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온전히 주님을 앎(출16:1-12) 본문
피곤하고 졸립고
춥고 힘들었습니다
왜이리 멀고
광활한게
외롭기도 한지요
하지만
홀로 있으니
주님이 하신 일
만드신 세계
더 뚜렷하고
통쾌한듯 했습니다
주님 뜻
이 외로운 인생길 살면서
온전히 깨닫고 가기는
제 부족함으로 인하여
어렵긴 하겠지만
주님 만이
내 유일한 목적이고
주님 함께 하는 것만이
내 무조건 해야 할
인생의 목표임을
이제는 알겠습니다
내 주님이시여
1.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이 엘림에서 떠나 엘림과 시내 산 사이에 있는 신 광야에 이르니 애굽에서 나온
후 둘째 달 십오일이라
홍해 기적의 대 역사가 지난 후
그들의 삶에는 큰 변화가
없었다~~ ^^;;
하나님이 임재 하시었던 큰 기억이 있으면
구원을 받고 났으면
무엇인가 대단한 변화가 내 삶 속에
대단히 크게 일어났어야 할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가 있지만
삶은 그대로 그대로 흘러간다.
최소한
우리가 바라보는 게 '세상의 물질 적,현상적'인 것에
국한 되는 한 말이다 ... ^^;;
아니.. 오히려
신광야의 뜨거운 햇살,
인생의 메마름
배고픔의 허기짐
죽음을 향해 가는 외로운 인간의 고독은
또다시 무거운 발걸음을 옮기는 모든 사람들에게
힘들게 한다.
거기에 '하나님의 뜻', '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을 감사하려 함'에 대한
부담 ( .. 아니다 .. 이제는 그게 '은혜'임을 안다. .. 그러하게 배려하심의 은혜 !)은
지친 걸음에
더욱 힘들게 한다.
4. 그 때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서 양식을 비 같이 내리리니 백성
이 나가서 일용할 것을 날마다 거둘 것이라 이같이 하여 그들이 내 율법을 준행하나 아니하나 내가 시험
하리라
그래서 하는 '원망'들은
당연히도 어릴 수록, 영적으로 미숙할 수 록
더 커질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위의 나도 모르는 고백처럼
그렇게 하시는 것도 은혜이고
그러하심으로 더 감사가 나오게 하시는 훈련을 시키시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심을
이제는 마음을 넘어
영 깊숙이 박혀 있다 .
그것을 주님은
내가 '시험' 한다.. 라 하신다 .
난...
이 시험이란 단어를 아주 싫어했다.
거기엔 ' 모든 것을 다 아시는 하나님'께서
시험을 하여야 아신다는 것은
이율 배반이고
그러기에 '혹~??' 이 성경이
무지한 고대 이스라엘 인들이
'신비적 체험'이라는 명분 하에
'망상적 심리 현상'들을
수 천년의 시간동안 깍고 다듬어
그럴듯하게 만들어 내지 않았는가?... 하는 의구심이 있었었다.
비록 예수님의 그 첫사랑이 너무 강렬하여
입으로 표현해내지는 못했지만
그것이 사실로 드러나는 것이 두려워
예수 영접하고 시간이 지나면서
인생의 버거움과 더불어
신광야 이스라엘의 '원망' 이
어린 내 영적 시간 동안
입 속에 담아 두고 꺼내지 못했던 생각이고
그것은 내 내재적 갈등과 더불어
내 삶에 하나 더 십자가를 얹어 놓은 듯한 무게 엿었다.
하지만
5. 여섯째 날에는 그들이 그 거둔 것을 준비할지니 날마다 거두던 것의 갑절이 되리라
어느 순간
하나님의 때,
하나님의 방법대로
내 인생은 펼쳐져갔다.
수십번 , 이곳 블로그에서 고백했듯
난.. 사진, 찬양, 기적..수술기법의 발전, 먹고 사는 문제의 견고해짐.... 등
하나님은 내가 원했던 것 과는 다른 방법으로
내게 풍성함을 주고 계셨다.
날마다 '갑절"?
그거.. 믿는 자에게는 경험이 되어질 것이고
하나님이 선택한 자들에게는
그들이 '원망'하던 안하던 주어질 것이다.
그 시간이 느려지고 길어지는 것이
우리의 '선택'의 잘못일 뿐...
그렇다.
그게 원망을 하지 말아야 할 이유다. ^^*
6. 모세와 아론이 온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르되 저녁이 되면 너희가 여호와께서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
하여 내셨음을 알 것이요
이제 ..
그렇지 않아도 '감사'하고
그러시지 않으셔도 '은혜'롭다는 것을
난
안다고 고백했다.
