을 믿어 알기 전에는....
오늘 모세의 노래를 듣고 있다
그 날의 격동이 가슴에 밀려오고 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가슴에도 동일한 감동이 있으나
그들은 아직 감사의 주체가 '자신'이다.
어쩌면 모세 역시 마찬가지일 감정이 조금은 남아 있을 수 있다.
'자기의 힘이고'
'자기의 구원이시고'... 해서 하나님이 감동스럽지 않던가?
물론 곧,
여호와 하나님이시기에 감사함을 표현하지만...
그렇다.
이 아침 주님이 레마를 통하여
주시고자 하시는 말씀은
그래도 하나님은 옳으시다.. 이시다.
오직 주님은 홀로 한 분 뿐이시고
그 분은 나를 무조건 승리하게 하실 것이심을 믿음이다.
존번연이 '천국'에 대하여 쓴글을 읽은 적 있다.
천국이 너무 지루할 것이라는
인간들의
인간 자신의 '죄성'과 '정욕'에 의하여
하나님을 판단하는
개가 인간을 보는 눈 (^^;;) 같은 소리에
끄덕이고 있을 즈음에
그 분은
천국에서는 그 영생의 시간 동안
하나님이 하신 일을 조금씩 배워가는 것으로
엄청난 감동이 매일 있을 것인데
그 무한한 하나님의 능력과 뜻을
영생에 걸쳐 배운들 배울 수 있겠냐는 것이고
그러니 지루할 틈이 없으며
찬송으로
가진 달란트로 하나님을 찬양하는데 만도
시간이 모자랄 것이라는... 그런 내용의 글이었다.
내 인생에
아주 아주 아주 조금 드러내신 하나님의 역사.
그 과정을 통하여
내게 주님을 무조건 믿게 하시려는
그래서 위의 고백을 하게 하시어
주님 나라에 들어가게 하시는 훈련이 어차피 인생이라면
지금 내 일상의 현상에 대하여
버거움,
하나님이 살아계시다면... 이라는
이 누구나 가질 수 밖에 없는 원론적인 버거움은
이스라엘의 평범한 백성 들 것이 아닐까?
내게 오늘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은
기쁠 때만 기뻐하지 말라.. 다.
아니 그럴 지라도
하나님은 선하시니
난.. 기뻐해야 할 당연한 당위성을 가지고 있음을
다시한번 명기 시키심이시다.
이제 곧 연휴가 끝나고
또 지루한 인생의 쳇바퀴로 들어가야 한다 .
의미 없는 매일은 지루한데
그 의미를 찾기 위하여 몸부림 칠 이유도 없는 듯하다.
그것 마져...
그 지루함 마져 주님의 아심이시고
주님은 그것도 선하게 이끄심이고
결국 그 안에서
하나님을 기뻐하는 훈련 만 하면 되는 것이시다.
내가 할 일은
'하나님은 여호와시니' 내가 기뻐할 것이다.. 다.
주님은 나의 구원이시고 힘이 시고 길이시고 빛이시고 진리이시기 때문이다.
감사하신 내 하나님
시간이 자꾸 지나갑니다.
할일이 없이
어제와 다름없이 오늘도 또 그리 지나갑니다.
바라기는 열렬히 주님의 살아계심을
인생에 나타내 보이고 싶지만
제 정해진 규격 안의 삶은 또 어느새
범생의 그런 하루하루 입니다.
그럴 때 지루한 나태함으로 내가 바뀌려 합니다.
의미는 없는 것 같고
죄책감이 들려 하였습니다.
주여.
그러나 그렇다고 홀로 몸부림 침은
또 자아의 헛된 몸부림이될 것임이 두려워
무엇 하나 내 홀로 할 수 있는 것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 역시 말씀을 통하여
살아계신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을 걸어오십니다.
주님은 여호와 이십니다.
아멘입니다.
홀로 계신 하나님이시고
그러하여
내게 모든 '선함'을 허락하고 계심입니다.
주여.
나를 다 아시는 하나님.
나는 주님으로 인하여 선하고
나는 주님 때문에 온전한 구원을 향해 다가가고 있습니다.
제 결국은 승리이고
제 삶은 그래서 의미가 있습니다.
주여.
모세의 노래를 주께 올리었습니다.
오늘 하루도 말씀대로
가만히 지켜보고
하나님의 임하셔 하시는 제 일생을
기쁨으로 바라보겠나이다.
이제 돌아보니
많았던 애굽군이 보이지 않네요.
감사합니다.
그 현상도 감사드립니다.
우리 주 예수
그 거룩하신 하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구약 QT'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온전히 주님을 앎(출16:1-12) (0) | 2015.02.23 |
---|---|
살아 갈수록 더 부르짖음(출15;22-27) (0) | 2015.02.22 |
금과옥조(출 13:17-22) (0) | 2015.02.18 |
이날에 나 살았으니(출3:1-16) (0) | 2015.02.17 |
여호와의 밤을 기억하며(출12:37-51) (0) | 2015.02.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