하나님은
그 모든 '외적'인 것을 떠나
더욱 깊은 이유로
내 인식의 버거움을 넘어서고
인류의 모든 생각을 건너 뛰시어
당신 만의 방법대로
우리에게 시험을 허락하신다는 것이시다 .
그게..
오늘 '알것이다'
12. 내가 이스라엘 자손의 원망함을 들었노라 그들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너희가 해 질 때에는 고기를 먹고
아침에는 떡으로 배부르리니 내가 여호와 너희의 하나님인 줄 알리라 하라 하시니라
'알리라' 는 말씀에 농축되어진 것 같다.
즉,
하나님께서 하나님이신 것 만 가지고도
우리 영혼들이 기뻐하고 감사하고
은혜 가운데 거함으로
인생의 모든 버거움들이
하나도 의미가 없어져
사는 것 자체가 '심령 천국'의 또다른 모습이 되는 자들이
되게 하는 것...
그게...
하나님이 우리를 지으신 이유이신 것이란 생각이다.
내
너무 좋아하던 구절
이사야서 43장 21
'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 '
주님이 우리를 지으신 이유..
그 분을 위하여 '인생의 찬송'을 부르게 하기 위한 목적이시다.
다시 말하면
난.. 주님의 영광을 인생으로 노래하기 위하여 만들어진 존재다.
그거.. 포스트 모더니즘을 역행하는 생각이겠지만
우리의 태생이 그렇다.
우리가 중심이 아니다.
주님이 중심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노예던가?
계속되는 출애굽의 모습처럼
장기판의 卒이 우리던가?
고백했고 간증에서 누구든 나오지만
순종하는 자들에게
하나님은 인생을 바꾸시고 행복하게 하신다.
그 행복의 가장 궁극은
"온전히 주님을 앎"이고
그것을 위해 주님은 우리를 만드셨고
그를 위한 방법으로 우리를 배려하셔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성령을 마련하셨다.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더욱 감사한 것은
내 지금은 평안 가운데 있어서 비록 그런 줄 모르겟지만
어째도 하나님의 함께 하신 평안함을 앎을 알고 있다는 사실이
내 궁극의 기쁨이 될 것이란
나름의 확신이 있다.
순교의 자리 만큼 어려운 일들이 지속되어도
계속 똑같을 지는
아직은 미지수이기에
주님께서
오늘도 말씀으로 나를 찾아오셔서
이렇게 달래시고 어루만지시고 깨우치시고
또 한번 은혜로 내 영혼을 다림질 하고 계시는 듯하다.
그게.. .
난..
감사하다.
연휴가 끝나고 이곳 충주의 삶이 다시시작이 되었다 .
지난 밤.
홀로 차를 몰고 내려오며
이곳 산속 깊숙한 곳으로 올라오니
보일러 배관이 터졌는지
현관이 물이 흥건하다 .
여러 조건들이 그것을 또 불행하게 바라보는
내 본래적 우울질을 자극하였을지 모르지만
이제는 다르다.
담담하고 자연스럽다.
그러고 마음이 편하다.
아침에 일어나니
또 고였다.
한참을 물을 담아 통에 담고 있을 때
'아랫층'의 원장님이 올라오셔서
먼저 전화를 하고
고칠 사람들을 수배해 주신다.
그 분께서도 물이 새셔서 누전되었다고 하시며.
보라.
내 신경안써도 다 해주시는 '하나님'.ㅎ
내 삶.
그대로 맡기고
주님을 또 더 알아가는
그래서 고백하고 감사하며 보내는 하루가 되길 기대한다.
주님.
이렇든 한가하고 나른하면
별 말씀을 이어나갈 재료도 없고
신앙적으로 나태할 걱정이 없지 않아 있었지만
아침은
나름 바쁘고 수술도 많이 예약되게 하셨으며
오히려 기도하는 분량이 늘어나게 하시네요.
오...
주님.
그 나른한 광야 가운데서
이제 저는
조금은 원망과 갈등을 덜하게 됩니다.
주님을 알고
주님의 평강과 안락과 은혜를 경험한 터인줄 믿습니다 .
그래서
돌아온시간들이
그리 헛되지 않고
잘 오고 있음을 깨닫게 되어
그게 감사하나이다.
주여.
오늘은 '알것이다. ' '알리라' 하십니다.
전.. 주님을 아오니
더 깊이 영혼 안에
주님의 모든 하심을 고백하고
감사하며 사는 자 되게 하소서.
어떤 상황에서도
주님 하심을 인식하고
인정하고 선한 결과를 기대하는
믿음의 사람,
체험의 감사하는 자 되게 하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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